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파데야칸 가문의 회의 2
(큐랴야는 우리 파데야칸이 우습게 보이는 거요?)
칸지한쟈는 화를 참지 못하고 쥬론쟈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쥬론쟈가 온 것 자체부터 그렇긴 하지만 큐랴야는 자신들과 상의를 할 생각이 없었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것도 이미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 하는 사후통보다.
프이마로 둥지를 벌써 보내다니.
아무리 연합이라지만 파데야칸이 점령한 지역에 큐랴야가 상의도 없이 병력을 보낸다는 것은 침공을 의미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은 넘은 일이다.
하지만 쥬론쟈는 느긋하게 미소를 머금으며 대꾸했다.
(아아.. 그렇게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연합 아닙니까. 프이마에 가는 것은 그냥 지구를 치기 위해 길을 빌리려는 것뿐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시오! 프이마는 우리 파데야칸의 전략적 요충지요! 우리 파데야칸은 둥지뿐만 아니라 큐랴야의 어떤 병력도 프이마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할 수 없소! 당장 병력을 돌리시오!!)
(이미 출정을 했다니까요. 기껏 출정한 병력이 적을 구경도 못 했는데 그냥 돌아오라고 하는 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될 건 뭐요? 당장 빼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파데야칸에 대한 큐랴야의 적대적 행위로 간주하겠소!)
능청스럽게 말하는 쥬란쟈에 칸지한쟈는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쥬란쟈는 적대적 행위라는 말을 듣고도 여전히 여유로웠다.
(아.. 적대적 행위로 간주한다라.. 만약 그렇다면 어쩌실 겁니까?)
(네?)
칸지한쟈는 쥬란쟈의 말에 순간 멍해졌다.
(설마 우리를 공격이라도 하실 겁니까? 우리 큐랴야의 둥지를 공격하고, 우리 큐랴야와 전쟁을 벌이실 생각이냐. 이 말입니다.)
칸지한쟈는 못 할 것도 없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다시 삼켜야 했다.
파데야칸이 아무리 전쟁을 좋아하고 피하지 않는다지만 지금 큐랴야와 싸우는 것은 자멸하는 길일뿐이다.
저운토쟈와 1사단을 잃고, 그 원흉인 베루쟈는 자신들의 약점을 쥐고 시시각각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
큐랴야와 싸워서 이길 수도 없겠지만 설령 이긴다고 해도 이득을 보는 것은 베루쟈 뿐이다.
선뜻 싸운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는 것도 파데야칸의 성미에 맞지 않는데
(하하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 큐랴야는 파데야칸과 싸울 생각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를 치기 위한 길을 빌리는 것 뿐. 지구 문명에 대한 욕심도 없습니다. 베루쟈 놈만 제거 하고 나면 지구에 대한 식민지 지배권은 파데야칸에게 넘겨드리지요. 이런 동맹이 또 어디 있습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골치 아픈 적을 대신 처치해주고, 그에 대한 이득도 다 넘겨주다니요. 누가 보면 우리 큐랴야가 파데야칸의 하위 가문인줄 알겠습니다, 하하하.)
쥬론쟈는 마치 자기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파데야칸을 도와주는 것처럼 말했다.
단 하나.
베루쟈의 독만 없다면 말이다.
그것을 확보해서 자신들에게 목줄을 채우련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지금 말해봤자 없앤다고 하고 따로 챙기면 그만이니 말이다.
(우리 큐랴야는 전달하고자 하는 사항은 다 전달했소. 파데야칸에서는 혹시 우리 큐랴야에 하실 말씀이 남아있소?)
(.. 없소.)
(그렇군요.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큰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파데야칸에서는 우리 큐랴야와 둥지의 건투와 행운이나 빌어주시지요.)
쥬론쟈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호탕하게 웃음을 지으며 부하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회의장에 남아있는 파데야칸의 장로들은 찬물을 부은 듯 싸늘한 정적만이 흘렀다.
물론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저저! 저 무도한 자들을 이대로 두고 볼 거요?)
(당장 강철중갑충병을 몰고 가서 저 놈들 대가리를 싹 다 날려버려야 하오!)
(맞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둬서는 안 됩니다!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당장 프이마를 봉쇄하고 둥지가 오는 즉시 요격해버립시다.)
장로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흥분하여 소리쳤다.
칸지한쟈는 그런 장로들을 진정시켰다.
