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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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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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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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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2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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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6)

DUMMY

138화


이세계에서의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릴리 아덤스 양의 표정이 뭔가 복잡미묘해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품 안에서 깨어나, 가슴속 깊숙이에서 치밀어 오르는 벅찬 행복감에 젖어 들던 그녀다.

하지만 이내 상태창에 떠 있는 문장들을 떠올리고는 낯가죽이 점점 일그러져 갔다.


그녀가 브리갠트에서 부활한 게, 이곳 시간으로, 작년 유월 사 일이다.

그새 칠 개월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는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 와야 했다.

일단 이곳으로 넘어 오자마자, 새로 얻은 친족들에게 근친 살인마로 몰려서, 밤낮으로 추격을 당해야만 했다.

그녀가 골라 온 능력 때문에 낮에는 거동도 힘들어 꼼짝없이 웅크리고 있어야 했고, 밤에는 부지런히 추격자들을 사냥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새로운 친족들도 사정이, 끔찍할 정도로, 나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추격하는 데 제대로 된 전력을 투입할 여유가 없는 상태이다.

가혹한 제약이 붙은 권능을, 철딱서니 없는 이유로, 선택한 그녀가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다.


그녀가 현재 사용 중인 몸뚱어리의 원주인은 매리언 로먼트라는 이십 대 초반의 앳돼 보이는 여인이다.

이 매리언이라는 여인에게는 저승도 인정한 두 명의 원수가 존재했는데, 이 둘이 바로 매리언을 유인해서 처참하게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하려 했던 연놈이다.


이 두 연놈 중 계집은 세실리라는 이름을 가진 년인데, 매리언의 사촌 언니이다.

그리고 사내놈은 루커스 뭐 어쩌고 하는 종자인데, 그녀들을 호위하라고 붙여 둔 일종의 경호원 같은 놈이다.

이것들이 작당을 하고서 매리언을 죽인 것이다.


이 쓰레기 같은 연놈은, 어린 매리언의 복부와 심장 주변을 난도질해 놓고는,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 가는 그녀의 옆에서 질펀하게 정사를 벌이기까지 했다.

잠시 역겨운 인고의 시간이 지난 후, 매리언은 과다 출혈로 끝내 숨을 거두고야 말았다.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피 묻은 단검을 들고 부리나케 내빼는 미친년과 오른쪽 늑골 부위를 거머쥔 채 비틀거리며 뒤쫓아 가는 머저리의, 아찔한 뒤태였다.

그러고 보니 미친 세실리 년이, 매리언의 가슴에 칼을 꽂으면서, 우렁차게 외친 말이 있었다.


“내 치부를 본 사람은 그 누구라도! 절대 살려 둘 수 없어! 그게 설령 너일지라도!”


언행일치의 참모습을 눈에 담으며, 매리언은 자신의 피투성이 육신을 캘거리 출신의 릴리 양에게 넘겨 버렸다.


릴리 아덤스 양이 초딩이었던 시절,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시리즈가 있었다.

흡혈귀와 늑대 인간 따위가 나와서 연애하는 영화였는데, 수많은 십 대 여성들의 중이병을 자극하던 대작이었다.

하지운을 포함한 대부분의 남성들은 질색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천 년생인 릴리 양은 초딩 시절 내내 이 시리즈에 미쳐 있었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음에도, 어린 시절 품었던 로망은 어디 가지 않고 고스란히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부활을 대가로 개최되는 살인 게임에, 고유 권능이랍시고, ‘흡혈’을 골라 온 것을 보면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숲의 초입에서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알몸의 여인 하나가 단검을 꼬나 쥐고 걸어 나왔다.

그녀는 엄청난 대혈투가 있었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듯, 연신 핏방울을 뿌려 대며 좌우로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 큰일을 치렀다는 듯, 입가엔 뿌듯한 미소가 한가득했다.


바로 직전에 남녀 한 쌍을 살해한, 진정한 근친 살인마, 세실리 양이 급작스레 멈춰 섰다.

초여름의 날씨에, 얼음덩어리라도 된 것처럼, 굳어 있던 그녀는 잠시 후 전신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어 댔다.

사타구니에 고압 분사기라도 달아 놓은 것처럼 뜨거운 물을 힘차게 뿜어 대는데, 금세 그녀의 하반신을 덮고 있던 핏물이 깨끗이 씻겨 나갔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꼭 쥐고 있던, 단검을 놓친 세실리 양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맨땅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럼에도 전혀 아픈 줄도 모르겠다는 듯, 열과 성을 다해 흙바닥을 맨발로 밀어 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녀의 눈앞에 방금 제 손으로 난도질해 죽인 사촌 동생 매리언이 멀뚱거리며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와도 다리가 후들거릴 판인데, 난데없이 되살아난 사촌 동생은 입을 쩍 벌리고 손가락까지 쫙 편 상태를 꿋꿋이 유지 중이었다.


매리언의 입 안에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길고 날카로운 이빨이 한가득했는데, 꼭 여우머리 괴물과 재상봉하는 기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공포 분위기 조성에는 모자람이 없어 보였는데, 심지어 손톱도 언제 깎았는지 길이가 족히 이십 센티는 되어 보였다.


