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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坤之亭(건곤지정)

소년 검귀는 엘프 노예를 구매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환등
작품등록일 :
2023.10.24 10:30
최근연재일 :
2023.11.07 19:20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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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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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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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30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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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5화

DUMMY

5화

소년은 입술을 달싹였다.

하면 안 될 말을 지껄였다는 듯, 몸을 움츠리고 고개를 숙였다.


"황제요?"


엘프의 말을 걸어도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등을 돌렸다.


"잊어라."

"말해놓고 잊으라고 하는 건 너무 어린애 같지 않아요?"

"말이 헛나왔다. 잊어라."

"저, 말이에요."


엘프는 이미 소년의 심기를 건드린 이상, 더 나빠질 일이 없으리라 여겼다.


"저는 노예잖아요."

"..."

"어차피 귀속된 존재인데, 속에 있는 말 시원하게 뱉어도 되잖아요. 노예와 주인의 관계는 그런 거잖아요."

"난 노예를 데리고 다녀 본 적 없지만, 너같이 할 말 다 하는 노예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그게 제 성격인걸요. 받아들이세요. 관계를 맺는다는 건 그런 거니까."


엘프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이 어떤 힘든 삶을 살았음은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황제가 연루되어 그에 대한 기록을 지우라 했으니 더욱 끔찍한 일이 있었겠지.


"저기 주인님. 제가 주인님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건 진심이에요."


엘프는 소년의 손을 붙잡았다.

소년은 멈춰서고 엘프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겁은 먹고 있어. 무엇에? 그렇게 강한데?'


엘프는 소년을 껴안아 주었다.

소년의 머리가 엘프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말하자면 값싼 동정심 때문이었다.


안타까운 사연을 겪은 것도 느껴지고, 소년의 작은 몸이 가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없는, 계약으로 묶인 관계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정심을 느끼면 안 되는가?

엘프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놔라."

"저는 동생이 있었어요. 지금 어디에서 사는지, 괴로운지 행복한지 알지 못하지만요. 노예가 되면서 뿔뿔이 흩어졌거든요."

"..."

"이상한 말이지만, 저한테 당신은 제 동생처럼 느껴져요. 나보다 한참 어린 인간이라 그런가?"

"난 네 동생이 아니지만."


소년은 엘프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아까의 두려움에 짓뭉개져 있던 얼굴이 펴져 있었다.


"내가 알면 안 된다고 한 것은···. 그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제가 누설할까, 걱정하는 거예요? 저 입 무거워요. 지금까지 보셨잖아요. 아시겠나요?"

"아무튼 안된다."

"그 안된다는 건, 당신의 문제인가요? 아니면 황제의 문제인가요?"


엘프의 말에 소년은 할 말을 잃고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동하자."

"언젠간 말해주세요."

"언젠가?"


소년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엘프가 처음으로 본 소년의 미소는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때가 된다면."


- - - -


도시로 가는 길.

길게 늘어진 흰옷의 순례자들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전진했다.

기도를 올리는 그들은 다른 나이, 다른 성별, 다른 신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종인 것만큼은 같았다.

앞으로, 다시 한번 앞으로.

앞 사람의 등에 의지한 채로 계속해 나갔다.


"저기 또 순례자들이에요. 이 사막엔 순례자들이 많네요."

"전쟁이 끝났으니, 순례자들도 마음 놓고 이동하는 것이지."

"전쟁이 끝났더라. 그래 놓고 또 전쟁하겠죠."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소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엘프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만날 때부터 퉁명스러웠는데, 이제 와서라는 생각도 들었다.


"귀를 들키지 마라. 네 하얀 피부도 감추고."

"알고 있어요."


엘프는 순례자들은 신기한 듯 바라봤다.

엘프에게도 신앙이 있었지만, 인간처럼 몰두하는 경우는 없었기에 인간의 순례자들이 더없이 신기했다.


"저 순례자들은 멀리서 왔겠죠?"

"아마도."

"무엇을 찾아서 이 사막까지 오게 된 걸까요?"


사냥이 잘되면 사냥의 신에게 감사를 올리고, 농사가 잘되면 농사의 신에게 감사를 올린다.

엘프에게 신앙이란 자연에 대한 감사였다.

잘되는 일도, 잘되지 않은 것도, 삶과 주위의 환경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

저들처럼 순례하는 경우는 없었다.

감사를 올려야 할 대상이 숲 안에 넘쳐났으니까.


"구원을 찾아서겠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사막을 걸어 다니는 게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나도 순례자가 아니었기에 모른다. 다만.'

"다만?"

"저들은 자기 발로 순례를 왔다. 만족하기 전까지는 이 사막을 계속 걸어 다니겠지."

"흠. 그래요?"


소년은 피식 웃었다.


"넌 인간이 신기한가?"


