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배신자
“그런데 그놈. 프로로 데뷔 못한 건 맞아?”
“응. 맞아. 그냥 연습생따리, 병신이라니까. 너랑은 아예 상대도 안 되는 놈이야.”
박부장은 상대의 물음에 별 거 아니란 듯 가볍게 말했다.
그 말에 상대는 ‘쯧.’ 하고 혀를 차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병신이고, 상대도 안 된다니.
그럼 지금까지 계속 애를 먹고 있는 자신도 병신이라는 건가?
상대는 게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박부장이 아부를 한답시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기분에 영 거슬렸다.
게다가 상대가 하는 컨트롤이나 전술, 순간적인 대응 같은 것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분명 프로 물을 먹은 향기가 났다.
그런데 프로가 아니라니.
아무래도 박부장은 능력적인 면에서 그리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제대로 알고 말하는 것인가 싶었다.
“이름은? 그 새끼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김지훈.”
“흐음.. 확실히 프로 중에 그런 이름은 없었던 거 같긴 한데..”
상대는 아까 벌레들의 시야로 봤던 얼굴들을 떠올려봤다.
분명 그 중에 자신이 아는 얼굴은 없었다.
프로라면 자신이 기억을 못할 리가 없다.
이름도 그렇고, 얼굴도 기억 속에 없는 것을 보면 정말 그냥 연습생인가?
“흐음..”
“그러니까. 그냥 개병신이라니까. 너랑 어떻게 비교가 되겠어.”
“어느 팀이었는데?”
“응? 팀이라니?”
“연습생이었다며. 어느 팀 연습생이었냐고?”
“팀? 연습생도 팀이 있나? 그것까지는..”
박부장은 상대가 자세히 묻자 말끝을 흐렸다.
나에 대해 그런 것까지 알 정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데다가 애초에 프로게이머의 연습생 시스템도, 프로 팀이 어떤 팀이 있었는지조차도 몰랐다.
그 말을 듣자 상대는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참나. 형은 도대체 아는 게 뭐야? 잘 안다며? 그놈에 대해서 모르는 게 하나도 없다며? 그래서 받아줬더니. 말로는 다 할 줄 알고, 다 안다고 하면서 제대로 하는 게 한 개도 없잖아!”
“아.. 아니.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아니었으면 그놈이 여기에 왔다는 사실도 몰랐을 거 아니야.”
박부장은 상대가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억울한 듯 볼멘 목소리로 대꾸했다.
박부장의 소심한 반항에 상대의 표정은 금세 싸늘하게 식었다.
“그래. 그래서 형이 아직 살아있는 거지.”
“아니. 또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해? .. 정말 그럴 거 아니잖아. .. 아니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죽이려고 했는데 참은 거야. 알아?”
“으.. 응?”
잘 했다는 소리를 들을 줄 기대했던 박부장은 그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야? 그 억울하다는 표정은? 형이 뭘 잘못했는지 몰라?”
“아.. 아니. 알아.”
“무슨 잘못을 했는데? 말해봐.”
박부장은 여자 친구도 아니고 무슨 그런 걸 묻냐고 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이 나올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 음.. 각성벌레들을 다 잃은 거?”
“그래. 그거도 있지. 그건 절반 정답. 그거 말고.”
“또? 음.. 김지훈이 어느 팀인지 모른 거?”
“땡.”
“음.. 그럼..”
“몰라?”
“아니. 아.. 알아.”
“알긴 뭘 알아? 알아서 병신 같이 스캔 당하면서 여기까지 기어온 거야?”
“스.. 스캔?”
“씨발. 그게 뭔지도 모르지? 됐다. 내가 무슨 말을 하냐? 쥐뿔도 모르는데. 어떻게 한국인이 스타를 진짜 1도 몰라? 어디 외국 살다 왔어? 어디 씨발 아프리카 오지 같은데 살다 왔냐고?”
“미.. 미안.”
게임을 해본 적이 없는 박부장은 스캔이 뭔지도 몰랐다.
계속 머리 위에서 뭐가 번쩍번쩍 한다는 사실을 알긴 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으니 아무 의심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박부장이 막 도착했을 때도 여기에 스캔이 뿌려진 상황이라 상대는 스캔의 지속시간이 끝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상대는 박부장이 도망치는 중간에 놈을 따라 스캔이 뿌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자신이 들키기 전에 벌레들을 보내 박부장이 못 오게 죽이려고 했는데, 마침 그렇게 결정을 하자마자 놈이 가는 방향 전체에 스캔이 넓게 뿌려지며 자신을 찾아냈다.
