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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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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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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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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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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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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즐거운 훈련 (7)

DUMMY

201화


“어, 본체야! 너!”


세 마리의 코끼리머리 반송장 중 마지막 놈의 기력을 빨아먹던 하지운이, 두 눈을 치켜뜨더니, 순식간에 복제 인간들과 언데드들을 모조리 다 소환 해제시켰다.

그러고선 세 구의 반송장들을 모두 수납장에 던져 넣고는, 부리나케 숲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코뿔소머리들의 원귀가 씌기라도 한 것처럼, 아름드리나무들을 닥치는 대로 들이받으며 숲 깊숙이 뛰어들어 온 하지운이 적당한 공터를 발견하자마자 흙 마법을 일으켜서 구덩이를 파 버렸다.

금세 지름 이십 미터, 깊이 삼십 미터의 원형 공간을 만들더니 0.1초도 지체하지 않고 그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잠시 후 구덩이 속으로부터, 지옥 최하층에서 솟구쳐 오르는 듯한, 귀곡성이 터져 나왔다.

입에 담지도 못할 온갖 쌍욕과 패드립이 난무하고 있기에, 누가 봐도 지옥 최하층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아주 고약한 구멍으로 변질되는 중이었다.


십여 분 정도가 지나고 나자, 끝도 없이 계속될 것 같던 악다구니도 차츰 잠잠해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내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참화가 뒤따라 들이닥쳐, 숲속 친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고 말았다.

하늘도 무심하게, 이번에는 구덩이 속에 난데없는 블랙홀이 생성되더니, 주변 일대에 복구할 엄두도 안 나는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만 것이었다.

훗날 마귀의 호수라는 이름을 갖게 될 지름 칠백 미터, 깊이 백오십 미터의 크레이터가 숲의 경계 지점에 형성돼 버린 것이다.


한참을 누워서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던 대자연의 적 하지운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사막을 홀로 걷는 고행자처럼 가파른 경사면을 비척비척 걸어 올랐다.

경사면이 고운 모래 같은 걸로 덮여 있어 발이 푹푹 빠지는 바람에, 안 그래도 심신이 고달픈 하지운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거의 기다시피 해서 구덩이 밖으로 나온 하지운이, 임시 샤워장을 만들어 놓고, 한참 동안이나 전신을 박박 문질러 댔다.


삼십 분 정도가 지난 후 찝찝함이 어느 정도 해소된 하지운이 숲 밖으로 걸어 나와, 자신이 두목으로 있는, 폭력 단체의 식구들을 불러냈다.

식구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비명 혹은 욕설을 뱉어 내는 바람에, 두목 하지운의 씁쓸함이 말도 못하게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복제 인간들이 장난기 하나 없는 얼굴로 진지하게 고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러는 그들 옆에서 금 부장이 울먹이는 불여시를 품에 안고는 진정을 시키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우리 장난치지 말고 진지하게 저거 죽이자. 이 정도에서 돌려보내야 해. 저기서 한 발만 더 가면 진짜 위험해.”

“위험한 걸로 따지면 애저녁에 위험했어. 저게 지금 상태로 돌아가는 것도 공포다. 저게 아파트 단지 옆을 지나간다고 생각해 봐라. 심장 질환으로 급살 맞을 인간이 부지기수일 거다.”

“존나 많이 처먹기야 했다만, 그래도 저건... 처음엔 삼십 센티. 그다음엔 오십, 구십. 그러다가 갑자기 이백칠십? 칠 미터에서 딱 십 센티 부족하네. 저건 도대체 무슨 종으로 분류해야 하냐?”

“씨발, 저런 게 여러 개 있어야 무슨 분류 같은 걸 하지. 그냥 괴물이지 뭐.”

“팔 척 귀신은 명함도 못 내밀겠네. 저 정도면 몇 척이지?”

“대충 22.77척 정도. 근데 원래도 팔 척은 넘었어.”

“아, 맞다. 원래도 이 미터 오십이었지.”


