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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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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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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6,876

작성
23.11.25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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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마왕의 길 (17)

DUMMY

115화


클리퍼드주 힐더슬리 인근의 한적한 시골길 한가운데서, 하지운과 칠 인의 부활자 그리고 한 마리의 티라노사우루스가 대치 중이다.


두 번의 진화를 통해 더럽게 예민해진 하지운의 감각 기관들을 고려해 봤을 때, 거듭해서 튀어나오는 불청객들을 마주하며, 매번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은 참으로 경망스럽기 짝이 없는 꼬라지였다.


하지만 여기엔 다 그럴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하지운의 감지 범위 내에 있는 두발짐승의 총수는 백이십팔 개체이다.


특대 사이즈의 파충류 하나와 소머리 괴물 서른 마리, 정체를 드러낸 칠 인의 히어로 군단 그리고 신원 미상의 공룡 소환사를 뺀 나머지 여든아홉 명의 정체는 첩자다.

정보 길드, 왕성 그리고 각지의 유력 영주들 등등 뭔가를 보낼 여력이 있는 놈은 다 보낸 상황이다.


한마디로 현재 하지운의 머릿속 상태는 홍대 클럽이나 마찬가지다.

하가 놈이 그만큼 신났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너무 많은 전사들에게 둘러싸여, 정신 사나워서 돌아 버릴 거 같다는 말이다.


제 놈들 딴에는 기척을 감춘다고 다양한 지랄들을 하고 있는데, 하지운의 입장에서는 오십보백보였다.

백 미터 밖에서 방귀 뀌고, 트림하는 소리까지도 귓구녕에 때려 박히는 귀 밝은 괴수 하지운이었다.


방금 전 골렘을 좌측에 있는 야산에 걷어찬 것도 그냥 한 짓이 아니었다.

어느 가문에서 보낸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웬 냉철한 눈빛의 사나이 하나가 야산 기슭의 아름드리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체험 마차에 따라붙은 지 사흘째가 되는 놈이었다.


놈은 삼 일 동안 움직임을 최소화한 채, 잔혹한 안광을 뿌리며, 하지운을 예의 주시했다.

사타구니를 벅벅 긁으면서 말이다.

놈을 보고 있으니, 사면발니에 걸려 와 생활관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군 시절 선임 한 놈이 떠올랐다.


어디 소속인지 알 길이 없어 죽을힘을 다해 참아 주고 있었지만, 삼 일 이상은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왕성에서 보낸 근위대 전사 하나를 또 죽여 버리고 만 대역 죄인 하가 놈이었다.


미지의 세상으로 난데없이 차원 이동을 한 젊은 공룡 티라노 군은 많이 당황했다.

자신은 평생, 공룡답지 않은, 일탈을 해 본 적 없는 평범한 육식 공룡이다.

방금 전까지도 초식 공룡 한 마리를 찢어발기며, 정체성에 충실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이토록 많은 포유류에게 시선 집중을 당해 본 경험은 단연코 없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당혹스러운 상황에, 자신을 이곳으로 납치해 온 쌍놈의 새끼가 말 같지도 않은 요구까지 해 오고 있다.

자꾸 그 말에 따라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 티라노 군을 둘러싼 놈들 중에 공룡인 자신보다 큰 놈은 없다.

그런데 어째 자신보다 딱히 약해 보이는 놈도 거의 없다.

티라노 군의 삶 전체를 돌이켜 봐도 이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한 놈은 존나 소름 끼쳤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생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감각이 예민한 티라노 군을 공황 장애로 몰아붙이고 있는 살벌한 놈이었다.


그 끔찍한 생물은 손에, 엄청나게 단단했던 놈을 연상시키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안킬로’라고 티라노 군이 평소에 벼르고 있던 놈이 하나 있는데, 딱 그놈 느낌이 나는 덩어리를 손에 쥐고 정신 사납게 흔들고 있는 중이었다.

손에 잡힌 놈이 쉬지 않고 버둥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라노 군의 생각엔 아마 기절시켜서 잡아먹으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었다.


또다시 납치범 새끼가 티라노 군의 머릿속에 개 같은 헛소리를 전해 왔다.

하필이면 눈앞에 있는 놈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소름 끼치는 놈을 물어 죽이라는 허무맹랑한 명령이었다.


티라노 군은 진심으로 빡쳤다.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며 눈알을 희번덕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개아들 놈이, 같잖은 똥구녕으로 휘파람 부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반드시 잡아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티라노 군도 미칠 지경이었지만, 하지운을 중심으로 반경 일 킬로 내에서, 가장 미치기 직전의 상황에 몰린 이는 바로 디에고 페레스 씨였다.

전생에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자연사 박물관의 경비원이었던 그는 중증 공룡 덕후였다.


공룡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디에고 씨는 행복한 삶을 살던 티라노 군을 밑도 끝도 없이 납치해 와서는, 하지운과의 맞짱을 주선하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러 버렸다.

그런 만행을 저질러 놓고도 뉘우치는 기색도 없이, 전의를 상실한, 티라노 군을 숨도 못 쉬도록 닦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오십 미터 밖 풀숲에서, 코피를 질질 흘리고 있던, 공룡 소환사 디에고 씨가 제 성질을 가누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뭐 하는 거야? ‘조로’ 어서 저 악마를 죽이라고!”


티라노 군의 눈구녕이 희열로 가득 찼다.

자신의 살 길이 드디어 활짝 열렸다는 걸 확신했던 것이다.

어느새 자신에게 이름까지 지어 준 공룡 덕후의 대갈통을 향해, 꼭 살고 싶었던, ‘조로’ 군이 쩍 벌린 아가리를 쏜살같이 내밀었다.

