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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가 내리는 녹슨 서고

리라이트 마이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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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리즘
작품등록일 :
2020.05.11 14:16
최근연재일 :
2020.07.08 19:18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693
추천수 :
71
글자수 :
88,501

작성
20.05.14 22:06
조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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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1-1. 녹슨 화원 (2)

DUMMY

“음... 얘가 바로 지안이가 항상 얘기했었던 그 애란 거지?”


“으앗, 깜짝이야... 뭐, 뭐야?”



특이하게 생긴 암갈색 모자를 살짝 옆으로 틀어 쓴 키 작은 소녀가 안경알을 빛내며 이쪽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광경에 화들짝 놀란 세빈은 그만 주저앉을 뻔한 다리를 간신히 지탱한 채 옆에 위치한 사물함을 붙잡았다.


소녀는 그녀의 그런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킥킥 웃으며 세빈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 최나연이라고 해. 네가 윤세빈이지?”



먼저 인사를 건넨 나연의 악수 요청에 응하기 위해 손을 뻗던 세빈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아, 응... 근데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나연은 어정쩡한 위치에서 팔을 멈춘 채 다소 놀란 표정을 지은 세빈을 앞에 두고 고개를 끄덕이며 안경을 고쳐 썼다.



“좋은 질문이야. 그건 말이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나연은 머리에 쓴 고풍스러운 무늬가 새겨진 헌팅캡의 끄트머리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운 채 살짝 고쳐 쓴 뒤 반대쪽 손으로 손가락을 툭 튕겼다.



“내가 앞으로 만들 내 명함 속에 담고 싶은 건 말이지, 바로 기자탐정이라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나만의 멋진 직함이야. 그러니 네 이름 석 자 정도는 손쉽게 맞춰줘야 떳떳이 고개를 들고 앞으로의 장밋빛 미래를 마음껏 꿈꿀 수 있지 않겠어?”


“기자탐정? 아니, 잠깐... 저기 지안아. 혹시 오늘 만나자고 약속했다는 친구라는 게...”



계속 뒷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터라 이미 나연이 교실 문턱을 밟을 때부터 자연히 모든 광경을 목격하게 된 지안은 한숨을 내쉬며 중재에 나섰다.



“응, 걔 맞아. 미안해. 나연이 쟤가 워낙에 다른 사람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애라서. 좀 전에 무례를 저질러버린 건 내가 대신 사과할게. 그래도 나쁜 뜻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무례라니, 실례네. 그 듣기 거북한 단어, 적어도 호기심에서 비롯된 악의 없는 탐구활동이라 정정해주지 않을래?”



나연은 불만이 생겼다는 걸 어지간히도 표현하고 싶었던 건지 과장된 몸짓으로 팔짱을 낀 채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나 지안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있는 걸 발견한 그녀는 황급히 양손을 흔들며 싸늘해진 분위기를 무마해보려 애썼다.



“엣헴! 음, 미안해. 내가 잘못한 것 같아. 너그럽게 용서해주면 고맙겠어.”


“잘못한 것 같다?”


“아니, 아니요. 제가 초면에 정말로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앞으로 이런 짓은 다신 하지 않겠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지안의 말꼬리가 살짝 올라가자 당황한 나연은 허둥지둥 세빈에게 머리를 푹 숙였다.



“아냐, 괜찮아. 그냥 조금 놀란 것뿐이니까.”



순순히 사과를 받은 세빈의 화답에 별안간 나연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오호? 그 얘기인즉슨 날 용서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나연은 오로지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재빠르게 고개를 들어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세빈은 양손을 모은 채 위를 올려다보는 자그마한 햄스터가 연상된 탓에 헛웃음이 입 밖으로 새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어? 응, 물론 그런 셈이긴 한데...”


“정말 고마워! 오늘 분명히 복 받을 일이 생길 거야.”



세빈은 예고도 없이 다짜고짜 덥석 안겨오는 나연의 기세에 눌려 잠시 뒷걸음질했다.


불과 수 분 전에 처음 만난 애와 갑자기 포옹을 하는 건 난생 처음 겪는 일인 그녀는 기겁한 가슴을 애써 달래면서 무의식적으로 나연을 살짝 밀쳐냈다.


예상 외로 순순히 떨어져나간 나연은 그러나 세빈이 숨을 돌릴 여유조차 주지 않고 다시 성큼 다가와 손을 맞잡았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굉장한 인연이잖아. 그런 의미에서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될까?”



얼이 빠진 채로 완전히 나연의 페이스에 휘둘리던 세빈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부탁?”


“응. 이번 여름방학 있지? 그 기간 동안 날 좀 도와줬으면 해. 염치없는 소리란 건 알고 있어. 근데 이대로 계획해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엔 머릿수가 턱없이 모자란지라 도움의 손이 절실히 필요해서 말이야. 아, 방금 말한 프로젝트라는 건 내가 소속된 신문부가 직접 제작하는 학교신문 다음 호의 1면을 장식할 중대한 임무거든? 세빈이 네게도 꽤 재밌는 작업이 될 거라 생각해. 그러니 정말 간단한 일만이라도 좋으니까 좀 거들어주면 안 될까? 이렇게 사정할게. 제발 도와줘.”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나연은 세빈의 손을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듯 꽉 움켜쥐면서 애타는 바람이 가득 담긴 눈빛을 보였다.


