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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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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22 23:40
연재수 :
2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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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33,051

작성
23.08.3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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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캠프파이어 (6)

DUMMY

71화


“후우, 다행이다. 잘 달려 있네. 그런데... 이미 충분한데 굳이 더... 이러면 어차피 평범한 인간과의 육체관계는 불가능한 거였네... 여친이 귀신이라서 천만다행이다! 전화위복이야! 승아야, 듣고 있니? 이런 생각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는 네가 귀신이라서 행복해! 네가 산 사람이었으면 우린 맺어질 수조차 없었어!”


한차례의 요란한 정신 승리 후, 다시 거울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잘생겼다기보다는, 뭔가 얄쌍하고 요사스러운 귀신 같은 것이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여우 피가 문제야. 여우 피가. 느낌이 딱 여우네. 몸뚱어리는 곰. 대굴빡은 여우. 씨발. 중간이 없네. 머리통이랑 몸이 이렇게 따로 놀아도 되는 거야? 이전 면상이 훨씬 나았는데... 이건 무슨...”


그러다가 갑자기, 하지운의 머릿속에서 기똥찬 아이디어가 하나 튀어나왔다.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하지운이 이내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돌아가서, 나이 속이고 케이팝 아이돌에 도전해 보자!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는 거야! 낯짝만 보면, 십 대 후반의 외국인이라고 속이는 것도 가능할 거 같은데...”


운동 신경이야 인간의 굴레를 벗어난 지 한참 되었고, 양심만 제거하면, 나이 정도는 얼마든지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억양이나 주로 사용하는 단어들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기는 했지만, 어쨌든 지금 자신은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하고 있다.

물론 팔구백 년 전 잉글랜드에서 쓰던 중세 영어를 말이다.

이곳 브리갠트가 주로 중세 잉글랜드에서 설정들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울로 돌아가서 몇 달만 영어 학원 다니면서 교정하면, 바로 원어민 수준이 될 것이다.

요즘 아이돌에게 언어 능력은 필수다.

생각해 보니 지금의 자신은 아이돌로서 완벽하게 준비된, 다이아 원석 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 망상도 금세 시들해졌다.

다시 생각해 보니 하지운 자신이 뭐가 아쉬워서,그 짓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쌍판으로 미국에 진출하면, 바로 게이팝 호빠 아이돌 소리 듣겠는데. 내가 씨발, 뭐한다고 양놈들한테 그딴 소리나 들어가면서...”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난데없이 몽타주가 또 바뀌어 있다.

하지운의 입장에서, 정신이 살짝 나갔다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성형 중독도 아닌데, 이토록 상판대기가 적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단기간에 확확 바뀌어 버리면, 뇌세포들이 곤란을 겪는 것도 이해해 줘야 한다.


면상이 지나치게 많이 변해서 놀라 버린, 하지운의 다소 호들갑스러운 적응의 시간이었다.


그래도 의구심을 떨칠 수는 없었다.

괴물 피를 먹어도 원래 몸뚱어리만 강화되는 것이지, 면상이나 터럭까지 바뀌지는 않는다.


만약 처먹은 괴물 피의 특성에 따라 용모까지 바뀐다면, 적어도 여성들 중에서 피를 먹겠다고 나설 인간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돼지 피 말이다.

그걸 누가 처먹겠나.

낯짝이 돼지처럼 바뀔 텐데.


그러니 하지운이 거울 앞에서 생쇼를 하고 있던 것이다.

환골탈태를 운운하면서 말이다.

무슨 상황인지 진정으로 아리까리하기만 했다.


바뀐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아무리 한탄을 해 봤자 달라질 것은 없다.

결국 체념해 버린 하지운이 이전 면상에 대한, 추념의 시간이라도 가지기로 하였다.


이럴 땐 예포가 빠질 수 없다.

차분하게 정신을 집중하여, 불덩어리를 하나 만들어 보았다.

지금까지의 경박한 하지운과는 달리, 뭔가 개멋진 것을 만들어 보겠다고 까불지 않고, 소박한 것부터 시도해 보았다.

환골탈태 덕에, 진화한 육체만큼은 아니지만, 약간의 정신적인 성장도 있었던 듯했다.


개빡친 승아에게 쫄아서, 쫓기듯이 마력을 움직여 댔던 아까와는 달랐다.

마음을 평온하게 가지고 천천히 마력을 일으키면서, 대기 중의 불의 원소들을 끌어 모았다.


이젠 딱히 급할 것이 없는 하지운이다.

원래는 감응력을 높이기 위한 ‘능력’ 하나만이라도 획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려고 기껏 구상해 두었던 계획을 다 뜯어고치고, 우선 북부의 숲으로 먼저 들어갔던 것이다.


마법 원소를 대뜸 느끼고, 그것으로 당장 그럴듯한 마법을 구현하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감응력을 높이고 나면, 어디 변두리 촌구석에라도 처박혀서, 마법 수련만 주야장천 할 생각이었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계획대로 해내기만 하면, 이곳에서의 생존은 문제없다고 생각한 하지운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도로 주행 복습한다고, 집 앞에 잠깐 차 몰고 나갔다가, 고속 도로 타고 부산까지 온 상황이다.


생각지도 않은 엄청난 성취에, 조급함이 사라진 하지운이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으로 마력을 다스렸다.

기왕 예포를 터뜨릴 거 크게 터뜨리자는 생각에, 마력을 아낌없이 밀어 넣어 보았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놈들도 마구잡이로 머리채를 잡고, 죄다 질질 끌고 왔다.


