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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坤之亭(건곤지정)

소년 검귀는 엘프 노예를 구매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환등
작품등록일 :
2023.10.24 10:30
최근연재일 :
2023.11.0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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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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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DUMMY

8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쿤 아비스는 머리를 부여잡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말 그대로의 의미다. 아직 안 죽었다고.”

“⋯.”

“넌 이미 마음먹었군. 살리려면 살릴 수 있어. 하지만 넌 아직 살아있는 저자가 죽도록 방치할 생각이야. 안 그런가?”


소년은 특유의 무감정한 어투로 말했다.

감정을 숨기거나, 상황에 맞추어서 말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행동이라면 소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엘프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내뱉어왔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라면 두고 볼 것도 없었다.


‘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마법이라도 쓸려는 건가?’


쿤 아비스는 그런 소년의 멱살을 붙잡았다.


“너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이곳은 내 혁명군이야. 함부로 행동하는 것은 내가 용납 못해.”

“아무것도 안 한다. 그냥 묻고 싶은 게 있을 뿐. 그리고⋯.”


소년은 등에 짊어진 검을 쥐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아연실색한 상황 속에서 엘프만은 침착하게 이 상황을 관조했다.


엘프는 소년이 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았다.

소년이 마적 떼를 몰살하려 할 때의 흉흉한 기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굳이 말하면, 앞에 수풀이 가로막고 있으니, 칼로 쳐내야겠다는 정도의 감정만이 소년에게 내비쳤다.


‘다들 왜 이리 놀라는 거지?’


엘프에게 있어서, 이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싸우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을 자극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었기에 엘프는 조용히 소년이 하려는 행동을 지켜봤다.


“여기서 날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잠깐만! 야! 내 손님을 협박하면 어쩌자는 거야!”


이브자드까지 뛰쳐나와 소년을 붙잡았다.


“여기서 칼부림이라도 하려고? 너 나랑 거래한 거 잊은 거 아니지?”

“난 아무 짓도 안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소년은 검을 놓지 않았다.


“한 가지 말하지. 너희를 전부 죽이고 여기서 나가는 건 내게 일도 아니다.”

“그만 해요. 주인님.”


엘프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다들 겁먹었잖아요. 계속 그렇게 행동하면 다들 주인님을 오해할걸요? 주인님은 저 사람을 살리고 싶은 거 아니에요?”

“⋯.”


엘프가 나서고 난 다음에서야, 소년은 검을 쥐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쿤 아비스는 상황이 진정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저 친구가 죽지 않았다는 걸 모르지 않아. 하지만 내 말도 들어주지 않겠나.”

“말해.”


쿤 아비스는 피로에 절어있는 눈을 감고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저 친구는 곧 죽을 거야. 우리가 가진 자원을 모두 사용한다면 저 친구는 며칠 더 연명할 수 있겠지. 그래⋯ 그런 적도 있었어.”


쿤 아비스는 분노를 삭이며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하지만 우린 그렇게 여유롭지 않아. 물자도 병사도 모두 부족해. 해방을 위한 전쟁을 이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벅차단 말이다. 나는 500명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네. 나라고 저 병사를 살리고 싶지 않은 건 아니라고.”


소년은 차분히 쿤 아비스의 말을 듣고 있었다.

쿤 아비스는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네. 한 명을 연명하기 위해 살릴 수 있는 다른 병사들은 내버려 둘 순 없어. 붕대 하나도 없어서 지금 제대로 갈아주지 못하는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모두가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어. 인제 와서 그걸 전부 포기하고 저 친구를 살리라고? 그러면 혁명은? 지금까지 죽은 내 병사들은 전부 개죽음으로 만들라고?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쿤 아비스도 아직 어린 소년이었기에, 한번 터진 감정을 쉬이 정리하지 못했다.


“저 친구도 알고 있어. 그래서 아무 말 안 한 거야. 모두가 같은 마음이니까. 이 혁명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희생이 따른다는 걸 각오 했으니까. 희생할 사람을 선택하는 내 마음이 어떤지 알긴 하냔 말이야!”


쿤 아비스의 눈가엔 이미 눈물 자국으로 깊게 패어 있었다.

마모되고 깎여나가며, 손해를 감수하는 선택을 강요받았을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반복하며 나아간 곳에 무엇이 있을까?

엘프는 쿤 아비스를 동정했다.


“알고 있다. 동료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어선 안 되지. 하지만 넌 나약하다.”


