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26 23:47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22,977
추천수 :
529
글자수 :
942,693

작성
24.01.07 01:02
조회
31
추천
1
글자
9쪽

겨울 여행 (3)

DUMMY

135화


아성 꼭대기 층에서 내려다보는 애슈비 성의 야경은, 음산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중세 고성의 멋을 제대로 담고 있었다.

살아서 못 해 본 해외여행에 대한 갈증을, 죽고 나서, 이런 식으로 해소할 줄은 상상조차 못 해 본 하지운이다.


우수에 젖은 눈으로 와인을 홀짝이던 하지운이 느긋하게 돌아서서 침실 중앙으로 향했다.

침실 한가운데는 강화된 몸뚱어리를 가진 자들을 위해 제작된 더럽게 큰 테이블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앞에 선 하지운이, 수납장에서, 자신만을 위한 한층 더 더럽게 큰 전용 의자를 꺼내 테이블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고서 그 거대한 의자에 털썩 앉은 하지운이, 건너편에 앉아 있는, 중년의 신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먼틸리 옹. 얼굴 좋네. 폭삭 늙어 있을 줄 알았는데.”


와인은 입에도 대지 않고 그저 순금 와인 잔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론체스터 백작이 하지운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오랜만이다. 이 서부의 미친놈아. 넌 죽었다가 살아 돌아와도, 달라진 게 없구나. 그리고 이제 갓 오십 넘은 사람에게 옹이 뭐냐? 옹이.”

“고작 한 번 죽었다고 사람이 쉽게 변하나.”

“그렇기는 하지... 사람이 쉽게 변하지는 않지... 너, 저 늙은 버러지를 가지고 경매를 하니 어쩌니 한 건 핑계였지? 나와 로먼트 놈을 불러내려는 수작 아니었나?”

“맞아, 당신 막내딸은 잘 있어? 귀여운 루시아 말야.”

“이 악마 같은 놈이! 너... 내 딸을 어찌할 셈이냐? 기어코 죽일 것이냐? 우, 우리도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왜 이래? 당신 딸이 얘기 안 해? 우리는 서로 죽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야. 먼틸리 옹, 당신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나도 당신한테 딱히 폐 끼친 기억은 없는데. 우린 사적인 원한이 없잖아. 당신 딸과 나는 그저, 부활의 대가로, 그분이 내려 주신 시험에 임하고 있는 것뿐이야. 난 솔직히 당신 딸 안 죽이고 싶어. 걔 귀엽잖아.”

“칭찬은 고마운데, 기어코 죽이겠다는 거 아니냐! 이... 이보게, 로저 공! 내 이렇게 빌겠네! 제발 내 딸을 죽이지 말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던지러 달려드는 먼틸리 공의 몸을, 염동력으로, 붙들어 세운 하지운이 짜증을 버럭 냈다.


“이 중늙은이야! 사람 부담스럽게 좀 하지 마! 그리고 아직 내 말 다 안 끝났어! 자리에 좀 앉아!”


비틀대며 자리로 돌아간 먼틸리 공에게 짜증을 억누른 하지운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갔다.


“죽이긴 죽일 건데... 당장 죽이지는 않을 거야. 짧으면 이삼 년, 길면 한 십 년... 그 정도 걸리겠지? 어쨌든 최소 이 년 안에는 안 죽일게. 그러니 제발 애원하지 마. 노인네가 그러는 거 진짜 보기 싫어.”

“무슨 소리냐? 그 정도 걸리다니... 뭘 하려는 거냐?”

“숲 너머로 건너가서 수련을 하려고. 고대 제국의 기록에 따르면, 그곳에는 온갖 기괴한 괴물들이 득시글댄다잖아. 기왕 마법도 익힌 김에 그놈들도 상대해 봐야지.”

“미친놈... 아니지! 진정 영웅이로다! 정말 잘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가라!”

“왜, 가서 뒈져 버리라고? 그래서 당신 딸이 최종 우승자가 되게?”

“......”

“여우 같은 인간이 귀여운 막내딸의 일에는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당신 이렇게 재밌는 인간이었어?”

“네놈도 자식을 가져 봐라! 이제 막 성인이 된 딸이 죽었다 살아 돌아왔는데... 네놈은 뭐 다를 거 같으냐?”