엘프는 솔직히 답했다.


"네."

"짧은 수명으로 아등바등하는 것이 재밌나?"


소년은 비난하는 어투로 물었다.

엘프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제 세계는 두 곳밖에 없어요."

"두 곳?"

"하나는 제 고향 숲이죠. 엘프로서 살아가던 세계. 그곳은 시원한 바람이 불고 평화로웠어요. 이젠 돌아갈 수 없지만요."

"다른 하나는."

"노예로 붙잡히고 살아가던 노예 우리 속이요. 저는 장생종 노예잖아요. 엄청 비싼 노예잖아요. 그래서 계속 우리 속에 갇혀 지냈어요. 한 25년쯤 되겠죠."

"길군."


엘프는 자기 목에 있는 초커를 매만졌다.


"제 생각보단 길진 않았지만···. 답답했어요.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면 안 되니 나쁜 행동을 당하진 않았지만···. 누구도 저에게 접촉하지 않았어요. 외로웠죠."


엘프는 웃었다.


"재밌는 주인 만나서 천만다행이죠. 전 제가 모르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신기해요. 인간이 재밌냐 하면 좀 다른 것 같아요. 전 이 세상이 재밌거든요. 당신도 좋고요."


소년은 충격받은 듯 엘프를 바라봤다.


"내가 재밌다고?"

"주인님 정도면 재밌다고 생각해요. 다른 주인을 만나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요. 제가 좀 비싼 노예잖아요. 절 살 만큼 부유한 사람은 별로 없죠."

"내가 아는 누구도 나에게 재밌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 없다."

"불쾌하신가요?"


소년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이렇게 오래 고민할 일인가요?"

"불쾌하냐고 물으면 아니지만···. 생각해 보니 나보고 재밌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누구데요?"

"바드. 나보고 재밌는 꼬마라고 나중에 나를 주제로 영웅담을 써준다고 했지."


엘프는 눈을 찡그렸다.


"그 사람도 죽었나요? 죽었으면 좋겠는데."

"죽었을 거다···. 나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내가 듣기론 죽었다."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도 해주실 거죠?"

"기억해야 할 순서가 있다. 나중으로 미루지."

"또 그 소리."


두 사람은 순례자들을 따라 들어간 도시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정지."


경비병이 창을 두 사람에 앞을 가로막았다.

경비병은 소년을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잠깐 어린애잖아."

"..."

"부모님은 어딨니? 아 뒤에 후드를 뒤집어쓴 저 사람인가?"

"난 어린애가 아냐."

"수상한데. 그 검을 매고 여기까지 왔니? 아니. 하플링인가? 하플링이면 어려 보여도 성인이니까."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품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 경비병에게 보여주었다.

종이를 본 경비병의 얼굴이 떨렸다.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아. 이 도시에 내 지인이 있다. 들어갈 수 있나?"

"그것이···."

"왜? 안되나?"

"죄송합니다만 뒤에 후드를 쓰신 분을 확인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소년은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이유를 말해라."

"지금 도시에 반란 분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 영주님의 지시로 도시를 출입하는 인원을 자세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소년은 엘프에게 후드를 벗으라 손짓했다.

엘프가 후드를 벗자, 엘프의 투명한 피부가 태양 빛에 반사돼 눈이 부시도록 반짝였다.

엘프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헛숨을 들이키고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엘프?"

"내 노예다. 문제라도?"

"아닙니다. 주술을 거신 거겠죠?"

"걸었다."

"문제없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엘프는 다시 후드를 뒤집어쓰고 소년을 따라 도시의 안으로 들어갔다.

엘프는 귀를 쫑긋거리며 뒤에서 경비병들이 떠들어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 살면서 엘프는 처음 봤어. 진짜 예쁘네."

"야 쟤가 너희 할머니보다 나이 많을걸? 그리고 엘프 노예 살려면 네가 손자까지 돈을 모아도 못 사."

"내가 사겠다고 했나···. 근데 예쁘긴 진짜 이쁘다."

"그건 그렇고, 저 꼬마 말이야. 소문의 그 검귀겠지?"

"그 이야기는 여기서 안 하는 게 좋을걸. 저 꼬마가 눈이 돌아버리면 우리 모두 죽을걸."

"하긴···. 혼자서 성 하나를 박살 냈다고 하니까."

"난 3개라고 들었는데."


엘프는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정말 성 3개를 박살 냈어요?"


소년은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엘프를 바라봤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내가 검을 잘 쓰긴 하지만, 검으로 성을 박살을 내는 게 가능할 리 없잖나."

"하긴 그렇겠죠."

"성벽을 올라타서, 성벽 안에 숨어있던 적장을 베어낸 적은 몇 번 있다."

"..."


할 말을 잃은 엘프는 소년을 보며 생각했다.


