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새글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12 04:29
연재수 :
257 회
조회수 :
27,707
추천수 :
567
글자수 :
1,096,876

작성
23.12.05 21:18
조회
51
추천
1
글자
10쪽

신념을 가진 미친놈 (4)

DUMMY

120화


“저승이 죽어서 할 일 없는 백수건달들의 놀이터가 아니잖아. ‘그분’의 의지를 받들어 행하는 심부름꾼들의 일터란 말야. 그러면 거기서 할당해 준 이 임무라는 것들도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거야. ‘씨발, 존나 귀찮은데 지구에 돌아가야 하니 억지로 해 준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대충해도 될까?”

“......”

“어떤 방식으로 하든 그거야 각자 알아서 할 일이지만, 어찌 되었든 최대한 성의 있게 해야겠지. 과정도 어쩌면 평가 항목에 해당될 수도 있는 거니까. 아무 평가도 없이 방관할 거면, 임무는 뭐 하러 줘. 그냥 알아서 굴러먹으라고 하지.”

“아아...”

“그리고 방식도 정확하게 내 본성에 맞게 해야겠지. 너희 병신들이 지껄이는 것처럼 천편일률적으로, 사람답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그게 무슨...”

“야, 이 병신아! 개나 소나 사람답게 임무를 수행할 거면, 애초에 사람다운 놈들만 데려왔어야지. 나 같은 소시오패스에다가 강간하다가 대가리 깨져서 죽은 놈, 반군 출신 암살자 그리고 변두리에서 약장사하다가 총 맞아 죽은 놈. 이런 놈들은 왜 데려온 거야? 이런 놈들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사람 되겠냐? 너희 어린 병신들은 사람이 그렇게 쉽게 되는 줄 아나 봐? 고작 한 번 죽는 걸로 사람의 본성이 바뀌지는 않아. 내가 그 증거잖아.”


‘물론 사실 난 낙하산이지만...’


“......”

“내가 귀찮게 너희에게 이런 얘기를 왜 하고 있는 거 같냐?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너희 같은 병신들이 설득한다고, 내가 개과천선할 종자로 보이냐? 그만 눈깔에 힘 빼고, 너희의 버러지 같은 새 피붙이들은 헌신짝처럼 버려. 그래야 원활하고 화기애애한 심문 시간을 가지지.”

“허윽... 그럼 제발 아이들만이라도...”

“웃기려고 한 소리냐? 너희의 몸뚱어리 제공자들이 뭘 하다가 죽었는지 그새 잊었어? 그리고 원래 내 머릿속엔 남녀노소 같은 건 없어. 난 모든 인간을 똑같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지. 나에게 인간은 딱 두 종류야. 죽여야 할 개체와 굳이 죽일 필요까진 없는 개체. 내 판단 기준엔 나이도, 성별도, 피부색도 없어. 난 진정으로 이상적인 평등주의자야.”

“미친...”

“누구야? 누가 또 혀 뽑히고 싶어?”

“......”

“어이, 프로 게이. 너잖아. 뭐야? 너 우냐? 그렇게 무서우면 입을 꽉 다물고 있지, 뭐 하러 혓바닥을 함부로 놀려?”

“닥쳐! 이 악마야! 난 게이가 아냐! 내가 게이를 혐오한다는 게 아니라! 원래 난 날 때부터 게이가 아니었다고! 단 한 번도 게이였던 적이 없단 말이야! 그리고 내가 언제 네 몸을 더듬었어? 난 네 그림자를 잡으려고 한 것뿐이야! 네가 너무 쉽게 빠져나가 버려서 그렇게... 된 거 아냐!”

“어이, 청년. 게이는 부끄러운 게 아냐. 여기 두 병신들도 요즘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어.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닥쳐라! 이 마귀야! 내가 언제!”


시끄러운 소마법사의 주둥이에도 쇳덩어리를 쑤셔 박아 줬다.

두 죄수의 주둥아리에 재갈을 물린 김에, 그들의 새 남친들도 소환했다.


금세 오붓한 광경이 펼쳐져 버리고 말았다.

흙바닥에 쑤셔 박혀 있던 청춘 남녀들이, 고개를 처박은 채, 이를 꽉 깨물어 버렸다.

