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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퀘이사T
작품등록일 :
2012.03.25 01:28
최근연재일 :
2012.03.25 01:28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70,009
추천수 :
786
글자수 :
313,042

작성
10.05.22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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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9쪽

2화. 그 여행

DUMMY

루리안의 입장에서는 약간의 몸 풀기 정도가 끝난 후, 우리는 바쁘게 움직였다. 시체는 아니었지만, 거의 반 시체나 다름없는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아두고, 무기는 전부 수거해서 산비탈로 던져 버렸다. 이 거 은근히 힘들었다. 무식하게 단검을 열두 자루나 들고 다니는 놈이 있었거든.

"후아, 힘들어.“

휴리첼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털석 주저앉았다. 그와 싸운 메델라인이라는 기사는 이미 죽었다. 하기야, 봐주면서 싸울만한 상대는 아니었지, 덕분에 그의 어께에는 깊은 검상이 나 있었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그는 힘쓰는 일을 도맡아서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힘이 별로 세지 않다. 특히나 이런 막노동에 필요한 힘은. 이 거 때문에 뭘 먹고 자랐기에 사내자식이 이렇게 부실해? 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순간 욱했지만 변명할 말이 없길래 참았다. 제길. 신체구조가 이런 걸 어쩌라고.

녹음이 짙어왔다. 확실히 한 낮의 숲다웠다. 하지만 잎이 너무 무성해서 숲속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적었기에 상당히 으스스했다. 이제 하루 정도만 걸어가면 되지만, 미로 속에 빠진 것 같은 그 기묘한 느낌은 상당히 불쾌했다. 처음엔 이 길을 지나면서 떨었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지 음.

그래도 지금은 인원이 많으니 그럭저럭 다닐 만하다.

“다리 아파.”

물론 속도는 훨씬 뎌뎠지만.

“그럼 좀 쉴까요?”

사실상 이 일행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이리 태평하니 당연히 느려질 수 밖에.

루리안은 콧노래를 부르며 찻잎을 넣고 알맞게 데운 물을 휘휘 저으며 주전자의 주둥이를 찻잔에 살짝 기울였다. 찻잔에 줄이라도 그어 놓은 듯 네 잔의 찻물은 그 높이가 일정했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더더군다나 그 맛은, 아차 미리 양해를 구할게요 엘리스 아줌마. 우리 가족의 식생활을 책임진 엘리스 아줌마의 솜씨보다 위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검술은 측정 불가능하지, 외모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예쁘지, 몸매도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몸매다. 더더군다나, 요리 솜씨는 적어도 중간은 간다. 이 무슨 이상적인 마누라 감이란 말인가! 우리 스승님은 모든 여자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질 법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뭐 앞에 이상한 게 하나 있다고? 그건 그냥 덤이다 덤. 요즘엔 맞고 사는 남편들이 많다던데, 루리안은 전혀 그럴 일이 없을 성격이다.

“세인?”

“예?” 루리안은 보랏빛 눈망울에 장난기를 담고 살짝 웃었다.

“왜 그렇게 봐요?”

붉은 입술은 너무 휘어지지도 그렇다고 무뚝뚝하지도 않은 절묘한 각도로 구부러져서 정말이지 한폭의 그림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에요.”

“네? 뭔데요.”나는 피식 웃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싶어서요.”

“우와, 그말 공감!”

메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여자다 보니 느끼는 바가 큰 가 보지.

“당연히 불공평하지. 누구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고 누구는 길거리에 버려지는데.”

“흐응, 그래?”

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난 그건 아니라고 봐.”

“왜?”

“귀족이라고 말이야, 귀족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날까?”

“그거야 아니겠지. 그게 왜.”

“누구든 태어나는 건 태어나는 거야. 즉, 거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이 귀족으로 태어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신의 룰렛은 공평하다?”

메이린이 흥미가 동한다는 어투로 말했다.

“뭐, 내가 은수저 물고 태어나서 이런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말야.”

나는 고개를 슬쩍 들어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휴리첼은 한 방 먹은 표정이었다. 역시, 머리가 굳어 보였어. 그리고 루리안은 안색이 창백해졌... 어라?

“스승님 아프신가요?”

“아뇨, 아니에요.”

루리안은 억지로 웃어보였지만, 그것은 쓰라림을 억지로 감추려는 미소였다. 내가 말을 잘못했나?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차를 들이켰다.

잠시간의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휴리첼이 일어섰다.

“슬슬 가자.”루리안이 침묵하자, 일행들의 대화도 3분의 일로 줄어버렸다. 역시 대화에는 추임새를 넣어주는 사람이 필요해.

