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팬텀 님의 서재입니다.

그리고 눈을 뜨면 만나러 갈 거예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D팬텀
작품등록일 :
2020.11.09 02:31
최근연재일 :
2021.01.12 13: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636
추천수 :
0
글자수 :
229,180

작성
20.12.01 08:00
조회
10
추천
0
글자
19쪽

23화 작별하는 시간

DUMMY

캐서린은 새하얀 공간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꿈?’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몇 번 시도한 후 포기했습니다.


‘...지금은 그냥 이대로 있을래.’


지난 일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도서관에서 스텔리카와 처음 만났을 때입니다.


캐서린에게 지난 10년의 세월은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스텔리카와 함께 있었던 찰나의 순간이,

그 모든 슬픔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기에 몇 번이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스텔리카는 캐서린에게 있어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눈을 뜨면 만나러 갈 거야.’


새하얀 공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 기억은 저편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캐서린은 현실로 돌아옵니다.



◇◇◇



캐서린은 다시 깨어났습니다.

‘악마의 탑’ 바깥입니다.


병사들은 캐서린 주변을 둘러싸며,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깨끗한 천을 가져온 승려들은, 캐서린을 감싼 후 운송차 근처에 설치한 간이 샤워실로 옮겼습니다.


간이 샤워실 안에는 함께 가져온 깨끗한 호숫물이 있었습니다.

캐서린은 승려의 도움을 받아 호숫물로 몸을 씻어냈고,

깨끗한 전투복으로 다시 갈아입었습니다.

참고로 캐서린이 입고 있던 피가 묻은 옷은 그대로 소각했습니다.


캐서린이 운송차에 다시 오른 건 그 후의 일입니다.


악마는 분명히 쓰러졌습니다.

손에 남은 감촉,

그리고 얼굴과 전투복을 물들인 피가 이를 증명합니다.


악마를 쓰러트리는 데 사용된 단검은, 사전에 준비된 상자에 옮겨졌습니다.

칼날 부분은 처음과 달리 색이 바뀌어 있습니다.

이 역시 악마를 쓰러트렸다는 증거입니다.


캐서린은 다시 탑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스텔리카 말대로 무아지경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탑 안에서 있었던 일은 아직 기억이 납니다.

사념체들이 길을 막았고, 악마가 깨어났습니다.


‘악마는 세계를 멸망시킬 존재라고 했어. 하지만...’


캐서린이 만난 그 존재는 자기 죽음을 받아들였고, 오히려 캐서린을 걱정했습니다.


여러 의문을 남긴 채 캐서린을 태운 운송차가 움직입니다.

탑에서 멀어집니다.

이제 <요람>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은 조용했습니다.

악마의 탑으로 향했을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갈 때도,

올 때도,

주변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출발했을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뀐 것은 이동 방향,

그리고 캐서린의 상태였습니다.


캐서린이 한 일은 세계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실감이 나진 않았습니다.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저 멀리 <요람> 입구가 보입니다.

길면서도 짧았던, 캐서린의 여행길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14대 용사로서, 특별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 문을 지나면 이제 마법이 풀리듯,

평범한 <요람>의 아이, 캐서린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소리가 들렸습니다.


악기로 연주되는 아름다운 멜로디.

그리고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


<요람>에 있던 사람들이 길을 따라 양쪽으로 서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익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세계를 구하고 돌아온 캐서린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였습니다.


운송차는 광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 회랑 앞에 멈췄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캐서린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캐서린, 고생했어.”


캐서린이 ‘사명’을 다하는 동안,

사원 지하에 있는 ‘아이방’을 지키고 있었던 사람.


엘피니스 스텔리카입니다.


“언니도 고생했어요.”


스텔리카와 캐서린은 서로 손을 잡고,

회랑을 올라갔습니다.



◇◇◇◇



그 뒤, 캐서린은 스텔리카의 도움을 받아 깨끗한 물로 한 번 더 몸을 씻어냈습니다.


