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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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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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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6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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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 (1)

DUMMY

204화


“될 놈은 된다더니, 재생 능력이 있는지조차도 잊어 먹고 있던 놈이 가만 앉아서 레벨 업을 했어. 역시 하늘이 점지해 주신 불세출의 영웅답다.”

“과연 뒤로 엎어져도 코가 깨질... 아니, 앞으로 자빠져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발견할 행운의 사나이야.”

“요즘 오백 원으로 뭘 해? 그게 돈이야? 오만 원권 지폐로 바꿔. 우리 돈 나가는 것도 아닌데.”

“맞아. 맞아. 거기다 벌크업만 하면서 레벨 업에 근접할 정도로 경험치를 쌓다니, 가성비 쩌는 용사님이야.”

“심지어 우리 용사님은 벌크업 과정 중에 살이 찢기고 아무는 과정을 반복했는데도, 닭대가리처럼 기억도 못해. 아픔을 금세 잊어버리는 불굴의 용사야.”


어제부터 쭉 삐진 상태를 유지 중인 하지운을 달래기 위해, 복제 인간들이 저마다 칭찬을 하나씩 늘어놓으며, 정성을 다한 아첨질을 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속 좁은 놈의 표정이 풀리지를 않아, 복제 인간들의 시름도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보다 못한 금 부장이 복제 인간들에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조언을 건넸다.


“너희들 지금 칭찬 중인 거 맞지? 욕으로 들리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닥쳐, 이 새끼야! 칭찬 맞아! 이게 다 너희 커플 때문이잖아! 진짜 연놈을 꼬챙이에 꿰어서 통구이처럼 노릇노릇하게! 아오, 됐다! 내 입만 아프다! 말을 말자!”

“아, 그리고! 우리가 언제 칭찬을 해 본 적이 있어? 처음 하는데 이 정도면 잘하는 거지!”

“거기다 이 새끼한테 칭찬할 거리가 뭐가 있어? 얼마나 칭찬할 게 없으면, 처맞기만 했는데 레벨이 알아서 올라가 있는 걸 칭찬하고 있겠냐!”

“맞아. 맞아. 그리고 우린 원래 대량 살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놈들이야. 예쁘게 말하라고 만들어진 놈들이 아니야. 우린 지금 웬 때려죽일 연놈들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추가 근무를 하고 있는 거라고.”

“씨발... 생각하면 할수록 좆같네. 야, 금 부장. 우리 잔업 수당 네가 벌어서 지불해.”

“넉넉하게 넣어 둬. 약소하면 재미없을 줄 알아.”

“시끄럽구나. 조용히 가자.”


하지운의 나지막한 읊조림에, 시장 바닥 같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독서실처럼 바뀌었다.

낯짝이 핼쑥해진 복제 인간들과 언데드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하지운의 뒤꽁무니만 졸졸 쫓았다.


“본체야, 코끼리는 더 안 챙겨 갈 거냐? 고작 분대 예닐곱 개 정도 규모밖에 안 되잖아. 족장이 꼴랑 셋밖에 없어. 얘네 종족처럼 통으로 덤벼드는 경우가 또 있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 머릿수가 너무 빈약한 것 같지 않냐?”


아무런 말도 없이 두어 시간을 침묵 속에서 고통받던 복제 인간들이, 더 이상은 견디질 못하고, 슬슬 수다 떨 주제를 억지로 쥐어짜 내기 시작했다.

한데 급하게 생각해 낸 얘기기는 해도, 얼토당토않은 지적을 한 건 아니었다.


괴물들의 서식지는 크게 삼림 지대와 고원 지대로 나뉜다.

그리고 그 두 지대 사이에는 초원이 푸른 띠처럼 펼쳐져 있어, 경계선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양 끝이 내해와 접한, 서남부부터 동북부까지, 그 긴 초원 지대를 천 마리에 가까운 코끼리머리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복제 인간들은 그 초원 지대를 차분하게 훑어서, 최대한 많은 수의 코끼리머리 좀비 군단을 만들자는 굉장히 합리적인 충언을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간만에 대꾸해 줄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을 들은 하지운이 다소 진정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한데... 졸개가 너무 많아지면, 내가 직접 움직이는 횟수도 그만큼 줄어들 거 같아서. 빠르게 벌크업을 하려면, 결국 내가 직접 몸으로 때우면서 동시에 잔머리를 존나 굴려야 하겠더라고.”

“빠르게 벌크업... 본체야, 그 정도 자랐으면, 만족할 때가 되지 않았냐? 너도 이제 그만 크고 싶다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어. 기왕 커진 거 존나 커지려고. 지금은 뭐랄까... 여자애들이 말하는 거지 존? 뭐 그런 느낌이야. 정상적인 키가 아닐 거면, 아예 말도 못하게 커져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지금 키는 너무 어중간한 것 같아. 쓸데없이 징그러워 보여.”

“... 이런 존나 미친 새끼...”

“이 씨발놈... 이런 개거지 같은 미적 감각을 대체 어쩔 거야...”


기왕 괴물이 된 거 특급 괴물이 되겠다는 하지운의 장대한 포부에, 일행들의 낯짝이 대번에 일그러져 갔다.


“어차피 좆 된 거 왕좆이 되시겠다. 뭐 그런 거냐?”

“어.”


곳곳에서 장탄식이 절로 새어 나왔다.

굳게 다짐한 미친놈을 앞에 두고, 한숨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모르겠다, 이제는. 네가 하질라가 돼서 지구로 돌아가든 말든. 사실 따지고 보면, 여기에 지구인이 너 빼고 또 누가 있냐? 우리가 이딴 걱정을 왜 하고 있는 거냐? 네 마음대로 해라.”