자신의 역량 평가도 해 볼 겸,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했다, 인공 태양을.


‘헐... 씨발... 잠깐! 인공 태양 관련주가 뭐뭐 있었지?’


“다시 주식을 하면, 내가 사람 새끼가 아니다!”라는 다짐을 그새 잊은 하지운이었다.


환골탈태 비슷한 것을 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심지어 무의식 중에 일대일 비율의 여신상까지 만들었다.

자신이 개쩌는 마법사님이 되었다는 것을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름이 대충 칠팔 미터는 되어 보이는 흉악한 불덩어리를 찍어 낼 줄은 몰랐다.

절대 예포로 써먹을 물건이 아니었다.

잘못 던졌다가 산불이라도 내면, 선녀님이 깡패가 되어 강림하실 수도 있다.


“거버스, 이 븅신 같은 늙은이... 칠십 년 넘게 마법사 생활하면서 뭐 한 거야? 개좆밥이었네.”


잠시 철든 듯했던 하지운이 그새를 못 참고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마법사 영감을 떠올리던 하지운이 갑자기 배를 잡고 바닥을 굴렀다.

그러더니 이내 서럽게 펑펑 울어대기 시작했다.


“씨발! 숨을 못 쉬겠어... 헉... 어윽... 너무 웃겨...”


자신은 여우머리 족장의 피를 먹었지, 뇌를 먹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족장 놈의 기억까지 흡수해 버렸다.

그래서 하지운이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갯과 짐승이 아무리 머리가 좋아 봤자 개다.

족장 놈이 겪은 모든 일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정말 강렬했던 추억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나이가 지긋한, 고매할 듯해 보이는, 마법사가 오줌을 싸면서 고속으로 날아가 버리는 장면 말이다.


그 외에도 재밌는 추억들이 많았다.

특히 야비하고 교활한 하지운의 입맛에 딱 맞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한가득했다.

개들끼리 붙어먹는 개좆같은 추억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이 문장이... 어느 가문 문장이었더라... 어디서 많이 봤는데... 이런 양질의 콘텐츠까지 주시다니, 아낌없이 주는 족장님 아리가또!”


왠지 콘텐츠의 수위를 봐서 아리가또가 적당해 보였다.


머리 위에서 빙빙 돌고 있던 불덩어리를 가볍게 소멸시켰다.

처음은 몰라도, 한 번 했던 걸 재탕하면서, 또 버벅거릴 만큼 하지운이 둔재는 아니었다.

목도 돌리고 허리도 돌리고 팔다리도 흔들면서 온몸을 풀어 주었다.

이제부터는 뭘 하든 여유 있게 몸 생각도 하면서 해 볼 요량이다.


그러고는 거버스가 보여 줬던 불덩어리 열몇 개 만들기를 흉내 내 봤다.

대충 만들었는데 서른 개가 나왔다.

식은땀을 줄줄 흘려 댔던 거버스를 떠올리며, 실실 쪼개던 하지운이 불덩어리로 저글링을 하며 사색에 잠겼다.


사실 하지운이 흡수한 것은, 여우머리 족장의 기억만이 아니었다.


“로저, 이 징그러운 새끼! 드디어 싹 빨아들였다. 이 새끼... 크흑... 네가 눈을 못 감고 버틴 이유가 있었구나... 푸하하하하하!”


로저가 가진 칭호는 웨스털랜드의 백작이다.

웨스털랜드라는 지명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도 하지 않던 것이다.

험프리가 논공행상 차원에서 졸속으로 하나 만든 것이다.


웨스털랜드라는 지명은 ‘웨스트’와 ‘테일’ 그리고 ‘랜드’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뜻을 풀이하자면 ‘테일’강 서쪽의 땅인데, 실제 발음은 ‘웨스떼얼랜’에 가깝다.


간단히 말해, 서부 변경을 가로지르는 테일강 너머의 땅은 거의 대부분 로저의 사유지라는 말이다.


“다시 생각해도 지랄... 엄청난 부자였네... 그런데... 이 집구석이 숲에 처박혀서 안 나온 이유가 이거였어! 크하하하하!”


사실 하지운은 도마뱀들을 줘패면서, 일이삼사의 고견에 공감했었다.

생각보다 별거 없는 불사신들을 잡도리하면서, 이 넓은 늪지를 왜 놀리고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다.


의도가 있어서 놀리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드레이시 가문의 전력을 투입하고도 부족할 만큼, 서쪽 전선이 경황없이 분주했던 것이다.


“보, 보석이라니! 보석 광산이라니! 로저, 고마워! 네가 그냥 가질 않는구나! 이렇게 좋은 기억들을 다 주고 가다니! 이런 아름다운 추억들을 넘겨주고 가려니, 얼마나 억울했겠어! 이해해! 잘 가. 존나 잘생긴 로저야. 그리고 네가 준 아름다운 얼굴... 잘 간수하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눈물을 철철 흘리며, 제 손으로 쫓아낸, 육체의 원주인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눈물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데, 입은 귀까지 찢어져 있다.

하지운 자신도 어느새,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표현하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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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정진 (10) 23.10.15 59 3 10쪽
96 정진 (9) 23.10.12 58 3 9쪽
95 정진 (8) 23.10.10 63 3 10쪽
94 정진 (7) +3 23.10.08 67 3 9쪽
93 정진 (6) 23.10.06 64 4 9쪽
92 정진 (5) 23.10.04 6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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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인연 (1) 23.09.03 94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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