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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팬텀 님의 서재입니다.

그리고 눈을 뜨면 만나러 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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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팬텀
작품등록일 :
2020.11.09 02:31
최근연재일 :
2021.01.12 13:00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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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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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9,180

작성
20.11.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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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따라가다

DUMMY

다시 시간을 앞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장소도 바꿔볼까요?

전지적 관찰자는 이렇게 권한을 쉽게 남용합니다.



◇◇◇◇



캐서린은 자신의 머리색을 싫어했습니다.

이 머리색으로 많은 일을 겪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텔리카는 캐서린에게 이런 머리도 예쁘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캐서린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후드 모자를 당겨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습니다.


캐서린은 일전에 미스티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캐서린에게 좋아한다고 이야기해줄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캐서린은 그 말이 실현된 것 같아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입은 탓입니다.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다들 그런데도 일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고장 난 채인데,

이제 모두 잘 해결되었다고 마음대로 단정 지었습니다.

마음이 아픈데,

이제는 언제까지 어리광을 부릴 거냐며 비난합니다.


하지만 스텔리카는 다른 사람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되었다고 순순히 인정했습니다.

캐서린을 보호해주었던 후드 모자를 다시 씌워 주었습니다.


‘그러니 믿고 싶어. 이 사람이라면 난.’



◇◇◇◇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캐서린은 후드 모자를 잡아당기던 양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 없어졌어?’


캐서린 앞에 있었던 스텔리카가 사라졌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하지만, 그렇게나 선명했는데. 미인 언니가 해준 말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기억나는데.’


캐서린은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캐서린은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직 도서관에 있을지 몰라.’


캐서린은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스텔리카를 찾았습니다.

1층은 물론 2층과 3층, 그리고 4층에도 올라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캐서린의 시야에 스텔리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음,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하는 건 좀 미안하지만,

사실을 말하면 스텔리카는 분명히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책장에 가려져 서로를 발견 못하고 엇갈린 것뿐이었습니다.

캐서린이 북쪽 계단으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왔을 때,

스텔리카가 남쪽 계단으로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스텔리카도 캐서린을 발견하지 못했고.

캐서린도 스텔리카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이 상황에 이런 부연 설명 좀 싫으네요.


하지만 서로 길이 엇갈렸음을 알지 못했던 캐서린은,

결국 어떤 가정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인 언니는... 내 망상이었던 거야.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준 것도, 격려해준 것도, 전부... 내가 망상으로 만들어낸 거였어.’


캐서린은 부끄러웠고, 속상했습니다.


'숙소로 돌아갈래.'


평소에는 폐점 시간까지 있었지만, 오늘은 일찍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캐서린은 책을 품에 안고 책장으로 향했습니다.

도서관에는 수많은 책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캐서린은 책이 있던 위치를 기억하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장 앞에 도착한 캐서린은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책장에 꽂힌 책이 달라. 오늘 도서관에 온 사람은 나 말고는 없었는데?’


캐서린은 일단 책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바뀐 부분을 확인했습니다.

‘무너진 붉은 하늘, 캐럴라인 에센스의 미망’이 있던 칸 바로 윗줄의 책 배치가 달라졌습니다.

이 책장에서 바뀐 곳은 여기 한 줄입니다.

그리고 원래 여기에 있어야 할 책은 근처 테이블에 쌓여 있습니다.

캐서린은 기억력이 좋은 편입니다.


바뀐 부분을 유심히 살피던 캐서린은 이윽고 어떤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캐서린은 위치가 바뀐 책 제목 첫 번째 글자를 이어서 읽어보았습니다.


‘너랑이야기나누어서즐거얻어’


문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캐서린은 중간 오타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었습니다.

아마 해당 글자로 시작하는 책을 찾지 못한 탓이겠지요.


후드를 쓴 아이는 아침 일찍 도서관을 방문했습니다.

사서인 미스티와 세실은 오늘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캐서린이 온 뒤로 도서관을 방문한 사람은 한 사람뿐입니다.


‘환상이 아니었어. 미인 언니는 분명 여기에 있었던 거야!’


방금까지 우울했던 기분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캐서린은 뭔가 생각난 듯 다른 책장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



잠시 후 캐서린은 도서관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사원으로 이어지는 회랑을 보았습니다.

회랑에서 내려온 승려들이 보입니다.


