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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지컬☆체인지

200년동안 여친에게 쫓긴 소설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마법소녀
작품등록일 :
2018.05.06 12:54
최근연재일 :
2018.06.16 13:14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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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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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글자수 :
188,505

작성
18.05.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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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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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4 [전생의 기억(3)]

DUMMY

누군가 이 장면을 본다면 분명 이렇게 말하겠지. 이렇게 참한 여친을 차다니 미친 거냐고.

나도 알고 있다.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채연이와 사귀게 된 건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이다. 이보다 더 운이 좋았던 일은 없었고, 나는 그 행운을 발로 걷어차려고 하고 있다.

이 이상의 행운이 다시 굴러올 일은 없겠지. 채연이보다 더 좋은 여자가 있을 리가.


채연이가 그동안 나에게 해준 걸 생각해봐도. 채연이를 찬다는 게 참 말이 안 되지만···그래도 해야한다.

이대로는 안 되니까.


"···오빠. 지금 뭐라고 말했어요?"


채연이는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떨림이 가득하다.


"······우리, 헤어지자고 했어."

"잘못···말한 거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채연이. 그 얼굴을 보자 나도 망설임이 생긴다.

지금이라면 얼버무릴 수 있다. 장난이었다고 말하면 여친이 엄청나게 화내긴 하겠지만, 그래도 다시 원래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

짓눌려버릴 것만 같아.

그래도. 해야만 한다.


"아니. 잘못 말하지 않았어."

"어째서······?"


채연이의 손에서 식기가 떨어진다.

하지만 채연이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어째서에요···? 제가 뭔가 잘못이라도 했어요? 잘못했다면 고칠게요! 네?"

"아니, 그게 아니야···. 넌 나쁘지 않아. 나쁜 건···나야."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짓는 채연이. 그렇지만 나는 말한다.


"채연아, 알고 있지? ···나 오늘도 공모전에서 떨어졌어."

"알아요. 그저 운이 안 좋았던 거뿐이에요."

"그럴리가 있겠니. 알아차렸어. 몇 번이나 공모전에서 떨어지면 알게 돼. 나에겐 소설에 재능이 없어."


나는 소설가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소설가의 재능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되려고 했다. 바칠 수 있는 건 전부 바쳐서 소설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28세라는 나이에 나는 아직도 백수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 뿐.

나에겐 소설에 재능이 없었다는 거다.


"아니에요, 오빠. 오빠에겐 재능이 있어요. 저는 오빠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구요. 주변 사람들도 오빠의 소설이 재미있다고들 했잖아요."

"그래. 그랬지. 그래서 소설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거고."


나에겐 소설의 재능이 없다는 건 사실 살짝 잘못된 표현이다. 나에게 소설의 재능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재능이 있긴 있다.

그렇지만 그게 소설가가 될 정도의 재능은 아니라는 거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를 다닐 적에도 나보고 글을 잘 쓴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어. 그렇지만 그건 일반인들보다 살짝 잘 쓰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야.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재능이었는데. 다른 사람이 칭찬해주니까 속아버린 거야. 나도 노력하다보면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그림에도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 있듯이, 소설에도 소설을 쓰는 기술이 있다.

15년 동안이나 글을 쓰다보면 그런 기술이 늘기 마련. 사람들은 15년동안 단련해온 기술을 보고 잘 쓴다고 평가했던 것이며, 나는 그걸 소설가의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늘면 뭐하나. 소설가에게 필요한 재능은 따로 있다.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재능.


어렸을 적, 나는 스토리를 만드는 데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게임의 몬스터들이 실제로 자아를 가진 생명체였던 이야기, 좀비 아포칼립스가 터진 뒤 생존자들을 찾아 떠나는 안드로이드들의 이야기, 판타지 세계에서 외계인이 찾아오는 이야기 등등.

언뜻 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

그렇지만 이런 건 어디까지나 소재가 참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스토리를 만드는 재능과는 또 다르다.

아이디어만 좋을 뿐.


참신한 소재를 생각해내는 건 사실 누구나 다 할 줄 아는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중고등학생들도 특이한 소재를 생각해낼 줄 안다.

문제는 그런 참신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스토리로 잘 엮어내는가.

소재는 특이한데 스토리 전개가 평범하거나, 어디선가 많이 본 클리셰들을 자주 활용하는 바람에 평범해진 소설들.

소설에 조금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그런 소설을 접했겠지. 그리고 모두 실망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런 작품들보다 훨씬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있는 건, '참신한 아이디어에 휘둘리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기술적으로만 늘었어. 그래서 글을 그럴듯하게 쓰는 것처럼 보일 뿐이야. ···하지만 나에겐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드는 재능이 없어."


연출의 문제일 수도 있고, 스토리 구성의 문제일 수도 있고, 그냥 스토리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다.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한 없이 많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모른다.


"나이도 나이야. 이제 나도 결단을 해야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하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건 동화나 다름없다. 꿈을 쫓다가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많다. 꿈을 포기해야만 하는 사람 역시 많다.

꿈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건 환상이다.


"공모전에서 떨어진 걸 보고 계속 생각했어. 어떻게 해야할지.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할 지, 계속."

"······."

"소설을 포기해야한다고···생각은 하고 있어. 그렇지만, 이게 잘 안 돼."


학점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면서까지 소설에 올인을 한 몸이다. 소설을 빼면 나에게 남는 건 없다. 단언할 수 있다.

군대에서 그나마 길렀던 체력은 없다. 그 뿐이랴. 나는 군대에서 다쳐서 돌아왔다. 그래서 해낼 수 있는 아르바이트 역시 제한이 있다.

취직은 당연히 힘들다. 내 현재 학력은 고졸. 받아줄 기업따윈 없겠지.

