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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坤之亭(건곤지정)

소년 검귀는 엘프 노예를 구매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환등
작품등록일 :
2023.10.24 10:30
최근연재일 :
2023.11.07 19:20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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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63,898

작성
23.10.25 17:14
조회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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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2화

DUMMY

2화


도시의 광장엔 흰옷을 입은 사제들이 줄지어 걸어갔다.


"회개하십쇼. 심판이 날이 도래합니다."

"신은 여전히 여러분을 굽어살피십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지옥 불에 불타리라!"


강한 믿음에 큰 고함.


같은 신을 믿는 이들에게 있어선 그 모든 게 믿음의 증거였을 테지만, 바깥에서 보기엔 광신자들의 헛짓거리였다.

외부자인 엘프가 보이겐 인간은 언제나 한결같이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자신의 주인도 마찬가지일까.


엘프는 곧 고개를 저었다.


소년은 하는 말마다 의문투성이에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눈 적 없지만 저런 광신자로 보이진 않았다.

근거를 따지면 엘프의 직감 상 그랬고, 보통 인간보다 오래 살아온 경험상 그랬다.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소년은 외투를 벗어 엘프의 몸을 덮었다.

소년의 외투는 엘프의 큰 키를 가리기엔 부족하였으나 얼굴과 귀를 덮기에는 충분했다.


"저들의 눈에 뜨이지 마라."


엘프는 의아한 듯 소년 주인을 바라보았다.


"사제들은 장생종을 좋아하지 않아."

"왜죠?"

"물어보는 이유를 모르겠군. 노예는 좀 조용한 줄 알았는데."


소년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질투겠지."

"질투?"

"자신들은 죽어 사라질 텐데, 너희 장생종들은 계속 삶은 이어 나가니까. 죽음을 미루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하고 싶을 텐데. 너희는 장생종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천 년이나 살아가지 않느냐."


엘프는 소년의 답변에 불만스럽게 답했다.


"오래 산다는 게 그렇게 부러워요? 그게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모른다."


소년의 답변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엘프는 소년을 쏘아붙이려 하다가 소년의 표정을 보았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년은 자신이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듯 앞만을 바라보고 걸었다.


'혹시 상처받은 거야?'


엘프에게 있어서 이 꼬마 주인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 여태껏 살아오면서 본 적 없는 유형의 인간.

그렇기에 이 호기심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노예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

.

.

.


도시 너머에서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엘프의 코끝에 스쳤다.

매콤한 냄새, 약간의 현기증과 몽롱함을 가져오는 냄새.

엘프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숲이 그리워졌다.

인간이 사는 곳은 메마르고 삭막하여 엘프가 살기엔 적합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도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한참을 걸어야 하지. 필요한 것이 있느냐."


소년과 엘프는 도시의 정문 앞 시장을 걷고 있었다.


"옷이 필요해요."

"옷?"

"이런 누더기를 입고 사막을 걷다간 아무리 엘프라고 해도 쓰러질걸요?"

"옷이라···."


소년은 근처에 아무 옷이나 집은 다음 상인에게 돈을 주었다.


"됐나?"


옷을 받아 든 엘프는 황당한 소년을 바라보았다.


"흥정 같은 건 안 해요?"

"흥정이 뭐지?"


엘프도 과거엔 나름 고귀하게 자라왔지만, 이렇게 세상 물정을 모르지 않았다.

이런 시장에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바가지를 씌우는 게 일상이라 제대로 된 값을 받기 위해선 흥정이 필수였다.


"값을 깎거나···. 서로 가격을 맞히거나···."

"돈만 주면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도대체 어디서 자랐길래···."


소년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흥정 같은 걸 해야 하는지 몰랐다. 다음부터 참고하지."

"당신을 따라가는 게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불안해 할 것 없다. 내가 평생 쓰더라도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으니까."


'얼마나 돈이 많길래?'


철없는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하기엔 삶의 풍파를 많이 겪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일확천금을 번 용병이라기라기엔 너무 어리기도 하거니와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다.


'등에 짊어지고 있는 저 커다란 검을 생각하면 싸우는 일을 해오던 것 같은데.'


엘프는 소년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소년이 답해줄 것 같지 않았다.


"준비는 끝났으니, 도시를 나가자. 만약 힘들거나 아프면 이야기해라."

"네."