'그게 성을 박살을 내는 것과 뭐가 다른 거지?'


아무튼 소년은 자신의 무용에 대해 자랑하고 싶어 하는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더 캐묻지 않았다.


.

.

.

.


도착한 도시는 엘프가 묶여있던 도시보다 화려함이 덜했지만 나름의 정갈한 맛을 풍기고 있었다.

적색 흙을 뭉쳐서 벽을 세우는 건물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이 도시엔 내 지인이 있다."

"주인님도 지인이란 게 있었군요."

"그 지인에게 3일 정도 묵게 해달라고 부탁할 거다."

"뭘 하던 사람이었는데요?"

"우리의 보급을 책임진 사람이었다."


길게 이어진 시장을 거닐던 소년은 한 포목점 앞에서 멈춰 섰다.


'이브자드 포목점.'


포목점에는 화려한 양탄자나, 곱게 염색된 천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예쁘네요. 화려하고···. 숲에서는 이런 것 못 봤는데."


엘프는 신기한 듯 천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대었다.


"에헤이!"


안에서 한 남자가 달려와 엘프의 손을 쳐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엘프는 당황한 듯 고개를 좌우로 돌렸고, 남자는 천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아가씨. 아무리 우리 가게 천이 예뻐도 막 만지면 못써. 살 거 아니면 만지면 안 된다고."

"오랜만이군. 이브자드."


이브자드는 눈을 크게 깜빡이며 소년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검귀? 네가 여길 어떻게···."

"약속대로 찾아왔어. 며칠 좀 재워주겠나."

"..."


이브자드는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얼굴을 감쌌다.


"널 다신 보지 못할 거로 생각했는데."

"내가 반갑진 않은가 보군."

"반갑냐 아니야 하면 반갑지만···.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고."


이브자드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위아래로 저치더니 가게 안에 들어오라 손짓했다.


"들어와. 차 정도라면 내줄 테니까."


- - - -


포목점의 안쪽,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

이브자드는 주전자에 차를 따라 두 사람에 내놓았다.

소년은 차를 한 모금 들이켠 뒤, 이브자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지금도 밀수하며 지내나?"

"미쳤어? 내가 그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지금 나는 평범한 포목점 주인일 뿐이라고. 이제 밀수 같은 거 안 해. 내가 자네들 때문에 전쟁터에서 죽을 뻔한 게 수십 번은 더 될거야. 겨우 죄를 청산하고 모은 돈으로 이 행복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이브자드는 손사래를 치며 떠들었지만, 소년은 그저 이브자드를 지긋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혼자군. 다른 인원들은 어디 가고?"

"살아남은 건 나뿐이야."

".,.."


소년은 덤덤하게 말했고 이브자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그렇게 됐군. 솔직히 말해서 다신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보니 또 옛날 생각이 나서 반갑긴 해. 시기가 안 좋지만."

"시기?"

"반란군 말이야. 요즘 반란군을 색출한다고 마구잡이로 헤집고 다닌다고."


소년은 지루하다는 듯 차만 들이켰다.


"그래서 옛정이 있지만 며칠 재워주는 건 힘들어. 낯선 사람이 내 가게를 들락날락하면 평판에 금이 간다고."

"난 지금 부탁하는 게 아니야. 이브자드."


소년은 칼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널 살려준 목숨값을 받으러 온 거지."

"아하.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그러면 나도 다 생각이 있어."


이브자드는 친절한 상인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소년을 노려보았다.


"난 자네를 알아. 자네도 나에 대해서 알고."

"..."

"난 성벽을 넘어서 적장의 목을 벨 수 있지만, 자네는 다르지. 자네는 정말 성벽을 깨부술 수 있으니까."

"하···. 진짜 여전히 고집불통이구먼."

"자네가 우리 형벌 군단에 오게 된 죄. 자네가 밀수하던 그 물건들. 화약과 대포, 막대한 양의 무기. 터무니없이 위험하고 쓸데없는 용도의 물건들이지. 사용하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고. 자넨 돈 벌 궁리를 하는 사람이 아냐."

"쯧."

"자넨 반란 분자에 위험한 사상범이지."


이브자드는 양손을 들고 항복했다.

너스레를 떨던 친절한 상인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엘프가 본능적으로 느꼈다.

소년과는 다른 형태로 이 이브자드란 남자는 위험하다고.


"원하는 게 뭐야. 검귀. 거래를 진행해 보자고."

"일단 며칠 재워줬으면 해. 그리고 구해다 줬으면 하는 물건이 있어."

"구해다 줬으면 하는 물건이 뭔데?"

"황궁으로 침투할 수 있는 루트가 적힌 지도."


이브자드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가 바라는 걸 말해볼까."

"뭘 원하지?"


이브자드는 번들번들한 눈을 굴려대며 미소를 지었다.


"혁명. 해볼 생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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