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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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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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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6,876

작성
23.12.0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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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신념을 가진 미친놈 (5)

DUMMY

121화


“야! 내려올 필요도 없고, 그냥 머리통만 내밀라고! 네가 그렇게 엎드려 있으면, 옆에 있는 네 피붙이들이랑 졸개들까지 다 뒈진다니까! 정말 부끄러운 얘기지만, 내가 아직 이 정도 거리에서 너만 콕 집어서 죽일 실력이 안 돼! 미안해! 한 번만 일어서 주면, 금세 죽이고 갈게! 너 하나만 죽이고 그냥 간다니까!”


현재, 하지운이 고래고래 고성을 지르고 있는, 이곳은 앨커스터주 스코스비 성의 도개교 앞 공터이다.

성벽의 높이가 있다 보니, 이십 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서, 고개를 쳐들고 고함을 들이지를 수밖에 없었다.


‘좆만 한 집구석에 갖출 건 다 갖췄네. 확 다 부숴 버릴까 보다.’


클리퍼드주에서 열흘을 더 보낸 후 앨커스터주로 넘어왔다.

콘체스터주에 있는 놈들은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지만, 설마설마하던 앨커스터주의 영주들은 똥을 지리며 자지러져 버렸다.


거버스 틸리얼을 토막 쳐서 팔아먹을 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던 터라, 앨커스터주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거버스의 집구석을 박살 내고 북부로 진출하려면, 콘체스터주보다는 앨커스터주를 통과하는 게 훨씬 더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클리퍼드주 이북에 접해 있는 두 주의 영주들은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옆에 있는 주부터 먼저 박살이 나기를 말이다.

비록 술독에 빠져 있는 삶일지라도, 단 며칠이나마, 더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것이다.


결국 앨커스터주가 당첨되었고, 제일 처음 매를 맞게 된 인물이 바로 스코스비 성주의 동생인 에드거였다.

지금 성벽 위에서, 가솔들에게 둘러싸인 채, 주저앉아 울고 있는 가련한 젊은이이다.


앨커스터 백작 휘하의 가신 중 한 명인 스코스비 영주 에드먼드는 지난 험프리의 반란 때, 아비인 선대 영주 컨래드와 함께 반란군으로 참전했었다.

그리고 혼자만 팔을 하나 잃은 채로 귀환했다.

이듬해에 장원 두 개가 보상으로 지급되었다.


그러고 나서 한 몇 년 잠잠하다 싶었더니, 다시 소집령이 내려왔다.

이제 막 성년이 된 차남 에드거 외에는 갈 사람이 없었다.

팔이 하나 없는 영주가 갈 수도 없고, 그들 형편에 쓸 만한 전사가 휘하에 있을 리도 만무했다.

드레이시 가문을 치는데 돼지 피나 개 피를 먹은 졸개 놈을 보냈다가는, 오히려 역도와 한패로 몰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끌려갔다가 사지 멀쩡하게 돌아왔다.

영주인 형과 가솔들이 눈물범벅이 된 채로 성문 밖까지 맨발로 달려 나왔다.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었다.


그리고 오늘 모두가 끌어안고 통곡 중이다.

어리디어린 도련님이 꼼짝없이 죽어야 할 상황이라, 상판의 모든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를 주체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성곽 안마당에는 혼절한 모친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주위에 있던 여종들이 귀한 물을 들이부으면서 깨워 보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야! 이러다 너희 가족까지 다 죽어! 그만 울고 용기를 내! 네가 우리 집에서 지랄 안 하고, 얌전히 머릿수만 채우다가 돌아간 걸 다 알아! 그러니까 너희 성이랑 피붙이들은 가만둘 거라고! 내가 착하게 굴 때, 빨리 일어나! 이제 슬슬 화나려고 해! 빨리 안 일어나!”


잠시 후 도개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격자문까지 들어 올려지자, 앳된 티가 나는 젊은이 하나가 바들바들 떨면서 걸어 나왔다.

아니, 거의 기어 나왔다.


성문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서 들여다보니, 성주인 에드먼드와 잡스러운 피를 먹은 부하들이 한 덩어리가 돼서 뒹굴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린 동생 혼자 보내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덜덜 떨면서도 할 말은 하는 젊은이 에드거였다.


“당장 문 닫아! 이 멍청아!”


성문 위에 있던 부하 중 하나가 눈물을 철철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격자문이 떨어지고, 도개교가 올라갔다.

안에서 젊은 사내의 비통한 절규가 새어 나오는 것이 절절하게 전해졌다.


“머리만 들라니까 뭐 하러 나왔어? 안 무서워? 네가 거기서 사람을 한 명이라도 건드렸기 때문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갔어. 알아. 네가 죽이려고 마음먹고 죽인 게 아니라, 내 하인 놈이 먼저 칼 들고 덤볐다는걸. 그래도 어쩌겠어? 이 명단 내가 만든 거 아니야. 나도 저승에서 받아 온 거야. 내가 직접 작성했으면 너 정도는 그냥 빼 줬겠지. 귀찮게 너까지 여기에다 왜 집어넣어. 죽일 놈이 산더미인데.”


