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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드룬 - 만들어진 사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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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잎
작품등록일 :
2019.12.01 19:53
최근연재일 :
2023.10.02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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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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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부 나가기 - 14화

DUMMY

루시아는 레무스아저씨와 함께 페리야마이옘 아래 광장에 있었다.


그것은 건축물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었다. 직경 1500미터에 높이는 그 이상인 거대한 구조물로, 인간이 출현하는 일명 ‘출현의 늪’의 위를 덮고 세워져 있었다.


나선형으로 꼬인 듯한 외벽은 1200미터 언저리까지 폭이 좁아지고 그 위로는 다시 벌어지는 매끈한 화병 같은 모습이었다.


처음 인간이 출현할 때부터 존재했다는 말도 있지만 2시대에 세워졌을 거라는 설이 유력했다. 그때는 인간이 전생의 모든 지식을 모아 세운 찬란한 문명의 시대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문명이 멸망한 지금은 3시대로 부르고 있다.


아무튼 루시아에게 페리야마이옘은 너무나 거대해서 현실감이 없었다. 오히려 학교 부근에서도 보이던 모습이 더 웅장했었다.


그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북적거리는 사람들 쪽이었다. 다양한 인종들과 그들의 복장이 정말 신기했다. 함께 지내는 학생들은 더 신기할 만한 키메라들이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반면 이 곳은 마음 편하게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건 레무스 아저씨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유가 느껴지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낯선 장소임에도 숨막히는 학교보다 편안했다. 날개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마저 즐거웠다. 그리고 즐거워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가 가장 기뻤다.


이제까지의 시련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자신이 대견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국적인 음악가들의 연주에 넋을 놓고 있을 때 레무스 아저씨의 부름이 들렸다.


“루시아.”


레무스가 들떠있는 철부지 소녀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너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해. 약속했지? 잊으면 안 된다.”


“물론이에요.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하지 않을 것. 항상 자신을 사랑할 것.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되, 그것을 바꿈에는 망설이지 않을 것.”


“좋아. 들어가자.”


페리야마이옘은 전기가 허용된 건물이라 내부는 밝은 조명으로 환했다. 공기도 맑고 시원했다.


레무스는 기록자라는 신분 덕분에 출입이 수월한 곳이 많았다. 페리야마이옘 내부에서 일반인은 금지된 곳까지 루시아를 데리고 갔다.


엘리베이터로 한참이나 올라 도착한 층에는 어떤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삐딱한 고개가 인상적인 할아버지였다. 루시아를 보는 건지 레무스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말했다.


“레무스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녕. 천사님. 난 이곳에서 일하는 잡일꾼 겸 배관공 겸 의사란다. 과일주스도 만들 줄 알지. 이름은 사스보르트라고 한단다. 예쁘다고 들었는데 내 상상력은 턱없이 부족하구나. 게다가 참으로 아름다운 날개가 아닌가? 정말 환영한다.”


좀 무서운 기분이 들었지만 새로운 다짐을 한 첫날이었다. 루시아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감사해요. 사스보르트씨. 루시아 아델레이드 크로닌이라 합니다.”


“영광입니다. 숙녀님. 그리고 레무스씨. 이쪽입니다. 구석이라 좀 걸어야 합니다.”


앞선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루시아는 레무스의 손을 잡았다. 아무 말도 없이 사스보르트씨만을 바라보는 레무스 아저씨가 약간 낯설었다. 반면 사스보르트씨는 조금 들뜬 듯 말을 계속 걸어왔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니?”


“... 아뇨. 잘은 몰라요. 감옥이 있고.. 또. 앙겔로스가 살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 그게 다야. 별의 별 소문이 다 있는 곳이지만 실상은 터무니 없이 따분한 곳이지. 여기 성모 마리아님이 갇혀 있다는 말은 못 들었니?”


“그딴 말은 안 믿어요.”


“그래 똑똑하구나. 몇 년 전에 성모님을 사칭한 사기꾼 여자가 있었단다. 그 여자 때문에 집단자살이 벌여져서 결국 여기 잡혀왔지. 지금은 뚱땡이로 변해서 용서해달라는 소리만 질러대고 있는 처지지.


그런 인물들 말고 엄청난 거물들이 수감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야. 죄다 나쁜 놈들이지. ... 그리고 우리가 가는 곳은 앙겔로스가 사는 곳이지. 저기 저 기둥 옆 문 보이니? 초록색 불이 빛나는 것. 저기 사는 앙겔로스는 하모니카 소리를 내는 옥수수를 키우고 있단다.