도저히 맨송맨송한 정신으로는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는, 목불인견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흑. 늙은 벌레가 끝까지 사람 취급을 받고 싶어 하네. 벌레야, 사람대접을 받고 싶으면,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는 거야. 아가리만 정신 사납게 벌렁거리는 게 아니라. 너나 나나 사람답게 사고하는 게 안 되는데, 왜 너만 사람대접을 받으려고 해? 행동은 구더기같이 하면서. 너도 포기해. 기껏 늙은 암캐로 만들어 놨더니, 애들 앞이라고 다시 멋을 내려고 하네. 혼이 덜 났어, 너는. 서방들한테 따끔한 훈육을 받으면서, 통렬한 반성을 해 보도록 해. 넌 분명히 사람이 아니야. 내가 몇 번을 말해 줘야 해? 넌 귀여운 늙은 암캐야. 네 본분에 걸맞은 행동이 뭔지 차분히 관조하는 시간을 가져. 네가 바뀌지 않으면, 이 질책의 시간은 영원히 끝나지 않아. 널 샛서방들처럼 만들어서, 천 년 동안 이 자세로 끌고 다닐 수도 있어. 뭐 그럼, 경매는 포기해야겠지만. 따로 북부의 신사들을 모아서 거하게 네 단독 감상회를 열어 드려야겠지, 사죄의 뜻으로. 씨발... 큰돈 벌기는 글렀네.”

“우읍으으으흐읍!”

“그렇게 좋아? 다 늙은것이 좋아서 펄떡거리는 거 봐라. 얘들아, 더 힘을 내. 요 귀여운 것이 좋아 죽는 게 안 보여? 더 기쁘게 해 줘야지. 소머리 전사다운 기개를 보여 줘!”

“미, 미쳤어... 왜 저런 놈이 저런 몸을 차지한 거야? 우리나 저놈이나 같은 시기에 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날 수가 있냐고? 말도 안 돼! 불공평해! 저놈은 뭐야? 저승에서 무슨 편애라도 하는 거야? 얼마나 힘들었는데! 레벨 올리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저 악마는 저런 쓰레기 같은 인성을 가진 주제에! 검술에 마법까지! 모든 재능을 다 가진 몸을 받았다고! 너 정체가 뭐야? 뭔데 너 혼자 잘난 척이냐고?”


그 순간 입꼬리가 양 귀에 걸린 하가 놈이 부리나케, 스위스 출신의, 미셸 군에게 달려갔다.

머리통만 꺼내 놓고 있는 청년들에게 흙먼지를 잔뜩 먹이고선, 경박스러운 하가 놈의 자기 자랑이 시작되었다.


“궁금해? 알려 줄까? 너흰 내가 얼마나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는지 모를 거야! 물 마법을 골라 온 저 밥통 같은 계집애도 있고, 뭐 이것저것 주워들은 것도 있으니 너희도 대충은 알 거 아냐. 마법이란 게 사실 별 거 없어. 주변에 떠다니는 여러 성질의 원소를 느낄 수 있는 감지력. 그리고 그 느낀 원소를 움직이고, 형태를 만들어 내는 의지력. 이 두 가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마법이야.”

“......”

“저 늙은 걸레가 대마법사라고 설칠 수 있었던 것도, 남들보다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 덕분이었지. 그 외에 다른 특별한 건 없어. 저 병신의 의지력 수준은 똥이잖아. 팔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저 병신이 만든 마법이 뭐가 있어? ‘불의 창’인지 불의 좆인지 뭔지 하는 거 달랑 하나 있잖아. 그걸 만드는데 십오 년이 걸렸다나. 한심한 병신 새끼.”

“......”

“그런데 저 한심한 병신한테 로저 같은 놈이 털렸단 말야. 마법이란 게 그 정도로 위력적이라는 거지. 그러니 로저의 기억을 물려받은 내가 얼마나 불안했겠어? 마법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똑같이 마법을 익히는 것밖에 없어 보이더라고. 그래서 도마뱀들을 작살낸 후, 팔을 재생하자마자, 여우 소굴로 들어가서 족장 놈을 잡아 죽였지.”

“허억!”

“여우머리... 족장?”

“아니, 그런데! 여우 심장을 통째로 처먹었는데도, 그다지 바뀌는 게 없더라니까. 열받잖아. 그래서 여우 피도 먹은 김에, 감지력을 억지로 높여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로저가 난놈이긴 해도, 마법에 대한 감지력은 형편없는 놈이었거든.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마법 원소에 대한 특별한 무언가를 느껴 본 적이 없더라니까. 기억을 샅샅이 뒤져 봐도 말야. 그래서 좀 거친 방법을 써 봤지. 구덩이를 파고는 그 안에 장작을 가득 채워 넣었어.”