물론 소년은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넌 너무 쉽게 결단 내렸다.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것도 못 보고 그냥 방치해서 죽이려고 한다. 그게 마음에 안들어.”


소년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던 쿤 아비스의 손을 쳐내고 아까 전 환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다. 그렇게 생각 안 하나?”

“⋯.”

“난 거기 반대인데? 자유와 해방은 목숨보다 좋다고.”

“닥쳐. 이브자드.”


소년은 환자의 몸을 감싸던 붕대를 뜯어냈다.

옆구리를 관통한 상처는 실로 봉합되었지만, 그 틈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봉합하는 솜씨가 어설퍼. 전쟁은 이번이 처음인가? 곱게 자랐나 보군.”


쿤 아비스는 소년에게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획 돌렸다.

소년은 환자를 바라보았다.


환자의 눈은 초점도 거의 잡히지 않았고, 몸도 축 늘어져 있었다.

파리한 입술은 잘게 떨렸고, 숨조차 고르게 내뱉지 못하고 차근차근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물론 이 역시도 소년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넌 이대로면 죽을 거다.”

“주⋯욱⋯ 더라도⋯ 나는⋯.”

“내가 하는 말에만 대답해. 상처를 봉합해도 계속 피가 났지?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고. 가슴에서 압박감이 느껴졌을 거야. 그렇지?”


환자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네 몸속엔 깨진 창날 같은 게 들어갔을 거다. 그게 속에서 요동치면서 충혈을 만들었겠지.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안의 상처는 벌어지고 피를 쏟아내게 했을 거다. 빠져나온 피가 폐와 복부에 차올랐겠지. 급하게 봉합하다 보면 흔하게 생기는 일이다.”


환자는 쌕쌕거리는 숨만 간신히 내뱉었다.


“상처를 헤집어서 깨진 창날을 뽑아내고, 다시 상처를 봉합해야 한다. 이 수술은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다. 게다가 이렇게 하더라도 대략 5명 중 1명만 살아남는다. 수술 중에 죽거나 수술 후에 열병이 나서 죽거나, 치료를 하더라도 몇 달은 요양 생활을 해야 하지. 넌 어떻게 하고 싶지?”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 짐짝이 되어서라도 고통스럽게 살아남겠나? 아니면 깔끔하게 죽겠나?”

“나는 살⋯고 싶어.”


소년이 비틀어진 미소를 지었다.


“그래. 삶이란 좋은 거지.”


소년은 가죽으로 된 쌈지 하나를 꺼내 거기서 둥글게 말려진 바늘 하나를 꺼냈다.


“엘프. 이 자식 입을 틀어막아. 이브자드 이놈 위에 올라타서 못 움직이게 해.”

“네. 알겠어요.”

“내가 왜?”


소년이 눈빛으로 이브자드를 쏘아붙이자, 이브자드도 군말 없이 소년이 시키는 대로 했다.

엘프는 천 쪼가리를 뭉쳐 환자의 입을 틀어막았고, 이브자드는 환자의 몸을 붙잡았다.

이 과정에서 쿤 아바스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분노와 굴욕을 참아내었다.


소년은 손끝으로 봉합된 실을 뜯어내고, 상처의 속을 손가락으로 헤집었다.

환자의 몸이 크게 요동쳤지만, 이브자드는 환자를 힘껏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으으으읍.”


비명이 입을 틀어막은 천 쪼가리 사이로 새어 나왔다.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끔찍한 광경.

쿤 아바스는 그 광경을 계속 지켜봤다.


곧 손톱 한 마디 정도의 얇은 쇳조각이 소년의 손에 쥐어졌다.

두 개 정도의 피 묻은 쇳조각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환자의 몸에서 피가 계속 터져 나왔다.

소년은 능숙하게 상처를 봉합해 나갔다.

비명이 잦아들었다.

몸부림칠 힘도 잃은 환자.

간간이 몸이 위로 덜컹 튀어 오르려 했을 뿐,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했다.


“됐군.”


소년은 피 묻은 손을 이브자드의 옷에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헤이! 이거 비싼 건데! 네가 물어낼 거야?”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 되나?”


뚜벅.

쿤 아비스는 충격을 받은 듯 몸을 휘청거리며 소년에게 다가갔다.


“살렸나?”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되면 더 살 수 있겠지. 어쩌면 바로 죽을 수도 있고.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너는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상처를 후빈 거냐?”