(다들 침착하십시다. 잘 생각해보면 둥지가 지구로 가서 베루쟈를 처치하는 것이 우리 파데야칸에 그리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큐랴야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오?)
(알고 있습니다. 허나 놈들이 원하는 것을 못 가져가게 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못 가져가게 하다니?)
(둥지는 베루쟈를 죽이고 지구에서 추락할 겁니다.)
(정말인가?)
장로 중 하나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눈치 없이 물었다.
(그렇게 될 겁니다.)
칸지한쟈는 선언하듯 말했다.
둥지가 나올 때 떨구겠다는 뜻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나?)
(할 수 있다니요? 그냥 그렇게 될 겁니다.)
(그.. 그래. 자네만 믿겠네.)
외부의 위기는 내부의 결집으로 이어지는 법.
장로들은 좋든 싫든 칸지한쟈에게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었다.
* * *
[지훈 : 다음은 어떤 놈들이 오는 거야? 언제쯤 오지?]
저운토쟈와 강철중갑충병 1사단을 몰살시킨 이후.
나는 균열이 열려 있는데 아무 것도 안 내려오고 있지 않는 것을 보자 기분이 묘했다.
일단 안 나오니까 다행이긴 한데 뭐가 더 나오려고 안 나오는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에쟈와 베루쟈를 따로 불러 회의를 했다.
뭐.
다 불러서 회의를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아직 전후수습이 다 끝나지도 않았고, 베루쟈, 소에쟈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마정석을 쓰니 다 함께 모여 회의를 하면 한 마디 하는데 2-30개씩 날아갈 수도 있어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 사이 모인 마정석이 꽤 많긴 하지만 나는 효율과 최적화를 따지며 빌드를 깎던 사람인데 그런 식으로 낭비하는 건 딱 질색이니까.
일단 셋이서 이야기를 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회의가 끝나고 정리된 내용을 알려줄 생각이다.
[베루쟈 : 아마 파데야칸 놈들은 저운토쟈가 이렇게 죽을 거라고 생각 못 했을 거다. 1사단만 내려 보내고 후속병력 자체를 준비 안 했겠지.]
[지훈 : 준비가 안 됐다고? 그럼 안 올 수도 있나?]
[소에쟈 : 그럴 리는 없습니다. 파데야칸 놈들은 집요해서 한 번 찍은 사냥감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운토쟈가 죽고, 강철중갑충병 1사단이 전멸했습니다. 그렇게 크게 잃었는데 그냥 포기한다면 매몰비용이 너무 커지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가문들에게 얕잡아 보인다고 생각할 겁니다. 파데야칸의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일을 성사시키려고 할 겁니다,]
[지훈 : 그래. 쯧. 손절하기엔 너무 크게 물리긴 했지. 그럼 후속 병력은 대충 언제쯤 준비될 거 같은데?]
[소에쟈 : 놈들이 어떤 놈들을 보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지훈 : 어떤 놈들이라니? 파데야칸은 강철중갑충병이라며? 그놈들이 내려오는 거 아니야?]
[소에쟈 : 강철중갑충병이 또 오는 것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낮다고 봐야겠죠.]
[베루쟈 : 그놈들이 와주면 땡큐지. 내가 만든 독으로 상대할 수 있으니까.]
[지훈 : 아! 그래. 독이 있었지? 독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거 어떻게 만드는지 우리한테 알려줄 수 있어?]
[베루쟈 : 그건 왜?]
[지훈 : 왜긴 왜야? 미리 만들어놓으려고 그렇지. 지난번에 보니까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양이 얼마 안 되는 거 같던데 미리 준비해두면 ]
[베루쟈 :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너희가 알아도 의미는 없을 거다.]
[지훈 : 왜?]
[베루쟈 : 왜긴 왜야? 내가 내 안에서 금방 뚝딱뚝딱 만들어내서 만들기 쉬운 줄 아는가 본데, 그건 과학과 기술이 정점에 이른 라마키나 문명의 최첨단, 고도의 기술이 투입된 화합유기물이다. 그 기술로도 10년 가까이 강철중갑충병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미리 준비를 해놓고 있어서 된 거지. 그런 복잡하고도 섬세한 과정을 이제 막 개발도상문명으로 올라온 지구 문명의 과학기술로는 재현할 수가 없다.]
