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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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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5.22 00:53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1,266
추천수 :
499
글자수 :
865,661

작성
23.10.04 14:47
조회
57
추천
3
글자
9쪽

정진 (5)

DUMMY

91화


“더 소환할 놈 없냐? 방금 걔들이 다야?”


하나 남은 오른손으로 사력을 다해 기고 있는 사람 옆에서, 주책바가지 같은 하지운이 말을 가리지 않고 씨불이고 있었다.

불량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 언제 운명할지 모를 사람에게, 제 궁금한 것만 물어보는 모습이 매사에 열정적으로 보였다.


“너 말고도 졸개들을 잔뜩 달고 다니는 애가 하나 더 있었어. 여기 네 번째로 온 애였는데, 걔는 매혹 쓰더라고. 너나 걔나 둘 다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본체가 존나 약해. 졸개가 아무리 많아도 답이 없어. 본체를 조져 놓으면 졸개들이 정신을 못 차리더라고.”


듣고 대꾸할 기운도 없는 상대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들던 하지운이 중지 두 번째 마디의 털 한 가닥을 튀김 젓가락 길이로 뾰족하게 세웠다.


“아, 미안. 내가 아까 고통 없이 보내 준다고 했었지. 그거 사실 맘에 없는 말이었어. 내가 원래 허언증이 좀 있어. 자주 그러는 건 아닌데, 가끔 그래. 그런데 고칠 의지가 전혀 없어. 그냥 그렇다고. 잘 가.”


다급하게 몸을 뒤집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호르헤 군의 혓바닥에 거대한 주사 바늘 모양의 가시가 박혔다.


“아오, 씨발! 모가지에 박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돌면 어떡해! 아우... 징그러.”


결국 호르헤 군은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풍진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기분 나쁜 새끼. 죽는 모습까지 기분 나쁘네. 이게 동족 혐오라는 건가? 내 캐릭터가 독보적인 건 줄 알았는데... 그냥 흔해 빠진 범죄자 스타일인 거야? 우울하네...”


「넌 뭐 그딴 걸로 상처까지 받고 그러냐? 쓸데없는 소리 작작 하고, 이거 흡수할 거지?」


“응... 그런데 자기야, 나 정말 심각하다고! 캐릭터 겹치는 새끼를 벌써 만났단 말야! 개빡친다고!”


「우쭈쭈쭈, 우리 덩치만 큰 아기 화나쪙? 누나가 며칠 있다가 존나 위로해 줄게. 그만 찡찡거려. 덩치는 산만 한 게.」


“나흘이나 기다려야 하잖아! 미리 땡겨서 오늘 오면 안 돼? 나 정말 상처 받았다고!”


「안 돼, 이 새끼야! 나 직녀 언니 꼴 나는 걸 보고 싶어? 우리 일 년에 한 번 봐야 된다고! 정신 차려, 이 남친 새끼야!」


“헐... 실존 인물이었어? 일 년에 한 번이 진짜야? 존나 살벌하네...”


「여기 진짜 저승이야! 놀이공원에 있는 귀신의 집인 줄 알았니? 진짜 정신 똑바로 차려! 까딱 잘못하면 우리 둘 다 바로 소멸이야! 항상 긴장하고 있으라고!」


“어, 어! 바로 긴장할게, 걱정 마! 이제 정신이 또렷해졌어. 자기야, 나흘 후에 만나는 거지? 그때까지 징징거리지 않고, 미션에 집중할게. 내가 요즘 너무 조급하다. 그치?”


「그러니까! 뻑하면 그것만 떠올리지 말고, 좀 더 일에 집중해. 아직 육천구백 분이나 남았어. 벌써 그 생각에 빠져 있으면, 남은 나흘하고도 한나절이 더 되는 시간 동안, 어떻게 임무에 충실할 수 있겠어!」


“자기야... 분 단위로 세고 있었어? 이번에는 꼭 일찍 잠들게! 불면증 반드시 고칠게!”


「그래... 고마워... 역시 내 맘 알아주는 건 자기밖에 없네... 그래!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자기야, 다른 건 몰라도, 불면증만은 반드시 고쳤으면 좋겠어!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건강에 참 좋대! 건강엔 잠이 최고야!」


사령술을 흡수하고 잠자리에 들려는 하지운에게 승아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얘기가 그쪽으로 빠지는 바람에, 젤 중요한 걸 빼먹고 지나갈 뻔했잖아.」


“응? 뭔데?”


「네가 방금 잔뜩 빨아 먹은 거 ‘어둠의 마력’이거든.」


“어둠의 마력! 크흑... 아오, 오그라들어! 내 손발에 존나 치명적인 이름이야!”


「이 새끼가... 헛소리하지 말고 잘 들어! 나중에 또 난리 치지 말고.」


“응? 내가 난리 칠 일이 있어?”


「네가 기력을 매번 그런 식으로... 대량으로 빨아들이면 말야. 얼마 안 있어 네 몸이 터지든가, 아니면 진화를 하든가 둘 중의 한 가지 일은 발생할 거야. 그리고... 진화를 할 경우에 말야. 네가 젤 많이 빨아먹은 기운이, 네 외형에,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치게 되지 않겠어? 내 말 이해했지? 그럼 잘 자! 내 꿈꿔, 자기야!」


“어... 잘 자... 네 꿈은 매일 밤 꾸고 있어... 그래서 아침마다 씻느라고 정신없어...”


