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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가 내리는 녹슨 서고

리라이트 마이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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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리즘
작품등록일 :
2020.05.11 14:16
최근연재일 :
2020.07.08 19:18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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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글자수 :
88,501

작성
20.05.2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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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3. 사자의 심장 (2)

DUMMY

딱. 딱. 딱. 한 손을 턱에 괸 채 다른 손으로 볼펜 끄트머리를 꾹꾹 누르길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방학식이 끝나있었다.


세빈은 책상과 사물함 안에 든 모든 책을 책가방에 눌러 담고 잽싸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지긋지긋했다.


어딜 가나 살인사건에 대한 얘기만 들렸다.


어쩌면 자신이 그 희생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섞인 초조함에 사로잡힌 세빈은 애써 귀를 닫고 싶었으나 그 흉흉한 이야기를 아예 걸러낸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수요일, 세빈이 의문의 습격을 받고 하루가 지난 뒤 또 다른 살인사건에 대한 소식이 교내 전체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피해자는 20대 초반의 여성.


장소는 주택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으슥한 골목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한 흉악범죄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이 일이 틀림없이 지난 주 일어났던 살인사건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고 모든 아이들이 확신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시체의 두 귀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괜히 싸늘한 느낌이 들어 연신 귓불을 매만진 세빈은 자신에게 귀가 달려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지안이 기다리고 있을 교문으로 향했다.


오늘도 늘 같은 곳에 그녀가 서 있었다.


단정하게 빗은 생머리를 머리띠로 고정시킨 지안을 눈에 담는 순간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세빈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는 그녀와 손뼉을 마주쳤다.



“드디어 방학이네.”


“응. 뭐 방학이라고 해도 마냥 기쁘진 않지만 말이야.”


“보충수업? 괜찮아. 작년에 그거 수강했던 애한테 들었는데 마지막 시간에 보는 시험, 생각보다 그렇게 안 어렵대.”


“물론 시험 난이도도 중요하지만... 그냥 명색이 방학인데 계속 학교에 와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우울하잖아. 모처럼 천문대에 눌러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풀이 죽은 채 고개를 푹 숙인 세빈의 모습을 본 지안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다.



“나도 이번 방학엔 나연이를 돕느라 계속 학교에 와야 하는데, 어때? 보충수업 끝나고 식당에서 만나지 않을래? 서로 도시락 싸와서 같이 나눠먹자.”


“좋은 생각이네. 근데 나연이도 보충 듣는 거야? 동아리활동뿐이라면 그냥 걔네 집에서 만나도 되잖아.”


“응, 맞아. 이번에 수학 완전 망쳤대. 근데 걔 보충수업 날짜도 화요일, 금요일이라 너랑 시간이 완전히 겹치거든? 이왕 이렇게 된 거 나연이도 점심 때 부를까?”



생각지도 못한 지안의 제안에 얼굴색이 온통 흙빛이 된 세빈은 미간을 살며시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걔랑 같이 먹으면 틀림없이 체할 것 같은데.”


“아, 나도 그 기분은 이해해. 원체 활발하고 시끄러운 성격이니까. 그래도 알고 보면 굉장히 착하고, 상냥하고, 또 재치 있는 애야. 재밌는 얘기를 많이 알고 있어서 귀담아듣고 있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를 때도 많고. 특히 일반상식 쪽은 거의 박사 수준이라 물어볼 때마다 척척 답해줘서 정말 도움이 되거든.”


“응. 나도 나연이가 나쁜 애라곤 생각하지 않아. 딱히 걔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남의 영역을 필요 이상으로 서슴없이 침범하는 애들과 어울리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아. 그런 관계는 내겐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져. 물론 지안이 너는 당연히 예외야. 넌 내 친구니까.”



말을 마친 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얼굴을 살짝 붉힌 세빈의 모습을 본 지안은 쿡쿡 웃으며 그녀에게 착 달라붙었다.



“정말 기쁜데? 세빈이한테 그런 얘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네.”


“아으... 나도 설마 내가 이런 말을 입에 담게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방금 건 잊어줘. 지금 많이 부끄러우니까.”


“싫은걸? 네 말대로 우린 누가 뭐래도 친구잖아? 앞으로도 친하게 지낼 거고.”


“그건 그렇지만... 아, 몰라. 그냥 갈 거야.”



지안은 토라진 채 쌀쌀맞게 홱 돌아선 세빈의 뒤를 따라 학교 담장 옆을 사뿐히 걸었다.


푸르른 나뭇잎들 사이로 이른 오후의 태양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었다.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던 지안의 귀로 개미가 기어가는 것만큼이나 작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워.”


“응? 세빈아, 무슨 말 했어?”



지안의 질문에 슬쩍 뒤쪽으로 고개를 돌린 세빈은 볼을 부풀리면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언제나 고맙다고... 그걸 굳이 또 얘기하게 만드네.”


