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남한산성 3
쿵!
쿵!
쿵!
건물에 막힌 강철중갑충병 2-5번 부대 놈들은 연신 뿔로 찌르고 후려치며 그것을 부수려고 했다.
1번 부대가 뚫어놓은 길은 놈들이 혼돈의 폭풍에 걸리며 놈들의 몸으로 막은 상황이라 새로운 길을 뚫어 밀고 들어오려는 것이었다.
“뚫리면 안 돼! 수리 붙어! 수리!”
건설로봇들 수십이 달려들어 용접기에 불꽃을 튀기며 쉴 새 없이 건물을 고쳐나갔다.
“지훈씨! 저 큰놈이랑 그 뒤에 있는 놈 하나가 혼돈의 폭풍에 안 걸렸어요!”
고주아의 말처럼 1번 부대에 딱 두 마리가 혼돈의 폭풍을 맞고도 멀쩡히 움직였다.
그것은 사단장인 저운토쟈와 부사단장인 샤디폰쟈였다.
고주아가 정신지배를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지휘관인 둘에게는 마법 면역이 되게 미리 뭔가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이 새끼들이 잔재주를 부리는 구나! 이런다고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저운토쟈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상당히 열이 받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거대화 스킬로 크기뿐만 아니라 힘과 체력이 늘어난 저운토쟈.
그 힘과 덩치로 뿔을 휘두르며 혼자서도 공격을 이어나갔다.
돌격이라는 공격옵션을 잃었지만 그래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이미 한 번 공격을 막느라 빈사상태에 빠진 드루이드들이 오래 버텨낼 수는 없었다.
- 드루이드는 빠져! 잘군! 금비씨! 둘이서 저 덩치를 맡아요!
“네, 형님!”
“네, 사령관님!”
나는 저운토쟈를 그 둘에게 맡겼다.
둘 다 같은 예거이긴 했지만 각각 방어와 공격에 특화된 능력으로 각성했으니 정금비가 탱커, 잘군이 딜러 역할을 해서 막아내면 피가 빠진 드루이드들보다는 잘 버텨낼 수 있다.
- 리나씨! 지우개!
“네! 가요!”
한리나는 그동안 생산했던 과학탐사선들과 함께 뒤쪽에 있다가 내 말에 앞으로 뛰어나왔다.
강철중갑충병의 머리 위로 날아간 과학탐사선들은 서로에게 방사능을 걸고 왔다 갔다 하며 놈들의 체력을 깎는 방사능 지우개 전술을 썼다.
강철중갑충병은 공중유닛 공격이 되지 않고, 대공 공격이 가능한 유닛들은 아직 뒤에서 못 쫓아오고 있었으니 과학탐사선이 마음껏 활개치고 다닐 수 있었다.
그 사이 프레데터 부대는 뒤로 돌아가 스텔스 모드로 공격하여 나머지 놈들이 오는 것을 저지했다.
미친 화학자가 독가스로 경로를 차단하니 디텍팅 유닛이 없는 놈들은 옆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과학탐사선은 시간을 더 벌었다.
하지만
- 아이 씨. 겁나 안 죽네.
낼 수 있는 최대 화력을 때려 박는 데도 강철중갑충병은 한 마리도 죽지 않고 혼돈의 폭풍의 제한시간이 먼저 끝났다.
물론
삐이잉!
고주아의 마나가 남아있어 한 번 더 쓸 수 있었고, 그 사이 뒤로 빠져서 치료를 받던 곰 드루이드들도 회복해서 다시 전선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강철중갑충병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일 뿐.
놈들이 안 죽는 것은 여전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강했다.
이 상태가 계속 유지만 된다면야 때리다보면 언젠가 놈들도 죽긴 죽겠지만 그냥 이렇게 흘러갈 리가 없었다.
문제는 뒤에서 일어났다.
“옵니다!!”
- 쳇, 역시 지금을 노렸군.
뒤쪽에서 한참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던 용병과 현상금 사냥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철중갑충병과의 전투가 한창 열이 올랐을 때, 혼란하고 정신없는 때를 노려 슬금슬금 다가오는 놈들.
놈들은 처음에 먼저 날 잡겠다고 경쟁하듯 무작정 달려들던 놈들과는 달리 경험 많고, 노련한 베테랑들이었다.
계속 신경 쓰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오는 것을 놓칠 뻔할 정도로 조심스럽고 은밀했다.
