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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별의 서재.

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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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5.04.25 23:34
최근연재일 :
2015.05.14 17:49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21,905
추천수 :
459
글자수 :
318,833

작성
15.05.01 13:13
조회
416
추천
7
글자
12쪽

그와 그녀의 시간

DUMMY

오늘까지 이 섬에서는 무려 10명이 죽었다.


한국인 6인의 자살과 시마노 부부의 죽음과 나머지 한 명은 빗길 운전 중의 사고사. 다른 한 명은 고령으로 인한 자연사였다.


그중 7명이 자, 타살.


그렇게 섬은 이틀간 폭풍우가 아닌 피로 젖었다.

노인들의 눈물과 한으로 찐득찐득하게 젖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계속 추가 인원이 양국에서 이리로 건너오고 있고, 내일이면 부산을 통해 부산 지청 경찰만이 아닌 경기지청, 전주지청, 경남지청 등. 이번 사건에 관련된 타 지역 경찰들까지 들이닥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사건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던 노인들의 자식과 손자 대까지 이어지는 온갖 유형의 범죄가 너무나 골고루, 그리고 광범위하게 엮여있었다.

아무래도 단순한 노인 자살로 정리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양국에 걸친 대사건이니만치, 이제 일본도 본토의 추가 인력들이 구름처럼 몰려올 분위기였다.


이미 양국의 메이저급들 방송 기자들은 모두 배와 항공편으로 넘어올 만큼 넘어왔다. 아마 내일이면 온갖 지방방송과 케이블 방송사와 심심한 외신들. 듣도 보도 못한 신문사들과 잡지사의 기자들까지 몰려올 것이다.


거기다가 간만에 날씨가 화창해졌으니 가까운 외국을 즐기기 위해 몰릴 주말 관광객까지 몰려오겠지. 섬이 아주 터져날 판이다.

남서 북서 경찰서도 모두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현의 추가 파견 경찰들과 온갖 기자들도 상대해야 하고 사건도 정리해야 할 테니 말이다. 몰려올 주말 관광객과 기자들로 혼잡해질 섬에서는 또다시 자질구질 한 사건·사고가 이어지겠지. 자, 타국인을 막론하고 민원업무에도 친절히 임해야 한다.


관광객들은 보통 관광회사의 버스로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주말에는 또 고집스럽게 자신이 가져온 자전거나 오토바이 등으로 라이딩을 즐기겠다는 관광객도 많았다. 그것도 단체로.

그뿐인가. 아예 걷는 걸 즐기겠다는 개인 여행 관광객도 있고 금지된 떡밥 낚시를 숨어서 즐기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오직 등산만을 위해 넘어온 관광객도 있다.


문제는 그런 등산 관광객이 등산만 하는 것도 아닌지라 그들이 휩쓸고 간 후에는 산의 이곳저곳에 처박힌 온갖 술병들과 기타 쓰레기들을 처리해야 한다.

그들 중에는 산을 잘 타지도 못 하면서 술판을 벌이려고 깊은 산중에 들어갔다가 취중에 미끄러지고 넘어져 뼈가 부러지는 관광객도 있었다.


그야말로 별의별 인간들이 넘쳐났기에 섬의 경찰들은 평소에도 주말이면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었다.

그 모든 관광객 중 주말 이틀 동안 또 누가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섬은 안 그래도 대비상이 걸린 상황이지 않은가. 평상시에도 주말에는 정신이 없었건만······.


그런 마당에 이 남자다.

누가 신경이나 쓸까? 섬이 인파로 터져 나도 여긴 아무도 오지 않아.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병실. 저리도록 쓸쓸한 상황이건만 정작 무로이와 아리는 오히려 편했다.


무로이는 차라리 잘 됐다고 웃었다.


“옆에 괜히 동료라도 붙어 있었다면 그게 더 불편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거꾸로 내가 쫓아 보냈겠지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손님이 있어 주시는 건 솔직히 미안하지만, 정말이지 고맙습니다.”


무로이는 처음에는 거의 식물인간 같았지만 아리의 존재가 그 서글픈 공간에 들어선 순간부터 다시 숨을 받은 사람처럼 눈에 띄게 나아지고 있었다.


그는 아이처럼 웃고 아이처럼 유치한 소리를 했다. 그렇게 아리와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무로이 신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제대로 입원 절차를 밟은 것도 아닌지 뭔지. 병원에선 밥도 안 줬다. 그런데도 두 남녀는 배고픈 줄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어느새 그 문제는 무언의 금기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래서 둘은 각자 깨알 같은 서로의 일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로이는 섬의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그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모두가 무엇에든 심취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소설에 심취하는 사람은 거의 준 작가 수준이라고 하고, 낚시에 심취한 사람도 당연히 도사라고. 그 외에도 바둑이나 서예, 기타 등등에 모두 깊이 빠져들지만 그중에서도 하필 생산성 없는 게임에 심취하는 학생들은 미래가 걱정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녀석이 하나 있군요. 법정속도 시속 40km인 이런 섬에서도 F-1 카 레이서를 꿈꾸는 녀석이었지요.”


