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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坤之亭(건곤지정)

소년 검귀는 엘프 노예를 구매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환등
작품등록일 :
2023.10.24 10:30
최근연재일 :
2023.11.0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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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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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DUMMY

4화


엘프는 오랜 시간을 살아간다.

대략 1000년에서 1200년.

금지된 방법을 사용한다면 더 긴 시간을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이 왜 금지되었는가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인간 늙은이들은 100년도 길다고 하는데, 1000년은 얼마나 아득한 세월인가?

엘프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긴 인생 동안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누군가는 마법의 극의를 깨우치기 위해서, 또 누군가는 세계의 모든 지식을 수집하기 위해서 등등.

엘프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천 년의 세월을 이용하여 온갖 것들에 통달하였고, 그 결과를 내었다.

지금 엘프의 손목에 있는 것은 그런 결과물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한 물건이었다.


"나는···."


엘프는 손목에 있는 황금빛 선을 매만졌다.

얇은 손톱이 손목을 파고들고 엘프의 하얀 피부에 붉은 핏방울이 알갱이 졌다.

살이 갈라지며 그 속에 있던 황금빛 선의 정체가 드러났다.

실선으로 착각될 만큼 얇은 칼날.

엘프는 손목에 있는 칼날을 확인하고는 안심하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칼을 소년에게 찌를 수 있다면 엘프는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깊게 찌를 필요도 없었다.

살짝 긁히기만 하더라도 칼날이 머금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


엘프는 칼날을 이용해 소년을 찌를 무수히 많은 방법을 떠올렸다.

아무리 소년이 뛰어난 검술을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소년도 잠은 잘 테고 그 순간은 무방비해질 것이다.

아니면 소년이 씻고 있는 동안, 옷 속에 칼날을 숨겨두는 방법도 있었다.

방법은 무궁무진했으나, 엘프는 금세 단념하였다.


"그러고 싶지 않아. 왜일까···. 벌써 정이라도 들은 걸까? 아니면 주술 때문에?"


엘프는 손목을 움켜잡고 고개를 숙였다.


"아직···. 아직은 아니야."


찰팍.

누군가 물속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엘프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소년이 옷을 홀딱 벗은 채로 오아시스로 들어오고 있었다.


"ᄌ··· 지금 무슨!"


소년은 그저 말없이 물살을 헤치며 엘프의 곁으로 다가갔다.

엘프는 시뻘게진 얼굴로 몸을 가렸다.

엘프의 메마른 팔로는 가녀린 몸을 가리기에 충분하지 않았지만.


"왜 옷을 벗고 오는 거예요!"


엘프는 수치심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어려도 보여도 남자인 거야? 괴물처럼 날 유린하고···. 그렇고 그런 행동을 하는 거야? 그런 거야?'


엘프는 그런 식의 경험이 없었기에 겁이 났다.

남자들은, 특히 인간 남자들은 짐승과 같다고 들은 적 있었기에 엘프의 머릿속은 '위험'이라는 신호로 가득하였다.


'칼날을 사용해야 하나? 만약 날 건들려고 하면···.'


엘프는 의지를 다지고 소년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

소년이 그런 나쁜 인간이라면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 셈이었다.


"씻으려면 옷을 벗어야 하지 않나?"


지극히 당연한 말에 엘프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엘프는 물속으로 몸을 숨기고 소년에게 외쳤다.


"그건 그렇지만! 상식이지만···! 왜 이런 부분에서 상식적인 거예요?"

"상식적?"

"남자랑 여자가 같이 씻는 건··· 부부가 아니고서야···."


엘프의 말에 소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엘프는 자신의 위치를 자각했다.

자신은 노예, 소년은 주인이었다.

노예는 단지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으니, 남자와 여자 같은 묶음으로 묶이지 않았다.


"더러우니 씻으라 한 건 네가 한 말 아닌가."

"네?"

"갈 길이 멀다. 어서 씻고 휴식을 취해라. 텐트는 이미 쳐놨으니, 그곳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면 된다."


소년의 단답형에 엘프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애초에 소년에겐 남자와 여자와 같은 개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엘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소년의 몸을 확인했다.

소년의 몸에 아로새겨진 빼곡한 흉터들.

베어졌다가 아물어진 상처, 칼날이 몸을 뚫고 들어갔던 상처, 채찍에 살이 뭉개진 흉터까지 난도질 된 흉터가 서로 겹쳐 있었다.


"그 흉터···."

"흉터?"

"아프지 않아요?"


흉터를 본 엘프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소년에게 답을 갈구한 건 아니었고, 개인적인 감상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죽지 않았으니 됐다. 아직 살아있으니까."


