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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드룬 - 만들어진 사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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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잎
작품등록일 :
2019.12.01 19:53
최근연재일 :
2023.10.02 01:28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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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글자수 :
279,622

작성
19.12.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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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부 나가기 - 10화

DUMMY

아침 9시쯤. 듀너는 제지공장의 숙소에 혼자 있었다.


5층짜리 튼튼한 통나무 건물인 숙소는 60여명의 공장 인부들이 잠을 자는 곳으로 지금은 다들 출근하고 비어 있었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불공정한 취조와 형식적인 재판을 받고 풀려난 뒤 먼 길을 걸어 오늘 새벽에야 도착한 것이다.


조회 때, 가매우는 듀너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였지만 듀너도 별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가매우는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오늘은 낮잠이나 자라. 그 꼴로 작업장에 가면 또 꼴통짓을 저지를 듯 하니까.”


“그러지. 하지만 꼴통짓은 어디서나 할 수 있어. 언제든 할 수 있고.”


눈알을 불안하게 돌리는 가매우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듀너는 잠 대신 주방에서 위스키를 한잔 따라와 방구석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어제 재판소에서 나올 때 라만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때? 기분전환은 되었나?”


“네 얼굴 보니까 다시 기분 더러워졌어. 저리 꺼져.”


“그렇게 쌀쌀맞게 굴지 않아도 자네 매력적인 건 잘 알아. 너무 내 맘에 들려고 애쓰지는 말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발걸음을 빨리 했으나, 라만차가 쫓아와 내미는 술병을 보고는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탈출은 7월 5일이야. 잘 준비해둬.”


안주로 가져온 오리고기를 씹고 술을 들이키면서 대꾸도 없는 듀너에게 라만차는 계속 말을 던졌다.


“자네까지 모두 다섯 명이야. 나머지 둘도 수용자들이지. 만나면 놀랄만한 외모의 남자들이야. 뭐. 대화를 해 보면 더 놀랄 테지만.”


“...”


“하긴 자넨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니까 걱정은 안 하지만 각오는 해 두는 편이 좋아.”


“...”


“그만 처먹고 대답 좀 해봐. 같이 갈 거지?”


유나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은 고민할 것도 없이 결심한 바다. 그러나 보통의 방법으로 그 길을 떠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이 일행에 끼어 탈출하는 것이 현실적이었다.


레무스는 기분 나쁜 상대이고 지금 들은 일행들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으나 라만차라면 잘 다룰 터였다.


“네가 빠진다면 생각 해 볼게.”


“애쓰지 말라니까. 좋아. 잘 생각했어. 뭐 질문은 없어?”


술병을 들어 남은 양을 확인하며 말했다.


“왜 7월 5일이지? 그 기록자영감 생일이라도 되나?”


“아니. 전생에 내 딸내미 이혼 기념일이야. 그리고 현생에서는 수용지의 폭동 예정일이지. 레무스씨가 알아낸 절대 비밀인 첩보사항이야. 동 수용지 북쪽 일대에 대규모 폭동이 있을 거라는군.


혼란이 클 것이고 비비아이로 성벽을 넘을 구실도 생길 거야. 레무스씨는 더 확실한 방법을 세운 모양이고.”


“경찰이 잘하는 짓이다. 폭동이 있을 거라는데 예방할 생각은 못할망정.”


잠깐 눈이 번뜩인 듀너의 대답은 중얼거리듯 했다. 머릿속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경찰 실격이지. 애초에 나는 경찰과는 맞지 않는 인간이야. 폭동이 일어나면 사상자가 꽤 나오겠지. 징글징글한 수용자들도 물론이지만 대응하는 공무원들도 희생이 클 거야.”


라만차도 중얼거리듯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도 없어. 폭동 조짐이 보인다고 보고한들 증거가 있어야 할 터이고, 그 때문에 레무스씨를 팔아 넘기면 탈출계획이 다 무산되어버릴 테니까. 이봐. 내 얘기 듣고 있는 거야?”


듀너가 고개를 돌려 라만차를 똑바로 보았다.


“안 듣고 있었어. 고민을 진지하게 하느라. 이봐. 라만차.”


“뭐야? 매력 없는 표정으로.”


“아무래도 난 참가하지 않겠어. 다른 방법으로 수용지를 나갈 거야.”


