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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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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28 22:58
연재수 :
2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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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글자수 :
947,535

작성
23.06.11 11:51
조회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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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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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최초의 전사 (2)

DUMMY

2화


“엘라! 내가 반드시 구해 줄게! 조금만 참아!”


자신보다 세살 어린 열다섯 살의 아내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사실 그 자신도 전혀 진정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로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나오고 있었다.


“로저! 나 죽고 싶지 않아! 제발 나 좀 구해 줘! 으아아악! 제발 살려 줘!”


엘라가 눈물을 쏟으며 로저를 향해 팔을 뻗은 채 발버둥을 쳤다.


그 순간 흉악한 괴물 놈이 기어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러 버렸다.

또다시 멀뚱거리며 눈앞의 병사들을 멍하니 쳐다보던 놈이 갑자기 소녀를 자신의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입을 쩍 벌리더니 소녀의 머리를 통째로 집어넣고, 그대로 씹어버렸다.


“끄아아아악!”


순간 로저는 손에 단검 한 자루만 들고 괴물을 끌어안기라도 할 것처럼 달려들었다.

입에서는 짐승의 울음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왔고, 눈에서는 피눈물이 쏟아졌다.


소녀의 머리를 씹고 있던 소머리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소녀의 남은 사체를 로저에게 집어던졌다.

정신이 이미 반쯤 나간 상태로 달려들던 로저는 아내의 사체와 뒤엉킨 채 달려들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뒤로 날아갔다.


바닥을 구르는 로저를 만족스럽게 쳐다보던 소머리는 창을 꽉 쥔 채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병사들을 돌아봤다.


“쑤셔 버려!”


존의 외침이 들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병사들의 창질이 시작됐다.

창이 박히고 자시고 하는 걱정 따위는 이미 날아가 버렸다.

병사들도 소머리의 개잡짓에 눈깔이 돌아가 버린 상태였다.


“빌어먹을! 제발 좀 박히라고!”

“좀 죽어! 이 짐승아!”


병사들이 악을 쓰며 온 힘을 다해 창을 쑤셔 댔다.

하지만 괴물은 한 손으로는 급소를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턱 앞을 막은 채 여유롭게 병사들의 공격을 맞아 줬다.


그러다 대열의 양 끝의 병사들이 괴물을 포위하기 위해 슬금슬금 움직이자 괴물도 반격을 시작했다.

괴물 자신의 좌측으로 접근하던 병사의 방패에 밀어 차기를 시전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방패째 걷어차인 병사 토비가 목책까지 일직선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젊은 병사는 잠시 꿈틀거리다 피를 게워 내면서 바닥에 고개를 처박더니 그대로 숨이 끊겨 버렸다.


병사 하나를 눈 깜짝할 사이에 골로 보내 버린 소머리는 반대편의 병사도 한 대 칠 것처럼 팔을 획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뒤로 돌아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해자 위로 넘어지는 바람에 임시 다리가 되어 버린 통나무를 밟고는 한 번에 해자를 넘어가 버렸다.

육중한 괴물의 무게에 통나무가 두 동강이 나 버렸지만, 생긴 것 답지 않게 날랜 괴물 놈은 해자 건너편에 나비처럼 사뿐히 착지했다.


창병들 뒤에서 대기하던 궁수들이 목책 앞까지 부리나케 뛰어와 소머리의 뒤통수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물론 소용없었다.

머리통도 몸통만큼 단단했으니까.

소머리의 뒤통수에 촉만 박힌 화살들은 달리는 와중에 전부 떨어져 나갔고, 꼬리에 불붙은 소처럼 달리던 소머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숲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맥이 풀리고, 넋이 나가 버린 병사들이 널브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앉기가 무섭게 다들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들려선 안 될 소리가 옆에서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이시여, 보고 있으시고, 듣고 계심을 알고 있나이다.”

“야, 저 놈 입을 틀어막아!”