눈물, 콧물, 침, 오줌을 쉴 새 없이 흘려 대며 지체 높은 대영주의 맏딸 세실리 로먼트 양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이런 상황에선, 그런 애절한 퍼포먼스조차도 정해진 결말을 바꿀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릴리 양이 괘씸한 미친년의 목에 이빨을 박아 놓고 참교육을 베풀기 시작했다.

한창 미친 세실리 양의 피를 빨아 먹고 있던 도중에,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창 한 자루가 그녀의 옆통수를 뚫고 지나갔다.

검술 실력만 놓고 보면 북부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역전의 용사 유스터스 로먼트 공이 달리는 말 위에서 던진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분노한 아비가 날린 공격은 악귀가 된 질녀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상대는 밤만 되면 생기발랄해지는 성골 잡귀 흡혈귀이기 때문이다.


피 안개로 변해서 투창 공격을 흘려 낸 릴리 양이, 본모습으로 돌아온 후, 새로운 백부를 향해 억울하다는 듯 눈물을 글썽거리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이내 답이 없는 상황에 절망한 그녀는, 해명을 포기해 버리고, 어두운 밤하늘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날부터 그녀는 북부의 숲속을 미친 듯이 헤매야 했다.

열한 명의 사내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죽자 사자 뒤쫓아 왔기 때문이다.

어이가 전혀 없게도 그 열한 명 중에, 세실리에게 뒤통수 맞고 뒈진, 루커스라는 상등신 놈이 섞여 있었다.


상식적인 사고를 가진 릴리 양은 정말 미치도록 황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루커스 놈의 원수는, 자신이 아니라, 말라비틀어진 상태로 뒈져 버린 세실리 년이다.

오히려 자신이 대신 원수를 갚아 준 셈이 되는 것이다.


사실 누가 봐도 죽여 버리겠다고 난리를 치면서 쫓아다녀야 할 쪽은 릴리 자신이었다.

매리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두 연놈 중의 하나가 루커스 놈이었다.

그런데 그놈의 몸을 차지한 부활자로 보이는 놈이, 미친년 널뛰듯이 발광을 하면서, 자신을 쫓아오는 괴상망측한 상황이 펼쳐졌던 것이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릴리 양이 뭘 몰라서 했던 생각이다.

루커스 호소인도 그럴 만한 눈물겨운 사정이 있었다.


부활하자마자 세실리를 잡아 죽이려고, 숲 밖으로 뛰쳐나왔던 루커스 호소인이다.

그런 그를 반겨 주고 있던 건, 흉신악살의 면상을 한 로먼트 공과 살기를 좔좔 흘리고 있는 십여 명의 호위대 전사들이었다.


그대로 바닥에 몸을 던진 루커스 호소인이 쥐똥만 한 마력을 쥐어짜 신사분들에게 애처로운 ‘흙장난’을 구경시켜 드렸다.

물론 갓 지어낸 개 같은 거짓말을 수북이 담아내면서 말이다.

그 덕에 목이 잘리지 않고 흡혈귀 추살대의 리더 역할을 맡게 된 것이었다.

출발하는 그의 등 뒤로 로먼트 공의 따뜻한 격려가 뒤따랐음은 당연지사였다.


“내 질녀의 목을 꼭 가져 와라. 실패하면 네 피붙이들은 전부 돼지머리의 먹이가 될 것이다. 이번에는 잊지 마라, 네 처가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네 아이가 어미 배 속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돼지머리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걸 원치 않는다면! 죽을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알아들었느냐? 이 버러지 같은 놈아!”


루커스 에글링엄 호소인은 정말로 죽을힘을 다했다.

그의 새 주군은 솔직담백한 인물이다.

협박을 할 때, 가끔 축소해서 하는 경향은 있어도, 부풀려서 한 적은 평생 단 한 번도 없는 위인이다.

거기다 새 주군의 살기 넘치는 두 눈을 보았을 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개 같은 거짓부렁도 전혀 통하지 않은 눈치였다.


세실리의 하녀가 죽을 각오를 하고 백작 부인에게 세실리와 루커스의 지저분한 관계를 고해 바쳤으며, 그 바람에 눈알이 돌아간 백작이 두 연놈을 잡도리하려고 쫓아 나온 길이라는 걸 루커스 호소인이 알 턱이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는 보름의 시간 동안 흡혈 능력자를 상대로 최선을 다해 지랄 발광을 했다.

둘 다 허접한 몸뚱어리로, 분에 넘치는 능력을 제대로 소화도 못하면서, 저희들끼리만 장엄하고 화려한 액션 신을 연출했던 것이다.


고작 오 일 만에, 루커스를 제외한, 나머지 십 인의 추적자들이 모조리 다 릴리 양의 이빨에 유명을 달리했다.

결국 둘만 남은 철천지원수들은 적막한 숲속에서, 무려 열흘 동안이나, 그들만의 피 튀기는 라이벌전을 반복해 댔다.


원래 좆밥 싸움이 재밌는 법인데, 이 둘을 지켜보는 이가 인간 중에는 없었다는 게 진실로 통탄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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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마왕의 길 (17) 23.11.25 53 1 10쪽
115 [수정] 마왕의 길 (16) 23.11.23 54 2 10쪽
114 마왕의 길 (15) 23.11.21 50 1 10쪽
113 마왕의 길 (14) 23.11.19 57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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