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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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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2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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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2,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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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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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는 날 (11)

DUMMY

155화


소피아 양은 늪 속에 있으면서, 하루하루 행복에 겨운 시간만을 만끽했던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열네 살짜리 아이라 하여도 알 건 다 아는 법이다.


가문이 도륙이 난 마당에, 자신만 살아남아서, 생명의 은인인 멋진 남자 친구와 꽁냥거리고 있는 게 과연 용납될 수 있는 일인지 하루에도 열두 번씩 고민을 거듭해야만 했다.


부활한 오라비가 다 알아서 해 놓겠다는 말에 고분고분 따르기로 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현타가 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수줍기만 한 줄 알았더니 사실은 남자다웠던, 멋진 남친이 그녀를 꼭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던 것이다.


오늘 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시야에 오만 가지 희한한 광경이 펼쳐졌다.

오라비의 분신들과 눈이 마주친 행인들이, 빛의 속도로 땅바닥에 엎어진 후,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모습은 뭔가 그로테스크한 감정까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탄식을 하면서 짜증을 내는 복제 인간들과 함께 그녀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병신들이 본체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왜 이렇게 해 대는 거야? 그냥 고개만 까딱하고 갈 길 가라니까.”

“안 되겠다. 청심환이라도 대량 생산해서 서부 전체에 뿌리든가 해야지. 이러다 길바닥에서 송장 여럿 만들겠다.”


그녀의 오라비가 딴 건 몰라도 복수는 어련히 잘했겠나 싶었지만, 이건 잘해도 너무 잘해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불안해지는 소피아 양이다.


드디어 집에 도착한 그녀는 의외로 멀쩡해 보이는 집을 보며, 오히려 괴이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공성전을 한참은 치렀을 터인데, 건물에 흠집 하나 안 난 것이 말이 되나 싶었던 것이다.


외성 안마당으로 말을 타고 들어서던 그녀는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마당 한가운데에 주차되어 있는 마차 한 대를 보고야 만 것이다.


마차에 걸려 있는 것들의 면면을 보고, 어린 소녀는 말에서 뛰어내려 단검을 뽑아 들고는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컬버트 호소인과 래널프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소녀를 말리지 않았다.


말릴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마차 앞으로 다가선 그녀가 알아서 멈춰 버리고 말았다.

가까이서 본 연놈들의 몰골이 상상했던 것보다 한층 더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오라비가 어린 누이를 배려한다고, 연놈들의 몸뚱어리에 거적때기를 감아 놓기는 하였다.

하지만 고작 그걸로 놈들의 외관을 미화시켜 보겠다는 생각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망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말끔하게 치료도 해 놓고 물청소도 해 놓았지만, 연놈들의 맛 간 눈깔은 어떻게 안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정신 치료를 해 놓아도, 금세 도로 미쳐 버리는 지경에 이른 마차 승객들이다.

눈깔이 풀리고 팔다리가 없는 연놈들이 소피아 드레이시 양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한참을 응시하던 그들이 갑자기 발광을 하며 난동을 부렸다.


“끄아악! 드레이시가 하나 더 나타났다!”

“하나로 부족해서! 하나로 부족해서!”

“죽여 줘! 제발 죽여 줘!”

“죽여 주세요! 저 정말 많이 반성했어요! 제발 그 단검으로 제 목 좀 찔러 주세요!”

“조카야! 고모부가 잘못했다! 제발 좀 죽여 다오! 이제 좀 제발!”

“으아아악! 죽고 싶어요! 죽고 싶어요!”


똥오줌을 뿌리며 지랄 발광을 하는 연놈들을 보며, 허탈해진 소피아 양이 힘없이 단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과연 천하의 개망나니 큰오빠였다.

알아서 복수해 놓겠다더니, 정말 제대로 해 놓았던 모양이다.


반년을 넘게 그녀가 보내 왔던 무수한 고뇌의 시간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돌아오던 길에, 오라비가 사람만 족히 사오천 명은 죽였을 거라는, 복제 인간들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지던 소피아 양이었다.

마차에 걸려 있는 네임드 원수들을 보니 그 말이 실감이 가고도 남았다.


찌끄러기들은 삼사 일 정도 갖고 놀다가 죽여 버렸고 두목들만 남겨 놓고 훈육 중이라더니, 그 훈육이 이런 훈육이었던 것이다.


같이 도망치다가 목숨을 잃은 한 살 터울의 오빠 휴의 유품을 주워 든 소피아가 맥없이 고개를 돌렸다.

큰오빠의 장난감에 흠집을 낼 정도로 간이 크진 않았던 그녀는, 내성문 위에서 손짓하는, 사 미터 이십의 갈색 머리 미남에게로 발길을 향했다.


그런 그녀의 등 뒤에서 몸부림치는 연놈들의 절규가 세차게 메아리쳤다.


“죽이고 가! 죽이고 가! 제발 죽이고 가라고!”

“내가 네 어미를! 커억! 흐어억!”

