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26 23:47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22,972
추천수 :
529
글자수 :
942,693

작성
24.01.17 02:09
조회
27
추천
1
글자
10쪽

겨울 여행 (8)

DUMMY

140화


눈곱도 떼지 못한 두 남녀가 허겁지겁 옷을 걸치고는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그들 앞에는 이미 스무 마리의 소머리 좀비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괘씸한 불륜 커플을 조지기 위해, 모텔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조폭들 그 자체였다.

감히 형수님과 눈이 맞은, 간이 무등산수박만 한, 상간남을 있다 없게 만들기 위해 회칼을 갈고 온 딱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이제야 기어 나오는 거냐는 듯, 비릿한 웃음을 지은 좀비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목을 좌우로 꺾었다.


연인의 앞을 막고 선 용맹한 젊은이가 오른손을 내밀면서 마력을 일으켰다.

젊은 용사의 오른손이 부풀어 오르더니 거대한 공처럼 변해 갔다.

잠시 후 거대한 공은 점점 형태를 잡아가더니 젊은이의 손에서 떨어져 나왔다.


젊은이와 완벽히 빼다 박은 알몸의 클론이 탄생한 것이다.

젊은 용사가 코피를 훔치며, 수납장에서 꺼낸 반바지와 검을 자신의 분신에게 건넸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반바지와 검으로 무장한 용맹한 분신이 좀비 스무 마리에게 달려들었다.

소머리 좀비 한 마리가 앞으로 튀어 나와 용맹한 분신을 맞이했다.

본체의 검술을 완벽히 구현할 수 있는 분신이 좀비의 명치에 그림 같은 찌르기를 성공시켰다.


명치 아니라 뇌에 검이 박혀도 그러려니 할 법한 좀비가 두 손으로 검날을 움켜쥐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좌우에서 각각 두 개씩의 사슬 달린 쇠공이 날아들었다.

금세 당황한 분신의 양 팔목과 양 발목을 굵디굵은 사슬들이 꽁꽁 싸매 버리고 말았다.

인상이 말도 못하게 더러운 소머리 좀비 네 마리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사정없이 사슬을 잡아당겼다.

두 마리는 사슬을 높이 쳐든 상태고, 남은 두 마리는 몸을 굽힌 채 사슬을 잡고 있었다.


순식간에 분신의 사지가 벌어진 채로 공중에 매달려 버린 것이다.

구경 중이던 좀비 하나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분신의 반바지를 잡아 찢어 버렸다.

그걸 보고 처음에 나섰던 좀비가 명치에 박혀 있던 검을 잡아 뽑은 후, 분신의 가랑이 사이에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가로베기를 해 버렸다.


너무도 끔찍한 광경에 두 남녀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피해자가 클론이라서, 고통을 느끼고 비명을 지르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검을 현란하게 돌리며 날에 묻은 피를 털어 버린 좀비가 뒤로 물러섰다.

잠시 후, 가장 멀찍이서 짝다리를 짚고 있던, 좀비 한 마리가 엄청난 기세로 달려 나왔다.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분신의 등 뒤 십여 미터 지점에서 뛰어 오른 좀비가 허공에 누운 자세로 두 바퀴를 돌았다.

그런 후 왼발로 착지하면서 날린 오른발 뒤 차기가 분신의 등판 한가운데에 작렬했다.


엄청난 충격에 분신의 몸통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양팔과 양다리는 남겨 둔 채로 말이다.

검을 꼬나 쥐고 있던 검객 좀비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던 분신의 몸통 뒤를 스쳐 갔다.

좀비 검객이 좌측 상단으로 들어 올렸던 검을 내리기가 무섭게, 분신의 몸통이 흙바닥에 처박혔다.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머리통도 뒤따라 떨어졌다.


완벽한 형태의 거열형이 이루어진 것이다.

삼십 미터 밖의 아름드리나무 뒤에 숨어 있던 하지운이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터뜨렸다.

같이 울먹이고 있던 승아도 못 참고 눈물을 쏟아 내 버렸다.


「자기야, 왜 울어... 흐윽... 울지 마... 바보... 넌 뻑하면 울어...」


‘승아야, 나 여기 와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있어! 네 덕이야! 사랑하는 자기 덕에 상상만 하던 걸 다 해 보고... 사랑해! 영원히 네 개가 될게!’


