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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별의 서재.

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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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5.04.25 23:34
최근연재일 :
2015.05.14 17:49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21,963
추천수 :
459
글자수 :
318,833

작성
15.04.29 16:27
조회
483
추천
9
글자
11쪽

아무래도 형사 양반들이 나설 차례가 올 것 같다는 거지.

DUMMY

“무로이 상. 큰일 났어요. 저 텐트 안에서 지금 이 시각 기상정보를 받아냈는데, 좀 있으면 이쪽 바다에 벼락이 떨어질지도 모른대요. 어제처럼 엄청나게요.”

‘그런 떠올리기도 끔찍한 정보를 왜 나한테 이야기하는 거냐. 나더러 뭘 어쩌라고.’


무로이는 걱정으로 그렁거리고 있는 아리의 검은 눈동자에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후우. 그는 서둘러 시선을 깔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곁에서 히구치와 다른 동료 경찰들은 뭔가 묘한 공기를 감지하고는 모두 입을 다물고 그 둘을 은근히 지켜보았다.


“저 혹시 불길한 일을 부르고 다니는 피뢰침 같은 사람인 거 아닐까요?”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잠시 시선을 깔았던 무로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아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리의 등 뒤에서 외사과의 경주가 담배를 물고 서서 피식 웃어 보이고 있는 것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무로이보다도 컸다. ―한국에서 온 전원이 173cm인 무로이 보다는 컸다― 사내처럼 큰 키에 척 보기에도 골초로 보이는, 아무래도 염색체상으로만 여자.


“아까 전화로 이야기 나누었던 형사과의 ‘무로이 관리관’이시군요. 데이트처럼 하루를 편히 즐기라고 부탁드렸더니 거 참 취향 한 번 독특하시네. 아니면 여기가 이 섬사람들의 주요 데이트 코슨가 보죠? 아니면 형사로서의 사명감인가요? 하지만 아직 형사과가 들이밀 상황은 아닌데 말입니다. 아무튼 기왕지사 여기까지 오셨으니 말씀드리지요. 누가 해도 해 줄 설명일 테니까 한가한 제가 맡아 드리죠.”


무로이는 멍청한 형사 M 씨와 같은 얼굴로 자신보다 더 남성미 넘치는 경주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곧 아리며 히구치며 모두가 에워싸니 이건 무슨 농구 시합 중의 작전타임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되었다.

실제로 경주도 그런 용도로 쓰이는 미니 자석 판 화이트보드에 찍찍 선을 긋고 알록달록 색깔 자석을 옮기며 설명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현재 상황은 대충 이렇습니다. 댁이 새벽에 찾아냈다는 이 C 포인트의 시신은 어찌어찌 수습할 수 있겠지만 이 이상 기상악화에 정말 번개까지 친다면 다들 여기. A 포인트는 거의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하네요.”

“아아. 네.”

“그리고 여기랑 여기. D, F 포인트의 유류품 수습 정도는 내일 다시 도전해도 가능할 겁니다. 물론 이 폭풍우가 지나간 후에도 남아 있어 준다면요. 그러니 지금 텐트 본부에서는 기상 문제로 모두 진땀을 흘리고 있어요. 어찌되었든 지금 C 포인트로 내려간 A 카메라가 막 켜진 상황인지라 부디 금번의 작업으로 무사히 C 포인트 문제만큼은 해결하기를 모두들 바라고 있지요.”


어안이 벙벙한 무로이는 멍하니 입을 벌리곤 이번엔 히구치를 돌아보았다.


C 포인트? A 카메라? 이게 다 무슨 소리냐 싶었다. 그러자 무로이에게 멱살을 잡혀 순간 스트레스 지수가 확 치솟았던 히구치나 제가 설명을 잘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무로이를 바라보는 경주는 씨익. 각기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불청객’의 당황해 하는 모습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즐겼다.


‘그것 봐. 잘 나신 형사 양반. 그게 당신 한계지. 뭣도 아는 것 없으면서 나대긴 어딜 나대. 지금이라도 다시 저 예쁘장한 아가씨랑 데이트나 하라니까? 그게 싫으면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던가.’


그런 표정들. 무로이는 그제야 아! 자신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있구나. 하는 소외감에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그도 잠시. 텐트 본부에서 당당한 덩치를 한 중년 남성 한 명이 밖으로 나와 작은 소동의 중심이 되어 있는 무로이를 한 번 흘끔 보더니 손짓을 했다.


