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방패 37화.
일설에는 자콥 왕이 마법의 힘을 독점하기 위해 일부러 죽였다는 말도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곳에 있는 세 사람의 인생이 깃든 기사들이 알고 있는 것은 왕위를 노리는 자들이 자식들에게 저주를 걸어 살해했다는 것이다.
굳이 마법을 쓰지 못해도 왕족의 피에는 남다른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과 마나라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1천 년 역사상 클로비스 왕가 최강의 왕이라는 자콥 왕은 매우 특별하고 적이 많았다.
그 적들은 클로비스 왕가의 피가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되니 자콥 왕의 자식들 모두 매우 뛰어난 마법사,
전사가 될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애초에 어릴 때 저주를 걸어 죽였다는 말이다.
이것도 모자라 자콥 왕에게 적대하는 이들은 세상을 훔치려는 도적 로버트 멜빌에게 모든 마법의 힘을 무효화할 수 있는 마법 반지를 제공했다.
그 결과 1천 년의 영광을 짊어지고 있던 클로비스 왕가의 영광은 이제 아론의 어깨에 초라하게 올려져 있었다.
“어찌 되었거나 저희들도 선대왕 자콥의 서자 중 아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14살의 소년이 오크 족의 땅 끝으로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크 족들도 자신들이 오래 충성을 다했던 클로비스 왕가의 서자를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30년 동안······. 광산에······.”
“정말로 해리퍼드 가문 아니······. 그 세상의 온갖 정의로움은 혼자 다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로버트 멜빌의 간악함에 치를 떨게 되는군요.”
세 사람의 기사들은 아론이 30년 동안 오크 족의 철광산에 파묻혀 있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눈물을 흘렸다.
세 사람 모두 입술을 질근질근 씹어댔는데 그 안에 피가 잔뜩 괴어 보기에 두려울 정도였다.
“공식적으로 내 어머니는 국왕 호위병인 레베카 윌이요. 핀레이슨 북부인 리틀 우드 평야 지대에 있는 빌스턴이라는 마을에서 어머니와 함께 부족하지는 않게 살고 있었소. 그러다 요크톤이 수몰되고 두 반역자 가문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가운데 로버트 멜빌의 충견 헨리 루퍼의 손에 사로잡혔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지난 고통은 저 멀리 기억과 시간의 흐름 속에 망각이라는 이름으로 흩어 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블런츠타운을 시작으로 다시금 클로비스 왕가의 영광이 다시금 빛을 발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지난 30년 동안 내가 부당함, 부정함과 함께 하는 해리퍼드 가문의 몰락이 시작된 것입니다.”
귀족 출신답게 해들리 이턴은 여러 찬사와 함께 의지로 아론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고 블런츠타운을 기반으로 왕국을 되찾을 것을 맹세했다.
캘빈과 포터 모두 따르기로 했는데 그 의기 못지않게 지금 북쪽으로 물러나 있는 호스포드 가문을 처리하는 것이 시급했다.
* * *
리처드는 아론과 유력자들이 회의를 하고 있을 때 창을 잡고 공관의 밖을 지키고 있었다.
평상복을 입고 검을 등에 메고 한손 허리에는 도끼를 매달고 있기는 해도 일이 끝나면 숙소로 돌아가 자리에 누워 있을 뿐이다.
리처드가 알고 있는 사실은 군대가 출전하려고 해도 이제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라서 다들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과 함께 아론이 유력자들의 협력을 받는 조건으로 더 이상 노예 해방 같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조했다는 점이다.
‘아론이 지금은 저 나리들의 힘이 필요하니 이해는 하지만 이곳에 올 때 부당하게 노예가 된 유민들을 해방시키겠다고 하더니 금방 잊어버리네.’
1천 3백이나 되는 노예들을 손에 넣자 아론은 이들 대부분을 자신을 위해 죽게 만들었다.
그 모든 일은 블런츠타운을 손에 넣은 뒤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근무시간이 끝난 후 리처드는 도끼 한 자루에 의지하고 블런츠타운 밖을 나가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유해는 시간과 더위 속에 자연스럽게 땅속으로 흩어지고 며칠 동안 계속해서 내린 비 때문에 지워졌다.