‘씨발... 그러네... 그 생각을 못 했네... 이름부터 존나 강해 보이는 어둠의 마력이 면상에 영향을 존나게 끼치겠네... 일단 이름부터 어두우니까, 머리털이 흑발에 가까워질 거고. 거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면상이 지금보다 더 요괴 같아진다는 건가? 지금도 거울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데... 섬뜩해서...’


망연자실해진 하지운이, 정보 길드에서 정성을 다해 만들어 준, 간이 침상을 도로 수납장에 던져 넣었다.


사 미터가 넘는 거대한 철제 침대에, 기둥을 세워 지붕까지 얹어 놓은 엄청난 명품이다.

사면에 휘장을 두르고 침상에는 여우 털을 깔아 놓아서, 누우면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정보 길드에서 약속했던 예물 패키지 중 하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늑하게 처잘 상황이 결코 아니었다.

면상이 흡혈귀처럼 변하기 전에 뭐라도 해야 했다.


‘일단 어둠의 마력인지 나발인지를 억누르려면, 다른 성질의 기력을 존나게 빨아먹어야겠네... 중화를 시켜야 하니까. 그런데... 기력을 한도 끝도 없이 빨아먹다가는 십중팔구 뒈질 거란 말야. 뭐든 많이 먹으면 체하니까. 안 죽고 진화를 하려면, 또다시 머리통의 성능을 높이는 수밖에 없는데... 이건 마법 습득만 한 것이 없긴 하지.’


기력 흡수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미 하지운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승아도 부담 없이 언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하지운이 아무런 낌새도 못 챈 상황이었다면, 승아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만 썩이고 있었을 것이다.

승아 자신이 먼저 함부로 떠벌였다가는, 또다시 제재 폭탄이 쏟아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사실 눈치 빠른 하지운이, 기력 흡수를 한번 사용해 보고, 그 위험성을 깨닫지 못한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능력이 너무 좋았다.

첫날부터 소머리 피를 먹은 전사 오 인분의 생체 에너지를 통으로 빨아먹었다.

몸속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기운에 그 자리에서 또 환골탈태를 하는 줄 알았다.


의지력이 육체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 환골탈태든 뭐든 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가리가 못 따라가는데 몸뚱어리만 커지면, 일종의 초인적인 금치산자가 될 것이다.

아니면 뒈져 버리든가.


하지운이 괜히 테일강 서쪽에 있던 소머리들을 잡아먹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령술사가 싸질러 놓은 소환물들을 말끔하게 치워 버리려면, 기력 흡수 외에는 딱히 그럴듯한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한 번에 몇 마리를 잡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배를 꽉 채우고 언데드 사냥을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머리 놈들을 강제로 몰아서 이이제이의 제물로 사용하는, 아이디어가 튀어나온 것이다.

잡아먹지 않는다고, 괴물들을 그냥 두고 지나칠 하지운이 아니었다.

심성이 근면 성실하고, 매사에 열정적인 그에게 소머리는 어떤 식으로든 활용해야 할 양질의 재료였다.


야밤에 자려다 말고 일어난 하지운이 쇠말뚝으로 미친 듯이 땅을 파 젖히기 시작했다.

금세 삼 미터 깊이의 구덩이를 파 놓고는, 알몸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염동력으로 구덩이 옆에 쌓여 있던 흙더미를 끌어당겼다.


잠시 후 머리통만 남기고 온몸이 땅에 파묻혔다.

그리고 흙의 원소를 향한 본격적인 구걸이 시작되었다.


“안녕, 다른 애들한테 내 얘기 들었지? 너도 같이 놀자. 난 모두를 사랑하는 박애주의자야. 너희 중 누구 하나도 소외시키고 싶지 않아. 너희 모두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이건 내 진심이야!”

“꺼져! 이 바람둥이야! 미친 새끼가 도대체 몇 명을 달고 다니는 거야? 변태 같은 새끼! 꼴도 보기 싫어! 네가 드래곤이야? 네 주제를 알아!”


불의 원소와 맞먹을 정도의 철벽이었다.

무려 사흘 밤낮을 쫄쫄 굶으며, 눈물의 똥꼬쇼를 펼치고 나서야 겨우 허락받았다.

하지운 스스로 구덩이 밖으로 기어 나올 기운도 없어서, 흙의 원소들이 조심스럽게 밀어내 줘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도 금제가 깨지고 하지운의 육신이, 마법 원소들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도록, 진화를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원래의 몸뚱어리 같았으면 족히 한 달은 걸렸을 것이고, 그사이에 하지운은 아사했을 것이다.

아니면 쑥과 마늘을 걷어차 버린 호랑이녀 신세가 되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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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 (5) 23.10.04 58 3 9쪽
91 정진 (4) 23.10.02 57 4 10쪽
90 정진 (3) 23.10.01 62 3 9쪽
89 정진 (2) 23.09.29 62 3 9쪽
88 정진 (1) 23.09.27 7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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