소환사의 허접한 정신적 지배력보다, 공룡의 생존 의지가 훨씬 강력했던 것이다.


‘조로’ 군의 아가리가 콱 닫혔다.

지구 최강의 사냥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 파충류의 눈알이 거세게 요동쳤다.

입 안에 씹힌 것이라고는 제 놈의 잇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괘씸한 납치범이 이십 미터 상공에 둥둥 뜬 채로, 양손으로 제 목을 박박 긁으며 두 다리를 바동거리고 있었다.


“얌마! 절로 가 있어. 느그 집구석으로 보내 줄 테니까, 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너 이 새끼, 딱 보니까 대가리도 잘 굴러가게 생겼네. 못 알아듣는 척하면, 이 단단한 걸로 패 버리는 수가 있어.”


교활한 포식자 티라노 군이 금세 알아듣고, 존나 무서운 놈이 턱짓으로 가리킨 길가 공터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아오, 먼지! 이 새끼가 왤케 말을 잘 들어. 그냥 걸어가, 이 새끼야!”


티라노 군이 풀이 죽은 채 공터에 다소곳이 기립하자,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에바 양이 하지운을 향해 물 덩어리를 날렸다.


피식 웃으며 쳐다보던 하가 놈이 물 덩어리를 향해 대뜸 눈을 부라렸다.

그 순간 놈의 눈알에서 시리도록 푸르른 섬뜩한 광채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잘 날아가던 물 덩어리가 하지운의 코앞에서 급정거했다.

잠시 후 격렬하게 일렁거리던 물 덩어리가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수 초의 시간이 흐른 후, 히어로 군단의 눈깔들이 죄다 매가리 없이 풀려 버렸다.

자신들도 모르게 요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눈앞에서 직면한 기적에 취해 버린 것이다.


단추를 세 개나 푼 블라우스 위에, 퍼 재킷을 걸치고, 딱 붙는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매칭한 미의 여신이 강림했다.

하지운이 물로 구현한 그저께 다녀간 승아의 형상이다.

MSG로 천사의 날개 두 장만 추가했다.

나머지는 손톱만큼의 튜닝도 하지 않은 순정 상태의 임승아 그대로다.


물로 만들어진 승아가 자애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에바 양을 향해 날아갔다.

넋이 나간 에바 양이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양팔을 활짝 벌린, 맑고 투명한, 승아가 얼빠진 에바 양을 부드럽게 안아 줬다.


기도가 막혀 버린 에바 양이 그제야 지랄 발광을 시작했다.

너무 예뻐서 소름 끼치는 물의 미녀가, 산뜻한 미소를 머금은 채, 에바 양을 품에 꼭 끌어안아 주었다.


이 세상 미모가 아닌 듯한 개예쁜 면상을 갖춘 글래머 미녀가, 눈웃음을 살살 치며, 시행하는 가혹 행위는 뭔가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아름다운 물의 마녀가 멀쩡한 젊은 처자를, 가차 없이 물고문해, 순식간에 삼도천까지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라이브로 연출하는 중이다.

그런데도 반경 일 킬로 안의 뭇 남성들의 찬사가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이다.


정신 나간 놈들이 같은 편이 뒈져 가고 있는데도, 여신님의 미모에 홀려 천지 분간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에바 양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물의 미녀가 허공에 흩어져 버렸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채로, 공황 장애에 걸린, 에바 양이 페넬로페 양을 바라보며 서럽게 울어 댔다.

겨우 눈물이 그쳐 가던 페넬로페 양도 덩달아 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코앞에서 머리통만 꺼내 놓은 채로 대성통곡을 하는 또래의 여자애를 보자, 겨우 억눌렀던 서러움이 또다시 복받쳐 오른 것이다.


총 팔 인의 초능력 용사들을 둘러보는 하가 놈의 상판대기에, 조롱기 가득한 미소가 매달린 채 떨어져 나갈 줄을 몰랐다.

사 인은 이미 대갈통만 내민 채 흙바닥에 쑤셔 박혀 있는 상태고, 나머지 사 인은 대량으로 쏟아 낸 코피 때문에 가슴팍이 시뻘겋게 떡칠이 돼 있었다.


그중 두 놈은 기절해 버렸고, 한 놈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방언을 쏟아 내고 있는 중이다.


아파트 칠 층 높이의 허공에서 하지운에게 염동력 초크를 당한 디에고 씨는 기절을 해 버렸다.

경동맥이 눌려서 기절한 것이 아니라, 고소 공포증 때문에 정말로 무서워서 기절한 것이다.

잠시 후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진 티라노 군이 뛸 듯이 기뻐하며 잽싸게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지운의 오른 손아귀에 붙들려서 개고생을 하던 골렘의 정신적 동반자도 결국 선 채로 까무러쳐 버렸다.

수 초도 지나지 않아 하지운의 오른손도 허전해져 버리고 말았다.


오로지 로버트 피츠드로고 호소인 한 명만이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 가는 중이다.

코피를 좔좔 쏟으면서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양팔을 힘차게 뻗고 있는 그의 모습은 뭇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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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마왕의 길 (18) 23.11.28 58 1 10쪽
» 마왕의 길 (17) 23.11.25 53 1 10쪽
115 [수정] 마왕의 길 (16) 23.11.23 53 2 10쪽
114 마왕의 길 (15) 23.11.21 50 1 10쪽
113 마왕의 길 (14) 23.11.19 56 2 10쪽
112 마왕의 길 (13) 23.11.16 56 1 10쪽
111 마왕의 길 (12) 23.11.15 6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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