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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5.22 00:53
연재수 :
2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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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
글자수 :
865,661

작성
23.09.2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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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인연 (14)

DUMMY

86화


“이런 싸가지 없는 놈! 말본새가!”


노인이 화를 내든 말든, 예의를 밥 말아 먹은 하지운은 제 할 말만 이어 갔다.


“그런데 당신들 면면이 화려하군. 여섯 중에 셋이 백작의 후계자였고, 나머지도 전부 상위 영주들의 피붙이들이었군. 물론 당신들 모두, 나처럼, 집안이 풍비박산됐지만.”

“... 하아... 맞소. 우리 모두는... 육십여 년 전에 폐위당했던 에드거 왕의... 후견인들의 후손들이오.”

“당신 이름을 듣고 혹시나 했는데, 어떤 놈인지 일부러 모았군. 그런데... 크흑.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기지 않소? 그 당시 제프리 왕이, 제 조카를 죽이고 당신들을 멸문시키면서, 상상이나 했겠소? 그놈의 증손주인지 고손주인지가 제 숙부에게서 똑같은 짓을 당하게 될 줄 말이오. 뭐, 인과응보 아닌가?”

“그렇기는 하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그대가 얼떨결에 우리의 복수를 해 준 셈이오. 일단 감사하오.”

“뒤늦게라도 감사하다니, 그 마음만 받겠소.”

“그러시든지. 나도 감사 인사 이상은 할 생각이 없었소.”

“배후로 의심되는 인물 중에서, 험프리를 못 빼고 있는 이유가 이거였군. 제프리 왕 그 미친놈이 일부러, 제 놈이 멸문시킨 가문의 후손들을 모아 놓고, 노예처럼 부려 먹고 있다. 이게 당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각본이 맞소?”

“그렇소. 우리는 우리 뒤에 왕실이 있을 확률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고 있소. 제프리 그놈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소. 제 놈에게 저항하던 고명대신들을 전부 죽여 버리는 걸로는 성이 찰 놈이 아니었지. 살아남은 후손들이라도 어떻게든 찾아내어서,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 놈이었소. 놈은 진정한 변태였거든.”

“그러면 말이 되질 않잖아. 당신들 뒤에 있는 것이 험프리인데, 우리 가문의 원수 명부에 당신들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아니, 우리 가문을 지우는 일만큼 큰일이 또 어디 있다고, 당신들을 한가하게 놀리고 있었다는 것이오? 그 시간에 당신들은 신사 숙녀들의 아랫도리나 염탐하고 있었고?”

“... 사실 그 시기에 상부에서 드레이시와 절대로 적대하지 말라는 전언을 내렸었소.”

“아니! 그러면 험프리는 무조건 아니잖소!”

“......”

“잠깐! 그런 명을 내렸다면 혹시... 당신들의 배후는...”

“......”

“나인가? 혹시 나의 또 다른 자아가 당신들을 부리고 있었던 것인가?”

“제발... 그러지 말라고! 이 미친 어린놈아! 안 그래도 어두컴컴하고 서늘한 홀에서 너와 단 둘이 있는 마당에! 늙으면 안 무서운 줄 아느냐! 네놈 별명이 뭔지 몰라서, 그런 섬뜩한 농담을 하느냐!”

“고정하시오. 피곤하실까 봐 재밌으시라고 한 말인데, 취향에 맞지 않으셨나 보군.”

“네놈의 농담 취향은 확실히 알았다. 내 취향과는 절대 맞지 않는 것이 확실하구나. 다시는 하지 마라. 늙은이의 간곡한 부탁이다.”

“노인네, 겁 더럽게 많네. 그 정도로 늙으면 겁도 없어지고, 죽음에 초연해진다고 그러던데.”

“어떤 놈이 그러더냐? 다 늙어서까지 허세를 못 버리는 병신 같은 놈들 때문에, 내가 지금 뭔 고생이냐! 나보다 먼저 세상 버린 놈들이 무슨 말을 남기고 떠난 줄 아느냐? 죽고 싶지 않다고, 단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고, 내 손을 꼭 잡고 펑펑 울면서 말하더구나. 그게 그놈들의 유언이었다. 늙으면 늙을수록 죽음이 더 무섭지! 왜 안 무서워?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 사무치도록 실감이 나는데!”

“영감도 엄청 죽기 싫은가 보네?”

“야, 이 미친놈아! 세상에 죽고 싶은 놈이 어딨느냐?”

“아아, 영감은 정말 죽기 싫구나. 정말 좋은 정보야! 꼭 기억할게!”

“제프리 그 미친놈이 죽은 해에 네놈이 한 다섯 살쯤 되었겠구나. 안타깝다. 그놈과 네놈이 같은 시기를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둘 중에 누가 더 미친놈인지를 비교하기가 참으로 수월했을 터인데.”

“그런데 영감, 우리 둘이 여기 앉아서 고민한답시고 시간 낭비할 필요가 있나? 험프리는 어차피 내 손에 죽을 것이 당연하고, 나머지 셋은 내가 지나가다 대충 죽이면 그만인데.”

“의심되는 놈을 다 죽이겠다고?”

“셋밖에 안 되잖아?”

“그 셋 다 집안에 거느린 놈이 수백인데?”

“아휴, 금방이야. 한 놈당 삼사 일도 안 걸려.”

