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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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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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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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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2,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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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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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2)

DUMMY

134화


벨라강을 건너 베이퍼드주를 가로지른 후, 애슈비주의 중심지인 애슈비 성에 당도하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거버스를 비롯한 혼성 삼인조의 장한 모습을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 느긋하게 마차를 몰았음에도, 두 개 주를 거의 관통하는 데 고작 열흘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이것만 봐도 베이퍼드주 내에서 거버스 영감의 장악력이 어떠했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베이퍼드주 내의 상위 영주 중, 거버스를 따라서, 콘체스터 성으로 깽판 치러 갔던 놈이 한 놈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틸리얼 가문 휘하의 영주들 중 일부가 그 당시 거버스를 수행하기는 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당연하게도, 틸리얼의 종자들이 도주할 때, 뒤따라서 몰번주까지 달아나 버렸다.


베이퍼드주 안에 찾아가 조질 놈이 한 놈도 남지 않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칠십여 년 전 이곳의 가장 금싸라기 땅을 차지한 한 젊은 새끼가, 백작이랍시고 나타나서, 온갖 개갑질을 해마다 쉬지 않고 해 왔던 것이다.


북부 변경의 몰번주에서야 틸리얼 가문의 선조들이 수백 년 동안 해 온 것이 있으니, 아직도 관계를 유지하는 가문들이 몇 남아 있기는 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곳은 전혀 그런 것이 없다.

대마법사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그동안 고분고분해 왔던 것이지, 실상은 다들 가슴속 깊은 곳에 수십 자루의 비수를 품어 왔던 것이다.

오늘 같은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빌면서 말이다.


“야, 거버스. 너 쟤들 엄마도 납치해서 겁탈했냐?”


하지운이 며칠째 마차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는 오십에 육박한 신사들의 무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영감이 대답할 엄두를 못 내고 고개를 떨구어 버렸다.

두 번 묻는 것을 싫어하는 하지운이 바로 맹렬한 채찍질을 가한 후 다시 물었다.

피범벅이 된 노인네가 숨을 헐떡이며 겨우 대답했다.


“그, 그렇다...”


궁금증을 해결한 하지운이 고개를 돌리고, 시뻘게진 채찍을 흔들어 줬다.

금세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나이 지긋한 신사들 중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기뻐하는 자도 몇몇 눈에 띄었다.


“참 큰일 했다. 이 죽지도 않은 병신 새끼야. 앞으로 네 양물을 무슨 수로 보존하냐? 북부에 가면, 제발 잘라서 팔아 달라고, 금덩어리 들고 애원할 놈이 천지일 텐데. 내가 안 팔겠다고 하면, 자객을 보내서라도 잘라 가려고 할 거 아냐.”

“흐윽...”

“걱정 마. 내가 끝까지 지켜 줄게. 어둠의 마력에 대한 조예가 깊어지면, 너희를 가지고 갖가지 실험을 해 볼 거야. 그때를 위해 너희의 생식 기관은 반드시 달려 있어야 해.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마. 내가 있잖아.”

“어흑!”


이 동네에 크리스마스가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십이월 이십오 일에, 살면서 들어 본 가장 끔찍한 위로를 받은, 혼성 삼인조가 절망의 눈물을 뿜어 댔다.

한겨울에 홀딱 벗은 남녀가 흘려 대는 눈물을 데우지 않은 물대포로 씻겨 줬다.


“시끄러워! 그만 훌쩍거려. 너희가 뭘 잘했다고 울어? 너, 부녀자 강간을 전문으로 하는 늙은 방화범! 그리고 처자식을 죽인 버러지 같은 로... 아니, 우리 매제! 수백 명의 애새끼를 고문하고 죽인 이 미친년까지! 네깟 것들이 몇 대 맞았다고 우는 게 가당키나 하냐? 뚝 그쳐, 이 벌레 같은 종자들아! 앞으로 시끄럽게 굴면 서방들을 불러내서, 걔들 똥구멍에, 너희 대가리를 박아 놓고 걸어 다니게 할 거야. 아주 시끄러워서 못 살겠어, 이 병신 같은 것들 때문에!”


베이퍼드주에서부터 따라온 신사들의 열정적인 환호성을 음미하며 애슈비 성으로 진입했다.

이 성의 상황도 베이퍼드 성과 다른 게 거의 없었다.

굳이 찾자면 시가지 한복판에 거대한 야외 공연장이 이미 완성돼 있고, 그곳에 털 뭉치를 칭칭 감은 때깔 좋은 이백여 명의 신사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천천히 접근해 오는 죽음의 체험 마차를 바라보며, 지체 높은 신사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하지운은 잠시 프리미어 리그 선수들이나 느낄 법한 뿌듯함을 만끽해 보았다.