벌레들이 가득한 곳에 홀로 여유롭게 살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상대는 이미 들킨 이상 당장 박부장을 죽여도 의미가 없고, 대체 왜 오는 것인지 이유라도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놈이 은신처로 오는 것을 두고 봤다.
이번에도 놈은 운 좋게 목숨을 건진 것이다.
“그.. 그래도 그 새끼만 죽이면 다 돼! 한 방에 다 끝난다고!”
“그래.”
박부장은 그 말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상대 역시 뭔가 결심한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허.. 니가 그 배신자였어?”
나는 스캔으로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자 어이가 없어졌다.
“누군지 알아냈어요?”
“네.”
나는 고주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으득 이를 악 물었다.
그 모습에 고주아가 놀라 물었다.
“왜요? 아는 사람이에요?”
“음.. 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모를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원수 같은 놈이었으니까.
뭐.
정작 상대는 나를 모르겠지만.
놈의 이름은 왕충재.
놈에 대한 설명은 두 가지면 충분하다.
리그 우승자.
그리고 조작범.
왕충재는 개인리그 우승만 네 번을 한 슈퍼스타였다.
하지만 승부조작에 가담해서 리그가 망하게 만든 배신자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승까지 한 놈이 승부 조작에 가담하다니.
게다가 놈은 게임계에 나름 인맥도 넓어 같은 팀원뿐만 아니라 다른 팀에 있던 사람들까지 끌어들여서 대규모로 승부조작을 했었고, 그것이 리그에 치명타가 되어 빠르게 쇠퇴하고 말았다.
덕분에 프로게이머를 꿈꾸던 내 인생도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그 이후의 인생까지 그대로 꼬이고 말았다.
나와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왕충재는 내게 누구보다 더 원수 같은 놈이다.
얄미운 박부장보다도 더 말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상대한 놈이 왕충재였다니 모든 것이 설명됐다.
상대가 가진 실력도, 그런 실력을 가진 각성자가 왜 인류를 배신하고 벌레들의 앞잡이가 된 것인지.
애초에 그럴만한 놈이었다.
이미 눈앞의 이익을 위해 팬들과 다른 동료들을 배신해본 경험이 있는 놈이니 인류를 배신하고 벌레들의 앞잡이가 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용서할 수 없다.
과거의 일도, 지금의 일도.
모두.
* * *
우리는 왕충재가 있는 은신처를 향해 조용히 접근해 갔다.
할 수 있다면 놈이 끝까지 모른 상태에서 기습하여 잡아내고 싶었기 때문에 벌레들을 피해 몰래 돌아갔다.
하지만 왕충재는 눈치가 빠른 놈이라 이미 우리가 올 거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감독관과 정찰부대를 은신처 주변에 넓게 뿌리고, 후방에 있는 벌레들 역시 불러들였다.
더 이상은 은밀하게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바로 칩시다.”
오래 끌면 끌수록 후방의 벌레들이 더 많이 모이게 된다.
나는 여기에 있는 병력들은 왕충재의 은신처를 공격하게 하고, 따로 떨어져 있던 윤범의 부대 절반과 정태산의 부대도 이쪽으로 불러들여 추가 되는 벌레들을 끊어주도록 했다.
“자! 갑시다!”
우리는 진형을 잡고 바로 은신처를 향해 진군했다.
빠르게 은신처를 쳐서 왕충재를 제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 병력이 모습을 드러내자 상대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로 병력을 움직였다.
그런데
“씨발! 김지훈! 중졸 따리 병신 새끼야! 어디 있어? 나와! 넌 이제 뒤졌다!”
벌레들을 지휘하며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왕충재가 아닌 박부장이었다.
나는 스캔을 뿌리며 벌레들 사이에 왕충재가 있는가를 확인했지만 없었다.
뭐지 싶어 은신처 쪽에도 스캔을 했는데 막 날벌레를 타고 우리 병력이 진입하는 방향, 반대편으로 도망치는 왕충재가 보였다.
우리가 공격하길 기다렸다가 공격하는 것을 보고 위치가 확인되자 박부장에게 우리 병력을 묶어놓게 하고 혼자 도망친 것이다.