“크흑. 뭐 그럴지도. 그런데 당신 딸... 거버스가 죽인 거 맞지? 당신 막내딸이 그렇게 여우 피를 잘 받아들이더라고 소문이 났었잖아.”

“그렇다... 그 벌레 같은 늙은이가! 너,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라! 놈의 머리를 당장 내놔! 돈은 달라는 대로 주겠다! 도저히 놈을 살려 둘 수가 없어! 죽여 버리고 싶어서 미치겠다고!”

“어이구, 이런 복수를 할 줄도 모르는 중늙은이가.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큰일을 하겠어? 여우 중의 상여우인 줄 알았더니 실망이네. 몇 년 후에 나와 함께 돌아올 거버스 놈을 상상해 봐. 어떤 꼬라지일 거 같아? 내가 정말 재밌게 만들어서 가져 올게. 그러니 진정해. 아직 할 얘기가 많이 남았잖아. 기다리는 로먼트 놈 생각도 해 줘야지.”

“무슨 얘기...”

“무슨 얘기는. 이 음흉한 인간아, 너 언제부터 정보 길드 놈들이랑 붙어먹었어? 그놈들이 차기 왕으로 너를 낙점했던데. 나한테 명단이랍시고 만들어 와서는, 한 놈 골라 보라는데... 흐흑... 웃겨서 진짜... 누가 봐도 네놈만 한 인간이 없더라고. 평판이 너 못지않게 좋은 놈들은 다 빼놨더라니까. 그래서 나도 그냥 속아 주는 척 널 골랐어. 고맙지?”

“고맙기는! 나 못지않게 평판이 좋은 사람이 어디 있는데? 모든 조건을 다 따졌을 때, 네놈을 제외하면 나만 한 사람이 어디 있어?”

“왜, 루지먼트도 있고, 벨펀트도 있잖아. 아! 그 사생아도 있네.”

“루지먼트... 벨펀트? 벨램튼 백작과 로킹엄 백작을 말한 게 맞느냐?”

“어.”

“너... 사람이냐? 아! 너 원래 사람 아니었지! 하긴... 마왕이었네. 그 두 사람한테 네가 한 짓을 잊었느냐? 이제 와서 왕으로 옹립하여 죄책감이라도 덜어 보려고?”

“아니, 너 빼면 그 둘이 평판이 제일 좋잖아. 나는 원래 공사 구분이 확실한 인간이야.”

“벨램튼 백작은 딸과 사위 될 놈을 죽였고, 로킹엄 백작은 두 아들을 다 죽였잖아! 네놈이! 그런 놈이 그 둘에게 왕위를 제안하겠다고? 노인네들을 화병으로 죽일 셈이냐?”

“좀 그런가... 뭐 어쨌든! 언제부터 정보 길드와 연락하고 지냈냐고? 그거나 얘기해.”

“네놈이 거버스와 근위대를 박살 낸 그 이튿날이다. 내 침실까지 거침없이 잠입하더구나. 루시아가 아니었으면, 눈치도 못 챌 뻔했다.”

“하아... 이 늙다리들 보소. 부지런하기도 하네. 그래서 할 거냐, 굳이 그 귀찮은 짓거리를?”

“당연히 해야지! 내가 안 하면 로먼트 놈이 하겠다고 지랄을 할 텐데. 그 꼴을 참고 지켜보라는 건가? 그리고 단 몇 년이라도... 그 아이가 편하게 머물다 가려면... 든든한 테두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소중한 아이면 그냥 집에 처박아 두지. 뭔 수련을 시킨다고, 숲에다 들여보내서는.”

“내가 보내고 싶어서 보낸 게 아니다! 루시아가 원해서... 무려 전력의 사 할을 붙여서 조카 놈과 함께 보냈다고! 그런데 저 씹어 먹을 늙은 버러지가! 지금이라도 놈을 팔아!”

“누구 좋으라고? 나랑 놀다가 어설픈 네 수중으로 넘어가면, 거버스 놈이 좋아할 거 같냐? 싫어할 거 같냐? 화풀이는 몰번에 가서 해. 놈의 자식새끼가 수십인데, 수십 배로 갚아 주면 되겠네.”

“네놈의 사냥에 우리를 동참시키려고? 넌 그런 놈이 아니잖아? 사냥감을 나눠 주는 놈이었나, 네놈이?”

