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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아미드룬 - 만들어진 사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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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잎
작품등록일 :
2019.12.01 19:53
최근연재일 :
2023.10.02 01:28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2,085
추천수 :
45
글자수 :
279,622

작성
19.12.0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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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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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부 나가기 - 6화

DUMMY

아미드룬이라 불리는 이 별은 표면 대부분이 바다이며 두 개의 대륙이 있다.


그 중 하나인 비센세이그의 가운데에는 인공적으로 만든 것처럼 둥그런 해안선과 남서쪽으로 긴 해협을 가진 지중해가 있으며 그 중앙에 다시 원형의 섬이 있다.


크기가 전생 지구의 시칠리아 섬과 비슷한 25000㎢ 정도인 이 섬이 인간 세계에서 수도의 역할을 하는 모그다일이다.


그 모그다일의 중심에는 인간이 출현하는 출현의 못 위를 덮고 서있는 페리야마이옘이라 불리는 거대한 구조물이 있으며 그것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수용지, 남쪽으로는 교육지가 있다.


교육지는 갓 출현한 인간들이 공용어를 비롯해서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곳이다.


최대 5년 동안 생활하게 되는데 학생 수만도 2천만 명을 넘어서다 보니 모그다일의 거의 절반이 교육지에 속해 있고 그에 따른 시설도 방대하다.



레무스는 그 중 도32구역의 어느 학교로 들어서고 있었다.


도32구역은 18세기~22세기, 천주교 계열, 영어 사용권 백인, 청소년 시절 사망, 특수형 출현자들로 구성된 학생들의 교육구역이었다.


이러한 세세한 구분은 치안 유지에 필수이기 때문이다. 인종별 세대별 종교별 민족별 등의 차별은 이 세계 최대의 금지 사항으로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처음 몇 년의 교육기간 동안에는 갈등 요소가 있는 집단 사이를 격리하는 것이 학생 간의 충돌 방지와 원활한 교육환경을 위한 현실적인 조치였다.


이후 5년 동안 단계적으로 섞이며 화합을 유도하기도 하나 쉬운 일은 아니어서 말썽이 끊이지 않는다.



특수형 출현자들이란 평범하지 않은 신체로 출현하는 인간들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출현 시 무의식 중에 전생에 원하던 모습이 신체 형성에 반영되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예를 들어 듀너는 근력이나 골밀도 등 신체능력이 평균 이상으로 발달해 있으며, 특히 심폐기능은 인간 수준을 아득히 초월해 있어 특수형으로 분류된 인간이다.


그래도 듀너는 겉보기에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 없었으나 특수형 중에 상당 수는 외형부터 특이한 케이스가 많았다. 뿔이 난 인간, 눈이 세 개인 인간, 날개 달린 인간 등등에 아예 동물의 모습인 경우나 기상천외한 괴형상을 한 경우도 꽤 있다.


공식 표현은 특수형 출현자지만 통상 키메라라고 불린다. 그들은 그 특수성 때문에 교육기간 중에 다른 일반 출현자들과의 교류도 별로 없었다.



레무스가 들어선 학교의 뒷산에선 한 소년이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루시아! 어디야? 루시!”


그 뒷산은 크기에 비해 험한 곳으로 굵고 높게 자란 나무들의 숲 사이로 갑자기 꽤 깊은 낭떠러지가 나타나곤 하는 곳이었다.


그래도 그 절벽들 아래로는 초여름의 따듯한 바람을 맞아 예쁘게 핀 들꽃들이 한들거리는 작은 풀밭이 있곤 해서 제법 아늑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단지 소년이 찾는 루시아가 숨어 있는 것이라면 발견하기에는 난감한 장소이기도 했다.


“루~~시!”


외치는 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실망한 소년은 긴 장갑을 낀 손을 늘어뜨리고 터덜터덜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고개도 절로 숙여진 소년은 오솔길 앞에서 꼿꼿이 서있는 레무스를 알아채지 못했다.


“루시아가 또 무단 결석을 했나 보구나?”


번쩍 고개를 든 소년이 환하게 웃었다.


“레무스 아저씨!”


“테드. 부쩍 컸구나.”


테드가 레무스에게 달려가 안겼다. 레무스는 테드가 안아도 싫어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산을 내려온 둘은 기슭의 한 폐건물 앞 벤치에 앉았다.