소년의 말은 덤덤했고, 엘프는 괜스레 소년에게 화가 났다.


"하루 이틀 만에 생긴 흉터가 아닌데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으면···."


엘프의 질문에 소년은 답하지 않고 물속에 몸을 집어넣었다.

오아시스의 물은 꽤 차가웠지만, 소년의 얼굴엔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피 냄새가 나는군."


엘프는 소년에게서 몸을 돌리고 손목을 움켜잡았다.


"마적들의 화살에 다친 것인가?"

"네."


엘프는 거짓말을 하는 자신이 뻔뻔하다고 생각되었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이라니,

노예가 되기 전 어떤 가책도 없이 쉽게 거짓말을 한 적 없었다.


"크게 다친 건 아니니 금방 나을 거예요."


한번 시작한 거짓말은 그 크기를 불려 나간다.

엘프의 입안이 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짐 안에, 상처에 바르는 약이 있을 거다. 그걸 사용해라."

"..."

"넌 다치면 안 된다. 계속···. 날···. 우리를 계속 기억해 줘야 하니까."

"네."


엘프는 소년이 기억하라고 말할 때 기계적이고 반사적인 태도가 보임을 깨달았다. 소년은 입으로만 기억해달라 할 뿐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기억해달라고 말하는 것일까?

소년의 본심은 대체 무엇인가?


"들어갈 거예요."

"..."

"눈 감아 주세요."

"그러지."


소년은 눈을 감고 오아시스에 몸을 뉘었다.

달빛을 받으며 천천히 물을 빠져나오는 엘프.

소년의 앞에서 엘프는 멈춰 섰다.


"..."


엘프는 자기 손목을 바라봤다.

이미 아물어 버린 손목엔 처음처럼 황금빛 실금만이 남아있었다.


"만약 제가 당신이 말한 사람을 다 기억하면 전 어떻게 되는 건가요?"


엘프는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은 엘프의 부탁대로 여전히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모르겠어. 그 이후까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엘프는 소년의 뺨을 건드렸다.

소년은 움직이지도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피곤함에 잠에 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엘프는 소년 흉터를 잠시 어루만졌다.

소년은 간지러운 듯 몸을 움찔거렸다.


"고마워요. 날 지켜줘서."

"..."


엘프는 소년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고 천천히 오아시스의 밖으로 빠져나갔다.


- - - -


다음날이 되고 두 사람은 여전히 사막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뜨거운 태양과 이따금 불어오는 모래바람은 엘프를 진절머리 나게 했다.


엘프는 괴로울 때마다 자기 고향 숲이 떠올렸다.

숲에는 복잡하지만 흐름과 질서가 있었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중요했다.

그 흐름을 잘 탈 수만 있다면 숲의 풍요와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사막은 어떠한가?

사막은 단순하고 매몰찼다.

태양은 믿을 수 없이 뜨거웠고, 몸을 가릴 그늘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막은 평등하게 메말랐다.


"좀 쉬다가요."

"아니···. 더 가야 한다. 시간이 지체됐어."


소년은 엘프의 투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년도 엘프에 대해서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다.


"태양을 바라보지 말라. 발만 보고 걷지만, 몸은 태양을 향해야 한다. 빛이 닿는 면적을 줄이는 거다."

"모래바람은 시야와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만들지. 이럴 땐 나침반의 방향에 맞추어 걸어야 한다."


소년은 사막을 걷는 것에 능숙했고, 그 두 가지에 대처하는 법도 잘 알고 있었다.

엘프는 그때마다 볼멘소리를 내었지만, 소년은 그런 엘프는 탓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쉬면 좋을 텐데."

"사막을 빨리 벗어나고 싶지 않나?"

"그건 그렇죠."

"이틀만 더 가면 도시가 있다. 그곳에서 쉬었다가 이동한다."


걷는 동안 엘프는 소년의 죽은 동료, 2명 정도를 더 듣게 되었다.


테일러와 애쉬.

테일러는 밀주를 만들던 술꾼이었고, 애쉬는 제빵사였다.

두 사람은 밀이 보급될 때마다 자기가 먼저 가져가겠다며 으르렁대었다.

서로 앙숙이었으나, 이따금 죽은 전우가 있을 땐 애쉬는 테일러를 찾아가 같이 밀주는 나눠마시곤 했다.

애쉬는 국지전에서 테일러를 지키다 죽었고 테일러는 타밀의 죽음에 슬퍼하였다.

테일러는 밀주를 만드는 것을 고발당해 처형당했다.