“아악! 잘못했어요! 안 그럴게요!”

“때리지 마세요! 아아악!”

“이 병신 같은 새끼야! 쟤 어미 얘기를 왜 해윽! 끄어억!”

“아아아악! 그냥 죽여 달라고!”


양 귀를 틀어막은 그녀를 래널프 군이 급하게 어깨를 감싼 후 부축해서 내성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더 보고 있다가는 자신들도 함께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울먹이면서 들어서는 그녀의 시야에 점점 정상인의 사이즈로 변해 가는 오라비가 들어섰다.

성벽 계단을 천천히 내려온 맏오라비가 생긋 웃어 보이며 인사말을 건넸다.


“소피아 이 어린것아, 이래도 네가 나와 함께 복수를 하고 다니는 것이 타당해 보이느냐? 어린 여아인 네가 나와 함께 저 마차를 끌고 다녔다면, 남은 네 일생 동안, 어디 얼굴이라도 제대로 비치고 다닐 수 있었을 성싶으냐?”

“아... 아니옵니다... 오라버니... 제가 생각이 짧았사옵니다.”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 쓸데없는 일에 마음 쓸 것 없다. 앞으로 너는 네가 헤쳐 나가야 할 일들에만 집중하도록 하라. 가문의 재건을 위해서 정진하고 또 정진해야 할 것이니,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것이니라.”

“예, 오라버니.”

“래널프 브리즌, 네놈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도록 하라!”

“예, 각하! 말씀하소서!”

“지금까지 나에게 매제가 둘 있었다. 한 놈은 방금 전에 몰골을 보았을 것이고, 남은 한 놈은 며칠 후에 제 놈의 피붙이들 앞에서 내 손에 짓뭉개질 것이다. 감히 내 누이들 가슴에 칼을 박은 놈들을 내가 어떻게 만드는지 똑똑히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평생 이 아이에게 충실해야 할 거라는 말이다. 네놈이 어리다고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은 아니겠지?”

“오, 오라버니... 제발...”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각하, 명심하겠사옵니다!”

“소피아, 너희 둘의 결혼식은 일단 집에서 약식으로 해 둘 것이다. 왕성에서 다시 식을 올려야 하니 이곳에서 굳이 거창하게 할 필요 없다는 말이다. 식을 올린 후에는 왕성의 그레이트 홀에서 너에게 콘체스터와 웨스털랜드, 그리고 어네스퍼드와 앨커스터의 백작위를 넘겨 줄 것이니라. 아, 그리고 웨이버튼과 터싱엄이 소유하고 있던 장원들은 브리즌 가문의 명의로 돌려 두었다. 그래도 작위는 네가 가지고 있어야, 저놈이 딴 짓을 안 할 것 같구나.”

“오라버니... 제발 좀... 그리고 오라버니가 멀쩡히 계시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런 말씀을! 모든 작위를 아직 어린 제가 다 넘겨받는 것은 예법에도 어긋남이.”

“그만 되었다. 허수아비 놈이 나더러 대공인가 뭔가를 하라고 하더라. 분수를 모르고 까분 죄를 그것으로 상쇄하겠다는 속셈이지.”

“대공... 그런 작위가 브리갠트에 있었던가요? 그리고 허수아비는 또 누구를 말씀하시는...”

“론체스터의 개레스 놈을 차기 왕으로 골랐다.”

“아아...”

“그리고 너희 둘이 먹을 피도 준비해 두었다. 컬버트 저놈이 너희 둘에게 시답잖은 것을 먹였을까 봐 내 걱정이 참 많았다. 다행히 제시간에 괜찮은 것들을 먹일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구나.”


그 말과 함께 복제 인간들이 붉은 여우와 흑우 한 마리씩을 질질 끌고 나왔다.


“부족장...”

“그것도 여우머리까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 입이 댓 발 나와 있던 컬버트조차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눈물을 흘리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두 괴물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말을 안 듣는다고 얼마나 쥐어팼을지 알고도 남음이었다.


“흡족해할 줄 알았다. 오늘은 푹 쉬고 당장 내일부터 섭취하자꾸나. 딱 삼 일이면 충분할 것이다. 하하하, 널 마법사로 만들어 놓으면, 가문을 복구시키는데 어려울 일이 무에 있겠느냐. 자잘한 것은 정보 길드의 노인네들에게 당부해 두었다. 원래는 그 늙다리들에게 광산을 하나 떼어 주기로 했었는데,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

“워낙 죽일 놈들이 많아서, 그것들을 다 처리하고 남은 주인 없는 땅은 전부 정보 길드 늙은이들에게 넘겨주기로 하였다. 네가 기반으로 삼을 네 개 주의 땅들만 제외하고 말이다. 거기다 노인네들 목숨도 한 번 구제해 줬으니, 군소리 없이 널 보필할 것이다.”


그녀의 오라비는 계획이 다 있었던 것이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오라비의 야심 찬 인생 대리 설계에, 어질어질해지는 소피아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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