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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아미드룬 - 만들어진 사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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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잎
작품등록일 :
2019.12.01 19:53
최근연재일 :
2023.10.02 01:28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2,076
추천수 :
45
글자수 :
279,622

작성
19.12.2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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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부 나가기 - 17화

DUMMY

다음날 7월 2일 오후. 라만차는 어느 과수원에 와 있었다. 전생의 복숭아와 비슷한 과일을 키우는 그곳은 얼마 전 교도소에서 출소한 한 수용자가 일하는 곳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기야 타다치. 23년 전 서부반란 때 단신으로 수십 명의 폭도들을 베어 죽인 일로 너무나 유명했던 여자다. 그것도 출현의 못으로 쳐들어 온 폭도들을 상대로 출현하자마자 벌인 일이었다.


출현 직후의 인간은 키메라라 할 지라도 혼란으로 인해 판단력이 떨어진 상태인데 그녀는 달랐다. 날뛰는 폭도의 칼을 빼앗아 닥치는 대로 베어버렸다.


수백의 폭도들이 단 한 명의 소녀, 그녀의 흉흉함에 질려 진격을 멈추었다. 당시 반란의 진압에 중요한 공을 세운 셈이기도 했으나 정부는 대량 살인을 이유로 그녀를 수감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진 이름이 되었다.


출소한 그녀가 배정된 곳은 수용지 남동부 2구역. 페리야마이옘이 눈앞에 있는 듯 가까이 보이는 곳이며, 라만차가 전보를 신청해 발령받은 구역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 레무스가 취재를 겸해 찾아 갔었고, 뜻밖에도 어찌어찌 탈출에 참여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그간 새 직장으로 옮긴 터라 바빴던 라만차는 오늘 처음으로 그녀를 만나러 온 것이다.


과수원의 주인은 그녀가 있는 곳을 알려 주며 덧붙였다.


“지금 그녀를 만나도 대화는 못할 겁니다.”


“왭니까?”


“낸들 아오? 하여간 이상한 여자가 왔어요. 이 시간에는 꼼짝을 안 해요. 우리 농장은 대부분 중국 출신이지만 저런 도인은 처음이라오. 뭐. 덕분에 이 근처 건달들은 좀 조용해졌지만.”


그 말대로 라만차는 거의 한 시간을 그녀 앞에서 가만히 기다려야 했다.


그녀가 있는 곳은 과수원 제일 꼭대기의 작은 공터로 주위에는 사람이 없었고 심심해 보이는 작은 원두막 하나가 있었다. 아래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실린 복숭아 향기만 그윽했다.


그녀는 어떤 말을 걸어도 전혀 대답이 없이 중국무술인 듯한 자세를 간간히 고쳐 잡고는 그대로 굳어 있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예쁘고 신비한 동양 소녀를 원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33세이니 소녀도 아니고, 사실 라만차보다도 나이가 많지만 정말 어려 보였다. 키는 160센티미터도 안되어 보였고 동그란 얼굴에 검고 긴 포니테일 머리는 꽤나 귀여웠다.


진짜로 수십 명을 벤 여자일까? 그땐 훨씬 더 작았을 텐데. 아마 키메라일 테고, 믿기 힘든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여행에 도움은 확실할 터. 단지 붙임성이 없어 보여 걱정이었다. 안 그래도 개성이 강한 인간들로 구성된 일행이 라만차의 고민거리였다.



며칠 전, 레무스에게 전해 들은 그녀의 탈출 동기는 희한한 것이었다.


“말린체의 샘물을 찾고 싶다는군.”


그는 옆에 쌓여있는 볶은 곡물 이삭을 한 움큼 쥐어 비벼 까며 말했다. 라만차는 실소가 나왔다.


“말린체의 샘물? 정말입니까?”


말린체의 샘물이란 어린아이들이나 믿을 만한 전설의 이야기로 신이 산다는 헤도스웨이그 대륙에 있다는 샘물이다.


“그녀는 진지하게 그것을 믿는 듯 했어. 어쩌면 진짜일 수도 있지.”


