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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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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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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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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가진 미친놈 (14)

DUMMY

130화


“뭔 소리인지는 못 알아들을 테지만, 그냥 자랑하고 싶어서 하는 얘기야. 좀 전에 저 건물 안에서 ‘은신’이랑 ‘골렘 소환’이랑 ‘사령술’이 육십일 레벨이 되었어. 참으로 힘겨운 시간이었지. 그래도 이 세 능력 모두 같이 레벨 업이 가능했기에, 이룰 수 있는 쾌거였어. 너희도 함께 기뻐해 줘.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잖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어야 기뻐하는 시늉이라도 할 텐데, 안타깝게도 극도로 혀가 짧은, 두 청년은 추리력도 혀 못지않게 빈약했다.


사실 청년들 입장에서는 못 알아먹은 게 나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운이 지껄인 말들의 핵심은 은신 능력으로 아성에 몰래 들어간 하가 놈이, 골렘을 무기처럼 휘둘러, 청년들의 일족을 때려 죽였다는 거다.

그 짓으로도 부족해서 그들을 좀비로 만들었으며, 이 과정 중에 하지운 자신이 개인적으로 상당한 재미를 봤다는 것이다.


“그냥 웃어. 처맞기 싫으면.”

“으으으으흑”

“허어어어윽”


두 청년을 단숨에 불쌍하게 만들어 버린 하가 놈이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내렸다.


“이 성의 주인 월디머 밸런의 장남 맨프레드와 스탠버리 영주 윌리엄 드 라 게어 너희 두 마리는 내일 오후에 거세한 후 처형할 것이다. 참으로 행복하겠구나. 내 마차를 타기에 부족함이 없는 놈들인데, 저년에게 밀려서 이틀 만에 뒈지다니.”


두 청년의 표정이 실로 오묘했다.

생식기를 절단한 후 죽여 버리겠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 악명 높은 마차를 타는 것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결말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운은 두 청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 후, 손수 쇠붙이들을 뽑아낸 다음, 치료까지 완벽하게 해 주었다.

마저리 벨포 양의 입장에서 눈에 천불이 날 일이었다.


마저리 양이 분을 못 이기고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한마디 쏘아 붙이려는 순간, 두 청년의 사지가 땅속에 묻혀 버렸다.

둘 다, 등을 바닥에 대고 하늘을 보는 상태로, 팔다리만 흙바닥 밑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두 청년이 뭔가 불편해 보이는 자세를 잡기가 무섭게, 그들의 사타구니 앞에 각각 한 개의 새카만 마법진이 등장했다.

그 속에서 소머리 좀비가 솟아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두 청년이 미친 듯이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내일 죽일 거라서, 남은 시간이 정말 얼마 안 돼. 밤새 재우지 말고, 쉴 틈 없이 예뻐해 줘.”


소머리 좀비 두 마리가 하지운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두 청년의 가죽 갑옷과 천 쪼가리를 거칠게 잡아 뜯었다.

두 청년의 애달픈 몸부림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하지운이 마저리 양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방금 뭐라고 하려던 거 아니었어? 굉장히 급해 보이던데.”

“아니옵니다, 각하. 이 천한 년에게 관심을 두지 마시옵소서.”

“사갈 같은 년이 고분고분한 척하는구나. 저 두 놈이 부러워서 그러는 거지? 내일이면 마차를 탈 터인데, 하루 정도는 쉬게 해 주려는, 내 배려가 쓸데없는 헛짓이었나 보구나?”

“필요 없다니까, 이 미친 마귀야! 마차고 나발이고, 그냥 날 당장 죽이라고!”

“안 돼! 이 왕국 전체를 뒤져도 너만 한 년은 찾기가 힘들어. 고작 스물여섯의 나이에 삼백 명 이상을 죽인 연쇄 살인마가 어디 흔해? 근데... 그러고 보니까 말이야. 너 그 나이까지 혼인은 어떻게 안 했어? 아니, 그것보다... 나이가 쉰도 안 된 네 애비는 무슨 병으로 죽은 거야? 지난주에 죽었다면서? 너...”

“......”

“너, 지난 몇 년 동안 네 애비 음식에 독 탔지? 맞지? 소 피 처먹은 놈이 소량의 독을 먹었다고, 쉽게 뒈질 리가 없잖아. 눈치도 못 챈 채로 죽게 했으니, 꽤나 오랫동안 먹였겠는데.”

“아, 아니다...”

“에이, 표정은 그렇지가 않은데? 맞네, 맞아. 독 탔네, 독 탔어.”

“쉬, 슁하란 년이 그런 것까지 고해 바쳤느냐? 이, 이런 찢어 죽일!”


맨프레드 밸런의 옷을 잡아 찢던 소머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마저리 양의 머리통 위에 쭈그리고 앉았다.


