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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아미드룬 - 만들어진 사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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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잎
작품등록일 :
2019.12.01 19:53
최근연재일 :
2023.10.02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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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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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부 나가기 - 4화

DUMMY

17년이 지났다.


오늘은 이곳의 연도로 2109년 6월 6일. 듀너가 지내는 곳은 수도인 모그다일의 북쪽에 위치한 수용지였다. 종이를 생산하는 직장에서 말단 인부로 복역하고 있었다.


이곳의 나이로 27세. 이제 군인이 아니지만 짧게 깎은 머리에 잘 단련된 몸은 전생과 다름없었다. 아니 전생보다 더욱 멋지고 다부진 체격의 미남으로 성장해 있었다.


듀너 스스로는 전생과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착각이었다.


죽은 뒤에 다시 부활하여 지내는 두 번째 인생. 그러나 전생과 비교해 특별히 다른 세상도 아니고, 더 나을 것도 없는 생활이었다.


처음의 혼란과 정신 없는 적응기간이 쏜 살처럼 지나고는 그저 지루한 시간. 매일이 똑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 곳은 아미드룬이라 부르는 별이며 죽은 인간들이 다시 태어나는 곳이다. 정확히는 출현한다고 표현한다.


대략 10세 정도 아이의 몸으로 출현하며 생전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모두들 ‘출현의 늪’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듀너처럼 출현하며, 전생에 죽은 순서와 상관없이 출현하므로 다양한 시대의 전생을 가진 인간들이 섞여 있다.


듀너가 있는 곳은 수용지, 즉 억류된 신분이다.


출현 후 5년간의 교육과 5년간의 군대 복무 후 사회로 나가는 것이 기본인 시스템인데 듀너는 교육 2년차에 폭행 사고를 저지르고 그 뒤로도 몇 번의 사고를 더 친 뒤 사회 부적격자로 판정 받고 졸업 뒤 군대가 아닌 이곳으로 끌려온다.


여기서도 나갈 만 하면 사고가 터져 12년째.



“꼬맹이. 다시 말해봐. 헤도스웨이그 론이 가짜 신이라고?”


십여 명의 수용자들이 새로 수용된 젊은 수용자를 나무틀에 거꾸로 묶어 놓고 둘러싸 있었다.


여러 인종이 섞여 있으나 모두 이곳의 공용어인 아미드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들과 어울리기 싫은 듀너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따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래. 쭈구렁 늙은이! 그 론이라는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이따위로 만든 세상을 보고도 그 신을 믿나?”


낄낄거리는 수용자들 중 하나가 들고 있던 막대기로 그 자의 배를 쑤셨다.


“간만에 같은 12세기 출신이 들어왔나 했더니 완전 또라이로군. 헤헤. 그래. 예수가 만든 전생의 세상은 좀 나았고? 적어도 여긴 굶어 죽을 걱정은 없는 세상이라고.”


다른 놈이 이어받았다.


“그렇지. 이놈은 맞아 죽을 걱정은 해야 하지만. 큭큭.”


“죽이지는 말자고. 저 이쁘장한 엉덩이를 봐. 전생에 애용했던 섹스로봇과 아주 닮았어.”


“그럴까? 너. 여기는 여자가 귀한 덕에 죽지는 않겠다. 고맙지?”


“이봐. 이 조상님께서는 로봇이 뭔지 몰라. 예의를 갖추라고.”


저급한 농이 섞인 웃음 소리에 둘러싸인 젊은 수용자는 악에 받친 눈으로 대항했다.


“그래 미친 놈들아. 좋은 세상 만나서 좋겠다. 가서 론이던 예수던 똥구멍이나 빨아. 씨발! 나한테는 관심 끄고 이거 풀어!”


막대기를 든 놈이 이번에는 성기 쪽을 꾹꾹 누르며 이죽거렸다.


“거 새끼. 끝까지 론을 모욕하네. 가르쳐야 할 것이 아주 많아. 피곤한 놈이 들어왔어.”


“으아악! 씨발! 네놈들 모두 씹어먹어 버릴 꺼야! 당장 풀어!”


아랑곳 없이 즐거워하며 물을 끼얹자 잠시 조용해졌다. 한 놈이 듀너를 불렀다.


“어이. 듀너. 어때? 너만큼 악바리 무신론자가 왔어. 귀엽지?”


듀너는 찌푸린 얼굴로 말을 받았다.


“정부에서 이렇게 조용한 동네에 보내주신 인물인데 악당일 리 없잖아? 그만 풀어주라고. 정신 사나워서 쉴 수가 없잖아.”


“헤헤. 모처럼 신나는 신고식 중인데 벌써 끝내면 안되지. 같은 부류라 사랑스럽나?”