반면 아리는 하나 있는 ‘동생 년’과 자신이 달라도 너무 다른 점에서부터 오는 갈등을 우스꽝스럽게 들려주었다. 또 여자들의 생활이 남자들이 상상하는 만치 아름답지 않다는 현실 고발과 동경에서 어학연수를 할 동안 있었던 일. 회사에 다니면서 있었던 웃겼던 일이나 더러운 일. 끝으로 대마도에 오기 전에 허은정이라는 지인이랑 있었던 일 등을 들려줬다.


그러자 무로이는 언제 아팠냐는 듯 눈에 띄게 좋아졌다. 또 그간 아픔만을 곱씹던 아리의 가슴도 조금씩 웃을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렇게 둘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기 시작하자 무로이는 마음이 편해진 탓인지, 담담하게 웃는 얼굴로 아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어 신선한 충격을 불러왔다.


“아무튼 이번 일로 분명해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는 경찰 체질은 아닌 모양입니다. 나약하고 한심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전 이번 일. 아무것도 견딜 수가 없어요. 동료들은 시간이 약이라곤 하지만 글쎄요······. 이 바닥에서 계속 시간을 보낸다고 이번 일의 기억이 없던 일처럼 사라져 줄 것 같지가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저만하겠어요? 라고 못하겠네요. 무로이 상이 겪은 일은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하지만 경찰이니까 그래도 더 강철처럼 이겨낼 줄 알았어요. 아무래도 경찰은 강하다. 그런 이미지가 일반적이니까요.”

“네. 나도 내가 이렇게 섬세한 크리스털 하트를 지닌 체질인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어제오늘은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멘탈은 이제 막 여고생이 된 소녀 체질인가 봐. 그래서 이참에 난 다른 길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로를 변경해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까? 아리는 있지도 않은 남동생의 고민을 들은 듯 화들짝 놀랐다.


“으악! 아니 왜요? 전 경찰 계급 같은 거 잘 모르지만 무로이 상은 회사로 치면 그래도 그 나이에 벌써 과장님 정도는 된 거 아닌가요? 그런데 갑자기 진로 변경이라고요? 꼭 끔찍한 일과 맞서야 하는 형사 말고도 경찰 일은 많잖아요.”

“그거야 그렇지요.”

“그럼 형사 말고 다른 부서로 옮기면 어때요? 지금의 무로이상 정도 되려면 엄청 노력한 것일 텐데, 지금까지 쌓아둔 경력이며 스펙은 다 어쩌고 갑자기 다른 길을 쳐다보려고 하세요. 그 나이에 다른 일이라니. 그건 거의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거라고요.”

“하하······.”


어째서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하면서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걸까? 아리는 극과 극의 선택을 놓고 진로를 걱정하는 고 3학생을 나무라는 담임의 심정으로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멋지잖아요. 특별하잖아요. 경찰이잖아요. 무로이 상은 어릴 때부터 경찰 아저씨가 되려고 꿈을 키우고 노력해 온 거 아니었어요?”


아리가 ‘어릴 적의 꿈’을 운운한 건 그의 흔들리는 마음을 똑바로 세워주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무로이는 그녀의 이야기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 딱히 경찰이 되려 한 건 아니었어요.”

“네? 그럼?”

“후훗. 들으면 웃으시겠죠. 별거 없었어요. 전 그냥 이 섬에서 조금 별난 사람이 되어보자. 그런 생각뿐이었지요. 그게 어렸던 저의 인생 목표였습니다.”


그의 이야기에 아리는 동그랗게 뜬 눈이 되어서는 속으로 외쳤다.


‘그래! 지금 충분히 별나잖아! 그럼 지금에 만족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중에도 무로이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이 쓰시마에서 태어난 섬의 토종이 아니거든요. 그 때문에 어릴 땐 이지매도 좀 당하곤 했죠. 그래도 여긴 인구도 적으니 날 괴롭힐 아이들의 수도 적었고 반면 나로선 여기저기 숨을 곳도 많았고요. 이래저래 그 시절의 도시에서보단 왕따로서 적당히 지낼 만했다고 볼 수 있죠. 그렇게 지내면서 생각을 한 것이 별난 장래였습니다. 섬을 영영 떠날 것이 아니라면 어디 한 번 섬에서 가장 희귀한 일을 해 보자는 것이었지요. 어린 시절엔 저도 약간 톰 소여처럼 엉뚱한 구석이 있었던지라. 하하.”