다들 1천이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크게 다친 것은 아예 없었던 일처럼 다들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
리처드는 자신이 이곳에 남은 것이 잘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주변에 눈에 보이는 것은 새로 만든 무덤을 표시하는 나무 묘비들뿐이다.
다른 세계로 떠난 여행자들이 남긴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흩어져 버리고 그 묘비들도 삶과 시간에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리처드의 기억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섬머타운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살던 나태한 자신의 모습과 군사들의 손에 차례로 목이 잘리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사제들은 목이 잘려 죽어도 그 머리를 이어 붙여 주기라도 하면 멀리 항해를 떠날 때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알렉산더 콕스는 가족들이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도록 방해했을 것이다.
리처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상태로 광산으로 끌려가 오직 죽을 생각만 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하다못해 지금 이곳에 있던 노예들도 아론을 따라 죽기로 싸웠고 그 목숨을 기꺼이 내버렸다. 하지만 아직 살아있는 나는 어찌해서 이렇게······.’
결국에는 시간이라는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그 존재 자체가 지워져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리처드는 자신이 살아 있으니 무엇인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비가 내리니 사람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내리는 눈물을 피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흩어졌다.
리처드도 잠시 그 사람들을 따라서 몸을 움직여 성문 옆에 있는 경비병들의 숙소로 몸을 피했다.
공관 앞에서 창을 잡고 있는 리처드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 그곳에서 비를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경비견도 처음에는 리처드를 경계하기는 했지만 부드럽게 턱을 만져주니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어릴적부터 목양견들이나 섬머타운의 늙은 개들과 친하게 지냈던 리처드는 지금 자신 앞에 있는 개가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애정을 담은 척 만져주고 먹이를 주면 주인을 위해 열심히 짖어대고 경우에 따라서는 늑대와도 죽기로 싸운다.
리처드는 자신의 집에서 키우던 목양견들이 생각났다. 그때는 그 개들의 소중함을 몰랐지만 이렇게 보니 더할 수 없이 가족들을 위해서 헌신을 했던 녀석들이다.
잠시 뒤 경비병들이 맥주를 한 컵 건네며 리처드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리처드였지? 공관 정문을 지키고 있으니 보고 듣는 것이 많지? 북부로 언제 출전한데? 따로 들은 것 있어?”
“그건 나도 잘 몰라.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잘 하시겠지. 우리가 하자고 그 높으신 나리들이 듣기라고 하나?? 그나저나 이곳에 있는 모두 다들 이곳 남부 출신들?”
“니드우드 가문의 영지에서 왔어. 하지만 다들 이곳 블런츠타운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없어. 왕국 이곳저곳에서 흘러왔지.”
“그래? 하기야 나도 이곳 블런츠타운 출신은 아니야.”
그러고 보면 경비병 숙소에서 나이가 많은 어리든 이 지역 태생은 없었다.
이때 머리에 세월이 깃들고 피부에 삶의 계곡이 깊게 패어 있는 경비병 중에서 한 사람이 손에 든 맥주를 몇 모금 마신 후 한 마디를 던졌다.
“나는 고향이 어디인줄 아니? 그 왕국의 수호자에다가 황금 좃 로버트 멜빌과 같은 곳 출신이야. 와인빌 말이야.”
“와인빌?”
“맞아. 와인빌 그리고 나는 어릴 적에 포도밭에서 일꾼으로 일하던 그 로버트를 본 적이 있어.”
“정말?? 로버트 멜빌은 나도 궁금하지. 어땠는데? 그때도 대단했어?”
리처드의 물음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대강 분위기는 알고 있지만 리처드가 다시 물으니 그 나이든 경비병은 키득거리고 웃으며 멜빌 가문의 막내인데 아주 못난이였다고 비웃었다.
“이 사실을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아. 믿기지 않겠지만 실제로 로버트 멜빌은 겁쟁이에 우유부단한 녀석이었어. 그 녀석이 와인빌을 떠난 것도 그 엘리자베스 여왕 말이야. 그 창녀가 와인빌로 도망쳐 왔을 때 분명히 카프리 콘래드월이라는 하는 요크톤의 기사가 그 뒤를 추격해 왔었어.”
“그래?”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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