대학을 다시 다니는 것도 힘들다. 부족한 학점을 메꾸려면 얼마나 대학을 더 다녀야하는가. 2년? 3년? 그만큼 더 다니는 데 소모되는 등록금은 얼마고?


소설가가 되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것. 늦게나마 공무원 공부를 시작하거나, 아니면 앞으로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일을 하는 것 정도일까.

소설을 그만두려고 마음 먹었을 때,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걷고 있던 길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길이었는지.

그걸 포기한다는 게 어떤 의미였는지.


"아마도 네가 계속 옆에 있어준다면, 나는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아도 소설가를 포기하지 않겠지. 지금 이 삶에 안주하고 말 거야."


채연이는 돈을 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 중의 일부를 내 생활비에 보태고 있다.

본인의 입으로는 '어차피 취미도 없어서 돈이 남아요' 라고 하는데. 그럴 리가 있을까.

채연이도 실은 아마 여기저기에 돈을 쓰고 싶었겠지. 그런 게 아니더라도 나 같은 놈에게 돈을 쓰는 것보다 본인을 위해 저금을 하는 게 훨씬 더 나을 거다.

그런데도 채연이는 나를 위해 돈을 쓴다.

왜? 사랑하니까.

나를 사랑하니까.


채연이의 사랑은 고맙다.

하지만 너무 무겁다.

나는 그걸 돌려줄 수가 없는데.


무조건적인 사랑은 숭고하다.

숭고한만큼, 괴롭다.


"점점 글러먹게 될 것 같아. 앞으로도 공모전에서 또 떨어져도 '괜찮아~. 채연이가 돈을 벌어다주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라고 생각할 것만 같아서 무서워.

그리고 그런 인간이 되어버렸다간···분명 끝장날 거야.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는 채로도 만족해버린다면······소설가가 되는 일은 절대 없겠지."

"······."

"그러니까···. 서로를 위해서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채연아."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아도 소설가에 도전할 지. 아니면 가망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소설가를 그만둘 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게 있다. 채연이가 이 이상 옆에 있어선 안 된다.


나 같은 놈을 위해서 본인의 시간과 돈을 할애해서는 안 된다.

추해지는 건 나 하나면 된다. 채연이가 스스로를 희생하게 해선 안 된다.

그러니까 이대로는 안 된다.


"알겠어요, 오빠."


채연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을 알아들은 걸까.

아니면 나에게 실망을 한 걸까.

그곳도 아니라면······이미 예전부터 정이 떨어진 걸지도 모른다.


"···가볼게요, 오빠. 식사는 다 만들었으니까."

"······그래."

"그럼 오빠. ······잘 있어요."


채연이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신발을 신고 나갔다.


남겨진 건 채연이가 만든 요리 뿐.

멍하니 그릇을 내려본 나는 포크를 빙빙 돌려서 파스타를 입에 담는다.


맛있다.

맛있는데.

왜 이리 괴로울까.


"······으, 아."


흘러나오는 눈물. 멈출 수 없는 눈물.

나는 오열하며 파스타를 입에 욱여넣었다.


사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서로를 위해서 거리를 두는 게 나을 것 같다? 채연이가 계속 나를 도와주면, 나는 글러먹게 될 것이다?

그건 전부 다 입에 발린 말이다.


사실은, 그저 채연이의 미소가 괴로웠을 뿐이다.


나를 좋아해주는 채연이. 무조건적으로 나를 좋아해주는 채연이.

내가 소설가가 되지 못했는 데도, 계속 백수 신세인데도 좋아해주는 채연이.

채연이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자각하고 만다. 나는 채연이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채연이의 미소에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매일 무력함을 곱씹는다.

채연이에게 반지를 선물하고 결혼하자고 하고 싶다. 하지만 직업도 없는 내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있나.

무력한 자신이 한심하다. 그런데 그 한심함을 극복할 수 없는 게 너무나도 한심하다.


알고 있다. 이대로 나는 소설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계속 이렇게 백수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는 건 채연이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며, 채연이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

그런데도 채연이는 나를 좋아해주겠지.


매일 같이 한심함을 느끼며 괴로워하면서 살아가거나, 언젠가 모든 게 무뎌진 채로 기둥서방처럼 살아가지 않을까.

내가 가장 되고 싶지 않았던 쓰레기 같은 남자가 되지 않을까.


마치 거울 같다.


채연이와 같이 있으면 자신의 추한 부분을 싫어도 보게 된다. 그게 괴로웠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채연이와 함께 하는 게 더 이상 편하지 않게 된 건.


"······끝났어."


나는 중얼거렸다.


그 날, 내 인생은 끝났다.

정확하게는 그 이후로 인생이 조금 더 이어지긴 했지만, 간단하게만 설명한다.


나는 몇 달 후 죽었다.

사인은 자살이다.

동맥을 끊고 욕조에 물을 받아서 세상을 붉게 적셨다.


그렇게 나는 죽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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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020中 [그리고 소설가는 다시 이야기를(2)] +2 18.05.18 532 5 10쪽
30 020上 [그리고 소설가는 다시 이야기를(1)] 18.05.18 599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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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019上 [모든 것을 지켜보는 마법사(1)] +2 18.05.17 599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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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018上 [200년동안 남친을 쫓은 마녀(5)] +2 18.05.16 583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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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015下 [200년동안 남친을 쫓은 마녀(2)] +3 18.05.14 626 9 10쪽
21 015上 [200년동안 남친을 쫓은 마녀(1)] 18.05.14 705 9 8쪽
20 014下 [하루 전(8) 레반의 정체(2)] 18.05.13 585 9 15쪽
19 014上 [하루 전(7) 레반의 정체(1)] 18.05.13 552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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