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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별의 서재.

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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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5.04.25 23:34
최근연재일 :
2015.05.14 17:49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21,903
추천수 :
459
글자수 :
318,833

작성
15.04.28 22:20
조회
353
추천
7
글자
10쪽

부탁입니다. 그냥 울어 주세요.

DUMMY

늦은 조식이었다.

부산에서 도착한 경찰들의 일정이 약간 변경이 되었는지, 역시나 아침부터 아리를 찾아올 정신은 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아리는 한국 경찰들이 찾기 전까지는 오늘도 그냥 자유롭게 지내면 된다고.


‘그럴 거면 처음부터 말하란 말이다!’


부산 경찰은 우선 쓰시마의 형사과 사람들과 미팅을 가졌다. 그래서 들으니 노인들의 사인은 자살이 분명하겠으나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가장 먼저 미우다 해수욕장 현장과 쓰쓰자키 현장으로 가서 전날에 발견된 훼손된 시신과 새벽에 무로이가 발견했다는 시신들을 확인하고 조사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일단 현장과 시신을 보면 과학수사팀과 수사팀에서 여러 가능성과 의견을 내놓을 것이다. 일이 의외로 급하게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아리의 순서는 아니다.

하지만 부산경찰은 누군가 한 명 정도는 아리를 곁에서 계속 관찰하며 보살피기를 원했다.


부산 경찰과 쓰시마 경찰의 첫 의견 조율이었다.

경찰은 부인의 죽음으로 인해 아직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미니버스 기사인 시마노는 일단 대기시켜두고 아리는 자유롭게 마음을 풀도록 놔두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만 현재 심한 악천후이고, 아리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혹은 받을 상황이니 혼자 두지는 말라.


무로이에게 전달된 사항은 그런 것들이었다.


잠깐, 이번 사건을 최초로 사건으로 들어 올린 공은 무로이가 세웠다고. 그런데 뭐냐. 그 전달 사항은. 요약하자면 그 날은 느긋하게 손아리의 일일 가이드나 해 주라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밤을 지새우면서 노인들의 시신을 찾아내어 최고의 수훈을 세운 것과 다름없는 무로이를 나름 최대한 배려한 임무였다. 하지만 무로이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나더러 저 손님과 쎄쎄쎄나 하라고? 부인 경찰도 있지 않은가. 어째서 나냐! 쉬게 해 줄 참이면 아예 그냥 집에서 편히 잠이나 자라고 하지. 이게 무슨 배려냐고! 그리고 저 손님은 무조건 아니라고? 전혀 용의자로서 의심할 건덕지가 없다? 부산 경찰이라고 뭐 대단한가 싶었더니, 어떻게 손아리의 얼굴도 한 번 안 보고 잘도 넘겨짚는군.’

“······.”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어지러운 무로이는 조용히 맞은편에 앉아있는 아리의 존재를 새삼스럽게 인식했다.


‘왜 이러냐 진짜.’


그는 손아리가 분명 앞에 있는데도 시야나 머릿속에서 종종 사라지는 것 같았다. 자신이 이상한 건지, 손아리라는 여성이 신비로운 존재인 건지.

아리는 계속 어느 순간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났다. 물론 그녀의 육체는 어디 안 가고 아까부터 계속 무로이 앞에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무로이는 손아리가 텅 빈 공간에서 갑자기 나타난 기묘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은 온통 사건으로 가득한데, 자신은 지금 그녀와 함께 늦은 아침 식사나 기다리고 있다니. 뭐, 현실 감각이 좀 떨어질 만도 하지.


“어차피 오늘도 호텔의 조식은 7인분이잖아요? 그런데 (살아)남은 사람이 저 혼자니까. 이렇게 해요. 제가 2인분 먹을게요. 무로이상이 2인분 드시고, 경찰 언니가 알아서 양껏 잡수세요. 그럼 1인분이나 2인분이 남으니까 그건 도시락으로 싸달라면 돼요.”


와아 질린다. 이 와중에도 저 계산 머리.

무로이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아리를 바라보며 터져 나오는 한숨을 가슴 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그러든 말든. 아리는 계속 한숨을 토하면서도 꾸역꾸역 2인분의 아침을 묵묵히 입속에 쑤셔 넣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무로이는 한국인은 정말 신기하다고 느꼈다.

일본의 여자였다면 이럴 땐 손수건 한 장을 꺼내 들고 우아하게 눈물을 콕콕 찍었을 거다. 남몰래 끙끙 앓으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겠지. 식사는 예의상 조용히 깨작거리다 대부분 남겼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한국여자 손아리는 그야말로 ‘꾸역꾸역’ 이었다.

지켜보고 있는 쪽이 체할 것 같았다. 어떻게 일행 모두가 죽고 자기 혼자 살아 있다는데 음식이 저렇게도 잘 먹히지?


두 다리 쭉 펴고 잘 자고, 밥도 꿀맛인 양 저리 잘 퍼먹는 모습은 일본인 무로이로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할 일 다 해놓고 속이 다 후련해진 대범한 범죄자에게서나 볼 법한 모습인데, 그렇다고 저 아리라는 아담한 몸집의 여자가 노인들을 쫓아다니면서 죄다 찔러 죽이고 밀어 죽인 범인으로는 보이지 않잖아.


그런데 어떻게 음식이 저렇게 잘 먹히느냐고!

그런데 아리는 그런 생각에 어이없어하는 무로이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이것저것 정신없이 퍼먹다가 갑자기 목이 막혀 컥컥대며 물을 들이켰다.

아리는 목구멍에 꽉 막혔던 것이 간신히 넘어가자 멍해진 무로이와 부인 경찰에게 갑자기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변했다.