예전엔 학교에 딸린 부속시설이었으나 어떤 불미스러운 사고로 폐쇄된 3층 건물이었다. 그래도 담쟁이 덤불이 멋들어지게 덮여 햇빛을 머금은 나름 운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자식들은 곧바로 선생님한테 들켰죠. 그런데 선생님이 뭐라는 지 아세요? 사소한 문제니 그냥 넘어가라는 거예요. 어떻게 그게 작은 문제죠? 여기는 학교라구요. 도대체 뭘 가르치는 건지.”


레무스는 조금 생각한 뒤 대답했다.


“선생이 좀 잘못된 판단을 했군. 그래도 여기는 전생의 학교와는 교육의 목적이 조금 다르니 어쩔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


애초에 선생들을 선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고 말이야. 그 도둑질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사건도 아닌 듯 하고.”


테드는 바로 반박했다.


“증거가 없을 뿐이지 누가 봐도 그 자식들 짓이었다고요. 벌점을 왕창 주었어야 해요.”


“글쎄다. 이 세상의 법은 객관적인 사실로만 판단하게 되어 있으니. 파고들자면 휘말리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고.”


“그 자식들이 무서운걸 몰라서 그래요. 두들겨 패서라도 자백을 받으면 되었다고요. 특히나 우리 키메라들은 윤리교육이 더 철저해야죠. 운이 좋아서 키메라로 출현한 주제에 뭐라도 되는 양 으스대는 놈들이 너무 많아요.”


레무스가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모두가 우리 테드처럼 올바른 마음가짐이면 정말 좋을 텐데 말야.”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인 테드가 중얼거렸다.


“아니. 아무도 알아주질 않는 걸 보면 저도 아직 멀었어요. 매일 노력 중이긴 한데 말이에요. 뭐가 문제일까요? 역시나 힘이 있어야 제 말이 통하는 것이겠죠?


그치만 그건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지 않나요? 힘이 있어야만 정의를 말할 수 있다? 아니죠. 옳은 것이 정의잖아요?


그런데도 왜 그렇게 살지 않을까요? 그런 놈들을 왜 처벌하지 않죠? 간단한 건데. 그러니 정의가 힘을 못쓰고 세상이 복잡한 문제투성이죠.”


테드가 발치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럼투칭이라 불리는 털북숭이 생물을 툭 차서 날리며 말했다.


“이래가지고서는 다시 태어난 의미가 전혀 없다고요. 왜 전생과 똑같은 인생을 살려고 할까요?”


럼투칭은 뒤뚱거리며 그곳을 벗어나려나 싶더니 이내 멈춰 다시 잠들었다.


레무스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지금 네 주위는 모두들 철이 없을 때 죽은 친구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는 부모도 없고, 여러가지로 혼란스러울 시기지.


밖에 나가면 전생과 전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단다. 그래도 복잡한 문제들은 여전하지만.”


이번에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뒤 건물을 가리켰다.


“테드. 이 건물이 왜 폐쇄되었는지 아니?”


“백인 학생들과 흑인 학생들 간에 집단 살육전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구역을 넘어서요. 그것도 한심한 문제 중 하나죠. 애초에 구역을 정하는 것도 웃기구요.”


“그 사건의 시작은 아마 잘 모를 게다. 여긴 백인학생 기숙사였지. 그런데 어느 날 덜 떨어진 몇몇이 전생에 자기들이 흑인 노예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자랑하기 시작한 거야. 그 때 듣고만 있던 한 학생이 참지 못하고 사달을 낸 거지.”


“그런 놈들은 가만 두면 안돼요. 우리 학급에도 비슷한 놈들이 있는데 언젠가 혼을 내 줄 참이에요.”


“그런데 그 참지 못한 백인 학생이 전생에 흑인 노예였던 게 드러났어. 기사에는 나지 않은 사실이지.”


“와우. 진짜요?’


테드는 현생 13세였지만 전생 11세 사망으로 실제 14년을 산 셈이었다. 그 또래의 소년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음.. 짐작이 가요. 비참한 노예였지만 백인을 부러워했군요. 그래서 백인으로 태어난 거구요.”


“바로 그거야. 테드.”


