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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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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26 23:4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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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42,693

작성
24.01.0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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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겨울 여행 (1)

DUMMY

133화


“너희 중에 힘을 키워서 나에게 복수하려는 자가 있다면 지금 나서라. 너희 따위가 아무리 힘을 키워도 복수가 안 될 것이니, 지금 미리 편하게 만들어 주마. 너희 중에 종가가 몰락했다고 속으로 좋아하고 있던 자들도 지금 다 나서라. 이번에 작살낸 아홉 가문의 토지 소유권은 내가 내 마음대로 행사할 것이다. 나중에 웬 병신 같은 게 상속권을 주장하고 나서면 귀찮아지니, 지금 전부 죽여 주마. 그때 돼서 너희 따위를 죽인다고 여기까지 헛걸음질할 걸 생각하면, 벌써 짜증이 치민다. 뭐 하냐? 빨리 나서라.”


나서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은 지금 복수고 상속이고 나발이고, 그냥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 마음만 간절할 뿐이었다.

미친 마귀가 설쳐 대는 이 저주받은 성에서 0.1초도 더 머물고 싶지 않은 게 그들의 참된 속마음이다.


“앞으로 쥐 죽은 듯이 살아라. 너희가 저 안에 남아 있는 것들보다 딱히 나은 점이 있어서 살려 두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노예로 끌려온 포로들에게 했던 짓거리를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거기 뒤에 쭈그리고 있는 너희 하찮은 하녀 년들도 죽여 버리려면, 명분은 차고도 넘친다. 너희가 살아남은 이유는 오로지 너희 모두가 지극히 하찮아서다. 고작 너희 따위에게 내가 직접 손을 쓴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겠느냐? 괜히 언행을 함부로 하다가, 내가 직접 찾아오게 하지 마라.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얼마나 귀찮아하겠느냐?”


외성 안마당에서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하지운의 협박 섞인 일장 연설을 들은 생존자들이, 외성문 앞에서 대기 중인, 정보 길드 요원들에게로 우르르 몰려갔다.

본가의 상속권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으로 가득 찬 문서에 잽싸게 서명한 생존자들이 기쁨에 흐느끼면서 외성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미, 내성의 게이트하우스에 달려 있던, 도개교를 뜯어서 외성문 앞에 걸쳐 놓은 터라 출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구 마차에 달려 있던 짐짝 셋과 머리통 셋을 새 마차에 옮겨 단 정보 길드 요원들이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멀어져 갔다.

하지운은 새 마차 앞에 소머리 좀비 서른 마리를 배치시켜 둔 후 내성으로 도로 들어갔다.

갈 때 가더라도 청소는 다 해 놓고 가려는 개념 있는 하지운이다.


내성 안에는 총 육백삼십여 마리의 인간 좀비와 곧 좀비로 거듭날 오백육십육 명의 용사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인간 말종 하지운이 돌아오자, 악담을 퍼붓는 이들부터 목숨 구걸을 하는 자들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이 저마다 활기찬 모습을 보여 주었다.


뭇 용사들의 마지막 악다구니를 음미하며, 육백 마리가 넘는 좀비들을 순식간에 소멸시켜 버렸다.

놈들에게 주입해 놓았던 어둠의 마력을 회수하자마자, 모든 좀비들이 금세 평범한 인간의 시체로 되돌아갔다.

그 시체들을 염동력으로 한자리에 모은 다음, 그 밑에 어제처럼 싱크홀을 만들었다.


남은 시체 한 구 없이 그 안에 전부 밀어 넣은 하지운이 집채만 한 불덩이를 구덩이 위에 띄웠다.

알몸의 용사들이 포근한 온기를 느끼며 조용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

눈앞에 있는 놈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다시금 깨달아 버리고 만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육백삼십여 구의 시신을 재 가루로 만들어 버린 하지운이, 구덩이를 그대로 둔 채로, 입담 좋은 용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는 하지운의 오른손에 또다시 괴상한 철퇴가 쥐어져 있는 게 뭇 용사들의 눈에 띄었다.


용사들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들 마지막을 직감한 것이다.

하지운이 외성에서 싸가지 없는 연설을 하는 동안, 인간 좀비들은 거동이 불가능한 용사들을 내성 안마당에 오와 열을 맞추어 깔아 놓았다.

그들 모두를 최단 시간 내에 골렘으로 찔러 죽이기 위해, 하지운이 미리 지시해 둔 것이다.


용맹한 전사들이 위아래로 쏟아 내기 전에 냄새에 민감한 하지운이 달리기 시작했다.

득달같이 달리면서도 정확하게 좌우의 바닥으로 뾰족한 골렘을 쑤셔 댔다.

일 분이 채 되기도 전에 달리기를 끝낸 하지운이, 누락하고 지나쳐 버린 이가 있진 않은지, 한 번 더 확인을 했다.

확인 과정이 다 끝나기도 전에, 명치에 구멍 난 오백육십육 인의 용사들이 숨을 거두었다.

그들까지 모두 좀비로 만든 하지운이 소멸 과정까지 싹 다 끝마치고 구덩이를 덮어 버렸다.


