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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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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2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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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2,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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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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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는 날 (5)

DUMMY

149화


벨라스터주의 무리들이 예물을 풀어 놓고 떠나려는 순간, 또 다른 무리가 체험 마차를 급습했다.


“하아, 이것들은 또 뭐냐?”

“어! 저 영감...”

“아! 씨발! 큰일 났다!”

“야! 마차 짊어져! 그냥 튀자!”

“그래! 수레랑 저 병신 세 마리도 그냥 들어!”


떠나려던 젊은 백작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허파가 찢어지도록 웃어 대는 젊은 가주를 일으켜 세우려, 당숙과 펀트니 가문의 노인들이 진땀을 빼야 했다.


“어딜 가려 하느냐, 이놈들! 로저 놈은 당장 내 앞으로 나서라! 내 오늘 이 자리에서 반드시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겠다! 내 딸을 죽인 김에 나까지 마저 죽여라!!”


현재 마차가 멈춰 있는 이곳은 폰틸랜드주와 맞닿은 벨라스터주의 북쪽 외곽 지역으로, 엄연히 펀트니 가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지역이다.

그런 곳에 벨램튼주의 수장인 오즈번 루지먼트가 사병을 이끌고 들이닥친 것이다.

벨라스터의 백작인 나이절 펀트니가 눈감아 주지 않았다면 발생할 수가 없는 일이다.

오즈번 루지먼트는 외동딸의 원수를 갚겠다고,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는 이들에게까지 적대 행위를 할 인물이 아니다.


복제 인간들이, 브리갠트에서 개망나니 올림픽을 열면 메달권에 들고도 남을, 나이절 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흙바닥에 자빠져 뒹굴던 놈이 따가운 시선을 느꼈는지, 잽싸게 일어나서 말 위에 뛰어 올랐다.


“만나서 반가웠소, 로저의 찌꺼기들! 살펴 가시오! 나는 바빠서 이만 가 봐야겠소! 즐거운 시간들 되시오! 푸하하하하!”

“저 새끼 그냥 보내지 말고 죽일까?”

“그러자. 본체가 지랄하든 말든 쫓아가서 죽이자.”

“기다려. 내가 죽이고 올게.”

“그래라. 내가 영감네 졸개들을 상대하고 있을게.”


한숨을 푹 내쉰 일 호가 이삼사오의 앞을 가로막고 쌍욕을 퍼부었다.


“아, 씨발! 병신 새끼들아! 지랄 좀 하지 말라고! 우리가 분신이지 본체야? 본체가 시키는 것만 하란 말이야! 아무리 본체가 미친놈이라지만... 아니, 어떻게! 분신들까지 하나같이 다 미친놈들일 수가 있어? 아오, 진짜! 다 때려 죽여 버렸으면, 속이 후련하겠네!”

“진정해라, 일 호야. 영감이 할 말이 있나 보다. 너 때문에 말을 못하고 있잖아.”


짜증이 심하게 난 일 호가 살기를 억누르는 걸 깜빡했다.

기세등등하게 몰려들던 루지먼트의 용사들이 얼음처럼 굳어 버린 채, 더 이상 다가오질 못하고 있었다.

목을 몇 번 비틀며 우드득 소리를 내던 일 호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웃는 낯으로 오즈번 루지먼트 앞으로 다가갔다.


“처음 뵙는구려, 루지먼트 공. 만나서 반갑소. 한데 안타깝게도 로저 놈은 여기에 없소이다. 우리는 놈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분신들이오. 전할 말씀이 있으면 해 보구려. 내 그대로 전해 드리리다.”

“놈은 어디에 있느냐?”

“당연히 집에 있지 않겠소. 우리에게 심부름을 시켜 놓고, 제 놈은 집에서 편하게 놀고 있는 중이오.”


이를 뿌드득 간 루지먼트 공이 가문의 용사들에게 고함을 쳤다.