나는 왕충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스캔을 뿌렸는데 놈은 그것 역시 예상했다는 듯 계속 급드리프트를 하며 스캔을 피했다.
나는 예측샷을 하며 놈을 쫓아갔지만 날벌레의 이동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결국 놓치고 말았다.
젠장.
다 와서 놓치다니.
지금 상황에서는 과학탐사선이나 프레데터를 따로 빼서 쫓을 수도 없었다.
일단 달려드는 벌레들을 막는 것이 먼저.
그래도 상대가 왕충재라는 사실을 알았고, 박부장을 잡으면 왕충재가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잘군아! 공성모드! 나머지는 다 공성탱크를 보호하는 대형으로 서세요!”
나는 우선 방어진형을 갖춰서 박부장의 공격을 막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퍼펑!
펑!
“뭐지?”
벌레들은 그냥 꼴아 박고 있다.
전혀 컨트롤이 안 되고 있다.
아니.
컨트롤을 안 하고 있다.
자리 잡은 우리 병력을 향해 그냥 어택땅을 찍은 셈인데, 위치를 잘 잡고 한 번에 잘 둘러싸서 오는 것도 아니었고, 벌레들은 이동속도가 다른데 그냥 공격을 시키니 다 따로 분리되어 각개격파 됐다.
전방에서 먼저 달리던 메뚜기들은 해병과 화염방사병의 공격에 힘 한 번 못 써보고 그대로 녹아내렸다.
그제야 이게 아닌가 싶어서 메뚜기를 뒤로 빼서 다시 달려들려고 해보지만 체력이 약한 메뚜기들은 빠지기도 전에 그냥 녹아버렸다.
우리 쪽 병력의 화력이 더 높으니 어떻게 싸워도 우리가 더 유리하긴 했을 테지만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병력을 버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엉망진창의 컨트롤은 박부장이 한 게 틀림없다.
전술적 개념도 없고, 경험도 없으니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을 컨트롤하는 데 손이 꼬이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왕충재는 왜 이런 능력도 없는 놈에게 병력을 지휘하게 했을까?
이 정도란 걸 모를 리도 없었을 테고, 멀리 있어도 왕충재가 컨트롤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왕충재가 컨트롤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인가?
그러고 보니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박부장을 남기고 자기만 도망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 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다.
“일단 빨리 잡읍시다.”
무슨 꿍꿍이든 박부장을 빨리 잡으면 알아낼 수 있겠지.
나는 병력의 전진속도를 높였다.
과학탐사선이 선두의 바이오닉 병력들에 에너지 실드를 걸어 주고, 진행하는 방향의 양쪽 옆에 건물로 바리케이드를 만들며 혹시라도 벌레들이 둘러싸지 못하게 했다.
공성탱크의 보호는 각성자들이 맡고, 나머지 병력은 전진.
프레데터와 문현중의 호크바이크는 옆으로 크게 돌려 박부장의 퇴로를 막았다.
우리 쪽 병력들이 과격하게 치고나가자 안 그래도 어지러웠던 박부장의 컨트롤은 더욱 엉망이 되었다.
“으악! 막아! 막으라고! 뒤로 오잖아! 뒤쪽으로 가라고!”
패닉에 빠진 박부장은 벌레들을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그럴수록 의미 없는 손실만 늘어날 뿐이었다.
“잡아오세요.”
“네, 사령관님.”
윤범은 부대원들을 데리고 무너진 벌레들의 진형 한 가운데를 뚫고 들어갔다.
박부장은 자신을 향해 병력들이 길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자 메뚜기를 타고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퇴로는 막혀 있는 상태였다.
“오지 마! 오지 마, 이 새끼들아!”
박부장은 끝까지 반항을 해보지만
“시끄럽군.”
퍽!
“억!”
윤범이 개머리판으로 놈의 명치를 세게 때리자 그대로 고꾸라졌다.
윤범은 놈의 뒷덜미를 잡아 그대로 내 앞으로 끌고 왔다.
지휘관을 잃은 벌레들은 병력들을 향해 무작정 달려들었지만 진형을 다시 잡고 잠그기로 들어가자 어렵지 않게 제압 가능했다.
“결국 다시 잡혔군.”
나는 내 앞에 꿇어앉은 박부장을 보며 피식 비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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