“미안, 진짜 못 들어서 물어본 거야. 근데 갑자기 왜?”


“그 뭐야... 그저께 그거 말이야.”



지안은 세빈이 말을 하다 말고 얼버무리자 곧 그녀가 무슨 의미로 그랬는지 직감하고 걸음을 멈췄다.



“아... 화요일 밤에 누군가한테 쫓겼다고 했던 그 얘기 말이구나.”


“응.”


“그거 정말 비밀로 해둘 거야? 너희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어? 실제로 그날 그 부근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며. 자칫 일이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진짜 위험에 처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같이 멈춰선 세빈은 지안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싱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하시느라 항상 바쁘신데 괜히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진 않아. 그야 너무너무 무서운 경험이긴 했지만 결국 어디 다치거나 한 것도 아니고. 때마침 구해준 은인도 있었으니까.”


“뭐 네 뜻이 정 그렇다면 나야 더 할 얘기는 없지만 말이야. 아무튼 다른 누구도 아닌 나한테만 공유해줬다는 건 친구로서 정말 뿌듯하면서도 책임감이 느껴지네. 근데 그때 널 구해줬다는 그 은인 말인데, 결국 누구였던 거야? 외국인이었다면서?”


“응. 이름 말곤 아무것도 못 들었어. 나중에 만나면 꼭 이 은혜를 갚고 싶은데 어디 사시는지도 모르니 난감한걸.”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세빈이 어딘가 쓸쓸해보이자 지안은 그녀를 격려해주기 위해 팔을 뻗어 어깨동무를 했다.



“좋은 인연이 닿았으니까 언젠가 꼭 만날 수 있을 거야. 아아, 그나저나 나도 위기에 빠졌을 때 어디선가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면 무척 기쁠 것 같은데.”


“그 얘길 내 앞에서 대놓고 하다니. 날 믿지 못한다는 거야?”



지안의 넋두리에 살짝 심통이 난 세빈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달려들어 머리카락을 조금 헝클어뜨렸다.



“아냐! 당연히 믿지! 만약 내가 궁지에 몰리면 세빈이 네가 가장 먼저 달려와 줄 거잖아. 입에 발린 소리가 아냐. 정말로 신뢰하고 있다고.”


“우와. 그런 얘기까지 들으니 굉장히 막중하게 느껴지는걸. 물론 그럴 거긴 하지만 말이야. 근데 애초에 네가 나보다 운동신경이 훨씬 좋잖아. 키도 더 크고. 구한다면 네가 날 구하러 오는 게 이치에 맞지 않아?”


“어라, 그렇게 되나? 음...”



세빈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긴 지안은 얼마 후 씩 웃으며 세빈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댔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서로 구해주자고. 난 널 지키고 넌 날 지키면 되는 거잖아. 그치? 약속이야?”


“응, 약속할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널 구해줄게. 그러니 너도 날 구하러 와.”


“좋아. 지금부터 맹세한 거야.”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두 소녀는 곧이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우리 둘 다 뭐하는 거야. 이런 낯간지러운 소리나 늘어놓고.”


“푸훗, 그러게 말이야. 얼굴이 다 빨개지네. 결국 가장 좋은 상황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데 말이야.”


“응. 이번 여름방학은 정말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동감이야. 보충수업만 해도 이렇게 머리 아픈데 다른 일까지 일어나면...”


“파이팅!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물어봐. 나도 한국사는 살짝 자신 없지만 알려줄 수 있는 데까진 알려줄게.”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 큰길이 직선으로 시원하게 뚫려있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낭랑한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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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그믐달 결사 (2) +16 20.06.08 35 8 7쪽
13 1-4. 그믐달 결사 (1) +14 20.06.06 32 6 8쪽
12 1-3. 사자의 심장 (5) +14 20.06.04 33 7 16쪽
11 1-3. 사자의 심장 (4) +6 20.06.02 26 3 11쪽
10 1-3. 사자의 심장 (3) +4 20.05.31 28 2 9쪽
» 1-3. 사자의 심장 (2) +2 20.05.29 20 1 8쪽
8 1-3. 사자의 심장 (1) +4 20.05.27 27 3 8쪽
7 1-2. 흑과 은 (3) +8 20.05.24 28 2 11쪽
6 1-2. 흑과 은 (2) +6 20.05.22 31 2 9쪽
5 1-2. 흑과 은 (1) 20.05.19 31 1 9쪽
4 1-1. 녹슨 화원 (3) +2 20.05.16 35 2 10쪽
3 1-1. 녹슨 화원 (2) 20.05.14 52 1 8쪽
2 1-1. 녹슨 화원 (1) +16 20.05.12 64 4 10쪽
1 Prelude. 세빈 +10 20.05.11 127 1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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