복제 인간들과 언데드 커플의 반응을 보고서는 기운이 쭉 빠져 버린, 신장 육 미터 구십의, 백발 요괴가 저물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살면서 가져 본 얼굴 중에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얻었지만 손톱만큼도 기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하지운이었다.

키가 칠 미터에 근접한 마당에, 면상이 좋아 봐야 그저 잘생긴 괴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2.0버전으로 되돌아온 하지운이 식탁과 의자를 꺼내 놓고 이른 저녁 식사를 준비하였다.

스트레스가 임계치에 다다른 상황에, 먹는 걸로라도 풀지 않으면 돌아 버릴 것만 같았던 것이다.


식탐의 화신이 된 하지운이, 한 며칠 피하고 있던 통구이들을 잔뜩 꺼내 놓고, 애피타이저로 생명의 나무 열매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순간 훌쩍이고 있던 엘프녀가 기겁을 하며 다짜고짜 달려들어서는 열매를 낚아채려 하는 것이었다.


“뭐 하는 거야!! 이건 이제 내 거라고! 딴 건 몰라도, 밥 먹는 걸 방해하면 아무리 너라도 가만 안 둬!”


하지운의 염동력에 허공에 매달린 상태로 팔다리를 허우적대던 엘프녀가 다급하게 고함을 빽 질러 버렸다.


“이 미친놈아! 그걸 도대체 몇 개째 처먹는 거야? 그거 일 년에 하나씩 먹는 거라고! 그것도 성장기에!”

“... 어?”

“네가 그러니까 몸뚱어리가 그 꼴이 됐지!”


듣고 있던 복제 인간들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젓다가,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한마디씩 떠들어 댔다.


“환장하겠다. 저 새끼 요 며칠 동안 한 열댓 개 정도 처먹지 않았냐?”

“그럴걸.”

“대장로 할매 말야. 보통 약은 년이 아닌 것 같더라니. 처먹다가 뒈지라고 본체 새끼한테 일언반구도 안 했던 모양이다.”

“그런 것 같네. 생각하면 할수록 존나 웃긴다.”

“본체야, 나중에 돌아가는 길에 들러서 감사 인사라도 한번 해라. 덕분에 많이 컸다고.”


복제 인간들의 조롱이 귀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한동안 멍한 눈으로 반만 남은 열매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하지운이, 고개를 들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엘프녀를 바라보았다.


“이거 먹을래? 먹던 거라 미안한데... 버리기가 너무 아까워서...”

“너, 아예 바보가 된 거니? 그거 생명의 열매야! 난 네가 만든 언데드고! 너 지금 나더러 그걸 먹고 당장 정화되라고 하는 소리야?”

“아...”

“아니 되오, 셀런!”

“걱정 말아요, 볼드윈. 안 먹을 거예요.”

“무슨 짓이냐, 이 미친 마!”


한층 더 망연자실해진 하지운이 힘없이 손을 저으며 금 부장의 말을 끊었다.


“미안해... 얘 데리고 숲으로 들어가서, 밤새도록 해... 방해 안 할 테니까... 둘이 원 없이 해... 아니다... 얘도 삼 일 동안 시달리느라 후유증이 장난 아닐 테니까... 한 달 동안... 너희 둘이 따로 떨어져서 자라... 위로 차원에서 주는 외박이다...”


시작되는 연인들이, 무릎을 꿇고 공손히 절을 올리고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어... 저 새끼가 왜 저러지?”

“뒈질 때가 됐나 봐! 안 하던 짓을 하잖아!”

“서, 설마... 정말 제 손으로 끝장내고 서울로 돌아가려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

“시끄럽구나. 혼자 있고 싶으니, 닥치고 다 퇴근해라.”


복제 인간들을 모두 소환 해제한 하지운이 반만 남은 열매를 한입에 삼키고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기는 하늘이 참 예뻐. 정말 투명해. 이런 걸 보다가 서울로 돌아가면 하늘 보기가 좆같을 거야. 그렇다고 맨날 비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고.”