‘잠깐. 어릴 때가 아니라 지금도 그렇잖아. 그 나이에 직종을 바꿔 볼까? 라니, 엉뚱이 톰 소여의 뺨을 치고 있어!’

“그 시절의 이 섬은 도로 사정도 지금과 비할 수 없었고 본토 사람도 한국 사람도 볼 일 없었어요. 아이들로서는 그야말로 지구상에 세상이라는 공간은 이 작은 섬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상황이었지요.”


무로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 복잡한 생각에 잠기는 아리는 어쨌거나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무로이는 끔찍한 일로 인해 받은 충격을 많이 상쇄하는 모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산에서 일하거나 텃밭을 매는 어른들뿐이었지요. 물론 기본적으로는 대부분이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갔고요. 그런 상황에서 1년에 한두 번. 큰 행사 때나 볼까 말까 한 경찰 아저씨는 어린 제 눈에는 그야말로 가장 희귀한 직종의 사람이었으니까요. 아예 종족이 달라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해보고 싶었지요. 그냥 튀어 보고 싶어서.”

“뭐야. 단지 튀어 보고 싶었다는 것뿐?”


아리는 이제 남동생의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누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 그냥 튀어 보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도쿄까지 유학을 다녀올 동안에도 몇 번이나 본토근무를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일단은 섬으로 돌아온 거죠. 어렸을 때 절 외계인 취급하던 또래 녀석들에게 경찰이 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요. 요즘이야 뭐 경찰들이 예전에 비할 수 없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 섬에서 나름 튀는 직종이니까요. 이런 이야기. 웃기지요?”

‘웃기기보단 유치해!’


아리는 자신보다 한 살 어린 나이에 나름 꽤 성공한 위치에 오른 무로이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어른스럽고 듬직한 남자라고 생각한 것과 본모습은 너무 달랐다. 수줍게 웃으며 드러내 보여주는 그의 진실한 모습. 그건 너무나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럼 무로이 상이 만약 다른 일거리를 생각하신다면 그것도 또 희한한 거로 생각하고 계시겠네요? ‘튀는’ 걸로?”

“그야 물론······.”

“그럼 아예 전국구로 튀는 연예인이나 남자 해녀나 남자 간호사 어때요? 여기 섬에선 완전 튈 것 같은데. 아, 섬의 유일무이한 에어로빅 강사. 요가 선생. 발레학원 원장선생. 여성 전용 스파 사장님. 네일 아티스트. 애완견 장례업자. 뭐 그런 거는 어때요? 완전 튀겠는데.”

“푸하하하하!!”

‘바보야. 이게 지금 웃을 일이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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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집필 후기> +8 15.05.14 619 10 3쪽
55 그 섬에 가고 싶다 +4 15.05.05 653 11 18쪽
54 그냥 저러다 말겠지 15.05.02 402 8 17쪽
53 치유될 시간이 필요해 15.05.01 337 8 12쪽
52 대마도에서의 5일째 15.05.01 354 12 14쪽
51 한국의 의사들 15.05.01 313 7 14쪽
» 그와 그녀의 시간 15.05.01 417 7 12쪽
49 그의 외로움. 그녀의 괴로움. 15.05.01 346 7 12쪽
48 갑자기 15.05.01 368 8 15쪽
47 섬사람들에게 섬의 신이란 15.04.30 343 8 12쪽
46 그리움 15.04.30 441 8 21쪽
45 허은정의 '그런 쪽'의 이야기 15.04.30 496 9 11쪽
44 사건의 전말 15.04.30 373 9 17쪽
43 섬의 신은 무슨 장난을 친 것인가 15.04.30 385 8 12쪽
42 이상한 능력이 생겨버린 건 아닐까? 15.04.30 359 9 11쪽
41 특별 수사본부 15.04.29 363 10 12쪽
40 낙뢰 15.04.29 395 9 12쪽
39 빛이 터졌다 15.04.29 347 10 13쪽
38 꿔다 놓은 보릿자루 15.04.29 337 8 12쪽
37 아무래도 형사 양반들이 나설 차례가 올 것 같다는 거지. 15.04.29 481 9 11쪽
36 무로이와 손아리 15.04.29 314 8 13쪽
35 그들의 목숨 건 활약이 시작 된다 15.04.29 553 9 14쪽
34 반쇼인에서 15.04.29 433 8 13쪽
33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스며들었다 15.04.28 397 9 12쪽
32 부탁입니다. 그냥 울어 주세요. 15.04.28 354 7 10쪽
31 그들이 왔다 15.04.28 404 8 12쪽
30 이젠 뭘 봐도 꿈같아 15.04.28 320 10 13쪽
29 한탄의 쓰쓰자키 절벽 15.04.28 700 10 15쪽
28 부산 경찰이 뜬다고?! 15.04.28 376 9 16쪽
27 잠 못 드는 밤 15.04.28 287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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