“거기. 형사 양반이라며? 경주 씨. 잠깐 이리로 오라 해 봐.”


‘이장님’인 윤이장 팀장이 ‘관리관’인 무로이를 불렀다.

무로이는 얼떨떨한 얼굴로 윤 팀장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그런 무로이의 등 뒤에 껌딱지처럼 찰싹 붙어 있던 손아리까지 졸졸 따라가는 게 아닌가?


“워. 아가씨는 잠깐 여기 서 있어요. 안에는 위험하니까.”

“앗. 저기.”


윤 팀장이 무로이를 텐트 안으로 이끌다가 쫄쫄 따라오는 꼬리인 아리를 싹둑 잘랐다. 그러자 아리는 홀린 듯 무로이를 따라가다가 앗! 하고 정신이 들어 금세 눈썹이 축 처졌다.


“저기, 골초 언니. 이 아가씨 좀 잘 봐 드려.”


윤 팀장은 경주에게 아리를 떠맡기곤 무로이와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 안은 고작 천 한 장 차이일 뿐인데, 바깥의 미쳐 날뛰던 공기가 믿기지 않게 확 죽어 있었다.

모두는 헤드셋을 하고는 바닥에까지 늘어진 8대의 노트북에 몰두해 각자의 마이크와 핸드폰으로 서로 다른 곳과 각자의 용건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8대의 노트북 중 3대는 A 카메라가 보내는 영상. 한 대는 B 카메라의 영상. 한 대는 기상청에서 보내주는 레이더 영상. 한 대는 부산지방경찰청으로 추정되는 곳을 연결한 영상. 나머지 한 대는 무슨 보고서를 작성 중인지 한글들이 짜라라 춤추고 있었고, 마지막 한 대는 영문도 섞인 법의학 관련 자료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펼쳐져 있었다.


무로이는 그 비좁은 어둠 속에 펼쳐져 있는 신세계에 정신이 팔렸다. 그중에 무엇보다 눈을 끄는 건 A 카메라가 보내주는 시신의 상태였다. 시신에는 이미 허옇게 퉁퉁 불었다곤 해도 목 부분에 어쩐지 모르게 의심스러운 흔적이 보였다.


A 카메라는 본부의 지시에 따라 그 모습을 여러 각도로 사진 찍어두는 듯했고, 노트북 한 대에서는 신속하게 프로그램을 돌려 그 사진이 더 뚜렷하게 보일 수 있도록 여러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한 쪽에선 고성능의 컬러 프린터기가 쉴 새 없이 사진들을 뿜어 내놓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란 듯이 무로이에게 보여주는 윤 팀장은 텐트에 목만 박아두고 쭈그려 앉아 있는 외사과의 홍준대에게 통역을 맡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댁도 형사 나부랭이라니까 이런 상흔에 대해 책으로라도 접한 적은 있겠지. 이건, 이번 노인들의 자살 여행이 순수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될 걸세. 물론 노인들의 유서나 육성 파일은 신빙성이 있어. 지금 전국적으로 조사령이 내려졌으니 일단 조금 더 기다려 봐야겠지. 우린 저 노인들의 처한 상황이 유서가 말해주듯 자살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절망적인 경우라는 것도 사실이라고 일단 그리 보고 있어. 하지만 봐. 저거야.”


무로이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래. 저거다. 젠장! 저거야!


“우리 측 과학수사팀에서는 어느 누군가가 이곳에서 자살하려 했던 노인들에게 누군가 개입을 했다고 보고 있네. 어쩌면 지금 보고 있는 저 노인은 막판에 죽으려던 마음을 돌렸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 누군가의 개입으로 인해 결국 저렇게 된 거야. 이미 목이 졸려 숨진 후에 던져진 건지, 아니면 목이 졸렸기 때문에 저항하다가 제풀에 떨어진 건지. 그거야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윤이장 팀장은 하필 그 순간, 호주머니에서 하얀 조약돌 모양의 껌을 꺼내 6개 모두를 입에 털어 넣더니 불명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웅얼거렸다.


“아무래도 이 동네 형사 양반들이 나설 차례가 올 것 같다는 거지.”

“······.”