“뭐 해! 팔다리 잡고 주둥이에 뭐라도 쑤셔 박아!”


병사들이 황급히 로저의 입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또다시 괴력을 내며 달려들던 사람들을 밀쳐내고, 뒤로 던져버렸다.

소머리의 영혼이라도 씐 건지 그 많은 사람들이 로저 한 명을 힘으로 제압하지를 못했다.


“제 몸과 영혼 모두를 바치겠나이다. 저 괴물을 죽일 수만 있다면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겠나이다.”

“제발 그만해. 신께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해. 돌이킬 수가 없다고.”

“신성한 맹세를 하고 목숨을 부지한 놈은 아무도 없어. 제발 부탁이야. 그 빌어먹을 입 좀 닥쳐!”


주위에 있던 모두가 한마디씩 하며 로저를 말렸지만, 결국 그는 맹세의 마지막 말까지 모두 쏟아내 버리고 말았다.


“그 증거로 저 괴물을 제 손으로 죽인다면 괴물의 심장을 뽑고 그 안의 피를 전부 마시겠나이다. 반드시 약속을 지키고 영원히 당신의 종이 되겠으니 저에게 힘을 주소서.”


피눈물을 줄줄 흘리며, 절규하듯 외치던 로저는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혼절하고 말았다.

머리 없는 시체를 안고 피범벅이 된 채 쓰러져 있는 모습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괴물의 피를 마시겠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자살하겠다는 뜻이다.

죽어서 저승에서 섬기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괴물과 오래 싸워 본 변경의 병사들 중에 괴물의 피가 독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전투 중에 입안으로 튄 피를 삼켰다가 고열과 복통에 시달리거나, 심할 경우 죽음에 이른 이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병사들은 반드시 가죽이나 질긴 천으로 입을 가리고는 전투에 임하곤 했다.


입에 피가 좀 튄 것만으로도 놀라서 오줌을 지리는 이가 태반인데, 심장의 피를 통째로 들이키겠다는 말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죽어 보이겠다는 말이다.

열여덟 살짜리 아이가 해서는 안 될 맹세였다.


허탈한 표정으로 로저를 내려다보던 동료들은 로저를 돌볼 몇 명만 남기고 하나둘 자리를 떴다.

할 일이 천지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도 수습해야 하고, 난장판이 된 마을도 복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까 그 괴물 왜 도망쳤지? 우릴 다 죽이고도 남겠던데.”

“야, 그걸 진짜 모르겠냐? 눈 없어? 시체들 못 봤냐?”

“아아!”

“그래 이 자식아. 배불러서 간 거지. 아무리 그 몸뚱어리라도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처먹고 배가 안 부르면 그게 말이 되냐. 거기다 방해꾼들도 왔으니 다음에 다시 와서 또 갖고 놀 생각하고 돌아간 거지.”

“그래서 제 딴에 장난질이라고 아까 그 지랄을 하다가 달아난 건가. 완전히 다 잡아 놓은 사냥감 취급이군.”

“빌어먹을, 영주들이 병력을 보내 줄까? 그냥 우릴 버리고 자기들 요새에 틀어박혀 버리면 우린 완전히 죽은 목숨인데.”

“소머리 괴물이 아까 그 놈 하나겠냐? 며칠 지나면 비슷하게 생긴 놈들이 떼로 몰려올 수도 있어. 돼지머리나 개머리나 다 그런 식이었잖아. 영주들도 소식 들으면 자기들 요새에서 처맞느니 여기에서 막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할거다.”

“근데 대장. 백작에게도 연락 보냈어?”

“벌써 보냈다. 토니에게 애들 셋을 더 붙여서 성으로 보냈어. 중간에 괴물들 만나 두셋 죽더라도 한 놈이라도 제시간에 도착하라고.”

“잘했어 존. 근데 로저를 어떻게 하지?”

“뭘 어떡해?”

“그냥 둬?”

