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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별의 서재.

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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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5.04.25 23:34
최근연재일 :
2015.05.14 17:49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21,904
추천수 :
459
글자수 :
318,833

작성
15.04.29 18:49
조회
346
추천
10
글자
13쪽

빛이 터졌다

DUMMY

반면 텐트 본부에서는 지금 몹시 급박한 상황이었다.

절벽면의 바람이 더 거세어져서 대원들의 안전에 쉴 새 없이 위협이 가해지고 있었다.


대원들은 이미 포말이 뭉쳐진 하얀 바다 거품 덩이에 온몸이 파묻히고 흠뻑 젖어 저체온이 염려될 지경이었고, 아래에서 절벽을 할퀴고 올라간 바람에 몸이 한 번 공중에 붕 떴다. 거기다가 곧바로 위에서 내리밟는 듯 무겁게 떨어지는 바람에 숨이 컥 막힐 정도로 로프가 조여져 작업이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방금 전만해도 측면에서 휘감은 바람이 대원 둘을 동시에 뒤집어 놓은 탓에 A와 B 카메라 모두 바다와 하늘, 땅과 하늘, 벽과 시신, 서로가 서로의 엉킨 모습을 비추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결국 윤 팀장이 작업을 중지하고 올라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구조팀의 대장으로 절벽에 매달려 있는 이주성은 아직은 더 버틸만하다고 판단하여 계속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현재 텐트 본부는 벼랑 위의 보조 구조팀과 팽팽하게 줄다리기 중이었다.


그런 판국에 무로이가 “살인교사 형사사건이랍니다. 형사들이 오고 있습니다.”라고 해 봐야 뭐 어쩌라고 상황. 지금은 한국 경찰 누구도 그런 것에 신경을 써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주성 대장! 그만하고 올라오란 말입니다! 하~ 나. 이 양반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야! 기상 레이더에서도 지금 이리로 천둥·번개가 접근 중이라고요! 거기나 여기나 똑같이 위험해요! 이곳엔 낙뢰를 피할 곳도 없다니까? 서둘러 차량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 시끄러워. 갑니다! 간다니까! C 포인트 수습 4분 전! 들것에 시신 옮겼습니다. 이제 잘 묶어 올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만 좀 닦달하십시오! 올라오지 말라고 올라간다고!”

“아! 이 사람아! 올라와야 올라온 거지! 사람들 그만 좀 괴롭히고 어서 냉큼 올라오라고!”


자신보다 6살이나 위인 이주성 대장을 향해 흥분한 윤 팀장이 욕만 빼고 온갖 험한 소릴 다 퍼붓고 있었다.


예전에 3, 4급 수준까지 한국어를 공부했던 무로이는 그간 깡그리 잊고 있었던 외국어를 어째서인지 랩 수준의 스피드로 들으며 익숙해지고 있었다. 무로이는 한국인 모두가 정신없이 고함을 지르고 있는데도 오가는 내용을 대충 다 알아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급박한 상황임에도 한국의 경찰은 벼락을 피해 누구 하나 먼저 도망갈 생각을 않는다.


결국 무로이는 혼자 텐트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남서의 형사들이 오기 전까지 교대를 기다리고 있던 지역과의 경찰들에게 현재의 기상 정보를 알리고는 전원 서둘러 차량으로 대피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지막이 으르렁대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공기를 잡아 흔들기 시작했다.


주변은 급격히 악화되는 기상 상태와 함께 말도 못 하게 어수선해졌다. 하지만 쓰시마의 구조대원은 잘 싸뒀던 장비를 다시 어정쩡하게 풀러 놓고 뭘 어째야 할지 저희끼리 고민하며 발을 굴렀다.


당장에 피신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자신들이 구해야 할지 모를 한국의 구조대원과 대장을 저렇게 방치해 둔 채 도망쳤다는 소리를 들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쓰시마 구조팀은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표면적으로 수선을 떠는 건 쓰시마 사람들뿐이었고, 정작 그 위험한 기상정보를 따낸 한국 경찰들은 모두 텐트 안이든 밖이든 각자의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서 있을 뿐이었다.