“죽는 것보다야 도박해서라도 살아남는 게 나으니까. 이 정도면 확률 높은 도박이야.”


엘프는 마법이 아닌 방식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고 손을 떨었다.

사람의 몸속에 손가락을 집어넣던 소년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내가 이곳에서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이 사막엔 마나가 희박하기에 그런 것을 바랄 수도 없었다.


‘나는 무능하네.’


엘프가 소년의 노예인 이상 그 행동엔 제약이 걸렸다.


“너는 나완 다르군. 사람 목숨으로 고통으로 도박했어.”


쿤 아바스는 주먹을 불끈 쥐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퍽,


주먹이 쿤 아바스의 손바닥에 맞닿았다.

쿤 아바스는 소년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하지만 그대는 그 도박으로 내 부하의 목숨을 살렸다. 나 쿤 아바스. 우리 혁명군의 일원을 살려준 그대에게 감사를 표한다. 넌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군.”

“이 정도는 전쟁터에서 오래 굴러먹다 보면 누구나 배우게 돼. 누구나⋯.”


소년의 시선은 이브자드를 향했다.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거지.”


이브자드는 소년의 시선을 마주했다.

어깨를 으쓱 올리며 자리를 벗어난 이브자드.

엘프는 이브자드의 뒤를 쫓아갔다.


“몇 가지 주의할 점을 말해주지. 군의관들이 항상 하는 이야기니 지키는 게 좋을 거야.”

“물자가 부족한데⋯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알려 줄 수 있나?”

“기억나는 게 있으면⋯”



.

.

.

.


“쯧.”


이브자드는 구석진 자리로 들어가 벽에 등을 기댔다.


“건방진 자식. 내 사업을 망치려고 아주 작정했군.”


엘프는 그런 이브자드의 곁으로 다가갔다.


“왜 도망쳤어요?”


이브자드는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불안한 눈빛을 내비쳤다.

엘프가 곁에 있었음에도, 이브자드는 늘 짓던 시시덕거리는 표정을 짓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가씨가 신경 쓸 거 없어.”

“신경이 쓰이니까 그래요. 당신⋯ 저 사람 살릴 수 있었던 거죠?”

“⋯.”


이브자드는 여유를 잃어버리고 엘프에게 다가갔다.

쿵.

이브자드는 엘프의 머리 옆에 있는 벽을 내리쳤다.

엘프는 어떤 미동도 없이 이브자드의 눈을 바라보았다.

혼탁한 눈.

이브자드는 불쾌감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아아. 그래 맞아. 살릴 순 있었지. 저 검귀 자식보다 더 능숙하게 상처를 빼낼 수 있었어. 그건 사실이야.”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하지 않은 거예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서요.”

“혁명엔 저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필요하니까.”

“네?”


엘프는 이브자드의 눈가에서 깊은 심연은 엿봤다.


“엘프. 전쟁엔 증오심이 필요해. 비참하게 죽어가는 가족과 친구가 필요하다고. 보통 사람들은 있는 힘껏 사람을 죽이지 못해. 왜? 멋대로 적에게도 동정심과 공감을 가져버리니까. 그걸 싹 빼내야 한다고.”

“당신 제정신이에요?”


엘프의 말에 이브자드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제정신? 제정신으로 어떻게 혁명을 해? 기존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지도자의 목을 쳐버리겠다는 걸 제정신으로 할 사람이 누가 있어.”

“당신은 미쳤어요. 왜 주인님이 당신을 싫어하는지 알겠네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자신을 합리화하고, 그걸 동력으로 혁명을 이어 나가는 거다. 상처가 깊을수록 적에 대한 증오도 커지지. 그러니 비참하게 죽어가야 하는 거야. 증오에 취해야 해. 혁명의 승리를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 나갈 병사가 필요하니까.”


엘프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브자드의 뺨을 향해 손을 올렸다.

휘익⋯ 탁.

이브자드는 엘프의 얇은 손목을 가볍게 붙잡고 으르렁거렸다.


“내 사업을 망치면 가만두지 않겠어. 네 주인에게 말하고 싶으면 말해. 원하는 걸 얻고 싶으면 멋대로 행동하지 말라고.”


이브자드는 엘프의 팔을 뿌리치고 구석진 자리로 들어갔다.


“따라오지 마. 그러면 검귀고 뭐고, 확 죽여버릴 거니까. 좀 있다 돌아갈 테니까 내가 한 말은 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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