“무로이 상이랑 언니에게는 지금의 제가 굉장히 이상하게 보이지요? 하지만 전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팍팍 먹어줘야 해요. 먹고 힘내야지요. 산 사람이니까.”

“······.”

“네. 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요. 많이, 오래, 질기게, 독하게. 한국 사람은 이래요. 아니, 물론 다는 아니지만요. 이런 경우엔 전 이러기로 했어요. 왜냐고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버린 시간을 그대로 바닷물에 담가버릴 순 없으니까. 그래서 난 지금 그 시간을 허겁지겁 줍는 기분으로 초조해요.”

“······.”


그렇게 말하는 아리의 두 눈에는 어느새 무거운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얼굴은 억지로 웃고 있는데, 목소리도 씩씩한데, 이야기도 뭐 멋지다. 하지만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눈물은 그녀가 말할 때마다 그렁그렁 떨리다가 결국 그녀의 하얀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무로이는 당혹스러움에 놀라선 꽁꽁 얼어붙어 버렸고, 부인 경찰은 그 난감함을 이기지 못해 결국 자기가 “으흡!” 흐느끼더니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그 자리를 이기지 못한 부인 경찰은 간밤의 폭풍우로 자신이 관리하는 도로가 엉망이 되어 있을 것이라며, 교통경찰관의 임무를 당당하게 주장하곤 황급히 서로 돌아가 버렸다.


이제 호텔 방에 남녀 단둘이 있는 것도 아니니 무로이의 요청에 의한 임무는 다 마쳤다고 생각했다. 그에 반해 무로이는 지금이야말로 그녀가 절실히 있어 줬으면 싶었다. 하지만 여경은 이미 도망가 버렸고, 호텔 식당에는 늦은 조식을 앞에 둔 자신과 손아리만 덜렁 남아 버렸다.


무로이는 어쩐지 손아리가 무서웠다.

앳되고 보기 좋게 통통한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있는 그녀. 하지만 아직도 저 무거운 눈물을 밥과 야채 미소국에 비처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그녀. 그런 아리는 터지는 흐느낌을 참느라 숨이 가빠 헉헉거리면서도 굳세게 2인분의 조식을 지금도 억지로 입에 밀어 넣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아프고 무서운지!


무로이는 지옥의 만찬석에 앉은 기분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새벽에 할머니의 시신을 발견하고 가슴이 옥죄였던 것과는 또 다른 충격과 통증이 가슴에서 등까지 뚫고 나오는 것만 같았다.

억지로 밥을 퍽퍽 후벼 파는 아리의 젓가락이 제 심장을 휘적거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기억이 있고부터 가장 끔찍한 아침 식사였다.


차라리 그녀가 마음 편하게 그냥 울어버렸으면 좋겠다. 울어! 울라고! 그 젓가락 놓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그냥 펑펑 울란 말이야. 네. 먹지 말고 울어 주세요. 부탁입니다. 무로이의 마음속엔 그런 외침이 가득했다.


‘무섭잖아. 제발 그러지마. 내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고! 그리고 그만, 그만 먹어! 먹히지도 않는 거 억지로 눈물로 간 쳐서 먹지 말라고! 으아아··· 제길, 돌아버리겠네!’


그는 먹먹해지는 가슴을 쿵쿵 치며 꽉 조여진 목구멍으로 연거푸 냉수만 들이켰다.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펐다. 아리가 견디기 힘든 저 슬픔을 2인분인 식사와 함께 꿀럭꿀럭 넘기고 있는 모습이 어쩌면 죽음. 그 자체보다 더 슬펐다. 계속 하얀 맨밥만 꽉꽉 욱여넣어 양 볼이 불룩해진 여자의 뺨에 흐르는 눈물이 이렇게 아픈 것이라니.


도저히 더는 제 정신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 없어, 무로이는 황급히 티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기상특보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티브이에서는 외국인 한국보다 더 외국으로 느껴지는 홋카이도의 진도 3의 지진 속보가 자막으로 뜨는 가운데 모 야구선수의 숨겨둔 애인에 관한 가십 기사 따위가 흘렀다.


무로이는 앉은 자리에서 티브이를 보려면 왼쪽으로 목을 꺾어야 했다. 하지만 계속 그러고 있으니 목이 뻐근해졌다.

그럼에도 정면을 돌아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여전히 아리의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몇 번은 티슈로 콧물을 처리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러고 있을 수도 없었다.


“무로이 상이라고 해도 된다고 했죠.”

“앗. 네.”

“안 잡수세요?”

“아······.”

“어제 보니 누님께서 식당 하시는 것 같던데, 거기 음식 참 맛있었어요. 그래서 무로이 상은 이런 음식은 입맛에 안 맞으시려나.”

“아니, 그건 아닙니다. 그냥 제가 딱히 아침을 잘 안 먹는 습관 이라······.”

“그래도 간밤엔 한숨도 못 주무셨고 밤새 그 추운 바닷가에 계셨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 여기 호텔 음식은 별로지만 아무튼 뭣 좀 드셔두세요. 그러다가 병나요.”


아니,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 건가.

무로이는 등에서 땀이 솟았다. 하지만 빨개진 토끼 눈으로 방긋 웃어 보이는 아리에게 가타부타 말대꾸할 용기는 없었다.


그는 결국, 우선은 아리가 ‘시키는 대로’, ‘원하는 대로’ 아무튼 먹기 시작했다. 때가 때이니만큼 음식이 무슨 맛인지 전혀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 그 상황에서의 축복이라면 축복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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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그의 외로움. 그녀의 괴로움. 15.05.01 346 7 12쪽
48 갑자기 15.05.01 368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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