일이 잘 못 틀어지면 ‘손해’라는 면은 한국 측이 더 크다. 그럼에도 그들은 긴장한 얼굴로 서 있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팀장이 철수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방침이겠지만, 그렇다면 팀장은 어째서 가만히 있는가? 시신 수습 때문에 멀쩡히 살아있는 팀원들이 모두 통구이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정말이지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 먹은 인간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긴, 정상이 아니니까 이런 날씨에 프로펠러 비행기로 섬에 건너올 생각을 했겠지만······.


서둘러 주차장까지 짧은 코스인 아랫길로 대피하는 남서 경찰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던 무로이와 쓰시마의 구조대원들은 아직 어쩌지도 못하고 그렇게 걱정만 하며 서 있었다.


그때였다. 텐트 본부 측에서 뭔가 긴박한 움직임이 있었다. 동시에 바다 서쪽 하늘의 먹구름이 눈에 띄게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C 포인트 임무 완수! 발버둥을 치든 어쩌든 무조건 끌어올려! 시신은 일부 훼손되어도 상관없다. 산 사람을 끌어올려! 그리고 나머지는 전원 일단 데이터(기계류)부터 챙겨 넣고 신속철수다! 서둘러!!”


드디어 윤 팀장의 철수 지시가 떨어졌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난간 너머에서 시신을 수습한 들것이 조심성 없이 우당탕거리며 부랴부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텐트 안에서 나온 윤 팀장은 중요 서류 비닐 파일을 둘둘 말아서 작전 봉을 휘두르는 전장의 장수처럼 다시 외쳤다.


“전원 전속력 철수!”

“아랫길로!”

“팀장님! 이 지도 보니까 윗길 쪽으로 가면 버려진 포탄창고가 있습니다. 뭐 하면 잠시 거기에 기계들 몰아넣고 대피해 있다가······.”

“닥쳐! 아랫길을 통해 주차장으로 전력 질주하는 게 더 빨라!”


그제야 다시 정신을 차린 무로이는 곁에 손아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뒤늦게 놀라고 초조해진 마음으로 두리번거리니, 저 너머 산책길 쪽 난간에 간신히 등을 대고 서 있는 그녀가 보였다.

처음에는 충실히 주차장으로 도망치려고 했던 모양인데 그쪽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의 득달같은 질문세례에 다시 겁을 집어먹고 거꾸로 현장으로 도망쳐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갑작스럽게 현장에서 철수하는 남서 경찰들의 무리에 이리저리 치여 오도 가도 못 하는 꼴이 되어 있었다.

시력이 좋은 무로이의 눈에는 아리가 잔뜩 울상이 되어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불안해 보이던지. 물가에 내놓은 아이도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무로이는 모두와 함께 힘을 합해 맞아들여야 할 시신을 뒤로하고 아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손님! 거기 그러고 서 있으면 어떡합니까! 빨리 제 차로 돌아가요! 차 문 안 잠갔으니까. 차 안에 들어가 얌전히 앉아 있으라고!”


무로이는 달리면서 목청껏 그리 외쳤다. 하지만 갑자기 미친 듯 울부짖기 시작한 뇌신의 포효에 묻혀 그 목소리는 아리에게 닿지 않았다.


아, 결국 그녀를 직접 끌고 가는 수밖에 없다. 무로이는 그리 먼 거리도 아니건만 왜 그렇게 발이 더디게 느껴지는지. 답답한 마음으로 미끄럽고 철퍽거리는 흙탕을 튀기며 정신없이 달렸다. 하지만


— 콰아앙!!


누구냐. 빛이 먼저고 소리가 그다음이라던 사람은.

이번에는 갑자기 소리부터 터졌다고! 놀란 아리가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흐물흐물 주저앉는 모습이 갑자기 눈을 하얗게 가린 빛과 빛 사이에서 뚝뚝 끊어져 보였다.