“헛걸음을 했다! 모두 말에 올라라! 콘체스터에 있는 놈이 진짜였던 모양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콘체스터로 간다!”

“가주, 진정하십시오! 이 병력으로 그곳은 무립니다! 콘체스터 외곽에 놈의 환심을 사려는 놈들이 쫙 깔려 있다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뚫고 들어가려 하십니까?”

“맞습니다, 형님! 진정하시고, 일단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지요. 어차피 놈은 왕성으로 가야 합니다. 놈이 웬도버로 출발했다는 기별이 오면, 그때 길목에서 놈을 기다리고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 루지먼트 공. 그냥 놈에게 가지 마시오. 아그네스 양이 원치 않을 것이오. 아그네스 양과 마틴 군이 죽기 전에 놈과 약속한 것이 있소. 그 약속을 생각했을 때 당신과 당신의 육촌 동생이 놈의 손에 죽을 경우, 그 둘은 개죽음을 한 것과 다름없소.”


말머리를 돌리던 벨램튼 백작이 고개를 홱 돌리며 일 호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잠시 후 말 위에서 몸을 날려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나이를 잊어버린 노백작이, 일 호의 멱살을 움켜쥔 채, 잡아먹을 듯이 고함을 질러 댔다.


“그게 무슨 소리냐? 당장 말해 보아라!”

“빠짐없이 말할 터이니 제발 이것 좀 놓고... 좀 떨어져서... 침이...”


노백작이 어찌나 흥분했던지, 육십 센티가 넘게 큰 일 호의 면상까지 천연 미스트를 아낌없이 뿌려 주었던 것이다.


거친 숨을 몰아쉰 벨램튼 백작이 일 호의 멱살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일 호가 허공에 물줄기를 만들어 놓고 세수를 하는 동안, 이 호와 삼 호가 대신 노백작 앞으로 나섰다.


“그대의 따님과 사위가 될 뻔했던 분의 죽음에 우리 본체 놈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인정하오.”

“맞소. 우리가 놈에게서 만들어진 분신들이기는 하나, 놈이 개잡놈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소.”

“맞아, 맞아. 아주 씨발놈이야.”

“좆같은 새끼지.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어후... 못 배워 먹은 새끼.”


자신이 할 욕을 충실히 다 해 주는 복제 인간들을 보며, 입을 반쯤 열었던 백작이 도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지만 아그네스 양과 마틴 군이 부활한 이후의 일은 우리 본체가 사과할 일이 아니오. 우리 본체와 그 둘은 ‘그분’의 은혜를 입어 부활한 ‘시험에 든 자’들이오. 마지막 한 명만이 그분의 전사로 뽑힐 수 있는 시험을 치르는 중이었단 말이오. 자애로운 ‘그분’께서는 부활자들이, 시험을 치르는 와중에, 사적인 원한을 푸는 것도 허락해 주신 것이란 말이오.”

“그 말은...”

“그렇소. 따님이 먼저 우리 본체에게 보복하겠다고 기습을 했다가, 역으로 당한 것이오. 마틴 군도 마찬가지요. 아그네스 양의 원한을 갚겠다고 검을 뽑았다가, 간악한 놈의 손에 운명한 것이란 말이오.”

“으음...”

“이보시오, 오즈번 공. 공은 자부심을 가져야 하오. 총 서른 명의 부활자 중 우리 본체 놈에게 살해당한 이가 스물여섯이오. 단 한 명만이 로먼트 가문의 따님에게 살해당했고, 루시아 먼틸리와 컬버트 브리즌은 조금 더 살려 두기로 본체 놈이 마음을 먹은 상태요. 사실상 모든 부활자들이 놈에게 제압당한 상황이라는 말이오.”

“한데 그들 중 우리 본체 놈의 몸뚱이에 상처를 입힌 자는 오직 한 사람밖에 없소. 그 용맹한 이는 바로!”

“설마!”

“로저 드레이시에게 상처를 입혀...”