라만차의 얼굴이 굳었다.


“뭐?”


“미안하네.”


“이유가 뭐야?”


듀너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 모금으로 술병을 비우고 일어났다.


“그냥.. 찜찜해. 그 영감.”


“말도 안 되는 이유 대지마. 이봐. 왜 그러는 거야? 잠깐 서봐!”


뒤돌아 걷기 시작한 듀너는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할 말 없어. 나 간다.”


“이유를 말 안 하면 네 꿈에 나타나서 물어볼 거야. 그러고 싶어?”


“난 꿈 따위 안 꿔. 그리 궁금하면 신을 만나거든 물어봐. 성공을 빈다.”


“이 자식아. 공장까지 걸어가려고? 태워줄게!”


“됐어. 걷는 게 기분전환에 좋아.”



듀너가 생각한 다른 방법은 폭동의 밀고였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벌점을 만회하고 어쩌면 군 면제도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합법적으로 수용지를 나가서 유나의 묘에 찾아가리라.


“문제는 제보 할 때의 증거인데 말야..”


의자에 기댄 채 중얼거리며 위스키 한 모금을 삼켰다. 싸구려 술 맛이 씁쓸했다.


밀고 따위는 성격에 맞지 않으나 비겁하다는 생각은 그리 들지 않았다.


수용지의 체계는 엉망이라서 폭동의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를 정당화 할 만큼 제대로 된 수용자 역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라만차를 배신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폭동을 밀고한다고 해도 임박해서 한다면 당일의 혼란은 별 차이가 없을 터이고, 그들의 탈출 계획도 큰 차질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꺼림직한 레무스란 인물의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는다는 점도 큰 이유였다.


내일부터 차근히 폭동의 정보를 얻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부와 거래를 할 정도의 고급정보를 얻는 것은 간단하지 않을 터이나 전생의 경험을 살려 어떻게든 성공시키리라.


듀너는 의자에 기대 앉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눈이 덮인 숲 속의 밤이었다. 듀너는 서둘러 숲 속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꿈 속답게 눈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으나 구불구불한 나무들이 얽힌 숲은 지독하게 어두웠고 정체 모를 짐승들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끝 모를 숲길을 달려 새벽빛이 밝아오는 출구가 보이자 한기가 걷히고 열기가 느껴졌다.


숲의 출구는 자욱한 안개가 덮여있었다. 매캐한 냄새가 섞인 기분 나쁘게 후끈한 안개였다.


그 속에 한 사람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꺼질듯한 작은 모닥불을 앞에 두고 있는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다가가 말을 걸었다. 노파였다.


“할머니.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유나라는 여인을 알고 계신가요?”


노파가 물끄러미 올려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여자를 기다리게 한 주제에 알아보지도 못하다니.”


놀란 듀너를 보며 노파가 일어섰다.


“유나?”


노파는 유나였다. 젊은 시절 유나의 특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집 센 눈매와 귀여운 콧등이 예전의 유나처럼 웃고 있었다.


듀너는 기쁨과 놀라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듯 했다. 유나가 말했다.


“그래도 때 맞춰 잘 와줬어. 저것 좀 해결해 줘.”


유나의 손가락을 따라 뒤를 돌아 보았다. 커다랗고 오싹한 검은 짐승이 시뻘건 입을 벌리고 듀너를 덮쳤다.



듀너는 놀래며 잠에서 깨었다. 방안이 매운 연기로 가득했다. 불이 난 것이다.


열기와 문짝의 불꽃으로 보아 진압은 무리였다.


창문으로 다가갔다. 아래도 불길이 보였고 검은 연기와 흰 연기가 뭉글뭉글 올라오고 있었다.


현재 위치인 3층쯤은 쉽게 뛰어내릴 수 있지만 지금 창문을 열면 유입된 산소로 폭발할 수도 있다.


통나무 건물의 밀폐도 따윈 모르지만 술이 덜 깬 그의 생각은 그러했다.


그렇다면 창문을 깨면서 뛰쳐나가야겠군 하면서 여유부리던 그 때 창문을 깨고 무언가 날아 들었다.


듀너의 목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천정에 박힌 것은 화살이었다.