그리고 스텔리카와 함께 승강기를 타고 사원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캐서린은 승강기가 신기하면서도 무서웠는지, 스텔리카 곁에 붙어있었습니다.


승강기가 멈추자, 그 앞에 긴 복도가 이어져 있었습니다.

캐서린은 악마의 탑에서 봤던 복도가 생각났지만, 여기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스텔리카와 함께 복도를 지나자, 넓은 공간이 나왔습니다.

‘아이집’이라 불리는 장소입니다.


“보이니? 여기 있는 게 이번에 새로 태어난 아이들이야.”


이곳은 스텔리카가 승려, 병사들과 함께 지킨 장소입니다.

그 모습은 장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신비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몇 개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알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알 안에 잠들어있는 아이들은 1년 뒤, 껍질을 벗고 나올 것입니다.


“캐서린은 악마의 탑에서 훌륭하게 ‘사명’을 달성했어. 만일 캐서린이 실패했다면, 어쩌면 여기가 위험해졌을지도 몰라. 어떤 의미에선 캐서린이 지켜준 아이라고 할 수도 있어.”


스텔리카는 캐서린을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10년 전, 스텔리카는 13대 용사로서 ‘사명’을 달성했습니다.

부분적으로 기억이 흐릿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오늘 악마의 탑에 들어간 캐서린이 어떤 심경이었을지는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일을 마음속에 불쾌한 경험으로 남기지 않길 바란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지켰는지 확인하는 것. 여기까지가 용사의 ‘사명’이야. 캐서린은 훌륭하게 ‘사명’을 마무리했어. 언니는 캐서린이 너무 자랑스러워.”


캐서린은 왠지 부끄러웠고, 눈물이 났습니다.

'잘한 일에 칭찬을 받는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캐서린에겐 그렇지 못했습니다.

캐서린에겐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고마워요. 언니.”


그리고 소란스러웠던 <환영제>가 저물었습니다.



◇◇◇◇



다음 날.

단정하게 차려입은 캐서린과 스텔리카는 사원을 나와 숙소를 찾아왔습니다.

미스티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환영제>와 <졸업제> 사이에 있는 비어있는 날입니다.

이날은 특별한 일 없이 가까운 사람과 함께 보냅니다.

그리고 만일 수명이 다하여 떠나갈 사람이 있다면, 차분한 마음으로 이별을 준비합니다.

캐서린과 스텔리카가 미스티를 만나러 온 것은 그 때문입니다.


지금은 특별한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스텔리카는 평소에 쓰던 안경을 벗었고,

캐서린도 이 순간만큼은 후드 모자를 벗었습니다.


“저희 왔어요.”


미스티는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올해 40세가 되는 현 세계 인류는, 모두 내일 새벽을 기점으로 수명이 다하게 됩니다.

그 모습은 마치 영원한 잠에 빠지는 것처럼 보이며,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언제 잠들어도 문제 되지 않게, 침대에 누워있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노고에 감사하며, 마지막 날만큼은 편히 쉬길 바라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스티는 마지막 순간까지, 세계를 위해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이 되어서야, 고된 몸을 침대에 맡길 수 있었습니다.


그간 해온 업적으로 인해 많은 방문자가 찾아왔습니다.

그중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날은 어떤 의미에선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두 사람이 방문했을 때는 방문자 수가 잠시 줄어들었을 무렵입니다.

하지만 미스티의 얼굴을 보았을 때 어딘가 지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습니다.


“어제 열심히 노력한 두 사람이 있었기에 오늘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거란다. 몇 번이고 감사해도 모자랄 정도이지.”


미스티는 짧은 대화 속에서도 자신에 대한 것보다 두 사람을 격려하였습니다.

먼저 태어난 인생 선배로서 미래를 살아갈 이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긍정적인 말을 건네주려 한 것입니다.


미스티의 수명이 다하는 것은 내일입니다.