이 답답함에 괴로워하고 있을 무렵. 드디어 숲이 걷혔다. 눈을 찌르는 밝은 햇살.... 그것은 샛길의 끝을 얘기하는 햇살이었다.

밝아진 거리를 조금 걸어가자, 갈랫길이 일자로 모아졌다. 바로 샛길과 돌아가는 길의 교차점이다. 이대로 3분 정도만 걸어가면 우리 영지의 성벽이 보인다. 음, 휴리첼이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높다아...”

“아무래도 최전선이니까 말이야."

남매는 감탄한 표정이었다. 철저하게 전투를 상정하고 만든 성벽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고 경비병들의 감시는 철저했다. 마침 상단이 들어오는 모양인지, 검문이 한창이었다.

흠, 한 번에 통과할 수도 있지만 놀래켜 주는 게 재밌겠지?

제법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 앞에 밀이 약한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황량한 풍토이니만큼 밀밭의 밀은 화려하다고 할 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길이가 상당했다.

“그렇게 발전된 도시는 아니네, 확실히 군사력은 엄청난 것 같지만.”

“뭐, 최전방도시니깐, 병력이 많은 건 어쩔 수 없잖아? 그럼 나는 여기서 이만.”

“에? 어디가게?”

메이린이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묻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세어 나왔다.

“집에 가야지. 인사드리러 온 거거든. 너희들은 영주성으로 갈거 아냐? ”“히잉, 그렇구나. 세인 다시 볼 수 있겠지?”

“아마, 그럴걸?”

백퍼센트 확률로.

루리안도 이제는 기운을 되 찾은 것 같다. 도대체 무슨 기억을 떠올렸길래... 살짝 궁금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아버지 말씀이 괜히 다른 사람의 과거를 들추려 해서 득볼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마음을 깨끗이 접은 채 루리안을 이끌었다.

“그러고보니, 세인의 집은 어디쯤인가요?”

“아, 제가 말씀 안드렸던가요?”

“네, 어제 휴리첼씨랑 하시던 말씀으로 귀족이란 건 알았어요.”으윽, 의외로 예리하다. 입조심해야지 입조심.

“저기요.”

나는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루리안은 그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어쩐지 실전의 냄새가 묻어나는 검술이었어요.”

“쳇, 너무 조금 놀라시는 거 아니에요?”

“무슨 기대를 했길래, 그래요.”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애 취급 받는 것 같아서 살짝 기분 나쁘다. 쳇, 그래 16살이면 애지. 근데 애의 기분 좀 맞춰 주는 건 어른의 센스 아니야?

나는 툴툴 거리며 영주 성, 우리 집으로 들어섰다.

고성(古城),적어도 3세대 이전의 건축양식이지만, 흠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화려하지는 않은데다가, 외성이 점령당할 경우, 영지민들을 이끌고 최후의 항전을 할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지하의 식량창고는 3000명이 한 달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이 저장되어 있었다.

루리안은 이 건물이 재밌는 모양인지 연신 주변을 둘러 보았다. 영주성의 경비에게 얼굴을 비추자, 그는 잠시동안 멍하더니 곧 대답했다.

“좀 늦으셨군요.”

무뚝뚝하다. 제길, 누가 아버지 부하 아니랄까봐.

“반갑다고 해줘도 되지 말입니다.”

“전 거짓말은 못하는 성격이라서요.”

허억!

내가 페닉상태에 빠져 허덕이고 있을 때, 그의 뒷말이 이어졌다.

“농담은 좋아하지만요.”

다, 당신! 이럴 수가 있어?

루리안이 쿡쿡 거리며 웃는 소리에 나는 온 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래야 우리 집이지.

집의 장식이래봐야 이가 나간 검들을 걸어두거나, 각종 병장기가 대부분이었다. 좀 삭막해 보이기도 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것이 보기 좋았다.

“어머, 이게 누구야! 도련님!”

뽀글뽀글한 갈색머리카락 통통한 몸매에 주름살이 새겨진 얼굴에 그려진 사심없는 미소가 가슴을 푸근하게 만들었다. 이 사람은 나의 유모, 엘리스다.

“다녀왔어요!”

“어서오세요.”

엘리스도 나도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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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의 종료입니다. 그동안 쓴 애기가 숲,숲,숲 밖에 없었던 듯한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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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그 여행 +2 10.05.22 1,478 12 9쪽
7 2화. 그 여행 +1 10.05.16 1,510 1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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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화. 그 여행 +2 10.05.09 1,804 1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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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화. 그 만남 +4 10.05.07 2,151 13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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