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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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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2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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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42,693

작성
24.01.2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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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11)

DUMMY

143화


가문의 전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허공을 멍하니 응시 중이던 맨디 양이 낯가죽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그러고는 다시 블레이든 성의 외성문 앞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아직도, 매캐한 냄새를 풍겨 대는, 로저 드레이시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는 상태다.


‘말도 안 돼! 아무리 재생 능력을 가진 놈이라고 해도, 목이 떨어져 나갔는데... 왜 아직도 목록에서 사라지지를 않고... 설마 어제 죽은 그 둘 중에... 무슨 능력을 골라 왔던 거지? 놈이 도대체 어제 무슨 능력을 흡수했던 거야? 혹시 목록... 어!’


“저, 저게 뭐야! 로저 드레이시가...”

“마, 말도 안 돼... 도대체 몇 명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저, 저건 악마야! 저런 걸 무슨 수로 죽여...”


먼틸리 가문의 정예 용사들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성의 왼편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숲을 바라보았다.

여섯 명의 로저 드레이시가 심각한 표정으로, 열띤 토론을 벌이며, 숲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전사들의 눈에 포착되었던 것이다.

그 뒤에는 스무 마리의 소머리 좀비들이, 누군가의 머리끄덩이를 양손에 하나씩 틀어쥔 채,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센터 백으로 김대민을 무조건 데려와야 한다고! 산타 라인으로는 코딱지만 한 희망도 없어! 도저히 더 이상은 안 돼!”

“김대민은 아직 유럽 무대에서 검증이 덜 됐어. 한 시즌은 더 지켜봐야 한다니까. 걔보다는 라이프치히의.”

“아,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좀 하지 마! 걔는 몸값이 천억이라면서? 빡빡이 그 인간이 잘도 사 주겠다!”

“아, 씨발! 왜 화를 내? 말도 못 해?”

“말이 되는 소릴 해야, 화를 안 내지!”

“야, 걔도 있지 않냐? 이름이 뭐더라... 무슨 야동 배우 이름하고 비슷했는데...”

“아, 걔! 그러고 보니 진짜 걔 이름을 모르겠네.”

“야, 쟤들 듣겠다. 나중에 얘기하자.”


너무 놀라서 두뇌가 고장 난 삼백여 명의 전사들 앞으로, 하지운 호소인들과 그들의 충실한 졸개들이 들이닥쳤다.


“신체 복제...”

“어, 맞아. 어제 흡수했어. 그런데... 너, 죽고 싶은 거야? 내구성 점검 차원에서 한 방 맞아 주긴 했는데, 그럼에도 지금 내 기분이 영 거시기하단 말야. 계획이고 나발이고, 널 그냥 확 죽여 버릴까?”

“당신이 로저... 본인인가요?”


루시아 먼틸리 호소녀의 질문에, 시커먼 변사체를 유심히 관찰 중이던, 복제 인간 육 호가 지체 없이 성실하게 답변해 주었다.


“나다, 이 씨발년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육 호의 머리통에도 벼락이 떨어졌다.

새까맣게 타 버린 두 구의 사체를 목도하고서, 복제 인간 일 호가 분노의 일갈을 토해 냈다.


“아, 씨발! 너희 장난 좀 치지 말라고! 맞춤 갑옷이 한 벌에 얼만데! 몰라서 그러는 거야? 본체가 지랄하잖아! 처음 한 벌은 계획된 거라 어쩔 수 없었다 해도,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아이씨! 본체부터가 본바탕이 글러 먹은 개또라이인데, 복제품인 우리더러 어쩌라고? 미친놈이 미친 짓 하는 거 처음 봐?”

“아오! 개미친 금쪽이 새끼들을 그냥...”


뭔가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끄는 일 호를 향해, 맨디 양의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너도 좀 작작 해라, 이 좆만 한 년아!”


준엄한 호통과 함께 복제 인간 일 호의 손에서도 마력이 빠져 나갔다.

찰나의 시간이 흐른 후, 벌건 대낮에, 벼락 두 줄기가 굉음을 쏟아 내며 맞부딪쳐 버렸다.


마른하늘에 눈깔을 부숴 버릴 것 같은 섬광이 터져 나오는 순간, 충돌 지점 아래에 있던 목격자들도 함께 터져 나가고 말았다.

흉악한 의도가 내포된 직격뢰 두 방이 서로 들이받자마자, 의도가 불순한 유도뢰들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전도체들에 옮겨붙어 버린 것이다.


“아우, 저 아까운 경험치들...”

“그러니까! 열네 마리면 기력만 흡수해도...”

“번개 마법이 저게 문제네. 주변에 아군이 있으면 오히려 존나 걸리적거리겠다.”

“정밀 타격을 할 때는 쓰면 안 되겠는데. 저건 거의 백병전 중인 곳에 피아 식별 없이 수류탄을 굴린 격이잖아. 저년은 사지 멀쩡한데, 앞에 있던 애꿎은 경험치들만 몰살당했어. 좋지 않아.”


복제 인간들이 번개 마법에 대한 심사평을 주저리주저리 쏟아 내는 동안, 번개의 대마법사 맨디 양은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으려 하였다.

론체스터 백작이 늦지 않게 막내딸을 부축하긴 했지만, 정신이 반쯤 나가 버린, 그녀는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하고 있었다.