시간이 지난다면 이야기해 줄까?

조급해하는 것은 엘프답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일은 조용히 해결되는 법이니까.


.

.

.

.


태양이 땅에 닿고 그림자가 가장 길게 늘어지는 저녁.

엘프는 자신의 등 뒤로 늘어진 그림자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토록 번잡스럽고 혼란스럽던 도시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작아졌다.

도시의 요란한 소음이 사라지니 엘프는 애달픈 느낌을 받았다.

노예가 되어 도시에 갇혀있었던 25년의 세월 동안 인간의 감상에 물듯 탓인 듯했다.


"빅토르."


바람 소리만 거센 사막에 소년의 곱고 높은 목소리가 퍼졌다.


"네에?"

"네가 우선 기억해야 할 사람이다. 빅토르."


사막을 계속해서 걸었음에도 소년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엘프인 자신도 살짝 힘에 부치는데도, 소년은 아무렇지 않다는 게 약간 화가 났다.


"지금요?"

"힘든가?"


아직까진 태양에 달궈진 모래가 뜨거웠다.

곧 완전히 해가 지고 밤이 될 것이다.

그러면 살이 찢어질 듯 추워지겠지.


엘프는 여기서 현명한 답을 찾아야 했다.


소년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지금 말을 꺼내는 것도, 적당히 생각나서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소년에겐 마땅히 있어야 할 눈치가 전혀 없었으니까.

소년과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엘프였지만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엘프는 자존심을 살짝 굽히고 말했다.


"슬슬 야영 준비를 해야겠네요. 안 그런가요?"

"야영한다고?"

"해가 더 있을 때, 준비해야 편하죠."

"걸을 수 있을 때까진 계속 걸어야 하지 않나? 3일은 밤새 걸을 수 있잖아."

"그게 무슨···."


엘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소년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만 하고 있으니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3일을 내리 걷는다고? 그게 가능해?'


이 꼬마 주인은 상식만 결여된 사람이 아니라 아예 미친놈이었다.


"엘프는 가능하지 않나?"

"엘프가 아니라 엘프 할아버지가 와도 안 돼요. 드래곤이 온다면 모를까. 드래곤이면 날아다니지, 3일 내내 걸어 다니진 않겠네요."


소년은 당혹스럽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엘프는 몸이 날래서 숲을 날아다니듯 걸어 다닌다고 들었는데···."

"설마 아까 말했던 바드인가요?"

"그래."


엘프는 참아왔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바드 한 번 꼭 보고 싶네요. 엘프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건가?"

"죽었다."

"..."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본 엘프는 짜증이 밀려왔다.


소년은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학대하려는 것도 아니고, 음습한 욕망을 품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때 묻고 상처받은 얼굴을 하는 것과 별개로 순수함이 느껴졌으니까.


그럼에도 이 소년은 죽음을 말하는 태도는 기이했다.

어제 빵을 먹었다는 식의 일상적인 어투로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소년을 이해하려 할수록 질척질척한 심연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까 말한 그 빅토르라는 사람도 죽었나요."

"그래."

"제가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도 다 죽은 사람들인가요?"

"그래."


소년은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야영을 준비하는 게 낫겠군. 엘프는 더 오래 걸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소년은 짐을 풀고, 텐트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엘프는 소년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소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

.

.

.


사막 언덕 위.

해는 저물고, 달이 능선을 따라 떠올랐다.

달궈진 모래가 빠르게 식어가고, 세찬 바람이 엘프의 연한 볼을 스쳤다.

엘프는 모닥불을 앞에서 소년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빅토르. 빅토르는 원래 사냥꾼이었다. 조용하고 말수는 적었지만, 행동은 빠릿빠릿했다. 내게 독초를 약으로 쓰는 법과 약초를 독으로 쓰는 법을 알려줬다. 사냥감을 쫓는 방법과 산길에서 헤매지 않는 방법도 알려줬다."

"..."

"빅토르는 정찰대의 일원이었다. 빅토르는 적의 동태를 확인해 보겠다며 혼자 이동했지. 적의 성문에 빈틈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엘프는 조용히 소년의 말을 듣고 있었다.


"빅토르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성문 앞에 목이 잘려 효수된 것만 확인했지. 가족들에게 시신을 돌려주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누구도 그 성문을 돌파하지 못했으니까. 빅토르의 시신을 그렇게 방치됐다."