그렇지만, 스텔리카와 캐서린이 미스티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지금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두 사람 뒤로도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작별을 말할 때입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스텔리카의 말에 미스티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우리는 헤어지는 게 아니란다 전승에 따르면 인간은 수명이 다 해도 전파가 되어 영원히 살아간다고 하잖니. 형태가 바뀌는 것뿐이야. 우리의 인연은 계속 이어질 거란다. 스텔리카, 캐서린, 물론 세실 너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웃는 모습으로 앞을 보며 살아가렴.”


그녀는 마지막 인사까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스티와의 만남은 그렇게 끝을 고했습니다.



◇◇◇◇



두 사람은 아직 한 사람을 더 만나야 합니다.


하지만 방을 나온 두 사람은 아직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담담하게 이별을 말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한참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발을 뗄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찾아간 사람은 미스티 이상으로 높은 사람입니다.

그분은 이 숙소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방에 머물고 있습니다.


퇴위 국왕입니다.


본래 퇴위 국왕은 만날 예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두 사람이 전해 들은 말에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퇴위 국왕이 두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병사에게 말을 건넨 후,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안에는 마찬가지로 침대에 누워있는 퇴위 국왕이 있었습니다.

어제 붉은 잔영에게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위엄있고 당당한 모습입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스텔리카와 캐서린은 예를 표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인지라 많이 긴장되었습니다.


퇴위 국왕은 손짓으로 시녀와 호위 병사를 물러나게 하였습니다.

이제 여기에는 퇴위 국왕, 스텔리카, 캐서린만 남아있습니다.


“어제 일은 고마웠습니다. 두 분이 있었기에 붉은 잔영의 습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송구합니다. 오히려 좀 더 빨리 알아채지 못해 죄송합니다.”

“차기 국왕을 먼저 떠나보낸 건 안타깝지만, 그건 여러분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말이 되겠지만, 제가 오늘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분명 두 분 덕분이지요.”


퇴위 국왕은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어제는 치명상을 입어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퇴위 국왕은 메시지를 전하고 무대에 내려오자마자, 치료를 받았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치료가 성공한 덕분이기 때문이고, 퇴위 국왕의 정신력이 버틴 결과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 이 자리가 긴장되고 불편하시겠지요. 그러니 바로 용건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퇴위 국왕은 마치 기억을 더듬듯 생각에 잠겼습니다.


“저는 사실 용사와 인연이 있었습니다. 11대 용사, 엘피니스 미네티어. 저와 동갑이었던 그녀는 제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람이지요. 제 신분이 조금 평범했다면, 어쩌면 그녀와 특별한 관계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런 인연이 있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네. 비밀로 했던 일이었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도 괜찮은 건가요?”

“오히려 두 분이기에 더더욱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이 정도는 눈감아주시겠지요.”


퇴위 국왕은 몸을 일으켰습니다.


“제 손을 잡아주시겠습니까?”


스텔리카와 캐서린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떨리고 있습니다.


“이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저는 오히려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인간은 수명이 다하면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전파가 되어 영원히 살아간다고 하지요. 만일 그 전승이 사실이라면, 내일 저는 미네티어를 찾으러 떠날 것입니다.”


‘수명을 다한 자는 전파가 되어 영원히 살아간다.’

이는 미스티도 했던 이야기입니다.

물론 현 세계 인류에게 있어선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전승이지요.


“하지만 미네티아가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습니다. 이 손의 떨림은 그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두 분께 부탁드린 것입니다.”


미네티어와 퇴위 국왕 간에는 많은 일이 있었던 것일 테지요.


“제가 떨리고 긴장될 때마다 미네티어는 이렇게 제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용사님.”

“...두 분이 만날 수 있길 기원하겠습니다.”


스텔리카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스텔리카와 캐서린은 두 사람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미스티와 퇴위 국왕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내일부터 시작될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스텔리카와 캐서린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사실 스텔리카와 캐서린은 만나고 싶은 분이 한 사람 더 있었습니다.

고승입니다.

