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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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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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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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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6,876

작성
23.11.19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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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마왕의 길 (14)

DUMMY

112화


냉철하면서도 강인한 젊은이인 오메르 군은, 금세 혼미해져 가던 정신을 다잡고, 눈앞에 보이는 두 발 달린 불가사의를 주시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두 번째 삶은, 기대조차 해 본 적도 없고 기대해도 웬만해선 가질 리가 없는, 마치 로또 같은 우연의 산물이다.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면 되는 신의 선물일 뿐이다.


절망에 허우적거리면서 낭비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시간이었다.

어차피 이런 상황이 닥칠 거라는 걸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다.

기왕 죽을 거, 이번 생에도, 최대한 남자답게 폼 나게 죽겠다고 다짐하는 전직 특수 요원이었다.


전생에도 그는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던 상남자였다.

기동 타격대의 지원을 받아 적의 은신처를 급습하던 과정 중에, 난데없이 굴러 나오는, 수류탄을 발견하고 영화처럼 몸으로 덮은 유니콘 같은 남자다.


그에게는 이번 생도 다를 게 없다.

절망에 잠식당한 새로운 가족들을 위해, 제 한 목숨 초개같이 던지러 나온 것이다.

혼자 도망가는 선택지 따위는 애초부터 그에게 없었다.


다행히 감정 기복이 심한 미친 괴수 놈도 무슨 이유에선지 이성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눈깔에 발생했던 모종의 트러블도 해결을 한 것인지, 혼자 씨부렁거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아아, 저 새끼가 달고 온 능력이 특이한 거였구나. 딴 새끼들은 잘 보이네. 오늘도 신박한 연놈들이 한가득이다. 풍년이로구나.”


괴수 놈의 말대로 오메르 군의 좌우에, 또래의 남녀 다섯 명이 어느새 비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고 있었다.


“미쳤어? 보는 눈이 몇 개인데, 길 한가운데서 일을 벌이고 지랄이야?”


물 마법을 골라 온, 필리파 윌러벌 양을 코스프레 중인, 한 처자가 짜증 섞인 호통을 내질렀다.

그녀가 뒤집어쓰고 있는 필리파 양은 죽기 전에 서록의 영주 로더릭 경의 차녀였던 여성이다.


로더릭 윌러벌 경은 현재 콘체스터주의 장관이자, 주 내에 위치한, 콘체스터 성을 비롯한 새로 왕령지로 편입된 장원들을 총관하는 실세 중의 실세이다.

로저 드레이시 암살 계획을 설계했던 장본인도 바로 그였다.

드레이시의 몰락에 관여한 여러 공신 중에서도, 거버스 다음가는, 으뜸 공신인 것이다.

하지운이 콘체스터주를 장악할 경우, 하가 놈의 열렬한 애정 공세를 거의 독차지할 ‘VVIP’이다.


그러니 그 딸을 연기 중인 필리파 호소녀도 신경이 있는 대로 곤두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억 전부와 감정의 일부분까지 물려받은 참가자들이, 칼같이 선을 긋고, 소속 가문의 일에 나 몰라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든 참가자들이 하지운 같은 또라이는 아니니 말이다.


“그러면 어디서 해? 이제 우리 주가 코앞이라고! 저 미친놈이 숨어 다닐 생각이라곤 쥐똥만큼도 없어 보이는데! 오히려 보란 듯이 길 한가운데서 저러고 있는데, 어디서 치자는 거야?”


티머시 웨이버튼을 연기 중인 청년이 터싱엄 호소인 오메르 군을 역성들고 나섰다.


“저놈도 사람인데, 똥은 쌀 거 아냐!”

“미안해. 이미 쌌어.”

“너한테 안 물어봤어! 이 정신병자야!”


필리파 호소녀의 호통에 의기소침해진 하지운이 입을 꼭 다물어 버리자, 웨이버튼 호소인 알폰소 군이 다시 언쟁을 이어 갔다.


“와우! 고작 생각한 게 저 자식 똥 쌀 때까지 기다리자는 거야? 이곳 영주의 성에서 싸고 나오면 어쩌려고? 그럼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가? 저 자식이 얼른 똥 마렵기만을 빌면서?”

“야! 너희 둘 다 그만 좀 해! 이미 쌌다고 하잖아! 저 괴수 놈이 안 보여? 정신 차리라고! 우리 전부가 목숨을 걸어도, 이길까 말까 하는 놈이라고!”


스위스에서 넘어온 로버트 피츠드로고 호소인이 한심한 동료들에게 역정을 내 버렸다.

강대한 적을 코앞에 두고 티격태격하는 그들이 그렇게 철딱서니 없어 보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보기 좋네. 젊다는 건 좋은 거야. 다들 귀엽다, 귀여워. 일렬로 서서 폼 잡고 있는 꼬라지들 보니까, 꼭 히어로물을 보는 기분이네. 잠깐, 그럼 내가 빌런이잖아... 하긴... 나 같은 새끼가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하고 있으면, 그게 더 웃기긴 하겠다. 그런데 ‘이길까 말까’라는 말이 너무 웃긴데 어쩌지...’


하지운은 요 근래 들어 웃음을 참느라, 내장이 뒤틀리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하는 중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MRI 모드를 발동한 두 눈깔로, 매일 아침 자가 검진을 거르지 않고 있다.

유방암 자가 검진을 하는 중년 여성들처럼, 세세하게 배때지를 훑어보곤 하는 것이다.

원래 제정신이 아닌 놈들일수록, 제 몸 걱정을 끔찍이도 하는 법이다.