이건 또 뭐야? 창문 옆 벽으로 피했다. 고개를 내어 화살이 날아온 방향 쪽을 살폈다.


연기 사이로 마당 목책 뒤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 놈은 다음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있었다.


듀너는 망설이지 않고 의자를 집고서는 곧바로 창문 앞에 서서 두리번거리는 동작을 취했다.


그 놈이 화살을 날리는 듯 하자 몸을 웅크리고 의자를 창문에 휘둘러 박살냈다.


이어져 날아온 화살이 다시 천장에 박혔다. 순간 듀너는 뛰어내렸다.


예상대로 놈은 다음 화살을 잡지도 못하고 놀란 얼굴로 낙하하는 듀너를 보고 있었다. 안정적으로 땅에 착지한 듀너는 사슴마냥 튕겨 놈에게로 향했다.


놈이 활을 버리고 나이프를 꺼내 드는 모습이 보였다. 동작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행동은 뜻밖이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었다.


“사람 살려! 도와줘!”


놈은 소리를 지르며 나이프를 휘둘렀다. 역시나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격투술은 전생에서도 최고 레벨이었고, 힘과 스피드가 훨씬 업그레이드 된 새 몸을 지닌 듀너도 놈을 맨손으로 제압하긴 쉽지 않았다.


몇 차례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나이프의 공격을 피하고는 뒷걸음으로 거리를 두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놈은 40대쯤 되어 보이는 작은 키의 서아시아계 남자였다. 중년이면서도 민첩한데다 계속 살려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짜증나는 타입이었다.


“넌 누구지?”


대답대신 씨익 웃는 것이 더욱 얄미웠다. 일단 제압이 먼저였다.


듀너는 틈을 보아 재빨리 놈이 버린 활을 집어 들었다. 그 틈에 기습으로 들어 오는 놈을 향해 활을 휘둘러 꺾었다.


시위로 놈의 팔을 감아 비틀어 나이프를 떨궈냈다. 자세를 낮춰 놈의 발목을 걸어 당겼다.


놈이 중심을 잃고 꼬꾸라졌고 듀너는 재빨리 놈의 목을 활로 덮쳐 눌렀다. 그 찰나의 순간에 팔목으로 자기 목을 보호한 그 놈은 확실히 프로였다.


“자 이제 말해 보실까?”


“...”


“날 죽이려 했지? 날 아나? 누구야 넌!”


그 때 뒤로 멀리서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어이. 거기 뭐야?”


놈이 소리쳤다.


“살려줘! 살려주시오! 여기요!”


공장 인부들이 몰려왔다. 놈의 목을 조인 팔에 힘을 더하며 노려보는 듀너를 잡아 떼어냈다. 인부들은 둘을 에워 싼 몇몇을 남기고 불을 끄러 몰려 나갔다.


“뭐야? 듀너. 왜 불이 난 거야?”


“이잔 또 뭐고?”


그 놈이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헉헉. 난. 헉.. 교도부 소속 자키르 아바소프다. 제길.. 저놈 뭐야? 날 공격했어. 크헉. 저놈이 불을 지르는 것을 봤다. 내가.. 후우.. 목격자인 걸 알고 날 죽이려 했어.”


듀너가 소리쳤다.


“무슨 개소리야! 저놈이 나에게 활을 쐈다고. 난 자고 있었어. 깨 보니 불이 나고 있었다고. 저 놈이 범인이야!”


인부들은 듀너와 그 놈을 번갈아 보며 당황해 했다. 그때 사이를 비집고 가매우가 나타났다.


“뭐야? 이 자식들아! 누가 불을 낸 거야?”


낯선 놈을 본 가매우가 소리쳤다.


“넌 또 뭐야? 이놈이 낸 불이야?”


“난 교도부 제4분서 행정반 반장이오. 휴가 중이라 근처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지. 근데 연기를 보고 이리 와 보니 저 자가 불을 지르고 있었고 나까지 죽이려 했소.”


가매우가 증오를 가득 담은 눈으로 듀너를 노려보았다. 숙소 한 쪽이 불길 속에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방화에 살인미수라. 그것도 정부 관리를! 넌 이제 끝장이다. 반쪽이.”


가매우의 말대로 듀너는 출구 없는 상자 속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누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직감으로는 저 자키르라는 놈 개인의 짓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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