하지만 그건 이룰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수명을 다한 승려는 오늘부터 죽는 순간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사원의 규정입니다.

이는 고승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은 사원으로 돌아갔고, 고승의 집무실 앞에 섰습니다.

하지만 아마 노크해도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평소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장소였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간사하네.’


스텔리카와 캐서린은 문을 향해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온 후 마음으로나마 애도하기로 했습니다.



◇◇◇◇



비어있는 날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나고,

<졸업제>가 다가왔습니다.


<환영제>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라고 한다면,

<졸업제>는 떠나가는 생명에게 감사하며 배웅하는 행사입니다.

행사라는 표현에 걸맞은 무언가를 하진 않지만,

떠나가는 사람을 마음으로나마 교감하며 그렇게 하루를 보냅니다.


현 세계 인류에게 죽음은 이별도 끝도 아닙니다.

신생아가 알의 구속에서 벗어나 태어나듯,

전파가 육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영원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스텔리카와 캐서린도 방안에서 그렇게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을 찾아온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


캐서린은 후드 모자를 썼고,

스텔리카는 문을 열었습니다.


문밖에는 고승이 있었습니다.


“... 고승님?”


그래서 스텔리카는 놀랐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이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전임에 이어 이번에 새로 고승이 된 승려입니다.”

“아, 그렇군요.”


스텔리카는 그제야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어이없는 착각을 했다는 것에 부끄러웠습니다.


‘하긴 그럴 리 없지. 전임 고승님은 이미 새벽에 수명이 다했을 테니까. 아무리 검은 베일로 가려져 있다고 해도 무슨 말도 안 되는 착각을...’


“저기, 계속 이야기해도 될까요?”

“아, 죄송해요. 말씀하시면 됩니다.”

“네. 저는 전임 고승님의 부탁을 받아 스텔리카와 캐서린 두 분을 모시러 왔습니다.”

“전임 고승님이 말인가요?”



◇◇◇◇



고승이 두 사람을 데려온 곳은 사원에 있는 어느 방입니다.

사실 두 사람이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곳입니다.


“여긴 어딘가요?”

“들어가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고승은 문을 열어 두 사람과 함께 방 안에 들어왔습니다.

방 안에 들어온 스텔리카와 캐서린 눈앞에, 누군가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습니다.


"저분은 설마."

"네. 아마 짐작하신 대로일 겁니다."

"...전임 고승님이시군요."

“전임 고승님은 두 분을 매우 아끼셨지요. 하지만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다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게 한 가지 부탁을 하셨습니다.”

“부탁이요?”

“전임 고승님께서는 두 분이 자신을 어려워한 건, 어쩌면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규정상 다른 승려 이외에 얼굴을 보여선 안 되는 노릇이었지요. 그렇기에 적어도 숨을 거둔 이후만이라도 두 분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스텔리카는 그 말에 마음속이 먹먹했습니다.

언젠가 고승이 스텔리카에게 넌지시 이야기한 적은 있었습니다.


<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실은 예전부터 스텔리카가 저를 어렵게 대한다고 멋대로 착각했었거든요. >


그래서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고민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 역시 해선 안 될 일입니다만, 전임 고승님의 간곡한 당부가 있었기에 비밀리에 두 분을 데려온 것입니다. 저는 방을 나가 있겠습니다. 시간을 오래 드릴 순 없지만, 부디 전임 고승님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고승은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 방을 나갔습니다.

스텔리카와 캐서린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스텔리카였습니다.


“고승님은 이렇게 작은 분이셨구나. 생전에는 전혀 몰랐어.”


스텔리카는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진 그렇게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역시 이런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난 왜 이렇게 간사한 사람인 걸까."


스텔리카는 자책하며 슬픔에 잠겼습니다.


캐서린은 고승과 거의 만난 적이 없었기에, 스텔리카처럼 감상에 빠질만한 추억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스텔리카가 어떤 기분일지는 짐작이 되었습니다.

저건 아마 특별한 사람이 떠나갈 때 느끼는 감정일 테지요.