‘미인 언니는 사원에 가기 전에 도서관에 들른 거라고 했어. 그럼 지금은 사원에 있을 거야.’


캐서린은 3년 전에 딱 한 번 방문한 것을 마지막으로 사원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사원을 방문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딱히 출입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긴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는 점은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캐서린 역시 끝이 보이지 않는 회랑 길을 올려다보며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망설임 없이 회랑을 오르기로 합니다.

캐서린은 스텔리카를 다시 만나고 싶었습니다.



◇◇◇◇



캐서린은 사원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 오는 동안 스텔리카를 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진 외길이니 헤매거나 엇갈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원 입구에 놓인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습니다.

집 안에 있던 거울은 모두 버렸기에 오랜만에 보는 자기 모습인 셈입니다.


‘내 모습이 이랬나.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걸까?’


거울 속에 있는 캐서린은 후드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캐서린은 그 모습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캐서린은 집에 혼자 있을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후드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텔리카에게는 불쾌하거나 싫은 감정이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부끄럽다는 감정이 앞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캐서린은 거울 앞에서 후드 모자에 손을 올려봅니다.

하지만 결국 벗진 못했습니다.



◇◇◇◇



스텔리카는 아마 사원 안에 있을 것입니다.

캐서린은 이대로 밖에서 기다릴 생각이었습니다.

사원 내부는 복잡하기에 엇갈릴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 비가.’


비가 내립니다.

스텔리카가 <요람>에 오는 길에 봤던, 바다 너머 먹구름이 드디어 섬에 도착한 것입니다.

캐서린은 결국 사원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관 홀에 들어온 캐서린 앞에 석상이 보였습니다.

캐서린의 기억이 맞는다면 석상은 12명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인 석상은 13명이었습니다.


캐서린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건 3년 전.

그 이후에 석상이 추가된 것이었습니다.

캐서린 역시 그 정도는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석상에 가까이 다가간 후, 캐서린은 놀란 나머지 주저앉았습니다.

13번째 석상 모습이 마치 도서관에서 본 미인 언니와 닮았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캐서린은 퍼즐 조각을 맞추듯 어떤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 석상이 도서관에 찾아온 거였어. 석상이 사람으로 변해서 햇살을 타고 도서관에 온 거야. 사원으로 간다고 했던 건 원래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고. 도서관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도. 책을 가지고 메시지를 남긴 것도 모두...’


인지를 아득히 넘는 초월적인 결론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당사자를 만나면 간단히 풀릴 사소한 오해일 테지요.

그리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누군가를 동경하는 건 좋은 경험이지.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꿈만 좇을 수만은 없는 법이야."


캐서린 뒤에서 들린 목소리입니다.

하지만 캐서린은 돌아볼 수 없었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캐서린 바로 뒤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캐서린의 어깨 위에는 손이 올려져 있었고,

캐서린의 목 앞에는 날카로운 도끼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항시 의심하고 경계할 줄 알아야 해. 너처럼 후드 모자로 귀를 막고, 석상에 한눈팔면 이렇게 되는 거야.”

“.......”

“아무튼, 반가워. 언니는 붉은 잔영이라고 해. 일단 확인차 물어보는 건데, ‘지금 상황’ 이해한 거 맞지?”


붉은 잔영이라 소개한 자는 가면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검은 옷에 붉은 머플러를 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캐서린에겐 보이지 않았습니다.

뒤에 있었고, 지금은 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캐서린은 붉은 잔영의 질문에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붉은 잔영은 어딘가 미심쩍은 듯합니다.


“정말 이해한 거 맞아? 몸이 하나도 안 떨리는데? 이 상황이 안 무서워?”


캐서린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붉은 잔영이 지적한 대로 캐서린은 이 상황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물론 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도 맞습니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해결해줄 믿을 구석이 있는 건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래? 도끼날에 베이면 꽤 아플 텐데. 허세는 아닌 것 같고. 뭐, 시끄럽게 우는 것보단 낫나?”


붉은 잔영은 이번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좋아. 그럼 언니랑 재미있는 놀이 하자. 이제부터 너는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돼. 언니가 뒤에서 방향을 조정할 테니까. 간단하지? 언니는 네 뒤에 계속 있을 것이고, 도끼날은 네 앞에 있을 거야.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해. 그럼 해보자. 그럼 먼저 왼쪽으로 몸을 틀어볼까?”