그 고발자가 누구였는지 소년은 알지 못했지만, 소문으로는 테일러가 일부러 상관 앞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이야기가 나돌아 다녔다.


소년은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감정을 실어 말했다.


"만약 소문대로 타일러가 일부러 처형당했다는 것인데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할 리 없어."

"왜 그렇게 생각해요?"

"동료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가 죽었다. 근데 일부러 군법에 걸려서 죽는다니. 그러면 동료의 죽음은 개죽음이 되는 것이지. 그건 죽은 동료의 모욕이야."


무미건조한 표정을 짓던 소년이 처음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엘프는 소년이 무엇에 화를 내는 것인지 생각했다.

동료의 개죽음? 아니면 그런 소문을 퍼트리던 다른 사람들?


엘프는 소년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을지 몰라요."

"용기?"


엘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 그 사람의 빈 자리를 느끼니까요. 그 빈 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죠. 술 같은 것으로 채워보려 해도, 그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공허함을 느꼈겠죠."

"..."

"그러다 보면 결국···. 그 사람이 없는 내일을 살아갈 용기가 사라지죠. 그 공백이 채워지지 않으니까요."


쉬지 않고 걷던 소년이 멈췄다.


"말도 안 된다. 그럴 리 없어."


소년은 엘프를 향해 화내고 있었다.

명백히 분노하고 있었지만, 마적 떼를 상대할 때와 같은 흉흉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충격을 받아 혼란스러워하는 듯했다.


"두 사람은 매일 같이 싸웠다. 서로를 구하는 것은 동료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상대방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해서 죽었다니."

"매일 같이 싸웠다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봤나요?"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소중하지 않다면 그렇게 자주 싸우지 않아요. 상대방에게 자신의 기대를 투영하는 거니까요. 애정이 없으면 서로 싸우지 않아요. 소중하지 않다면 왜 목숨을 걸었겠어요."

"모순이다."


소년은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일부러 엘프를 등지기 위함이기라도 한 듯.

소년은 마구잡이로 말을 뱉어냈다.


"넌 그 둘을 만난 적 없어. 내가 그 둘에 대해서 더 잘 안다. 그들의 마지막도···. 내가 직접 봤으니까. 그 둘은 병사였다.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전우가 서로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주인님의 말씀대로라면···."

"넌 오늘 그 둘에 대해서 기억해라. 오늘은 그 두 사람의 이야기로 끝이다."


소년의 걸음걸이는 훨씬 더 빨라졌다.

규칙적이었던 소년의 걷는 리듬이 어긋나있었다.


'설마 삐진 거야?'


엘프는 소년이 이상한 부분에서 어린아이 같다고 여겼다.

한편으로 병사로서의 가치관이 소년에게 있어 역린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만 물어볼게요."

"..."

"테일러가 죽을 때, 울고 있었나요? 아니면 웃고 있었나요?"


소년의 걸음이 멈췄다.


"중요한 게 아니다."

"저에겐 중요해요."


엘프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은 천천히 뒷걸음쳤지만, 엘프의 손에 붙잡혔다.


"제가 그들을 오랫동안 기억하려면 구체적이어야 해요. 일상적이고 쉬운 것은 쉽게 잊히지만, 구체적이고 강렬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아요."

"..."

"전 당신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부탁하는 거예요. 주인님."


엘프는 소년을 설득했다.

이것이 소년의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라 할지라도, 소년에 대해 더 이해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왜 소년이 그렇게 자신을 감추려 하는 것인지도 알고 싶었다.


"웃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아마도?"

"그 처형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소년은 전투를 치렀을 때보다 기진맥진한 채로 엘프의 곁에서 벗어났다.

엘프는 곧장 소년의 곁에 다가가 소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다가 쓰러지겠어요."

"이런 걸로 쓰러지지 않아."


소년은 엘프를 손길을 뿌리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말해라."

"왜 저에게 기억하라고 하는 거예요?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장명종 노예를 살 돈으로 기록해 줄 사람을 구하는 게 훨씬 싸게 먹히지 않아요? 이런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그 사람들과 당신을 기억한다는 게 이상해요."

"...."


소년은 대답하기 싫은 듯 고개를 저었다가 이내 엘프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기록되어선 안 된다."


소년은 담담한 어투로 말하려 했으나 들끓는 분노가 튀어나왔다.


"황제가 우리에 대한 기록을 모두 지우라 명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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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26 ka****
    작성일
    23.11.06 21:46
    No. 1

    엘프는 점점 자신을 오픈하고 있는데
    소년은 점점 수수께끼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군요.
    재밌게 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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