슬슬 이곳에 남아야만 하는 명분을 억지로 쌓아 가는 하지운이다.

아무리 이런 상황이라 해도, 자진을 할 마음은 추호도 들지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왜 죽어야 하는데? 그냥 열심히 산 것 뿐이잖아!”


하늘을 향해 호통을 치듯 말하다가 다시 급속도로 침울해져 가는 하가 놈이다.


“키가 대충 백팔십 정도 되는 인간 옆에 선다고 치면... 씨발, 대가리가 내 무릎에도 안 오잖아... 빌어먹을! 이제는 대부분의 인간이 내 앞에 서면 그냥 액션 피규어나 마찬가지라는 얘긴데! 지구에 돌아가서 뭐 하냐고! 변신 상태로 평생 숨어 사는 거밖에 더 있어!”


사람은 누구나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하며 혼자 히죽거리고는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망상이 전부 실현되길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망상하는 것마다 실현이 될 것 같은 놈이 여기 하나 있어, 소시오패스라는 본성에 어울리지 않게, 혼자 청승을 떨고 있는 것이다.


“혼자 있고 싶다. 밥 먹던 중이니, 방해하지 말고 얌전히 돌아가라. 내가 지금 기분이 너무 안 좋다.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보내 줄 때 어서 뛰어라.”


코끼리머리 용사 세 마리가 두 눈을 껌뻑거리며 하지운을 신기하다는 듯이 응시했다.

조막만 한 놈이 사람 말로 지껄이는 걸 온전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기에, 용사들은 팔다리와 코를 흔들며 준비 운동을 하고 말았다.


“너희들 그러고 있으니까, 꼭 나하고 싸우려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지? 내가 착각한 거지? 그러지 마라. 너희들 자꾸 그러면 코를 고추에다 묶어 버린다.”


결국 묶었다.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는 어디 속담처럼, 코끼리머리 세 마리가 구슬픈 눈물을 흘려 대는 것이었다.

하나 울적한 소시오패스의 마음에 남의 슬픔이 와닿을 리가 없어, 코끼리머리들의 가눌 수 없는 시름만 깊어져 갈 뿐이었다.


그 순간 울고 싶은 놈의 뺨따귀를 후려갈기는 듯한 무시무시한 메시지가 들이닥치고 말았다.


「하지운 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도 정말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딱 한 번만 더 훈련의 난이도를 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번에 하면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행히 승아가 진급을 해서 메시지 전송 담당자가 교체된 상황이다.

거리낄 게 없는 하지운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허락의 뜻을 전해 버렸다.


“닥쳐! 그러든 말든! 어차피 다 너희 맘대로 할 거면서! 양해는 무슨 얼어 죽을 양해! 꼴도 보기 싫으니까, 메시지 지우고 당장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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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즐거운 훈련 (9) 24.05.23 15 1 9쪽
203 즐거운 훈련 (8) 24.05.22 16 1 9쪽
» 즐거운 훈련 (7) 24.05.19 19 1 10쪽
201 즐거운 훈련 (6) 24.05.17 16 1 10쪽
200 즐거운 훈련 (5) 24.05.15 15 1 10쪽
199 즐거운 훈련 (4) 24.05.14 14 1 10쪽
198 즐거운 훈련 (3) 24.05.11 22 1 10쪽
197 즐거운 훈련 (2) 24.05.09 14 1 9쪽
196 즐거운 훈련 (1) 24.05.08 15 1 10쪽
195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7) 24.05.06 18 1 10쪽
194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6) 24.05.04 18 1 10쪽
193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5) 24.05.02 16 1 10쪽
192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4) 24.04.30 16 1 10쪽
191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3) 24.04.28 26 1 10쪽
190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2) 24.04.25 18 2 9쪽
189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1) 24.04.23 16 1 10쪽
188 새 역사 창조의 건아 (11) 24.04.21 1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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