"그래서요?"

"끝이다. 그 후에 누구도 빅토르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느샌가 걸려있던 빅토르의 시신도 사라진 상태였고. 나중에 성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을 땐 시체가 너무 많아서 어떤 게 빅토르인지도 알 수 없었다."

"슬픈 이야기네요."

"오늘은 빅토르에 대해 기억해라."


빅토르의 이야기를 끝마친 소년은 그 이후 말이 없었다.

소년은 하고 싶은 말 다 했고,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주무시지 않나요?"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불침번을 설게요."


소년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전쟁이라···.'


텐트 안으로 들어간 엘프는 시큰거리는 종아리와 무릎을 쭉 펴며 누웠다.


노예로 갇혀있는 동안에도 도시의 큰 소문들은 얼추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을 산 노예 상인이 전쟁으로 노예 값이 폭락한다며 울상을 짓던 일이 떠올랐다.

큰 전쟁이 두 번, 작은 전쟁은 수십 번.

엘프도 전쟁을 벌이긴 했지만, 인간들만큼 자주 전쟁을 벌이진 않았다.

전쟁의 양상도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도 전혀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전쟁의 격렬함이었다.


'엘프의 전쟁은 인간의 전쟁에 비하면 유치한 수준이니까.'


장명종은 오래 사는 만큼 새로 태어나는 생명이 태어나는 수가 적었다.

인간처럼 격렬한 전쟁을 벌이면, 종족 전체에 위협이 되었다.

투쟁을 멀리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것은 장명종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살기 위해, 쟁취하기 위해서, 한순간을 위해 달려가는 인간을 이기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전쟁으로 번 돈으로 날 산 건가? 하지만···. 그렇게 큰돈을 벌 수 있나?'


꼬마 주인에 대한 것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었다.

빅토르의 이야기를 통해 안 것은 소년이 전쟁터에 있었다는 것과 그의 전우들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피곤한 주인을 만났네.'


엘프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갇혀있다가 갑자기 계속 걷게 된 탓에 몸에 피로가 쌓여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은 무리였다.


'자유는 얻어야 하지만···. 그건 조금 더 미루자···. 시간은 엘프의 편이니까···.'


파도 소리와 비슷한 모래가 흩날리는 소리.

엘프는 귓가에 스치는 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눈을 감았다.


.

.

.

.


땅이 울리는 소리에 엘프는 잠에서 깼다.

아직은 새벽.

텐트 너머로 달빛에 반사된 푸른 모래가 잘게 떨려왔다.


'모래가 진동한다고? 바람에 흔들리는 게 아니고?'


엘프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텐트 밖을 바라봤다.

아직 달이 더 있었음에도, 사구 너머에서 불빛이 보였다.

태양의 부드럽고 따뜻한 빛과는 달랐다.

인위적이고, 더욱 거친 빛이었다.


"주인님? 이게 무슨 일이죠?"


엘프를 본 소년이 말했다.


"마적이다. 저 숫자면 대략 100명 정도는 되겠지. 텐트 밖으로 나오지 마라."


엘프는 다급하게 외쳤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마적 100명.

절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저도 도울게요."

"네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소년의 말 대로였기에 엘프는 할 말을 잃었다.

활도 쏠 수 없고 마법도 사용할 수 없는 엘프는 이 상황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아마 도시에서 내가 널 산 것을 본 것이겠지. 엘프 노예는 비싸니까."

"..."

"걱정하지 마라. 널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아."


소년은 자기 몸보다 거대한 검을 꺼내 꼬나쥐었다.

소년의 검이 서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난 영웅 그 언저리의 비슷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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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9 산방학
    작성일
    23.10.25 17:58
    No. 1

    기대감이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환등
    작성일
    23.11.04 12:18
    No. 2

    보시기에 족한 작품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6 ka****
    작성일
    23.11.02 21:35
    No. 3

    흥미로운 스토리와 정교한 문장이 겹쳐져서 정말 가독성 좋군요. 수수께끼 같은 소년과 엘프의 동행이 의외로 많은 이야기를 제공해주고 있는데, 그 지점에서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군요.
    재밌게 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환등
    작성일
    23.11.04 12:19
    No. 4

    1화에 이어서 2화까지, 칭찬을 받으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제 글이 만족스러우셨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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