세빈은 이런 극성스러운 애랑 엮이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로 이어질 거란 예감이 강하게 들어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껏 면전에서 타인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망설였다.


침묵이 길어지자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지안은 한숨을 푹 내쉬며 대신 나섰다.



“그러니까 아무나 붙잡고 다짜고짜 권유하는 건 그만두라고 했었잖아. 어느 누구라도 이제 막 처음 만난 사람한테 갑자기 그런 부담스러운 얘길 들으면 당연히 곤란해 할 수밖에 없지. 거기다 세빈이는 안 그래도 바쁜 애란 말이야. 괜히 이 이상 민폐 끼치지 말고 이만 부실로 가자. 내가 세빈이 몫까지 도와줄게.”



자리에서 가방을 챙긴 지안은 여전히 나무늘보처럼 세빈에게 매달려있는 나연의 손을 잡고 교실 뒷문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다급해진 나연은 어떻게든 버티려 애쓰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그래도! 우리 둘이서 하면 방학 내내 매달려도 힘들지 않겠냐고 했었던 건 다름 아닌 너잖아! 아직 대답도 듣지 못했는데 벌써 포기하기엔 이르지!”


“그건 계획을 너무 거창하게 세우지 말고 할 수 있는 정도로 적당히 축소하잔 의미였어. 사람을 더 구하자고 한 게 아니라.”


“너무해! 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공들인 일생일대의 프로젝트인데 시작도 하기 전부터 축소하자니! 너 정말 날 도와주려는 거 맞는 거야?”


“그래. 성심성의껏 도와준대도. 그러니 이만 가자. 세빈아, 오래 잡아둬서 미안해. 얘는 내가 잘 타이를게. 내일 또 보자.”



평소와는 달리 박력 있는 모습으로 손쉽게 나연을 제압한 지안은 세빈에게 사과의 의미를 담은 목례를 한 뒤 문밖으로 사라졌다.


잔뜩 울상을 지은 채 질질 끌려가는 나연의 처량한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교실 안에 다시금 고요가 내려앉았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세빈은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비틀거렸다.


간신히 중심을 잡은 채 벽에 기대자 저편으로 드리운 그림자 역시 주인을 따라 움직임을 멈췄다.



#



이제 막 여름의 문턱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늦은 오후임에도 좀처럼 저물지 않는 태양 때문에 후텁지근하게 느껴졌다.


하교하는 길에 잠시 학교 근처에 위치한 시립도서관에 들러 몇 권의 두꺼운 책을 빌린 세빈은 평소보다 훨씬 무거운 책가방의 중량에 짓눌려 어깻죽지를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발을 옮겼다.


덥고 힘들다보니 어제 먹었던 차가운 아이스크림의 감촉이 신기루처럼 그녀의 입속에서 피어올랐다.


하지만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세빈은 오로지 지금부터 가게 될 곳만을 떠올리며 꿋꿋이 걸었다.



북적북적한 번화가와 커다란 사거리, 그리고 인적이 드문 주택가를 지나 세빈이 향한 곳은 선일시 서쪽 끝자락에 걸쳐있는 야트막하고 한적한 산비탈의 초입이었다.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 대신 그 옆에 위치한 완만한 오르막에 접어든 세빈은 얼마 있지 않아 드넓은 공터와 조우했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군데군데 이름 모를 풀들이 무성하게 자란 사이로 거대한 건축물이 우뚝 솟아있었다.


작가의말

Tip) 나연의 실제 장래희망은 기자이지만 정작 본인은 기자탐정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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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4. 그믐달 결사 (6) +4 20.06.29 17 2 21쪽
17 1-4. 그믐달 결사 (5) +4 20.06.22 20 2 8쪽
16 1-4. 그믐달 결사 (4) +8 20.06.14 27 4 8쪽
15 1-4. 그믐달 결사 (3) +10 20.06.12 29 4 13쪽
14 1-4. 그믐달 결사 (2) +16 20.06.08 33 8 7쪽
13 1-4. 그믐달 결사 (1) +14 20.06.06 30 6 8쪽
12 1-3. 사자의 심장 (5) +14 20.06.04 33 7 16쪽
11 1-3. 사자의 심장 (4) +6 20.06.02 26 3 11쪽
10 1-3. 사자의 심장 (3) +4 20.05.31 26 2 9쪽
9 1-3. 사자의 심장 (2) +2 20.05.29 19 1 8쪽
8 1-3. 사자의 심장 (1) +4 20.05.27 27 3 8쪽
7 1-2. 흑과 은 (3) +8 20.05.24 28 2 11쪽
6 1-2. 흑과 은 (2) +6 20.05.22 29 2 9쪽
5 1-2. 흑과 은 (1) 20.05.19 31 1 9쪽
4 1-1. 녹슨 화원 (3) +2 20.05.16 35 2 10쪽
» 1-1. 녹슨 화원 (2) 20.05.14 51 1 8쪽
2 1-1. 녹슨 화원 (1) +16 20.05.12 63 4 10쪽
1 Prelude. 세빈 +10 20.05.11 126 1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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