하지만 이윽고 이들을 실망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 오는 걸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원래 경매를 위해 준비해 놓았던 단상에 오른 하지운이, 북부 변경과 베이퍼드주의, 대영주 서른여섯 명과 이백이십여 명에 이르는 그들의 수행원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여러 고귀한 신사분들, 만나서 반갑소. 내가 바로 그 로저 드레이시외다. 몇몇 분들은 전에 뵌 적이 있는 듯한데, 처음 뵙는 분들이 더 많은 듯하오. 날씨도 쌀쌀한데, 안면도 없는 이 몸의 초청에, 이토록 열렬히 응해 주시어 감읍할 따름이오.”


한차례의 박수갈채가 지나간 후, 하지운은 극도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사과의 말을 전했다.


“지체 높은 신사분들을 모셔 놓고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소. 오늘 경매에서 저 돼지 새끼의 팔다리만 판매를 하려 하오. 다른 부위는 사정이 생겨 경매에 붙일 수 없음을 사죄드리오.”


그러자 금세 좌중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내 한 초로의 신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하지운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무슨 말씀이시오! 저 버러지 같은 놈의 양물을 잘라 가기 위해 가보까지 챙겨 왔단 말이오! 머리통이나 양물이 아니면 의미가 없소! 놈의 양물을 내게 파시오! 가보... 아니! 우리 가문 소유의 장원 스무 개를 넘기겠소! 그대의 땅에서 가까운 벨라스터주와 벨램튼주에 있는 것들이오!”

“뭐, 뭐요? 이보시오, 월드리지 공! 당신 미쳤어?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 경매에 장원을 걸면 어떡하오? 당신 때문에 경매가 엉망이 되게 생겼잖소!”

“걸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이덜리 공, 당신이야말로 돈 없으면 빠지면 되잖소!”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당신 가문에서도 알아?”


난감해진 하지운이 급히 두 영주를 말렸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결투라도 벌이겠다고 난리를 칠 것 같은 분위기였던 것이다.

억누르고 있던 살기를 살짝 흘린 하지운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내질렀다.

대경실색한 좌중의 신사들이 진정을 하고 하지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들을 실망스럽게 만든 것은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오! 하지만 거기엔 내 나름의 깊은 고민이 있었소! 오늘 저 늙은 돼지의 모가지를 떼어 버리면, 돈도 벌고 짐짝도 하나 줄어드니, 내 입장에서 나쁠 게 하나도 없소! 그렇지만 여러분! 저놈은 우리 집안의 철천지원수이기도 하나, 여러분의 철천지원수이기도 하오! 저렇게 지은 죄가 많은 놈을 그렇게 쉽게 죽여 버려도 정말 괜찮으시겠소?”

“그러면 어찌 하시겠다는 거요? 어차피 죽일 생각 아니셨소? 몰번에 숨어 들어간 놈의 피붙이들 앞에서 죽이시려는 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가 놈의 피붙이들을 붙잡아 놨어야 했던 거였소?”


론체스터 백작 개레스 먼틸리의 질문에, 만면에 웃음을 띤 하지운이 한층 더 정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오랜만입니다, 개레스 공. 정정하신 모습을 보니 진심으로 기쁘오. 놈을 살려 두려는 이유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놈을 피붙이들 앞에서 죽이는, 그런 감상적인, 장면 하나를 만들어 놓고 만족해 버리기에는 내 원한이 너무도 깊습니다.”

“그럼 어쩌시려오?”

“폰틸랜드의 백작께서도 오셨구려. 오랜만에 뵙소이다. 공께서도 건강해 보이셔서 마음이 놓이오.”


이 자리에서 가장 비중 있는 두 인물에게 인사를 건넨 하지운이 슬슬 본론에 들어갔다.


“여러분들께서도 다들 들어서 알고 계실 것이오. 나를 비롯한 ‘부활한 자’들은 ‘그분’의 하해와 같은 은덕을 입어, 신묘한 권능을 한 가지씩 얻어 왔소. 내가 몇 달 전 차지한 권능 중에 죽은 자를 일으키는 능력이 있소. 이 능력을 사용하던 중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되었소. 죽은 자들의 몸뚱어리를 조합해서, 아주 재미있는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말이오. 나는 저 돼지와 여러 괴물들을 교미도 붙여 보고, 시체에서 이것저것 잘라서 저 돼지의 몸뚱어리에 붙여 볼까 생각 중이오.”

“......”


좌중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저 돼지 새끼와 여러 암컷 괴물들을 접붙이려 하는데, 어찌 놈의 생식기를 잘라 드릴 수가 있겠소. 딱히 없어도 무방한 팔다리만 경매에 올리는 걸 이해해 주시오. 경매가 끝나면 놈을 가지고 공연을 보여 드릴 생각이오. 여러분들께서도 익히 들어 보셨을 것이외다. 늙은 놈이 새색시 저리 가라 할 정도요. 보시면 다들 매우 만족하실 것을 내 확신하오. 서부 변경에서는 본 거 또 보고 싶어서 마차를 따라다니는 자들도 있었소. 공연 중에는 추첨을 통해 세 분을 선정하여, 직접 채찍질을 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질 것이오. 내 장담컨대, 여러분 모두 귀가하시는 길에 흡족한 웃음을 띠게 되실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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