로저 드레이시의 클론이 번개 마법을 사용한 것도 경악스러운 일이지만, 방금 전의 번개 폭발에 휩쓸려, 죽은 이들의 면면도 경악스럽긴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당숙부터 소꿉친구에 가까운 호위 기사들까지, 루시아의 기억을 물려받은, 맨디 양이 공황 증세를 보이는 게 하등 이상할 것도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만 것이다.


“개레스 먼틸리, 우리 본체가 너한테 했던 경고를 잊은 거야? 아니면, 그 경고 자체가 우스웠던 거야? 유스터스 저 불의 요정 같은 지랄 맞은 인간도 얌전히 있는데, 넌 아주 뒈지려고 몸부림을 치는구나. 이 왕국 전체에 허수아비 노릇할 놈이 너 하나밖에 없는 거 같지?”

“저 새끼 원래 마음에 안 들긴 했잖아. 너무 간사해. 그래도 신중한 맛에 선택한 건데... 지금 보니 뭐 그것도...”

“그냥 저 새낀 죽여 버리고, 루지먼트 영감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빌자. 솔직히 우리 본체 새끼가 잘못한 거 맞잖아. 그 영감이 지금이라도 애써 주면, 왕좌를 물려줄 늦둥이 하나 정도는 볼 수 있을 거야. 우리가 가서 설득하자.”

“그럴까?”


오열 중인 딸을 조카들에게 맡긴 론체스터 백작이 복제 인간들 앞으로 걸어 나왔다.

좌중의 전사들이, 앞으로 나서는 가주를 말리고 싶어, 손을 반쯤 내민 채 움찔거려 댔다.

하지만 다들 거기까지일 뿐이었다.


로저 드레이시의 얼굴을 한 복제 인간들 앞에 선 론체스터 백작이, 두 주먹을 꽉 쥔 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정체가 뭐냐? 로저 드레이시가 지금 이곳에 있기는 한 것이냐?”

“아니, 걔는 여기 없어. 집에 갔어. 우리는 권능의 힘으로 만들어진 로저의 분신들이야.”

“집에... 가?”

“어, 저 늙은 병신의 찌꺼기들이 여기까지 도망쳐 오는 바람에, 시간을 너무 허비해 버렸잖아. 그래서 어제 숲에서 볼일 보고, 바로 집으로 갔어. 집에 든 도둑들 다 잡아 죽이러.”

“그, 그럼 내가 그를 만나기 위해 콘체스터로 가면 되는 것인가? 내가 그에게 직접 용서를 구할 테니, 더 이상 우리 가문 사람들을 죽이지 말아 다오! 제발 부탁이다!”

“내가 언제 네 피붙이들을 죽였어? 방금은 네 딸이 죽인 거잖아! 난 그냥 방어만 한 건데... 억울하다...”


침울해진 복제 인간 일 호의 등을 토닥여 주며, 이 호가 대신 앞으로 나섰다.


“우리 애한테 덮어씌우지 마. 누가 봐도 네 딸년 과실이 훨씬 더 커. 그리고 집에까지 기어 올 필요 없어. 할 말 있으면 여기서 우리한테 하면 돼. 어차피 본체와 정신이 연결돼 있으니까. 본체가 지금 바쁘다고, 할 말 있으면 최대한 신속하고 간결하게 지껄여 보래.”


이를 악문 론체스터 백작 개레스가 천천히 몸을 숙였다.


“각하!”

“안 됩니다, 형님!”


피붙이들의 아우성을 무시하고, 중년의 대제후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조아렸다.


“테일강 유역을 지배하시는 고결한 ‘탤랜드’의 대공이시여! 이 몸이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도, 성현을 알아보는 안목이 부족해 대죄를 짓고 말았소! 앞으로 공께서 지도 편달하시는 대로 충실히 따를 것을 약속드리오! 이번 한 번만 이 어리석은 자의 허물을 덮어 주시오!”

“크흡... 대공... 임기응변 한번...”

“탤랜드... 푸흡... ‘웨스트’만 뗀 거야?”


키득거리고 있던 복제 인간들 중 삼 호가 유스터스 앞으로 다가가 덕담을 건넸다.


“쟤가 저런 걸 잘해서, 본체가 쟤를 고른 거야. 왕좌가 멋있게 폼만 잡으면서 지킬 수 있는 자리가 아니거든. 넌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건 못 할 거야. 차라리 자진을 하고 말지. 안 그래, 북부의 검호 유스터스? 지금 하는 말은 지난번처럼 널 놀리려고 하는 게 아니야. 반은 칭찬으로 하는 말이야.”


입을 꼭 다물고 있던 폰틸랜드 백작이 미세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어린 조카딸의 마지막 유언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큰아버지, 제발! 그 악귀 놈 앞에서만은 절대 평정심을 잃으시면 안 돼요! 놈이 죽는 시늉을 하더라도, 절대 동요하시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제발! 제 말 허투루 들으시면 안 돼요!”

“그게... 무슨 말이냐?”

“놈은 이미 불사신이나 다름없는 경지에 이르렀어요! 짐작하고 계신 것보다 훨씬 소름 끼치는 괴물이에요! 그놈 때문에 아무리 화가 나셔도, 꾹 참으셔야 해요! 절대 제 말을 빈말로 여기시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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