하지만 캐서린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누가 나한테 잡히래?”


하지만 캐서린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나라도 어린애를 해치진 않아. 그냥 어디 좀 같이 가자는 거지. 올해만 지나면 돌려보내 준다니까? 진짜야.”


캐서린이 행동을 취한 건 그 무렵이었습니다.

양손을 뻗어 앞에 있는 도낏자루를 잡았습니다.


“아하, 도끼를 빼앗으려고? 하지만 언니는 힘이 세서 그 정도 힘으로는...어!?”


캐서린은 도끼를 빼앗으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도끼날을 자기 목으로...


“야, 너 뭐 하는 거야!?”


붉은 잔영은 왼손으로 캐서린의 옷을 잡아당겨, 거칠게 뒤로 내던집니다.

캐서린은 비명과 함께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굴러 쓰러졌습니다.

도끼를 허리 뒤에 수납한 붉은 잔영은 캐서린에게 걸어갑니다.

가면을 썼지만 화가 난 것처럼 보입니다.


한편 캐서린은 바닥에 내쳐질 때 받은 충격 탓인지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기어서 사원 밖으로 나가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저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기도 했습니다.


결국 캐서린은 붉은 잔영에게 다시 붙잡혔고,

마치 목덜미를 잡힌 네발짐승처럼 축 늘어진 채 사원 밖으로 끌려갔습니다.



◇◇◇◇



사원 밖은 여전히 비가 오고 있습니다.

사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끌고 온 붉은 잔영은 캐서린을 바닥에 내팽개칩니다.

비와 진흙 바닥으로 캐서린의 옷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붉은 잔영은 캐서린의 멱살을 잡아 올리며 내려다봅니다.


“너 말이야! 사람 생명을 뭐라고 생각...하...는.......”


붉은 잔영은 그제야 캐서린의 표정을 보았고,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너... 그 눈 뭐야? 설마 아까부터 계속...”


초점을 잃은 눈동자였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체념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눈이었습니다.

캐서린은 시선을 돌렸고,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웃기지마. 그런다고 내 각오가 흔들릴거라고 생각했다면...”


캐서린은 붉은 잔영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 의문이 들진 않았습니다.

아니,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그저 어떤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햇살과 함께 도서관에 내려온 미인 언니. 만나고 싶었는데.’


그것은 캐서린의 염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염원은


이루어집니다.


“그 아이에게서 떨어져!”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붉은 잔영은 누군가와 부딪쳤고,

캐서린을 놓친 채 옆으로 밀려납니다.


스텔리카입니다.


스텔리카가 캐서린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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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역행 증후군 (Update 21.01.06) 20.12.05 11 0 15쪽
26 26화 추억의 상자 (Update 21.01.05) 20.12.04 15 0 22쪽
25 25화 돌아가는 길 (Update 21.01.04) 20.12.03 11 0 16쪽
24 24화 하나 20.12.02 11 0 20쪽
23 23화 작별하는 시간 20.12.01 11 0 19쪽
22 22화 악마의 탑 20.11.30 11 0 20쪽
21 21화 붉은 잔영 20.11.29 10 0 18쪽
20 20화 개회식 20.11.28 11 0 17쪽
19 19화 요람에 어서오세요 20.11.27 12 0 17쪽
18 18화 꼭두각시 20.11.26 13 0 17쪽
17 17화 캐서린의 세계 20.11.25 10 0 21쪽
16 16화 두번째 편지 20.11.24 12 0 15쪽
15 15화 저 멀리 20.11.23 11 0 15쪽
14 14화 시선 20.11.22 12 0 15쪽
13 13화 미소 20.11.21 16 0 15쪽
12 12화 불안 20.11.20 39 0 14쪽
11 11화 마음이 향하는 곳 20.11.19 30 0 16쪽
10 10화 별이 내린 바다에서 20.11.18 16 0 16쪽
9 9화 특별한 아침 20.11.17 48 0 15쪽
8 8화 자기소개 20.11.16 29 0 15쪽
7 7화 어둠의 동굴 속 20.11.15 33 0 16쪽
6 6화 비와 마법 20.11.14 38 0 16쪽
» 5화 따라가다 20.11.13 55 0 12쪽
4 4화 태동의 사원 아트리아 20.11.12 50 0 15쪽
3 3화 캐서린 20.11.11 2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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