“매사에 좀 성의 있게 행동해라! 원수를 대할 때와 무고한 이를 대할 때가 차이가 없지 않느냐! 행동을 좀 가려서 해라, 이 미친놈아! 네놈이 그러니까 내가 칠푼이 같다고 하는 거야.”

“이 영감탱이가! 나를 흉기로 써먹으려고 접근한 주제에, 뭔 같잖은 가식이야? 대충 죽이지 말고, 예의 있고 세련되게 죽이라는 거야?”

“대뜸 죽일 생각부터 하지 말고, 정말 죽여야 할 놈인지 정확하게 파악부터 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죽이기 전에, 대화를 통해, 포섭이 가능한 놈인지를 먼저 확인해야지! 다 죽이면 통치를 어떻게 해? 정말로 밭에서 땅 파던 놈들을 모아, 급하게 글을 가르쳐, 추밀원을 꾸릴 셈이냐? 네놈의 원수가 아머릭이지, 브리갠트 왕국 전체가 아니지 않느냐?”

“결국 죽일 놈을 그쪽에서 추려 주시겠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내가 아까 말했을 텐데. 나나 험프리나 유사한 부류라고. 기수를 등에 업고 말 흉내를 내는 것은,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내가 노력한다고 견뎌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야.”

“누가 너같이 무시무시한 괴수 놈의 머리 위에 앉고 싶다고 했느냐? 서로 거래를 하자는 것이지! 네놈이 귀찮아서 안 하고 넘기는 고민들을 우리가 대신해 주겠다는 것이다. 우리 고민의 흔적들을 네놈이 훑어보고, 결정은 네놈 마음대로 하면 될 것 아니냐! 우리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할 놈이냐, 네놈이?”

“그러니까... 당신들이 내 추밀원 노릇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정확하다. 우리가 그대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편의’가 그것이야. 그대의 말대로, 원수들의 성에 쳐들어가, 재물을 약탈하기만 하여도 돈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제공하는 무력 따위가 그대의 눈에 찰 리도 만무하고. 설마 우리가 다른 ‘부활자’들 인적 정보만 염두에 두고, 그대에게 동업을 제안했겠는가? 그건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나쁘지가 않군. 그리고 당신들은, 그 와중에 당신들의 배후를 제거하고, 차기 왕권 경쟁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시겠다는 말씀이고?”

“정확하네. 사실 그대의 금광은 안 받아도 그만이야. 하지만 계산이 철저한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지. 아무리 그대라 해도, 노동력을 제공하고 빈손으로 돌아올 수는 없지 않은가. 다시 말해, 우리도 그대만큼이나 재물에 대한 간절함이 없다는 말일세. 이미 쌓아 놓은 재물이 어마어마해. 가끔씩은 아무나 붙잡고 자랑하고 싶어 미치겠네.”

“노파심에 말하지만, 내 복수에 방해되면 동업자도 가차 없소. 내 본성은 타고난 것이라, 설득이 통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요.”

“이미 충분히 감안한 사항일세. 그대가 어떤 인간인지 파악도 안 하고 동업을 제안할 놈들인가, 우리가? 그대의 궁극적인 목표가 복수이듯, 우리의 지상 과제는 자립일세. 우리가 자립하든 말든 상관없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라도 이해가 상충하는 일이 생겨도, 우리가 알아서 잘 처신할 것이니, 그대의 심기를 거스를 일은 없을 것이네.”

“영감, 내 마지막으로 물어보지. 당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자립인가? 복수인가?”

“둘 다일세. 그리고 그 둘은 모두 아머릭의 멸망을 통해서만 성립될 수 있네. 그래서 우리에게... 그대는 그 무엇보다도 값지고 소중한 보배일세! 단순한 흉기가 아니야! 반백 년이 넘도록 품어 왔던 원한을 분출하게 해 줄 보검이다!”

“대답 감사하오. 난 이제 궁금한 것이 더 없는데, 영감은 내게 더 물어볼 것이 있소?”

“딱히 없네. 뭐, 궁금한 것이 생겨도, 우리가 스스로 알아내야지. 그게 우리 일 아닌가?”

“끝까지 부활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군. 궁금하지 않으시오?”

“아까도 말했지만, ‘그분’ 혹은 종교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건방지게 발을 들이밀 생각이 없네. 궁금한 채로 참겠네. 아까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가, 악마와의 접촉은 없었다고. 그럼 되었네.”

“현명하시군.”

“하지만... 우리 쪽에서 약간의 작업은 할 걸세. ‘그분’의 의지가 닿은 일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으나, 뭐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

“그대나 다른 ‘부활자’들이나 눈에 띌 수밖에 없어. 이걸 그냥 뒀다가는 성직자들이 동요할 수밖에 없고, 교활한 왕이 그들을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지. 그건 절대로 안 돼!”

“......”

“성직자들마저 우리처럼 왕실의 사냥개 역할을 하는 꼴을 보게 된다면, 내가 분통이 터져서 견딜 수가 있겠나? ‘그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정도의, 아주 하찮은 장난질을 칠 걸세.”


작가의말

 지난 주 분량이 이틀치나 남았는데 벌써 월요일이 끝나가네요.

 몸살 한 번 걸리고 완전히 꼬이네요.

 안 그래도 글 쓰는 속도가 느린데 언제 다 채워 넣을지...

 항상 늦어서 항상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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