“캐서린, 그러면...”


스텔리카는 말을 잇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캐서린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습니다.

캐서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텔리카는 그녀의 검은 베일을 벗깁니다.


“이제야 얼굴을 봤네요.”


스텔리카는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



잠시 후, 스텔리카와 캐서린은 방을 나왔습니다.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승이 말했습니다.


“아시겠지만, 두 분은 오늘 이 장소에 온 적이 없는 걸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전임 고승님의 부탁이라고는 해도 해선 안 될 일이니까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걸 받으시겠습니까?”


고승은 편지를 건넸습니다.


“이건 전임 고승님이 남긴 편지입니다. 죄송하지만 여기서 읽어주시겠습니까? 이 편지는 존재해선 안 되므로 파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네. 조금 아쉽지만, 그러겠습니다.”


스텔리카는 편지를 열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캐서린과 함께 읽었습니다.


< 비록, 두 분의 보호자가 되어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특별한 인연으로 엮어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두 사람의 미래를 지켜볼 것입니다. >


짧은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텔리카는 몇 번이고 되뇌었습니다.

토씨 하나까지도 기억에 남기고 싶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렇게 스텔리카가 납득할 정도로 반복한 후, 고승에게 편지를 돌려주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고승은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자리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스텔리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동안 떠나지 못했습니다.

캐서린이 등을 쓰다듬으며 달래주었고, 겨우 진정되어서야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



<졸업제>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축제>는 이걸로 모두 끝났고,

<요람>은 다시 고요한 시작의 마을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아직 작별의 시간을 준비하는 이가 남아 있었습니다.

캐서린입니다.


‘스텔리카 언니는 용사의 ‘사명’을 도우려고 여기에 왔어. 그러니 이젠 떠나겠지?’


하지만 캐서린은 차마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그리고 눈을 뜨면 만나러 갈 거예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공지] 2부 연재에 대한 공지입니다. 20.12.05 11 0 -
31 31화 기다림 21.01.12 8 0 19쪽
30 30화 추락 21.01.11 11 0 15쪽
29 29화 증명 21.01.08 10 0 14쪽
28 28화 강철 골렘 21.01.07 11 0 17쪽
27 27화 역행 증후군 (Update 21.01.06) 20.12.05 11 0 15쪽
26 26화 추억의 상자 (Update 21.01.05) 20.12.04 15 0 22쪽
25 25화 돌아가는 길 (Update 21.01.04) 20.12.03 11 0 16쪽
24 24화 하나 20.12.02 11 0 20쪽
» 23화 작별하는 시간 20.12.01 11 0 19쪽
22 22화 악마의 탑 20.11.30 11 0 20쪽
21 21화 붉은 잔영 20.11.29 10 0 18쪽
20 20화 개회식 20.11.28 11 0 17쪽
19 19화 요람에 어서오세요 20.11.27 12 0 17쪽
18 18화 꼭두각시 20.11.26 13 0 17쪽
17 17화 캐서린의 세계 20.11.25 10 0 21쪽
16 16화 두번째 편지 20.11.24 12 0 15쪽
15 15화 저 멀리 20.11.23 11 0 15쪽
14 14화 시선 20.11.22 12 0 15쪽
13 13화 미소 20.11.21 16 0 15쪽
12 12화 불안 20.11.20 39 0 14쪽
11 11화 마음이 향하는 곳 20.11.19 30 0 16쪽
10 10화 별이 내린 바다에서 20.11.18 16 0 16쪽
9 9화 특별한 아침 20.11.17 48 0 15쪽
8 8화 자기소개 20.11.16 29 0 15쪽
7 7화 어둠의 동굴 속 20.11.15 33 0 16쪽
6 6화 비와 마법 20.11.14 38 0 16쪽
5 5화 따라가다 20.11.13 54 0 12쪽
4 4화 태동의 사원 아트리아 20.11.12 50 0 15쪽
3 3화 캐서린 20.11.11 23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