“네놈...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 설마 내 딸이? 아그네스가?”

“그렇소!”

“맞소! 아그네스 루지먼트 양이 무려 놈의 낯짝에 칼질을 했단 말이오! 비록 잠깐이기는 하지만 놈을 제압해서 쓰러뜨리기까지 하였소! 놈이 놀라서 살살해 달라고 우는소리까지 하였단 말이오!”

“뭐... 뭐라!”

“세상에... 그 아이가... 말도 안...”

“사실이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로저 놈에게서 만들어진 분신들이오. 놈의 기억을 고스란히 공유하고 있다는 말이오. 우리가 미쳤다고 없는 사실을 꾸며 내겠소?”

“맞소! 놈은 이 사실이 새어 나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이오! 제발 그대들만 알고 있으시오! 소문이 나면 본체 놈이 눈이 뒤집혀서, 따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공을 죽이러 올 것이오! 그건 너무 슬픈 일이지 않소... 따님이 얼마나 애썼는데...”

“부활한 따님의 무용은 대단했소! 본체 놈이 상처를 회복하는 능력이 있다는 소문은 들으셨을 게요. 그래서 아그네스 양의 대단했던 활약이 묻혀 버린 것이오. 그 능력만 아니었다면, 난도질당했던 놈의 면상이 백일하에 드러났을 터인데...”

“아아... 아그네스... 내 딸이...”

“마틴 경의 활약도 대단했소. 그 청년은 고대의 괴물을 소환했단 말이오. 본체 놈이 어찌나 놀랐던지 말도 제대로 못했었소. 진짜요!”

“엄청난 괴물이었지. 몸길이가 못해도 십 미터는 넘어 보였소. 끔찍한 마물이었어. 이건 우리 분신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인데... 본체 놈은, 그날의 기억 때문에,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소. 절대 어디 가서 소문내면 아니 되오! 놈이 오랜만에 망치를 두 자루나 꺼낼 수도 있소!”


복제 인간들은 아직 입술에 침을 바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거짓말이 청산유수다.

과연 미친 소시오패스의 분신들다웠다.


“그런데... 그 못난 놈은 어쩌다가... 죽었던 것이냐?”

“그대는 마틴 경의 부친이오?”

“그렇다... 내가... 워린 피츠램버트다.”

“공은 그리 말하면 아니 되오! 마틴 경은 그날 밤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벨램튼 성으로 되돌아가던 중이었소!”

“그런데... 어찌...”

“안타깝게도 그만... 늪에서 기어 나와 배회 중이던 래서투스들과 맞닥뜨려 버리고 만 것이오.”

“래서투스? 불사신들이 우리 주에까지 들어왔었단 말이냐? 이곳 벨라스터도 아니고!”

“그렇소, 백작! 마틴 경이 그날 엄청나게 불운했던 것이오. 수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을 겪었던 것이지.”

“이게 다 우리 본체 새끼 때문이야! 그 새끼만 아니었으면, 그 어린 친구가 그런 끔찍한 밤을 보냈을 리가 없잖아!”

“파렴치한 놈! 우리 본체는 정말 구제 불능의 쓰레기야!”

“맞아! 싸움 잘하는 거 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불량배일 뿐이야!”


복제 인간들의 선의의 거짓말은 끝이 날 줄을 몰랐다.

본체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복제 인간들이 쉴 새 없이, 구라가 잔뜩 섞인, 두 사람의 영웅담을 토해 냈던 것이다.

듣고 있던 루지먼트 가문 사람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멈출 줄을 모르고 쏟아져 나왔다.

집에 있던 하지운의 주둥이에서는,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들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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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겨울 여행 (5) 24.01.11 30 1 9쪽
137 겨울 여행 (4) 24.01.09 31 1 9쪽
136 겨울 여행 (3) 24.01.07 32 1 9쪽
135 겨울 여행 (2) 24.01.04 3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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