“손님! 일어나! 달리라고!!”


이번에는 목소리가 닿았는지 어떤지. 난간을 붙잡고 주저앉아 있던 아리가 외길인 산책길에서 자신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오는 무로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시금 세상을 부스러뜨리는 폭음이 터졌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또다시 세상이 수만 갈래로 쪼개지는 소리가 나더니 이번에는 광포한 번갯빛이 공간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


바다의 으르렁임과 미친 바람 소리. 그리고 천둥소리와 빗소리. 나무가 우수수 술렁이는 소리. 거기다가 뭔가, 지진이 난 듯 지면이 덜덜 흔들리면서 우루루 무너지는 소리.


아리의 외침은 그 모든 소리를 뚫고 화살처럼 무로이의 귓가에 꽂혔다. 정작 아리는 자신이 뭐라고 외쳤는지 듣지도 못했건만, 누구도 듣지 못 한 외마디 비명 “무로이 상!”을 당사자인 무로이는 똑똑히 들었다.


***


정오를 약 4분쯤 지난 시간.


허은정은 한숨을 토했다.

그리곤 대리 아르바이트 매장에까지 들이닥친 일산 경찰서의 형사 두 명에게 지극히 무성의한 스틱 커피를 타주고 있었다.


그들의 질문은 예상대로였다. 그리고 집요하기보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감상의 무한 반복이었다. 어떻게 죽음을 예감하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한 명도 아니고 7명이나. 그것도 나라 밖에서 일어날 일까지. 네 정체가 대체 무엇이냐. 혹시 미래인이냐.


보통 경찰의 입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미스터리한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어이구야.’하고 두통을 느낀 은정의 커피 공세로 이야기가 잠시 끊어졌다.


질문은 비단 쓰시마의 자살 여행 사건에 한정되지 않았다.

보통 소설이나 영화 같은데 나오는 경찰들은 그런 미스터리한 일을 접하면 일단 백이면 백. 전부 부정부터 하고 보던데, 현실의 경찰은 거꾸로 막 신기해하면서 들러붙었다. 게다가 대화는 시간이 갈수록 산으로 바다로 표류하고 있었다.


처음엔 작년에 있었던 스타 배우 장민성 사건으로 인해 이상택 신부님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을 거듭 물으면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어떻게 그런 사건들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 그 ‘삐리리’한 영적 감각이 그때도 지금도 과연 우연일 뿐이었느냐. 그러다가 사실은 인터넷이나 다른 어떤 경로로 힌트를 얻었던 것은 아니냐. 노인들의 자살카페라는 것은 아느냐? 들어본 적은 있느냐? 클릭 실수로라도 들어가 본 기억이 없느냐? 등등의 질문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뭔가 호흡 수련을 하느냐. 혹시 내단 수련이냐? 기감이라는 걸 느끼느냐? 예언이라는 걸 믿느냐? 예지몽을 꾸느냐? 꿈에서 조상령이 나온다든가 하지는 않느냐? 혹시 무당집에는 가 봤느냐? 혹시 국내 명산을 다니면서 기도수련을 한다거나 한 적은 없느냐? 등등. 이야기가 심각하게 뒤틀려 있었다.


“제 사촌 동생이 4년째 기 수련을 하고 있다던데 그 녀석 한 번 만나봐 주지 않겠습니까? 참, 소주천 대주천이라는 말은 알지요?”


뭐 이런 식으로······.


그런데 하필 일이 터져도 그때일까. 슬슬 경찰들을 쫓아낼 궁리로 머리가 뜨뜻하던 허은정의 눈에 갑자기 어마어마한 충격이 닥쳐왔다. 그것은 빛이었다. 눈을 통해 심장을 두드릴 정도로 거대한 빛의 폭발이었다.


“허은정 씨!”

“허은정 씨! 왜 그러십니까! 왜 그래요!!”