그 샘물은 세가지 마법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그 물을 눈에 바르면 전생의 어떤 시대, 어떤 장소든 원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 물을 마시면 죽게 되는데 전생의 인생 중 원하는 때로 돌아가 환생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전생에서 알던 사람을 떠올리면서 그 샘물에 손가락을 담가 이름을 적으면 그 사람이 샘물에서 출현한다는 것이다.


레무스는 능숙하게 부서진 곡물가루와 겨를 체에 부어 쏟으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넘치는 세상이지만 그 샘물 이야기는 인기가 많지. 믿는 사람도 많아.”


“저도 그런 이야기는 좋아합니다. 그래도 믿는 것은 다른 문제죠. 게다가 찾아 간다니. 어느 시절 출신입니까?”


“나도 고대 동양의 역사는 잘 몰라. 본인도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는데 아마 삼국지 이전 시대일 듯 해.”


“미신과 신화가 넘치는 시대겠죠. 아무리 그래도 나이도 먹었을 텐데. 멍청한 것은 아닐까요?”


“이곳에 출현한 뒤는 줄곧 교도소에 갇혀 지냈으니 세월은 별 의미 없을 수 있어. 그리고.”


레무스는 손을 털면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가루가 날려 퍼지며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말린체의 샘물을 진짜라 믿는 학자들도 있어. 물론 사람들이 믿는 내용은 과장되었을 것이지만 실제로 있는 기계장치라는 것이지. 어쩌다 샘물이라는 동화 같은 비유가 덮어졌을 거라는 해석이야.”


라만차는 가볍게 웃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진짜라면 저도 찾고 싶군요. 출현시키고 싶은 사람이 몇 명 있거든요.”


“그렇지. 나도 그렇고. 누군들 없겠나? 자. 그럼 그녀를 포함시키는 것은 이의가 없나?”


“동기가 나쁜 것도 아니고 실력이야 검증된 자이니 반대할 이유는 없죠. 다만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러시게. 나도 가지.”


라만차가 가루를 체로 거르는 레무스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런데 참 불편하게 사시는군요.”


레무스가 빙그레 웃었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는 않아. 미숫가루 한잔 타 줄 테니 먹고 가겠나?”


기록자들은 대우가 좋은 만큼 제약도 많았다. 그 중의 하나로 일정 정도 이상으로 조리한 음식의 섭취가 금지되어 있었다. 레무스는 탈출 계획의 실행 이후로는 기록자 신분이 박탈될 터이지만 스스로 엄격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그걸 먹으면 배탈이 날 것 같네요.”



과수원의 해는 높았고 슬슬 배가 고파졌다. 저 덜 익어 보이는 복숭아를 따 먹으면 배탈이 나려나 생각하는 때 마기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뵙겠소. 마기야라 하오. 이름은 타다치요.”


기다림의 끝이 반갑기도 하고 미동도 없이 서있는 그녀는 인형이 말하는 듯 해서 라만차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요. 그렇게 말을 걸어도 대꾸도 안 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인내심을 가졌습니다.”


“미안하오.”


역시나 말수가 없었다. 피곤한 여행이 될 듯 했다.


“그 체조 같은 건 매일 해야 하는 거요?”


“길을 떠나면 다 같이 쉴 때만 하겠소. 지금은 얽매인 시간이 아니니 다짐한 것을 지키는 것이오. 당신이 건넨 말 중에는 내 다짐을 멈출 만 한 이야기가 없었소.”


“그래요? 화장실이 어디냐는 말은 중요했는데.”


“스스로 찾았잖소. 그 말의 의도는 서로 알 듯 하니 더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오.”


아무래도 라만차가 노력을 좀 해야 할 상대였다.


“그렇게 귀여운 얼굴로 그리 차갑게 말하니 적응이 안 되는군요. 나랑 캐릭터가 바뀐 듯 합니다. 하하.”


허리에 손을 얹고 울룩불룩한 근육을 과시하며 건넨 라만차의 농담에는 대꾸조차 없었다. 멋쩍은 그는 다른 말을 꺼내보았다.


“전생에 만리장성에 관광 간 적이 있어요. 정말 대단하더구먼. 마기야씨도 보셨나?”