앙겔로스놈들은 죄다 이상하지만 우리가 만날 놈은 한층 더 괴상한 놈이야. 혹시 재수없는 말을 들어도 때리지는 마. 하하. 농담이다.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그들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건 맞지만 실상 인간에게 별 관심이 없단다. 인간의 말썽이 귀찮은 것뿐이지. 그런데 이제 만날 놈은 인간에게 흥미가 좀 있는 놈이야.”


걷는 도중 신기한 것들이 끊임없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반짝이는 버튼들과 모니터들이 있었고 춤추는 듯한 풀과 나무들이 사이사이 가득했다.


번개에 둘러싸여 헤엄치고 있는 작은 물고기들로 가득한 수조의 복도에서는 혼자 굴러다니는 수레바퀴들이 있었다.


여러 층이 한눈에 보이는 난간에서는 공중에 떠있는 긴 프리즘들을 볼 수 있었고, 여러가지 색의 액체가 흐르는 폭포 앞을 지날 때는 감미로운 향기가 그윽했다.


“여긴 어이없을 정도로 큰 곳이라 별의 별 장소가 다 있단다. 난 여기 오십 년도 넘게 살고 있지만 가본 곳은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을 정도지.”


그들은 높은 문들이 여럿 있는 어떤 홀로 들어섰다. 별다른 장식은 없었으나 높고 매끈한 아치의 기둥들이 균형 있게 배치된 넓고 아름다운 홀이었다.


매우 조용하여 레무스의 가벼운 구두발 소리가 울릴 정도였으나 여기저기 몇몇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사스보르트는 둘을 남겨 두고 그 문들 중 하나로 들어갔다. 레무스가 말했다.


“루시아. 저 문으로 다음에 네가 들어갈 거야. 들어가면 블루가 있어.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명심할 것은 절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 그들은 너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으니 안심하고 다녀오는 거야. 알았지?”


블루는 앙겔로스 세 종류. 레드, 블루, 그레이 중 하나다. 루시아는 가장 흔한 그레이는 종종 보았지만 전혀 무서운 생물이 아니었다. 다만 인간을 통제하고 여러가지 제약을 걸었다는 블루는 조금 두려웠고 가능하면 만나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사스보르트씨가 나와서 루시아를 안으로 안내했다. 안에는 문이 하나 더 있었고 루시아는 혼자 들어가야 했다.


안쪽은 아무것도 없는 온통 하얗고 커다란 둥근 방이었다. 중앙에 기묘한 생물이 서 있었다. 파랗다기 보다 연한 자주색의 호리호리한 나무 같았다.


키는 3미터 정도에 머리카락인지 나무줄기인지 모를 수천 가닥의 푸르스름하고 가느다란 것들이 위로 뻗어 일렁이고 있었고 그 아래 둥그런 머리 같은 것이 있었다.


눈이 없어 오싹했지만 찬찬히 보니 꽤 아름다웠고 무서운 기분은 사그라들었다. 뒷짐진 팔은 점잖아 보였고 아래로는 위의 것보다 굵고 기다란 줄기들이 늘씬하게 늘어진 자태가 드레스 자락처럼 우아했다. 보일 듯 말 듯한 입이 움직였다.


“다리가 있는데 날개를 원함은 빨리 가기 위함인가? 다리로는 갈 수 없는 곳을 가기 위함인가?”


느닷없는 질문. 게다가 생각도 못한 질문이었다. 거짓말은 하면 안돼. 그런데 정직하게 답하고 싶어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머뭇거리는 사이 다음 질문이 들어왔다.


“샤를로트 로얄 먹어본 적 있나?”


뭘 먹어? 뭔 소리야?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먹은 적이 있으면 어쩌지? 역시나 대답을 하지 못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나? 어머니 쪽 말야.”


이어서 계속 질문이 던져졌다. 질문은 대체로 루시아의 전생 사회에 대한 것과 가치관에 대한 것이었으나 거의 다 황당할 정도로 엉뚱하거나 난해했고 일관성이 전혀 없었다.


당황한 루시아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몇 개 없었다.


마지막 즈음에 블루는 옷을 벗을 것을 요구했다. 평범하지 않은 루시아의 알몸을 관찰하며 몇 가지 질문을 더 하고서 나가라고 하였다.


루시아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옷을 입으며 블루에게 무언가 질문을 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얼이 빠진 상태로 레무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루시아는 자신이 무슨 질문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소파에 앉아서 안정을 위한 시간을 얼마간 보내고 있던 중 사스보르트씨가 아주 기쁜 얼굴로 웃으며 다가왔다.