그때 텐트 밖에 서 있던 아리와 텐트 안에서 넋을 놓고 있던 무로이의 품에서 동시에 전화가 울렸다.


그 때문에 “모시모시?”와 “여보세요?”가 황급히 텐트의 입구에서 부딪히더니 곧장 “으악!”이라는 동시비명으로 이어졌다.


전화 소리에 놀란 무로이가 본부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서둘러 텐트 밖으로 뛰어나오다가 입구에 서 있던 아리와 험악하게 부딪혀 둘 다 질척한 바닥에 쓰러질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관리관! 무슨 일입니까!”와, “야! 손아리! 뭐야!”가 서로 다른 고성능 핸드폰에서 쨍쨍하니 터져 나왔다.


“원. 보고 있기에 지루하지 않은 바보 커플이군. 혼자 보기 아까워. 저 꼴을 남서 형사들도 두루 봤어야 하는 건데······.”


히구치가 담배를 질겅대며 그리 중얼거렸다. 그러자 안 그래도 작고 왜소한 히구치를 굽어보며 경주도 긍정하는 담배 연기를 내 뿜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무로이와 아리, 젊은 두 남녀는 서로 부딪혔던 부위를 매만지며 통화에 집중하느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무로이에게 온 건 남서 본부에서 온 긴급한 전화, 아리에게 온 건 허은정의 ‘나름’ 긴급한 전화였다.


“야. 손아리! 나 경찰한테 전화 받았어. 너 도대체 거기서 뭐 하고 다니는 거냐? 왜 나한테까지 전화가 오는 거냐고! 너랑 마지막 통화한 사람이 나라며? 이야기는 대충 들었어. 아무튼 넌 무사한 거지? 그러게 내가 뭐랬어. 가지 말라고 했잖아. 이 등신아! 그나저나 너 혹시 근처에 남자 없냐? 남자? 남자! 남자! 지금 네게서 남자 냄새가 나!”


이게 무슨······.


아리는 어이가 없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허은정이란 인간이 작두만 안 탔지 별종 중의 별종임은 알지만, 어떻게 전화상으로 그것도 국제전화인데 남자 냄새를 맡는다는 말인가.


“남자? 지금? 근처에 어. 남자들 아주 그냥 득시글거려. 스무 명도 넘는 거 같아. 그런데 언니 너님은 대체 뜬금없이 그런 건 왜 묻는 거냐! 여튼 난 괜찮아 걱정 마. 근데 왜 여기서 일이 터졌는데 언니한테 전화가 가?”

“네 쪽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너랑 나랑 하는 통화내용을 어떻게 들었나 봐. 이거 대한민국 망조 아니냐? 제멋대로 통화내용을 들추고 말이야. 아무튼, 그래서 내가 통화 중에 노인들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래서 일산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놔. 그 경찰 양반 작년에 이상택 신부님 살해 사건 때문에 나 담당했던 양반이더라고. 아 다짜고짜 또 너냐? 식으로 나오잖아. 서로 짜증 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됐고! 그래서 경찰이 뭐래?”


아리는 무로이의 가슴에 기세 좋게 처박혔던 제 코의 찡한 통증을 매만지며 맹맹한 소리로 통화 하고 있었다.


“대마도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지리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고 있었냐. 이번에도 작년처럼 그냥 우연이고 짐작이냐. 아니면 정말 노인들의 죽음에 대해 실제로 뭔가 알고 있었던 거냐. 알고 있었다면 솔직히 말해라. 어떤 경로로 알게 된 거냐. 그거지 뭐.”

“좋겠다. 언니. 동네 경찰들에게 인기 많아서.”

“지금의 너만 할까. 네 쪽은 아예 리얼 ‘수사반장’ 드라마 상황일 거 아니야.”


평소라면 그냥 서로가 서로를 찌르면서 그것도 재미라고 수다를 나눴을 것이다. 하지만 은정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바보 잡담에도 오늘의 아리는 갑자기 혈압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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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꿔다 놓은 보릿자루 15.04.29 338 8 12쪽
» 아무래도 형사 양반들이 나설 차례가 올 것 같다는 거지. 15.04.29 484 9 11쪽
36 무로이와 손아리 15.04.29 314 8 13쪽
35 그들의 목숨 건 활약이 시작 된다 15.04.29 553 9 14쪽
34 반쇼인에서 15.04.29 435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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