바로 전날까지 천 명이 넘는 인간이 북적거리던 성을 귀곡 산장으로 만들어 버린 하가 놈이, 아성 안에 쌓아 둔, 아홉 집구석의 패물까지 모조리 다 챙기고서는 미련 없이 성문을 나섰다.

이제 드디어 거버스 영감의 집에서 패악질을 할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다음날 새 마차를 앞세우고 영감의 집으로 놀러 가는 하지운의 얼굴이 어둡다.

거버스 영감의 얼굴은 더 어두운 상태이다.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두 남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다.


어제 리들스덴 성을 나선 후 바로 벨라강을 건너 현재 베이퍼드주를 가로지르고 있는 중이다.

막상 베이퍼드주에는 영감을 따라다니면서 졸개 짓을 하는 가문이 많지 않다.

거기다 베이퍼드도 벨라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만들어진 성곽 도시이다 보니, 오늘 내로 들이닥치는 게 충분히 가능한 상태다.


그런데 방금 굉장히 좋지 않은 소식이 도착하고 말았다.

리들스덴 성에서의 비보를 전해 들은 틸리얼의 종자들이 결국, 가주를 버리고, 몰번주에 있는 블레이든 성으로 도주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오늘 아침 댓바람부터 한 짐 가득 싸 든 것들이 부지런히 달아나 버렸다고 한다.


북적거리는 시가지와는 달리, 시가지의 북쪽 언덕 위에 위치한, 거버스의 성에는 어리친 개 새끼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정보 길드 요원들이, 직접 들어가서 꼼꼼하게 확인을 마쳤다는, 말까지 덧붙이고 가서 하지운의 심기가 더욱 불편해져 버린 것이다.


목을 좌우로 꺾으며 채찍을 꺼내 든 하가 놈이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젊은 백작 대니얼이 오줌을 질질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금세 분위기 파악을 한 연쇄 살인마 마저리 양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늙은 백작 거버스 공이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하지운의 분이 풀릴 때까지, 그러니까 마차가 베이퍼드의 성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셋은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을 미친 듯이 왕복했다.


체험 마차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베이퍼드 시가지의 성곽을 경비 중인 병사들이 돌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한나절을 고민했지만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판국에, 죽음의 마차가 결국 당도해 버리고 만 것이다.

두 패로 나뉜 경비병들이 아침부터 내내, 성문을 닫을까 말까를 두고, 피 말리는 논쟁을 이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중간하게 내려져 있는 격자문을 걷어차 부숴 버린 하지운이 제집 안방에 들어가듯 거침없이 지나가 버렸다.

그 뒤를 피투성이 산송장 세 구를 매단 마차 한 대가 조용히 따랐다.


틸리얼의 병사로 쳐줄 가치도 없는 하찮은 외곽 경비병들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 하지운이었다.

하루의 반에 가까운 시간을, 아무런 가치도 없는 논쟁에, 허비한 병사들이 멍한 표정으로 마차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시가지의 중앙 광장으로 마차를 이끈 하지운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고함을 들이질렀다.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기어 나와서, 곧 죽을 너희의 영주 놈을 접견하라!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면, 내일 아침에 바로 떠날 것이니라. 아무도 다칠 일이 없을 것이니, 꾸물거리지 말고 당장 튀어 나오너라!”


체험 마차의 미친 꼬라지를 보고 허겁지겁 달아났던 주민들이 하나둘 기어 나왔다.

말 그대로 기어서 나왔다.

어느새 튀어 나온 정보 길드 요원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공연장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화가 다 풀린 거 같던 하지운이 언덕 위에 보이는 베이퍼드 성을 올려다보고는, 다시 눈알을 희번덕거리기 시작했다.

세 구의 피투성이 시신 비슷한 것에서 누런 물이 좔좔 쏟아졌다.

공연장을 준비하던 정보 길드 요원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못 본 척하려 애썼다.


겨우 진정을 한 하지운이 마차와 산송장을 물청소한 후, 치료 마법과 정화 마법을 발동했다.

셋 다 정신이 반쯤 무너져 내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 베이퍼드의 주민들은 무려 두 시간에 이르는 소름 끼치는 공연을 강제로 관람해야만 했다.

이곳에서 칠십 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신처럼 군림해 왔던 한 노인의, 처참하다는 말로도 절대 담아내지 못할, 곤두박질을 기억할 증인들이 돼야만 했던 것이다.


몇 번이나 혀를 깨물고 죽으려 해도 웃으면서 방해하는 하지운이었다.

거버스의 입만 보고 있는 것인지, 깨물기가 무섭게 염동력으로 입을 틀어잡고 치료해 버리는 마귀 놈이었다.

다른 두 명과는 달리 거버스의 입에는 절대 재갈을 물리지 않았다.

마음껏 비명을 지르게 해 주려는 하가 놈의 비열한 배려였던 것이다.


대마법사님은 그렇게 자신이 다스리던 수천 명의 주민들 앞에서 걸레짝이 돼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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