[지훈 : 지구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우리 쪽에 나름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인재들이 다 모여 있는데 말이야. 리나씨한테 맡겨놓으면 어떻게든 복사해서 만들어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베루쟈 : 너야말로 라마키나의 기술을 무시하지 마라. 너희보다 진보된 문명인 엘버그 문명도 이 기술은 따라할 수 없다.]
[지훈 : 엥? 지구가 엘버그보다 과학기술이 딸린다고? 벌레들한테? 아니. 벌레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벌레잖아. 무슨 과학기술이 있다는 거지?]
[베루쟈 : 희한하군. 차원 간 이동은커녕 행성 간 이동도 못하고, 유전자 재배합도 못하고, 균열도 못 열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엘버그보다 낫다고 자부하는 거지? 1단계 균열에서 나온 하급 생물도 제대로 대응 못해서 인구수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지 않나.]
[소에쟈 : 지구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엘버그 문명의 기술과 비교하면 심하게 떨어지긴 하죠.]
[지훈 : 쳇. 너도 엘버그 출신이다 그거지?]
[소에쟈 :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지구문명은 아무래도 개발도상문명이고, 엘버그는 선진문명이라.]
[베루쟈 : 아무튼 지구 기술로는 못 만든다. 아니. 지구가 아니라 다른 어지간한 선진문명에서도 불가능해.]
[지훈 : 그래?]
[베루쟈 : 아! 그리고 미리 만드는 건 의미가 없어. 그 독은 휘발성이 강해서 30분만 지나도 약효가 다 사라지거든.]
[지훈 : 아니. 처음에 그 이야기부터 했으면 다른 말 안 해도 되잖아. 그런 건 좀 미리 말하라고. 니네는 무슨 중요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게 습관이니?]
[소에쟈 : 흐음.. 다른 건 다 좋지만.. 절 이런 기계도 아니고, 벌레도 아닌 애매한 놈과 같이 묶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만..]
[베루쟈 : 나야말로 스스로 격을 낮춰서 각성능력도 못 쓰는 놈과 비교되는 게 불쾌하다.]
[소에쟈 : 흥. 몸을 기계로 바꾼 건 격이 높아진 거냐?]
[베루쟈 : 과학기술이다. 더 고등생물이 된 것이지. 못 믿겠으면 한 번 붙어보든가.]
[소에쟈 : 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넌 되냐?]
[베루쟈 : 그런 허접한 유기체 몸 따위. 이젠 필요 없다.]
[소에쟈 : 하하. 지구에서는 이럴 때 신 포도라고 한다더군. 못 먹는 포도를 보면서 저건 분명히 시어서 맛이 없을 거라고 자위한다면서.]
[베루쟈 : 그럼 당장 원래 몸으로 돌아와서 붙어보던가.]
[소에쟈 : 가문의 번영을 위해 이 수모를 겪고도 참는 거다. 아! 그래. 넌 가문이 없지?]
에휴.
난 베루쟈와 소에쟈가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둘은 저운토쟈와 강철중갑충병을 제거하고 나자 서로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틈만 나면 이렇게 싸워댔다.
원래부터 원수사이라고 했으니.
그런데 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안 하고 굳이 마정석까지 써가면서 메시지로 보내는 건지 모르겠다.
나보고 심판이라도 봐달라는 건가?
[베루쟈 : 이제 내가 있으니 저놈은 필요 없지 않나? 싸움도 못하고, 저놈이 아는 건 나도 다 아는데 말이야.]
[소에쟈 : 하하. 가문도 없는 놈이 혼자서 뭘 할 수 있다고? 그 기계 몸만 있으면 그 많은 가문들이 연합해서 들어오는 병력을 막을 수 있나? 뭐. 그렇다 쳐도 그 다음에는? 반격할 방법이 있어? 내가 우리 라키야와 연합된 가문들을 움직여서 역습을 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되지. 하다못해 마정석 지원도 못해주고 말이야. 참! 지훈님. 저운토쟈와 강철중갑충병 1사단을 처치하여 어머니께서 마정석 송금 제한을 더 풀어주셨습니다. 100억 개까지 더 쓰실 수 있을 겁니다.]
[베루쟈 : 저운토쟈와 강철중갑충병을 죽인 것은 나란 거 알지? 독도 내가 만들었고. 그놈들에게서 나온 마정석도 내가 너한테 다 넘겨줬잖아. 안 그래? 그것도 100억 개는 되지 않나?]
음..
아무래도 그게 맞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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