“서, 설마...”

“미, 미친...”

“그러고는 불을 피우고, 그 안에서 한 두어 시간 정도 뒹굴었어. 울고불고 비명도 지르고, 똥오줌도 싸 갈기고 별 지랄을 다 했지. 너무 아프더라고. 그러다가 불덩이가 손에 잡히는 느낌이 들기에 확 잡아챘지. 그러고는 기절했는데, 깨어나 보니 글쎄, 내가 마법사가 되어 있는 거야. 어때, 너희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지 않아? 무려 마법사야! 두어 시간만 아프면 돼!”


갑작스레 찾아온 적막에 소머리 좀비들의 들썩거리는 소리만 노상에 가득했다.

모두의 얼굴에 핏기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눈에 총기마저 덩달아 사라져 버렸다.

냉정한 전직 특수 요원 오메르마저도 넋이 나간 듯, 썩은 동태눈을 한 채, 멍하니 흙바닥만 바라보았다.


이십일 세기 현대인들 중에 소시오패스라는 용어 자체를 못 들어 본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들도 대충은 알고 있다.

소시오패스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지를 말이다.


눈앞에 있는 강대한 미친놈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자신의 몸에 불을 싸질렀다.

귀하디귀한 제 몸에도 불을 지르는 놈이, 귀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원수 놈의 몸에는 무슨 짓을 벌일지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좀비들에게 범해지고 있는, 쇳덩이를 문 채 한참 오열 중인, 두 백작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릴 거라는 경고음이었던 것 같다.


다 포기해 버렸다.

자신도, 새로 얻은 가족들도.

이곳은 자신들 같은 평범하고 적당히 선량한 이들이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엔간히 미치지 않으면, 명함도 내밀 수가 없는 곳이었다.

어떤 놈이랑 경쟁 중이었는지 이제야 깨달아 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어떠한 저항도 없는 순조로운 질문 시간이 한동안 이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줄 알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9 겨울 여행 (6) 24.01.12 36 1 10쪽
138 겨울 여행 (5) 24.01.11 38 1 9쪽
137 겨울 여행 (4) 24.01.09 39 1 9쪽
136 겨울 여행 (3) 24.01.07 44 1 9쪽
135 겨울 여행 (2) 24.01.04 44 1 9쪽
134 겨울 여행 (1) 24.01.02 45 1 10쪽
133 신념을 가진 미친놈 (16) 24.01.01 38 1 10쪽
132 신념을 가진 미친놈 (15) 23.12.29 38 1 9쪽
131 신념을 가진 미친놈 (14) 23.12.27 40 1 9쪽
130 신념을 가진 미친놈 (13) 23.12.25 42 1 9쪽
129 신념을 가진 미친놈 (12) 23.12.22 45 1 10쪽
128 신념을 가진 미친놈 (11) 23.12.20 43 1 9쪽
127 신념을 가진 미친놈 (10) 23.12.18 46 1 9쪽
126 신념을 가진 미친놈 (9) 23.12.16 48 1 9쪽
125 신념을 가진 미친놈 (8) 23.12.14 50 1 9쪽
124 신념을 가진 미친놈 (7) 23.12.11 46 1 9쪽
123 신념을 가진 미친놈 (6) 23.12.09 46 1 9쪽
122 신념을 가진 미친놈 (5) 23.12.07 49 1 9쪽
» 신념을 가진 미친놈 (4) 23.12.05 52 1 10쪽
120 신념을 가진 미친놈 (3) 23.12.03 53 1 9쪽
119 신념을 가진 미친놈 (2) 23.12.01 48 1 10쪽
118 신념을 가진 미친놈 (1) 23.11.30 61 2 11쪽
117 마왕의 길 (18) 23.11.28 57 1 10쪽
116 마왕의 길 (17) 23.11.25 52 1 10쪽
115 [수정] 마왕의 길 (16) 23.11.23 52 2 10쪽
114 마왕의 길 (15) 23.11.21 49 1 10쪽
113 마왕의 길 (14) 23.11.19 55 2 10쪽
112 마왕의 길 (13) 23.11.16 56 1 10쪽
111 마왕의 길 (12) 23.11.15 62 1 10쪽
110 마왕의 길 (11) 23.11.12 63 2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