“그냥 안 두면. 우리가 뭘 어쩔 건데? 야, 너희들도 모두 잘 들어. 로저는 이미 신성한 맹세를 한 상태야. 우리가 함부로 떠드는 것 또한 신성모독이야. 죽어서도 고통스럽고 싶지 않으면 이제부터 모두들 입조심해.”


다들 씁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라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기 할 일들을 찾아 움직였다.

그러다 수비대장 존의 친구이자 부관 역할을 하고 있던 버트가 정작 가장 중요하지만,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을 떠올렸다.


“야, 그런데 우리 성주 어디 갔어?”

“죽었어요. 시체는 이미 예배당에 모셨고요.”


아까 그들을 부르러 뛰어왔던 톰이 참 일찍도 물어본다는 투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백작이나 영주들 중에 누가 온다면 시체라도 보겠다고 할 수 있는데, 팔다리는 잘 붙어 있지?”

“물론이죠. 머리가 없어서 문제지.”

“... 설마?”

“네. 그 소새끼가 처먹었어요. 맛있게 먹던데요. 귀한 분들은 더 맛있나?”

“이런, 빌어먹을! 제 애비와 제 누이가 붙어먹어서 싸질러진 더러운 새끼! 벼락을 맞고 구워져서 돼지 사료로 쓰일 새끼! 아비가 개고 누이는 돼지인 새끼! ...새끼! ...새끼!”


지금까지 부하들 앞이라 겨우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존이 드디어 분이 폭발해 발광을 시작했다.

부하들은 그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하면서도 하던 일에 집중했다.

해지기 전까지 최소한 목책이라도 그럴듯하게 세워 놔야 하니까.


기사 서임 받고 성주에 임명된 지 일 년도 안 된 어린 상관이 목 없는 시체가 되었다.

이딴 통나무로 만든 조잡한 시설도 성이라고 비록 촌수는 좀 멀지만 백작의 방계 혈족이 성주로 와 있었다.

높으신 분들 앞에서 그 시체를 옆에 두고 어떻게 보고를 올려야 할지 정신이 아득해지는 존이었다.


‘그냥 잘린 거면 가져다 꿰매 놓기라도 하지. 그걸 처먹어서 똥을 만들면 나더러 어떡하라고... 이 돼지새끼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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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6 ka****
    작성일
    23.07.21 23:06
    No. 1

    소머리 괴물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노타우로스를 얼굴과 몸을 반대로
    묘사한 듯한 느낌도 드는군요.
    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는
    도대체 괴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점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괴물과 병사들의 결투가 꽤 실감나는군요.
    즐감하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최고길동
    작성일
    23.07.22 17:45
    No. 2

    댓글 감사합니다.
    혹시 댓글 없다고 징징거리던 제 홍보글을 보신 건 아니시죠...^^
    괴물의 설정에 대한 설명이 중반부쯤 나올 건데요.
    여기는 너무 초반이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kant91 님도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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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도강 (4) 24.06.01 17 1 10쪽
207 도강 (3) 24.05.29 17 1 10쪽
206 도강 (2) 24.05.27 14 1 9쪽
205 도강 (1) 24.05.26 18 1 9쪽
204 즐거운 훈련 (9) 24.05.23 15 1 9쪽
203 즐거운 훈련 (8) 24.05.22 18 1 9쪽
202 즐거운 훈련 (7) 24.05.19 21 1 10쪽
201 즐거운 훈련 (6) 24.05.17 17 1 10쪽
200 즐거운 훈련 (5) 24.05.15 17 1 10쪽
199 즐거운 훈련 (4) 24.05.14 17 1 10쪽
198 즐거운 훈련 (3) 24.05.11 22 1 10쪽
197 즐거운 훈련 (2) 24.05.09 16 1 9쪽
196 즐거운 훈련 (1) 24.05.08 18 1 10쪽
195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7) 24.05.06 2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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