「어흑... 영원히 예뻐해 줄게! 우리 귀여운 멍멍이...」


승아를 제외한 모든 저승사자들이 헛구역질을 하면서 ‘우웩, 씨발것들이 염병을 하고 자빠졌네!’, ‘아오! 듣기 싫어 죽겠어!’, ‘씨발! 안 들은 귀 거액에 삽니다!’ 등의 쌍욕을 퍼부었다.

저승사자들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할 고통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지운에게 큰 관심이 없었던 다른 저승사자들은 모르고 있던 일이지만, 전생에 작가였던 하가 놈은 무협 소설을 연재하다 때려치운 적이 있었다.

승아가 듣는 데서는 한자 사전을 뒤지는 게 지겨웠다느니 하는 개뻥을 쳤지만, 사실 조회 수가 안 나와서 중도 포기를 당했던 것이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하지운도 알고 승아도 아는 사실이다.

그 소설은 ‘영 좋지 않은 사고 후 이혼당했는데 환생해 보니 동창 무술을 잘함’이라는 제목을 가진 무협 환생물이었다.

주인공이 익힌 무근신공(無根神功)을 십팔 성까지 연성하면 강시술을 쓸 수 있게 되는데, 그걸 지금 하지운이 보는 앞에서 소머리 좀비들이 구현해 낸 것이다.


그 소설을 연재 중단할 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승아였기 때문에, 하지운이 흘리는 뜨거운 눈물의 의미를 그 누구보다 가슴 절절히 알아줄 수 있었던 것이다.


개싸이코 커플이 감격에 겨워 서로에게 충성 맹세를 날리는 동안, 비교적 정상적인 커플은 붕괴되려는 정신세계를 지탱하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자, 자기야... 로저 드레이시의 몸을 차지한 놈이 온 거 같아...”

“사령술이 이렇게 무서운 능력이었어? 원래 이렇게 만들어진 능력이 맞아? 저승에서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든 거야? 다른 참가자들더러 어떻게 감당하라고...”

“그러게...”


우는소리를 하긴 했지만, 지금의 릴리 양은 ‘흙 마법’과 ‘감각 증폭’으로 무장한 왕국 최강의 대마법사 중 한 명이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남친의 손을 잡아 준 후 릴리 양은 마력을 일으키며 앞으로 나섰다.

태도가 불량스럽기 짝이 없는 시체들을 원래 있었어야 할 곳으로 집어넣어 주기 위해서이다.


그녀에게 스무 마리의 좀비 모두를 한 번에 파묻어 버릴 능력은 없다.

그래서 언제든지 피 안개로 변할 준비를 하면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제일 앞에서 개폼 잡고 있는 좀비 놈의 발밑에 구덩이를 만들어 주려던 릴리 양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좀 더 미간을 찌푸리고 집중을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마력을 일으킨 채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는데, 떠나간 의지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 상태로 십여 분의 시간이 지났다.


소머리 좀비들이 점점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도로 쭈그리고 앉아 흙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를 관찰하는 놈도 있고, 혼자 섀도복싱을 하는 놈도 보인다.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놈 옆에서 기지개를 켜던 놈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분신의 몸뚱어리를 주워 왔다.


잠시 후 분신의 몸통을 받쳐 든 좀비 트레이너와, 스텝을 밟으며 몸통에 연신 복부 어퍼를 꽂아 넣는, 복싱 꿈나무 좀비가 모두의 시선을 강탈했다.


십수 분째 코피를 흘리며 의지력 발산 중인 릴리 양과 그녀를 보며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고 있던 바르트 군 앞에, 여리디여린 울보 하지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운동 중이던 놈, 드러누워 있던 놈 그리고 흙바닥에 낙서하던 놈 할 것 없이 스무 마리의 좀비 모두가 후다닥 일어나 좌우에 열 명씩 도열했다.

그사이에 하지운이 당도하자, 소머리 좀비 모두가 힘찬 기세로 고개를 푹 숙였다.

말을 할 수 없는 좀비들인지라 사령술사의 취식 여부를 여쭐 수 없다는 것이 천추의 한일 뿐이었다.