놈들이 딱 이때 움직일 거라는 사실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안다고 딱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특히나 정면의 강철중갑충병 부대와의 전투가 지지부진한 상황.
놈들을 막으러 정면에서 싸우고 있는 병력을 따로 빼기는 힘들었다.
산의 뒤쪽을 타고 올라와 진지 안쪽으로 파고 들려고 하는 놈들.
강철중갑충병보다 신체 스펙 자체는 낮았지만 대부분이 각성능력을 가진 놈들이라 들어와서 분탕을 치면 더 위협적일 수도 있는 놈이고, 정면의 대부대만큼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무시할 만큼 적은 수도 아니었다.
“형님! 뒤쪽에서 놈들이 넘어오고 있습니다!”
뒤쪽에도 건물로 바리케이드를 세워놔서 당장은 놈들이 한 번에 다 넘어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쪽으로 수리를 하러 보낼 건설로봇도 없었고, 날거나 뛰어넘는 놈들,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놈들도 있어 이미 뚫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 정면 화력은 줄이지 마! 놈들이 노리는 건 나야! 탱크는 안 노릴 테니까 그쪽을 지키는 병력들을 내 쪽으로 돌려! 내가 뒤쪽으로 빠지면서 놈들을 유인할 테니까. 금비씨! 잘군! 둘은 계속 덩치를 맡고, 나머지는 못 밀고 들어오게 막아!
암살자들이 나를 노리고 뒤에서 덮치면 정면은 강철중갑충병에게, 후방은 놈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싸 먹힐 위험이 높다.
그럴 바에는 내가 전열에서 빠져 놈들을 유인해서 따로 싸우는 것이 더 낫다.
어차피 내 현상금을 노리고 오는 놈들이라 공성탱크를 노리지는 않을 테니 그쪽의 병력으로 날 보호하게 하고 말이다.
내가 뒤로 빠지자 공성탱크를 지키고 있던 병력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따라붙었다.
그 순간
쾅!
뒤쪽에 있던 훈련소 하나가 무너지며 놈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 온다! 준비!
치이익!
해병과 화염방사병들은 전투각성제를 쓰며 놈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아쉽지만 버프는 없다.
지안이는 예거와 드루이드들에게 먼저 버프를 넣느라 이쪽까지 써줄 마나의 여력이 없었다.
지금까지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던 놈들은 한번 밀고 들어오기로 결정을 하자 지금까지 참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질풍처럼 맹렬하게 몰아붙였다.
서로 미리 어떻게 할지 정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자기들끼리 알아서 합을 맞춰서 우리를 몰고 가는 놈들.
- 발사! 쏴라!
투두두두!
화아악!
해병과 화염방사병들은 총과 불을 쏘며 놈들을 저지했다.
하지만
팅팅팅팅!
총알은 선두에 선 놈에 의해 모조리 튕겨나갔다.
선두에 선 놈은 이름이.. 하여간 무슨무슨쟈 였는데 뭐,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놈은 집게 대신 커다란 망치가 달린 가재 같이 생긴 놈이었다.
덩치는 강철중갑충병보다 조금이지만 더 큰 정도.
놈이 양손에 달린 망치 두 개를 정면으로 내밀어 막자 망치는 방패역할을 하며 총알을 막아냈다.
놈을 선두로 앞세우고 뒤따라오는 놈들.
- 이쪽으로!
나는 병력들을 안쪽 공터로 이동시켰다.
그 자리에 있다가는 옆에 있는 공성탱크들까지 놈들의 공격에 휘말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재놈부터 처치해야 했다.
가재는 망치가 거의 파괴불가에 가까울 정도로 단단했고, 그만큼은 아니지만 껍질도 꽤나 단단한 축에 속했다.
덩치만큼이나 체력도 많았고.
하지만 강철중갑충병에 비교하면 튼튼함은 한 수 아래다.
강철중갑충병이 전신을 판금갑옷으로 감싸고 있는 것이라 가정하면 가재놈은 가죽갑옷을 입고 있는 것에 불과하고, 바닥에 깔려있는 배 쪽은 그보다 훨씬 더 약해 그냥 천을 덧대놓은 수준이다.
그렇다는 것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
펑!
“키에엑!!”
가재는 발아래에서 터지는 폭발에 휩쓸려 그대로 몸이 뒤집어졌다.
펑!
펑!
펑!
연속으로 터져 나오는 폭음.
“끼야악!!”
가재놈의 뒤를 바짝 쫓아오며 기회를 엿보고 있던 놈들은 그 폭발에 휩쓸려 끔직한 비명을 질러댔다.