“난 그것을 만든 나라 사람이 아니오.”


“에.. 그럼 어느 나라..?”


이번에는 대꾸가 없을 뿐 아니라 시선마저 돌려버리는 마기야였다. 괭이를 들고 고랑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 곳으로 반가운 얼굴이 올라오고 있었다. 레무스였다. 그리 사교적인 인물은 아니더라도 지금의 라만차에게는 구세주였다. 그런데 일행이 있었다. 대단한 미인이었다.



“또?”


라만차는 놀라기도 했지만 이건 뭔가 아니었다. 신중한 계획 운운하던 레무스에 대한 신용이 떨어지고 있었다. 마기야의 경우 한번쯤의 예외라 해도 저 여자는 또 뭐란 말인가?


“레무스씨. 우린 비비아이로 성벽을 넘어야 한다구요. 이쯤 되면 모두 태우기에는 너무 좁아요.”


“미안하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한번만 이해해주게나. 비비아이 문제는 짐을 좀 줄이면 될 걸세.”


“그 뿐만이 아니죠. 저 여자는.”


라만차가 말을 끊었다. 페이츠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마기야와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별로 재미가 없었던 모양인지 길지 않았다. 마기야도 그녀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모습이 즐겁지 않은 대화를 나눈 듯 했다.


반면 즐거워 보이는 페이츠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평화로운 그 과수원의 풍경에 어울리는 사람은 그녀뿐인 듯 해서 라만차는 자그마한 심통이 일어났다.


“이건 예상 밖이네요. 경찰이 멤버였어요?”


그녀를 다시 찬찬히 관찰해보았다. 도도한 태도와 여유 넘치는 표정은 골치거리 역할을 맡고 싶다고 말하는 듯 했고, 사람을 홀리는 듯한 미모는 그 역할이 자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요. 그리고 멤버 결정은 레무스씨 단독으로 하는 것은 아니올시다.”


레무스로부터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졌으나 무시했다.


“우리가 갈 곳이 어딘지는 아시오?”


그녀는 가볍게 받아넘겼다.


“아 참. 레무스씨에게도 얘기는 못 들었어요. 어디를 가시는 거에요? 저는 모그다일 밖으로만 가면 돼요.”


레무스를 보았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아하니 레무스도 그녀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확실했다. 페이츠가 말을 이었다.


“재밌는 곳으로 가는 것이면 저도 끝까지 데리고 가 주셔도 좋고요.”


라만차는 찌푸린 미간에 손가락을 대고 생각했다. 탈출이나 이후의 여정에 있어 위험한 상황은 넘쳐날 것이었다. 최소한 자기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어야 일행에 넣을 터인데 이 호리호리한 여인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의 생각쯤은 읽었다는 듯 페이츠가 고개를 높게 하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뭐. 탈출에 발목 잡을 일은 없을 거에요. 그냥 히치하이커라고 생각하시면 된답니다.”


약간 부아가 일었다.


“발목 잡는 게 특기인 듯 보이오만.”


“뭐. 특기는 몇 가지 더 있어요.”


“그 특기 중에 전투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 없소만. 당신은 아무리 봐..”


순간 페이츠가 놀란 표정으로 몸을 틀며 뒤를 보았다. 어느 사이에 마기야가 그녀의 등 뒤에 있었다. 괭이를 들고 공격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라만차도 레무스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낌새조차 없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무시무시하게 살벌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그 자세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페이츠는 눈이 커질 대로 커진 채 굳어 있었지만,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기야가 괭이를 내리며 말했다.


“기운이 안정되어 있고 시야도 좋고 담력도 좋습니다. 우리에게 큰 짐이 될 여인은 아니오.”


라만차는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싶었으나 놀란 입은 아무 말도 내지 못했다. 마기야가 그의 성난 눈길을 무시하고 레무스를 보며 말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언제 볼 수 있소? 도망 중이라는 남자는 확실히 합류하는 겁니까?”


레무스도 놀래서인지 평소보다 대답이 빨랐다.


“내일이면 집합 장소로 모일 거요. 그 남자는 아직 모르오. 모레 만날 예정인데 틀림없이 올 거라 생각하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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