“가, 각하! 제 주둥이가 더러운 오물통과 같아서, 지저분한 실언이 나왔사옵니다! 제발 굽어 살피시어, 한 번만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깊이 반성하고 있나이다!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슁하 양을 모욕하는 일이 없을 것이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봐준다. 목숨을 걸고 입조심해라. 네가 패륜을 저지른 것 따위의 하찮은 일은 내게 그다지 중요치 않아. 하지만 승아를 모독하는 건 매우 심각한 범죄 행위야. 내일 마차에 태우기 전까지는 최대한 깔끔한 상태를 유지시키고 싶으니, 혓바닥을 조심해서 놀려라. 내 인내심에 한계가 오려고 했다.”

“가, 감사하옵니다.”


이 성안에서 가장 이력이 화려한 셋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내팽개친 하지운이 똥 칠갑 중인 졸개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진정으로 쓸모라곤 없는 것들이 바로 이놈들이다.

레벨 업 과정에서 살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신체 변형’이나 ‘은신’ 같은, 능력들은 평범한 인간들을 상대로 능력을 사용해도 경험치가 잘만 붙는다.

그런데 ‘골렘 소환’이나 ‘사령술’ 같은 살생이 필수적인 능력들의 경우엔, 이들 같은 평범한 인간들은 수천수만을 죽여도 레벨 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살생이 필요 없는 능력들의 경우, 일 레벨 올리는 데 천오백 명을 더 상대해야 함에도, 레벨 업 속도가 월등히 빠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졸개 놈들을 상대로, ‘은신’ 능력을 사용해서, 경험치를 획득하는 과정은 내성에 처음 들어서자마자 이미 다 거치고 지나갔다.

그 덕분에, 옆에 있는 건물 안에서, 훨씬 전에 흡수했던 다른 두 능력과 거의 동시에 레벨 업이 돼 버렸던 것이다.

살려 둘 가치가 없는데 더 이상 써먹을 가치도 없는, 삼백팔십여 개나 되는, 짐짝들이 똥오줌까지 처바른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


잠시 그들을 힐끔거리며 고민을 하던 하지운이 이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마력을 일으켰다.

삼백팔십여 명의 순정 병사들이 딛고 있던 땅바닥이, 살아 숨 쉬는 생물이라도 된 듯, 요란스레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한 오륙 초 정도 들썩거리던 바닥이 금세 평온해졌다.

그나마 정신머리가 약간이라도 남아 있던 자들이, 비명 지르던 걸 그치고, 허겁지겁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일어서기가 무섭게, 어디론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지름이 이십 미터 정도 되는 원형 싱크홀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략 십 미터 깊이의 구덩이 속에서 삼백 명이 넘는 사나이들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운 좋게 싱크홀 가장자리 밖에 있던 수십 명의 사내들이, 눈물 콧물을 쏟아 내며, 네발로 기어서 달아났다.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다 부질없게도,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눈 깜빡할 사이에 구덩이 속으로 끌려가 버렸다.

보이지 않는 손에 머리끄덩이가 잡힌 듯, 사지를 버둥거리며, 흙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구덩이 앞으로 다가간 하지운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무표정한 마귀를 향해서, 몸부림을 치며, 목숨을 구걸하는 사내들의 몰골이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이들 모두가 하지운의 목록에 이름을 올린 건 아니다.

이들 중 고작 서른다섯 명만이 공식적인 제거 대상이다.


저승에서 제거 대상으로 지정해 준 놈들은 모두, 로저의 가문과 관련된, 사람을 직접적으로 살해한 자들이다.

직접 살인을 하지 않은 자들은 지은 죄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제거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상태창에 폭행, 방화, 약탈, 강간 등 갖가지 범죄 이력만 뜨고 마는 거다.


‘하아, 이런 놈들은 알아서 대충 처리하라는 건가.’


토벌대를 몰살시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쉰세 놈이 목록에 추가되었다.

하지운마저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동네 인간들이 이토록 대범하다는 사실에 간담이 서늘해진 것이다.


앨커스터주에 당도하고 나서야 하지운은, 선왕을 제외한, 대범한 용자 오십이 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가주들의 명에 따라 노예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한 각 가문의 병사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어차피 노예들을 다 죽이고 그들의 시체까지 훼손시키려는 마당에, 이 못 배워 먹은 것들이 그들을 곱게 죽여 줬을 리가 없다.

안 그래도 억울한 죽음을 앞두고 있던 노예들은, 죽기 바로 직전까지, 온갖 수모를 겪어야만 했었다.


직접 칼질을 한 것이 서른다섯이지, 다른 놈들이라고 딱히 나을 것도 없는 종자들이라는 것이다.

고민하다 귀찮아진 하지운이 그냥 흙을 덮어 버렸다.

문득, 잡다한 놈들에게 너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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