“그래, 까짓 지구 따위 알 게 뭐야? 어차피 우린 클론인데.”

“맞아, 심지어 얘네 둘은 시체야.”

“그러네. 그럼, 우리 앞으로는 신경 끄는 거다.”

“그래그래.”


복제 인간들조차 불타오르는 하지운의 야망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 버렸다.

또다시 숨 막히는 침묵의 시간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해가 중천에 뜬 정오 무렵, 드디어 미친놈과 자포자기한 일행들 앞으로 거대한 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아케론인가 뭔가 하는 거네. 이 동네 발음으로는 애커론인가? 뭐 어쨌든. 이걸 건너면 고원 지대다, 본체야.”


일 호의 말을 심드렁한 낯빛으로 듣고 있던 하지운이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동네는 어떻게 된 게, 멀쩡한 강이 하나도 없냐.”

“그러게.”


강변으로 다가선 하지운이 푸르디푸른 강물을 바라보며, 우수에 찬 모습으로, 독백하듯 나지막이 읊조렸다.


“똥싸개나 불러내서, 강에다 시원하게 한번 싸 갈겨 보라고 해야겠다.”


갑자기 강물 속에서 엄청난 소란이 느껴지더니, 잠시 후 웬 아름다운 여인 셋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면 밖으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었다.

그녀들을 멀뚱거리며 내려다보던 하지운이 대뜸 불여시를 바라보며 감상을 전했다.


“저년들이 그래도 너희보다는 낫다. 반만 벗었잖아.”


극대노한 엘프녀가 입으로 불을 뿜듯이 호통을 내질렀다.


“눈깔이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제대로 봐. 쟤들은 홀딱 벗고 나왔잖아. 머리카락으로 가린 게 가린 거야? 우리는 넝쿨이라도 꼼꼼하게 감았다고!”

“대신에 저년들은 아랫도리가 완전히 가려져 있잖아.”

“닥쳐! 저게 어떻게 가려진 거야? 그물이라도 뒤집어쓰고 나왔으면 모를까! 저건 그냥 벗고 나온 거잖아!”

“야, 몸뚱어리 반이 생선 쪼가린데. 저건 벗은 걸로 보면 안 되지. 비늘이 덮여 있잖아. 뭐, 회칼로 껍질이라도 벗겼으면 모를까.”


하지운과 엘프의 싸움을 묵묵히 지켜보던 세 여인이 간절한 눈으로 일 호를 바라보았다.


“본체야, 생선 쪼가리들이 너한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보다. 불여시 좀 그만 괴롭히고, 저 민물고기들 말도 좀 들어 줘라.”


다소 불량하게 껄렁거리며 느릿느릿 고개를 돌린 하지운이 초면에 격의 없는 말투로 반가운 마음을 전했다.


“야, 어차피 말 몇 마디 나누다가, 빡치면 떼로 몰려나와서 덤빌 거잖아? 아니야? 그냥 지금 다 끌고 나와서 덤벼. 개소리 씨불이면서 시간 끌지 말고.”

“아... 저...”

“아이씨! 뭐? 그냥 다 데리고 나오라고! 좆도 아닌 것들이 남의 귀한 시간을 잡아먹으려고 지랄이야!”

“요, 용사여. 제발 진정 좀 하고, 우리 얘기를 한번 들어 보도록 하세요.”

“좆 까! 듣기 싫으니까 닥치고 덤벼! 확 똥싸개를 불러내기 전에.”

“또, 똥싸개가 누군데요?”

“이보세요, 용사님. 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괴물이 아니에요. 당신이 과연 이 강을 건널 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이 애커론 강의 요정들이란 말이에요.”

“야, 들었냐? 제 입으로 요정이래.”

“와... 씨발... 나도 들었어. 존나 뻔뻔한 년들이야. 불여시 쟤도 제 입으로 요정 타령은 안 했는데.”

“와, 쩐다! 너무 좆같은데, 어쩌지?”

“봐라! 이래도 우리보다 낫냐?”


엘프녀도 못 참고 한마디 했다.


“아, 미안해... 겸손한 엘프야.”


불여시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한 하지운이, 세 여인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가서는, 가식 없는 순수한 마음을 전했다.


“나야말로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용사가 아니야. 나 씨발 존나 글러 먹은 새끼야. 내가 봐도 그렇고, 남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한대. 그러니 개수작 떨지 말고 기회가 있을 때 덤벼. 느닷없이 뒈져 있기 전에.”


하지운의 꾸밈없는 화법에 감탄한 일행들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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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도강 (7) 24.06.07 12 1 9쪽
210 도강 (6) 24.06.04 12 1 9쪽
209 도강 (5) 24.06.02 13 1 9쪽
208 도강 (4) 24.06.01 14 1 10쪽
207 도강 (3) 24.05.29 15 1 10쪽
206 도강 (2) 24.05.27 13 1 9쪽
» 도강 (1) 24.05.26 16 1 9쪽
204 즐거운 훈련 (9) 24.05.23 15 1 9쪽
203 즐거운 훈련 (8) 24.05.22 17 1 9쪽
202 즐거운 훈련 (7) 24.05.19 21 1 10쪽
201 즐거운 훈련 (6) 24.05.17 16 1 10쪽
200 즐거운 훈련 (5) 24.05.15 16 1 10쪽
199 즐거운 훈련 (4) 24.05.14 16 1 10쪽
198 즐거운 훈련 (3) 24.05.11 22 1 10쪽
197 즐거운 훈련 (2) 24.05.09 14 1 9쪽
196 즐거운 훈련 (1) 24.05.08 16 1 10쪽
195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7) 24.05.06 21 1 10쪽
194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6) 24.05.04 18 1 10쪽
193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5) 24.05.02 17 1 10쪽
192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4) 24.04.30 1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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