하지운이, 반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모르고 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원수에게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하면, 놈이 저지른 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상태창에 뜬다는 것이다.


물론, 조우한 원수 놈의 인적 사항을 완벽히 인지한 상태에서, 본인이 궁금해할 때만 발동되는 기능이다.

눈앞에 있는 놈이 원수인지 아닌지 확인도 못한 상태에서 설명창이 제멋대로 떠 버리면, 참가자 입장에서는 완전히 날로 먹는 상황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열흘 전 앨리스 틸리얼 호소녀를 내려다보면서 ‘얘를 어떻게 다루지? 혹시 이 계집애가 나 몰래 로저네 집안에 엿 먹인 건 없나? 이렇게 살살 다뤄도 되나?’ 하는 고민을 할 때였다.

상태창에 메시지가 하나 떴다.


「그런 거 없음. 단순 참가자임.」

‘승아야, 네가 혼나면 내가 맞는 것보다 더 빡쳐. 자제해.’

「뭔 소리야? 이거 원래 있는 기능이야! 설명서 읽으라고 했잖아!」

‘아... 읽다가 너무 길어서, 중간에 때려치우고 잤다.’

「아오! 이 새끼가 진짜... 죽일 놈을 잔뜩 지정해 주고는, 죽일 이유도 설명 안 해 줄 줄 알았냐?」

‘원래 영화에서 보면, 킬러들은 사연 따위는 전달받지 않잖아.’

「미쳤니? 우리가 청부 살인 중개업자야? 너 자꾸 지옥 갈 소리 할래?」

‘내가 말이 심했어. 내가 엄청 반성하고 있더라고 전해 줘.’

「도대체 반성을 몇 번째 하는 거야!」


열흘 전 여친에게 혼쭐났던 상황을 떠올리며 하지운은 생각했다.


‘저승에서는 참가자의 고문 능력 향상에 큰 관심이 없구나. 이러면 바른말을 고할 때까지 주리를 틀 필요가 적어지잖아.’


“서, 설마... 나도 저 꼴로 만들 것이냐?”


상념에 빠져 있던 하지운에게 스코스비 가문의 젊은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질문을 건넸다.

에드거 군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니, 정신 줄을 반쯤 놓은 채로, 좀비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두 백작이 보였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너 저런 거 좋아해? 발랑 까져 갖고는. 너한테는 아직 일러.”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됐고. 뭐, 남길 말은 없어?”

“......”

“없구나. 잘 가.”

“잠깐!”

“살려 달라고 하면 안 돼.”

“진짜! 이 미친놈이!”

“미안, 할 말 있으면 얼른 해.”

“험프리... 그 빌어먹을 놈을 꼭 죽여 줘.”

“응원으로 받아들일게. 무슨 그런 당연한 얘기를 유언이라고 남기는 거야? 저 늙은것도 저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저것보다 한참 어린 험프리는 무슨 꼴을 당할 거 같아? 내가 그 물건을 가지고 무슨 짓까지 할 거 같으냐고? 나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넌 알겠냐?”

“내가 정말로 쓸데없는 소리를 했구나... 너 정말 우리 일족은 절대 손대지 않을 거지? 내가 믿고 죽어도 되는 거지?”

“내가 널 속이지 않으면, 너희 가문을 어떻게 못할 거 같으냐? 내가 너한테 거짓말까지 해야 해? 너 진짜 죽는 마당에 자꾸 사람 웃길 거야? 내가 이 상황에서 웃겨 죽으려고 하면, 성벽 위에서 보고 있는 네 피붙이들이 얼마나 상처 받겠냐?”

“하아... 그냥 내 목이나 어서 치.”


오른손에 쥔 검을 털며, 마법의 불을 일으켰다.

피가 뿜어져 나오던 절단면을 태워 버린 하지운이, 손을 털어, 마법으로 만든 불을 꺼 버렸다.

시신의 양 절단면만 깔끔하게 지지고, 다른 부위에는 전혀 옮겨붙지 않도록 만든 신기에 가까운 마력 운용이었다.


염동력으로 잡고 있던 에드거의 머리와 몸통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시신의 양손을 명치쯤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후, 머리를 가슴 위에 정성스럽게 얹어 놓았다.

어린 청년의 눈을 감겨 준 하지운이 성벽 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통곡을 하면서 저주를 퍼붓는 영주 모자와 가솔들 몇몇이 모여 있었다.

한숨을 쉬면서 멀어져 가는 하지운의 등 뒤로 한참 동안이나 악다구니가 끊이질 않았다.


하가 놈은 별로 괘념치 않았다.

잘했다고 칭찬받을 짓을 한 게 아니라는 것도 모를 정도로, 사리 분별이 안 되는, 미친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던 도중에 두 백작에게 쌍욕을 하면서 채찍을 휘두른 것도, 단지 근력 강화를 위한, 일종의 배틀 로프 동작이었을 뿐이다.

결코 화풀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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