“혹시 너희들 아이스크림 먹고 왔니?”

“뭔 소리야? 이 미친놈아!”


자신의 지척에서 알짱거리는 혼성 개그 그룹이 너무 기특해서 물어본 하지운이었다.


90년생인 하지운이 출생할 때쯤이었다.

대한민국에는, 박쥐 코스프레를 한, 다크 히어로의 인기를 등에 업은 아이스크림이 하나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운도 그 전설적인 아이스크림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저작권 문제 때문이었는지, 단기간에 단종돼 버렸던 상품이기 때문이다.

제일 용감해 보이는 한 무리의 젊은 남녀를 보며,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땡기는 하가 놈이었다.


보다 못한 승아가 한마디 했다.


「자기야... 아이스크림 한 통 넣어 줄까?」

‘응! 애플망고 맛으로!'

「통 크기는?」

‘곰탕 끓이는 솥만 하게.’

「자기야... 지랄하지 마. 그렇게 처먹으면 아무리 자기라도 설사해.」


하지운이 여친이랑 노닥거리는 동안 여섯 남녀가 어느 정도 의견을 통일했다.


‘아깝다. 꽃다운 청춘들이 한 십 분만 지나면 싹 다 뒈지는 거잖아. 그런데 성비가 너무 안 맞는다. 무슨 공대도 아니고.’


웨이버튼 호소인이 앞으로 나서서, 목이 터져라, 웅변을 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뭉친 오합지졸이기는 해도, 괴수 놈을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 허무하게 잃어선 안 될 소중한 동료들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동료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활기찬 응원이 필요해 보였던 것이다.


“오늘 여기서 저놈을 못 막으면, 우리만 죽고 끝나는 게 아냐! 비록 만난 지 몇 달 안 된 가족이라 할지라도... 가족은 가족이야! 그들이 저놈 손에 다 죽는 거야! 저 둘처럼...”


체험 마차에 걸려 있는 산송장들을 바라보는 젊은 남녀들의 눈알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특히, 대니얼 세비니의 친동생, 로버트의 몸을 차지한 크리스티안의 심경이 가장 복잡했다.


“요즘 아랫것들 눈초리가 어떤지 너희도 알지? 언제 우리의 목을 따서 저 미친놈에게 갖다 바칠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고! 일족들끼리도 서로를 믿지 못해서, 식사도 따로 하고 있다는 말이야! 일단 저놈을 죽이는 게 우선이야! 우리끼리의 경쟁은 그다음 문제야! 우리 죽을 각오로 한번 해 보자. 우리가 힘을 합치면, 저놈 하나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

“그래! 놈은 하나야! 용기를 내! 우린 할 수 있어!”


필리파 호소녀도 열정적인 한마디를 보탰다.

스웨덴 왕립 공과대를 재학 중이던 재녀답게, 당차기가 이를 데 없었다.

수질 개선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전공을 살려, 권능도 물 마법을 골라 왔다.

그 바람에 일행 중에서도 가장 의지가 되는 강자로 대접받고 있었다.


그들의 장한 모습에 하지운이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어느새 꺼낸 간이 의자에 앉은 채로 다리를 꼬고 있던 하지운이, 지루함을 못 견디고, 잠깐 하품을 하기는 하였다.

하지만 지금 흘리는 눈물은 결코 하품 때문만은 아니라고 감히 확언할 수 있다.


‘씨발, 웃겨서 못 보고 있겠네. 저 하찮은 만담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늙다리들 훈화도 이거보다는 짧았던 거 같다.’


하지운의 집중력이 먼지만큼이나 미세해지자, 드디어 혼성 육인조가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도 입담이 좋아서 그러고 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운이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좌측으로 돌리자, 길가의 풀숲에서 일제히 뛰쳐나오던, 서른 마리의 소머리 괴물들과 눈이 떡 마주쳐 버리고 말았다.


“쟤는 권능이 ‘동물 조종’이라면서, 괴물을 조종하고 있네. 얘들이 대가리만 동물이지... 아! 하긴 인간도 주둥이만 발달한 동물이긴 하지.”


사납게 뛰쳐나오던 소머리 서른 마리가 첫날밤을 앞둔 새색시처럼 수줍어하고 있다.

다들 고개를 푹 숙인 채, 온몸을 배배 꼬면서,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중이다.

심지어 얼마나 설렜는지, 오줌까지 찔끔거리는 놈들도 있었다.


첫 눈빛 교환에 잔뜩 위축돼 버린 소머리들과 그들을 성의 없게 훑어보는 하지운의 모습은 흡사, 초딩 일진들을 열중쉬어 시켜 놓고 상납금을 뜯어내는 중딩 일진을, 연상시켰다.


불량배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던 하지운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래도 잘생긴 얼굴은 계속 감상하라고 잔상은 남겨 뒀다.


공중에서 열 바퀴 반을 도는 데큐플 악셀을 선보인 하지운이, 대기가 터져 나가는 소음 공해를 일으키며, 옆 차기를 날렸다.

그와 동시에 하지운의 입에서 자지러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많이 늦었네요.

 결국 오늘도 밤을 꼴딱 샜습니다.

 일회용으로 써 먹을 이름을 한 서른 개 정도 만들었더니,

 한나절이 걸렸네요.

 얼른 자러 가야겠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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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마왕의 길 (15) 23.11.21 50 1 10쪽
» 마왕의 길 (14) 23.11.19 56 2 10쪽
112 마왕의 길 (13) 23.11.16 56 1 10쪽
111 마왕의 길 (12) 23.11.15 62 1 10쪽
110 마왕의 길 (11) 23.11.12 63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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