거만한 태도로 졸개들의 인사를 받으며, 폭력단의 수괴 하지운이 안쓰러운 커플 앞으로 다가갔다.


“안녕, 난 로저 드레이시 행세 중인 미친놈이야. 아침은 먹었어? 죽기 전에 최후의 조찬을 즐기라고 여유 있게 왔어. 설마 지금까지 처잔 건 아니지? 뭐 어쨌든, 내가 친절을 베풀었으니까 여한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둘 다 이제 죽자. 유언이 있으면 얼른 말해.”

“......”


대답 대신 벨기에 출신의 바르트 군은 떨리는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꽉 쥐었고, 릴리 양은 코피를 줄줄 흘리며 의지력의 도착지를 하지운의 발밑으로 옮겼다.


“관둬. 내가 네 대갈통 주변을 내 의지력으로 완전히 잠식했어. 그러니 아무리 쥐어짜서 내보내 봤자 소용없어. 끈기 있는 건 알겠는데, 그쯤 했으면 포기해라. 숲 밖에 손님도 와 있는데, 그 인간하고 대화도 나누기 전에 네가 뒈질까 봐 걱정이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마력을 거둔 릴리 양이 신장 삼 미터 삼십의, 댄디컷을 한 검은 머리, 날건달을 바라보며 질문을 건넸다.


“그런 것도 가능해? 마법을 그런 식으로 쓸 수 있을 줄은... 그럼 키랑 옷도...”


하지운의 의상이 이곳의 패션 트렌드와 지나치게 이질적인 면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얀색 후드 집업과 같은 색깔의 스웨트 팬츠를 입고 나이스 조너선 농구화를 신은 그를 보고, 도저히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던 릴리 양이다.

후드 집업의 등판 한가운데는 축구공을 움켜쥔 승천하는 푸른 닭 한 마리가 그려져 있어 이질감을 한층 더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쓸데없는 질문으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라. 우선 유스터스 로먼트의 두 아들 시어볼드와 찰스는 세실리가 죽였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줄 알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3 웬도버의 봄 (1) 24.02.29 26 1 10쪽
162 청소하는 날 (17) 24.02.27 24 1 10쪽
161 청소하는 날 (16) 24.02.25 25 1 9쪽
160 청소하는 날 (15) 24.02.24 26 2 10쪽
159 청소하는 날 (14) 24.02.22 33 1 10쪽
158 청소하는 날 (13) 24.02.20 24 1 9쪽
157 청소하는 날 (12) 24.02.18 26 1 10쪽
156 청소하는 날 (11) 24.02.16 27 1 9쪽
155 청소하는 날 (10) 24.02.13 29 1 10쪽
154 청소하는 날 (9) 24.02.12 31 1 9쪽
153 청소하는 날 (8) 24.02.09 30 1 9쪽
152 청소하는 날 (7) 24.02.07 29 1 9쪽
151 청소하는 날 (6) 24.02.05 27 1 10쪽
150 청소하는 날 (5) 24.02.04 28 1 10쪽
149 청소하는 날 (4) 24.02.02 28 1 10쪽
148 청소하는 날 (3) 24.01.30 27 1 11쪽
147 청소하는 날 (2) 24.01.28 26 1 9쪽
146 청소하는 날 (1) 24.01.26 28 1 9쪽
145 겨울 여행 (12) 24.01.24 26 1 10쪽
144 겨울 여행 (11) 24.01.22 28 1 10쪽
143 겨울 여행 (10) 24.01.20 25 1 9쪽
142 겨울 여행 (9) 24.01.19 25 1 9쪽
» 겨울 여행 (8) 24.01.17 28 1 10쪽
140 겨울 여행 (7) 24.01.15 26 1 10쪽
139 겨울 여행 (6) 24.01.12 31 1 10쪽
138 겨울 여행 (5) 24.01.11 29 1 9쪽
137 겨울 여행 (4) 24.01.09 31 1 9쪽
136 겨울 여행 (3) 24.01.07 31 1 9쪽
135 겨울 여행 (2) 24.01.04 31 1 9쪽
134 겨울 여행 (1) 24.01.02 34 1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