그 순간 은정이 컥! 하고 꼬꾸라졌기에 경찰들이 놀라 펄쩍 뛰었다. 하지만 은정은 자신이 어떤 꼴로 쓰러졌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 일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뭐’라 이름 지을 수도 없는 현상이었다.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몸과 정신을 온전히 제 의지로 잡을 수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은정은 본능적으로 우선 두 손에 제 눈을 묻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게다가 아파! 아플 정도로 눈이 부셔!’

“끄으······.”

“신 경사님!”

“쉿! 조용히 해. 사람들 이목 끌지 말고 넌 부스 입구 쪽을 몸으로 막고 서. 그리고 잠자코 있어 봐!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그때 액션 취한다.”


신 경사는 오 경장에게 그리 명령하고는 잠시 이를 악물고 혼자 비명 하나 없이 숨을 헐떡이며 끙끙대는 허은정을 난감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아 정말 무슨 일이지? 갑자기! 그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은정이 혼자서 경악과 아픔과 숨을 고르는 동안 잠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에 은정은 갑자기 터진 빛의 폭발로 충격을 받은 눈앞에 익숙한 어둠과 안개가 숨 막힐 듯 느릿느릿 다가오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하얗게 터진 빛 그대로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갑작스럽던 안구의 통증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인 「눈먼 자들의 도시」 꼴이 나려나 싶어 심장이 오그라들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아저씨들. 지, 지금 몇 시예요?”


은정은 앉았던 자리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한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였다. 여전히 두 손으로는 눈을 누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지라 경찰들은 멍하니 10여 초를 낭비했다.


“아, 아. 네. 지금 12시 9분.”

“기록해 두세요. 나중에 뭔가 확인할 것이 생길 것 같으니까.”

“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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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집필 후기> +8 15.05.14 619 10 3쪽
55 그 섬에 가고 싶다 +4 15.05.05 653 11 18쪽
54 그냥 저러다 말겠지 15.05.02 402 8 17쪽
53 치유될 시간이 필요해 15.05.01 337 8 12쪽
52 대마도에서의 5일째 15.05.01 354 12 14쪽
51 한국의 의사들 15.05.01 313 7 14쪽
50 그와 그녀의 시간 15.05.01 416 7 12쪽
49 그의 외로움. 그녀의 괴로움. 15.05.01 346 7 12쪽
48 갑자기 15.05.01 368 8 15쪽
47 섬사람들에게 섬의 신이란 15.04.30 343 8 12쪽
46 그리움 15.04.30 441 8 21쪽
45 허은정의 '그런 쪽'의 이야기 15.04.30 496 9 11쪽
44 사건의 전말 15.04.30 373 9 17쪽
43 섬의 신은 무슨 장난을 친 것인가 15.04.30 385 8 12쪽
42 이상한 능력이 생겨버린 건 아닐까? 15.04.30 359 9 11쪽
41 특별 수사본부 15.04.29 363 10 12쪽
40 낙뢰 15.04.29 395 9 12쪽
» 빛이 터졌다 15.04.29 346 10 13쪽
38 꿔다 놓은 보릿자루 15.04.29 337 8 12쪽
37 아무래도 형사 양반들이 나설 차례가 올 것 같다는 거지. 15.04.29 481 9 11쪽
36 무로이와 손아리 15.04.29 314 8 13쪽
35 그들의 목숨 건 활약이 시작 된다 15.04.29 553 9 14쪽
34 반쇼인에서 15.04.29 433 8 13쪽
33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스며들었다 15.04.28 397 9 12쪽
32 부탁입니다. 그냥 울어 주세요. 15.04.28 354 7 10쪽
31 그들이 왔다 15.04.28 404 8 12쪽
30 이젠 뭘 봐도 꿈같아 15.04.28 320 10 13쪽
29 한탄의 쓰쓰자키 절벽 15.04.28 700 10 15쪽
28 부산 경찰이 뜬다고?! 15.04.28 376 9 16쪽
27 잠 못 드는 밤 15.04.28 287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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