“놈의 첩들이나 걔들 통해서 싸질러진 사생아 새끼들, 어중간한 방계들 따위는 건드리지 않을 거야. 앨커스터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다 들었을 거 아냐? 설마 그 많은 염탐꾼들 중에, 네 졸개가 단 한 놈도 없었을라고?”

“당연히 보냈지. 그래도 틸리얼은... 좀 더 특별한 대우를 받을 줄 알았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어? 너희가 있잖아. 남은 것들은 너희가 다 잡아 죽이겠지. 거버스가 축적한 재산도 나는 금붙이만 챙길게. 장원과 비축 식량은 너희가 나눠 먹어.”

“우리가 까마귀 떼냐? 네놈 뒤치다꺼리나 하라고?”

“싫어? 장원이 오백 개에 육박하는 집구석인데... 싫다는 거지? 그러면 땅문서도 내가 직접 처분해야겠네. 정보 길드 애들 통해서, 그것도 남김없이 팔아먹어야지.”

“그 무슨 소리인가? 젊은 용사여. 낡은 문서 쪼가리는 남겨 두고, 반짝거리는 것만 챙겨 가게. 그렇게 해 주면, 자네가 수련하러 떠나 있는 동안, 하나 남은 자네의 누이와 브리즌 가문의 형제는 내가 잘 보살피겠네.”

“안 그래도 그 말을 하려고 불렀어. 숲 너머로 떠나기 전에, 서부를 깨끗이 청소하고 갈 생각이야. 그러니 서부는 아예 신경을 쓰지 마. 쓸데없이 보호해 주겠다고, 애들을 왕성으로 불러들이지도 말고. 네놈이 할 짓이야 뻔하니까, 미리 경고하는 거야. 내가 돌아왔을 때, 네가 내 말을 무시한 걸 알게 된다면 말야. 내가 네 딸에게 무슨 짓을 할 거 같으냐?”

“내 목을 베고, 내 딸을... 네 역겨운 마차에 묶어서... 왕국을 한 바퀴 돌게 하겠지... 알았다. 서부 변경 일곱 개 주의 일은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

“앨커스터까지 여덟 개야.”

“하아... 알았다.”

“약속 어기지 마라. 너희 집안도 아머릭처럼 못해도 삼백 년은 넘게 해 먹어야지. 괜히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다가, 내 손에 끝장나는 두 번째 왕가가 되면 안 되잖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줄 알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3 웬도버의 봄 (1) 24.02.29 26 1 10쪽
162 청소하는 날 (17) 24.02.27 24 1 10쪽
161 청소하는 날 (16) 24.02.25 25 1 9쪽
160 청소하는 날 (15) 24.02.24 26 2 10쪽
159 청소하는 날 (14) 24.02.22 33 1 10쪽
158 청소하는 날 (13) 24.02.20 24 1 9쪽
157 청소하는 날 (12) 24.02.18 26 1 10쪽
156 청소하는 날 (11) 24.02.16 27 1 9쪽
155 청소하는 날 (10) 24.02.13 29 1 10쪽
154 청소하는 날 (9) 24.02.12 31 1 9쪽
153 청소하는 날 (8) 24.02.09 31 1 9쪽
152 청소하는 날 (7) 24.02.07 30 1 9쪽
151 청소하는 날 (6) 24.02.05 27 1 10쪽
150 청소하는 날 (5) 24.02.04 28 1 10쪽
149 청소하는 날 (4) 24.02.02 28 1 10쪽
148 청소하는 날 (3) 24.01.30 27 1 11쪽
147 청소하는 날 (2) 24.01.28 26 1 9쪽
146 청소하는 날 (1) 24.01.26 29 1 9쪽
145 겨울 여행 (12) 24.01.24 26 1 10쪽
144 겨울 여행 (11) 24.01.22 28 1 10쪽
143 겨울 여행 (10) 24.01.20 25 1 9쪽
142 겨울 여행 (9) 24.01.19 25 1 9쪽
141 겨울 여행 (8) 24.01.17 28 1 10쪽
140 겨울 여행 (7) 24.01.15 26 1 10쪽
139 겨울 여행 (6) 24.01.12 31 1 10쪽
138 겨울 여행 (5) 24.01.11 30 1 9쪽
137 겨울 여행 (4) 24.01.09 31 1 9쪽
» 겨울 여행 (3) 24.01.07 32 1 9쪽
135 겨울 여행 (2) 24.01.04 31 1 9쪽
134 겨울 여행 (1) 24.01.02 34 1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