“축하한다. 루시아. 통과 했어. 레무스씨 말이 맞았네요. 대단하십니다. 이건 톱 뉴스 감인데요.”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만 레무스 아저씨의 빙그레 웃는 얼굴을 보니 좋은 일임이 분명했다.


“잘했다. 루시아. 이제 모든 게 잘 될 거야.”


들뜬 모습의 사스보르트씨가 팔을 벌리며 말했다.


“자.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 따라들 오시게.”


그를 따라 문들과 복도들을 몇 개나 지나서 들어선 다음 방은 매우 어수선했다. 여러 개의 테이블과 의료용 침대 같은 것 위로 잡다한 기계와 문서들이 널브러져 쌓여 있었다.


사스보르트씨는 그 상태의 원인이 자기인 것을 증명하려는지 정신 없이 여기저기를 왔다갔다하며 뒤적거렸다.


갑자기 루시아의 키와 날개의 치수, 몸무게 등을 재면서 재미없는 감탄사를 중얼거리다가 시시한 날씨 얘기 따위를 레무스아저씨에게 불쑥 던지는 등 부산을 떨었다.


레무스아저씨는 신사답게 대응하면서도 이곳저곳을 날카로운 눈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불이 반짝이는 기계들에 루시아를 넣다 빼기도 하고 입에 마스크를 씌우고 숨을 쉬라는 등 괴상한 실험들을 하고서야 과일주스 대접을 받았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예법에는 참 서툰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다.


다음에 사스보르트씨를 따라 간 곳은 육중해 보이는 문 앞이었다. 사스보르트씨가 문과 암호 같은 것을 주고 받는 대화를 하더니 문이 열렸고 또 몇 개의 문을 더 지나 나온 곳은 페리야마이옘의 외벽 바깥이었다.



장관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듯이 세상이 한눈에 보였다.


높은 산들도 꼭대기가 보였고 날아다니는 새들의 등이 보였다. 강물은 반들반들한 비단끈 같았다.


정면에는 말로 들었던 론즈로드라는 대로가 북쪽으로 지평선까지 뻗어 있었다.


위를 보니 페리야마이옘의 끝은 한참이나 더 높은 곳에 있었다. 약간 실망했지만 지금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 벅찬 감동이었다.


레무스가 루시아의 옆으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 너머에 바다가 있단다. 그 위에 다리가 있는데 이 길은 그 다리로 이어지지. 그리고 건너편에서도 계속 곧게 이어진 길이야. 론즈로드. 신의 길이지.


그 끝에 있는 론즈게이트를 지나면 비센세이그 대륙을 넘어 헤도스웨이그 대륙으로까지 이어진 다리로 계속된단다. 그 곳에 신이 있다고들 하지.”


“도중에 라피들이 막고 있고요. 우리는 동쪽으로 돌아서 가는 거죠.”


“막고 있는 건 아냐. 거기 살고 있을 뿐이지. 인간들과 사이가 나쁠 뿐이고. 마주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보이는 풍경 중에 몇 군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앞쪽의 대부분이 수용지였다.


그 곳에 이번 여행의 참가자 중 레무스아저씨 빼고 4명이 있다고 했다. 비비아이를 모는 근육질 거한, 전생에 왕이었던 미남자, 괴물 같지만 착한 키메라, 무뚝뚝하지만 착한 전생 군인아저씨라고 했다.


완전히 소설 속 꿈 같은 이야기였다. 거기에 신사인 레무스 아저씨와 날개 달린 천사인 자신을 넣으면 완벽한 팀이 될 것 같은 그림이 떠올랐다.


교육지는 다행히도 뒤쪽이라 보이지 않았다. 수용지를 둘러싼 성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론즈로드보다도 높았고 폭은 꽤 넓었다. 그 동쪽의 성벽을 넘을 거라고 했다.


만일 루시아가 일행과 합류하지 못할 경우 가야 할 장소도 보았다. 아저씨는 자세히 설명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라고 굳게 다짐했다. 레무스아저씨는 말했다.


“자. 그럼 루시아. 어떠니? 여전히 가고 싶니?”


루시아는 확신에 차서 외쳤다.


“백배는 더 가고 싶어졌어요.”


레무스는 씁쓸하게 웃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쩔 수 없구나. 이제 그만 내려가자.”


아쉽게 돌아서기 전 바라본 저 멀리로 하얀 새가 날고 있었다. 긴 강물도, 높은 성벽도, 위대한 론즈로드마저 그 날개의 아래 있었다.



사스보르트가 헤어지며 루시아에게 말했다.

“그럼 7월 4일에 보자. 천사님. 멋진 선물을 준비해두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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