레무스는 더욱 정색한 얼굴로 테드를 응시했다.


“부족한 정보로 결론을 내려버리면 안돼. 세상이 복잡한 것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단순한 사람들 때문이야.”


테드는 약간 부끄러웠지만 선뜻 이해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 학생이 백인을 부러워했을 거라는 근거가 뭐지? 너의 선입견에서 나온 단순한 추측일 뿐이지.


세상이 복잡한 문제투성이라고? 복잡한 세상 문제를 풀고 싶으면 해결법도 복잡한 법이야.


영웅들이 속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그렇지만 그 해결법은 여러가지를 고려한 복잡한 생각을 거친 뒤에 나와야 하는 법이야. 그렇지 못하면 세상이 더 복잡해질 뿐이지.”


“음.. 알겠어요.. 그럼 그 학생은 어떤 사연이 있던 건가요?”


레무스가 지긋이 웃었다.


“뭐 사연은 하나지만 내친 김에 숙제로 내줄까? 답보다 훨씬 많은 경우의 가능성이 있으니까. 굳이 정보는 더 주지 않기로 하지. 여러 경우를 상상해 봐봐. 그러면 인간이나 사회문제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될 거야. 장래의 히어로.”


“에이.. 좋아요. 다음에 언제쯤 오시는데요?”


“아마 아주 오래 걸릴 거다.”


“오래요? 아주 오래..”


테드는 무언가 떠올리고 벌떡 일어나 레무스를 마주 보며 말했다.


“드디어 가는 군요? 전에 말씀 하셨던. 신을 만나러요!”


“정확히는 신을 찾으러 가는 거지.”


“뭐 아무튼요. 전 이 별에 신이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 드렸죠? 그래도 데려가 주시면 안될까요?”


“안되지. 난 모그다일을 떠나는 순간부터 범법자가 되는 것이고 자네는 장차 정의의 사도가 될 예정이지 않나.”


“그치만..”


그 때 학교 쪽에서 종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레무스와 테드는 하늘로 눈을 돌려 두리번거렸다. 동남쪽에서 옅은 보랏빛의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저런, 여유는 20분도 안 되겠군. 어서 가보거라. 남은 수업은 빼먹지 말아야지”


보라색 구름은 독성이 있는 우박을 동반한 구름이었다. 그 보라색 우박을 만지거나 녹은 물을 마시는 정도는 문제가 없으나 떨어질 때 잘못 맞아 피부를 뚫고 혈관에 노출되면 마비를 비롯해 상당한 후유증이 있는 독성이 있었다.


“같이 가세요.”


“아니다. 난 너처럼 빠르게 뛰지 못하니까 여기서 보라우박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련다. 어서 가서 루시아가 돌아왔는지도 봐야지.”


테드는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빨리 가봐야 하는 것도 맞았다. 뒷걸음으로 아쉬움을 표현하며 말했다.


“다음엔 어디서 보죠?”


“돌아오면 전언소에 남겨두마.”


“저도 가는 곳마다 전언소에 기록할게요. 꼭 찾아와주세요.”


테드는 뒤돌아 아직 그곳에 있는 럼투칭을 뻥 차버리곤 뛰어갔다. 레무스는 그 광경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풀밭에 드리운 햇빛이 빨라지는 구름의 방해를 받으며 차지하던 풀잎들의 수를 점점 줄여갔다. 레무스의 뒤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레무스 아저씨.”


레무스는 그리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건물 옥상에 한 여자아이가 서서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금발과 푸른 빛이 도는 흰 옷자락이 어지러운 빛과 섞여 눈부셨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소녀의 어깨 뒤로 접혀 있는 커다란 흰 물체였다. 그것은 날개였다.


“루시아. 거기 있었니?”


레무스가 입을 열자 소녀는 대답 대신 날개를 펼쳤다. 커다란 흰 깃털이 가지런히 돋은 날개는 여리여리한 소녀의 팔과 대비되었고 경이롭게 빛났다.


가볍게 뛰어오른 소녀는 바람을 한껏 받으며 우아하게 레무스 앞으로 내려섰다. 레무스가 가볍게 박수를 쳤다.


“정말 멋지구나. 루시아.”


루시아는 환하게 웃었으나 진초록의 눈동자에는 침울함이 한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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