놈들에게 폭발을 안긴 것은 바로 마인이었다.
미리 문현중을 시켜 이쪽 공터에 마인 밭을 만들어 둔 것이다.
마인 폭발에 휩쓸린 가재는 몸을 뒤집은 채로 버둥댔다.
제법 큰 타격을 받은 것 같긴 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
그래도 놈들이 마인이 심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섣불리 덤비지는 못했다.
물론 그것은 지상군의 경우에나 그런 것이고, 마인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날벌레들은 그것에 자유로웠다.
공터로 빠지면서 미사일포탑의 엄호를 받을 수도 없었으니 날벌레들은 오히려 전보다 더 편하게 내 쪽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 위! 위!
투두두두!
해병들은 총구를 위로 들어 날벌레들을 향해 총알을 쏟아냈다.
그런데 총알을 맞으면서도 정면으로 우직하게 밀고 들어오는 거대한 날벌레 하나.
놈의 정체는 지하철 몇 량을 연결해 놓은 것처럼 길고 거대한 지네였는데, 마디마다 두 쌍의 날개가 붙어 날아다닐 수 있었다.
속도가 그리 빠른 놈은 아니었지만 대신 공중유닛치고는 꽤나 튼튼한 편이었다.
놈은 총을 맞으면서도 그것을 버티고 밀고 들어와서는 마디마다 다리에서 독액을 뽑아 구슬을 만들어 던지기 시작했다.
- 피해요! 구석으로!
폭격기처럼 융단폭격을 퍼붓는 놈에 나는 병력을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펑!
퍼벙펑!
심어놓은 마인들이 함께 터지며 지상군이 밀고 들어올 길을 열었다.
젠장.
나는 병력을 물린 뒤 다시 자리를 잡고 전열을 정비하려는데
- 산개해요! 산개!
정면에서 빛으로 된 커다란 구체가 느릿하게 날아들었다.
속도가 빠르지 않아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나를 따라 방향을 움직이는 구체.
현상금 사냥꾼 중 한 놈이 각성능력으로 만든 것이라 놈의 마음대로 조종이 가능하니 나를 노리고 보내는 것이었다.
구체는 느리지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에너지가 담겨있어 맞을 수는 없었다.
나를 집요하게 노리는 구체에 나는 따로 떨어져서 뒤로 빠졌고 바이오닉 병력은 다시 진형을 잡고 저지선을 만들게 했다.
내가 병력과 따로 떨어지자 암살자들은 병력들을 지나 나를 노리려고 달려들었다.
덕분에 병력들의 위험은 줄었지만 그만큼 내 위험도는 그 몇 배로 올라갔다.
나 혼자서는 싸울 수 없었으니 계속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병력과는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고 말이다.
그렇게 달리던 와중
펑!
- 으엇!
갑자기 내 앞에 연막탄처럼 뿌연 연기가 터지더니 그 연기를 헤치고 곡괭이 같이 생긴 벌레의 앞발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순간이동능력으로 각성을 한 놈이었다.
계속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내가 병력과 떨어지자 그 틈을 노리고 능력을 써서 나를 덮친 것이다.
빠르다.
원래도 운동능력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놈인데 순간이동까지 해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니 나는 반응할 수가 없었다.
놈의 날카로운 앞발 끝이 내 가슴을 뚫으려는데
휘익!
깡!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닥친다 싶더니 이내 쇠끼리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가슴 바로 앞에서 터져 나왔다.
놈의 앞발이 막힌 것이다.
그것을 막은 것은
“벌이군.”
고속비행능력을 가진 벌이었다.
뒤에서 날아오고 있던 고속비행 벌은 순간이동을 하는 놈이 앞발로 나를 찌르려고 하자 창처럼 길고, 뾰족한 꼬리침을 뽑아 그 사이에 끼어들어 막은 것이다.
나를 구하기 위해서?
그럴 리가. 내게 걸린 현상금을 노리고 온 놈들.
함께 오긴 했지만 같은 편이 아니라 현상금을 놓고 싸우는 경쟁자였으니 나를 먼저 못 죽이게 막은 것이다.
깡!
깡!
깡!
두 놈은 나를 앞에 두고 둘이서 싸우기 시작했다.
이유가 뭐든 일단 한숨 돌렸다 싶은데 빛의 구체가 나를 노리고 부지런히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젠장.
쉴 틈이 없구만.
나는 다시 달려 산 아래, 뒤쪽 능선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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