듀너가 허리를 펴고 꼬았던 다리를 푼 뒤 그자를 똑바로 보았다.


“모처럼의 신고식보다 자주 있는 정신 교육의 시간이 더 신나지 않을까? 어때? 그 주둥이가 좀 두툼해지면 재미있겠지?”


다들 표정들이 굳어졌고 특히 겁에 질린 듯한 한 놈이 손을 저었다.


“아냐. 듀너. 대신 다른 데로 갈게. 미안해.”


“자. 가자. 12세기 신참. 17세기 고문에 대해 배운 적 있나? 역사 공부 시간을 가질까? 교육지에서는 못 배웠을 테니까.”


“그렇지. 역사는 발전했다고. 전기가 없어서 정말 아쉽구먼. 큭큭.”


놈들은 신참을 틀째로 질질 끌고 사라졌다. 마르고 꼬질꼬질한 얼굴의 남자 하나가 남아 듀너 옆에 털썩 앉았다.


“저 놈은 얼마 못 갈 것 같네. 그래도 말은 잘해. 뭐라고 했지? 여기 이 세상을 인간이 만들었다는 학설 말야. 그 인간은 전생 지구의 인간이야? 여기 아미드룬의 인간이야?”


“대가리가 달렸다면 저리 가서 네 질문을 곱씹어 봐. 얼마나 멍청한 질문인지.”


언짢게 대답을 뱉었지만 그는 눈치 없이 다른 질문을 이었다.


“그러지 말고 조금 가르쳐 줘. 어떻게 전생의 인간이 여기로 복제됐다는 거야? 내가 과학에 관심이 많거든. 넌 목성에도 갔었다며? 학자들이 하는 소리 정도는 알아들을 거 아냐?”


그를 째려보며 듀너가 이마 언저리를 긁적였다.


이 세계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며, 여러 가지 이론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누군가 인공적으로 만든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있는 듀너도 주워들은 지식은 이해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그 스케일이 너무나 압도적이라 실감이 나지 않는 이론이었다.


“다중우주론 정도는 알고 있지?”


“어? 어. 대충.. 우주가 여러 개..”


“좋아. 그럼 비정향 양자 얽힘, 중력대칭자론과 에테르 장 도약에 대해 설명하지. 그 다음에 몇 가지 생명공학에 대해서 강의할 테니 똑똑히 들어. 제대로 이해 못하면 대가리를 뽑아서 목성까지 던져버릴 테니까!”


“...”


놈은 눈알을 굴리며 듀너를 보다가 더듬거리며 일어났다.


“아냐.. 피곤해 보이는데 강의는 다음에 부탁할게. 이해는 문제 없어. 이래봬도 쥘 베른 애독자였다고.”


놈은 구시렁거리며 다른 놈들이 사라진 쪽으로 걸어갔다.


“이쪽 우주는 지구도 없고 목성도 없다는 것쯤은 안다고. 내가 궁금한 건 저승을 이따위로 만든 이유란 말야. 나보고 만들라 해도 이렇게는 안 만들어. 신이던, 인간이던, 인공지능이던. 외계인이던..”


작아지는 그 놈의 소리를 들으며 별로 하기 싫은 생각을 했다.


이 세계를 만든 주체도 수수께끼지만 누가 만들었던 간에 그 목적은 더더욱 알기 힘들었다.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도 받은 바 없이 그냥 두 번째 인생을 살다가 늙으면 또 죽는 것뿐이었다.


다만 자연스러운 현상일 리 없는 이 출현을 합리적으로 추론하자면 어떤 지성이 있는 존재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세계임은 확실했다.



그럼에도 다수의 인간들이 선택한 세계관은 종교적인 해석이었다.


출현하는 이는 지독한 악당도 있었고 순수한 어린아이일 때 사망한 이도 있었다.


전생의 인생에 대한 아무런 처벌이나 보상이 없이 그냥 다시 출현하는 것으로 보아 여기가 천국이나 지옥이 아님은 분명했고, 어떤 종교에서도 제시된 적이 없는 사후세계였다.


진짜 천국이나 지옥으로 보내지기 전 단계로서 연옥 비슷한 개념의 세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근거는 없었다.


일부 종교에서 언급되는 윤회와도 차이가 많았다.


다만 다시 살아났다는 충격적인 현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신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곧 그 공포를 신앙으로 덮어 가라앉히는 종교로 귀결되었다.


이 부류의 인간들은 예의 과학적인 분석은 외면하려 했다. 그리고 과학적 해석을 믿는 이들도 누군가가 만든 세상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기분은 좋을 리 없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주장과 이론이 있지만 증거를 동반한 증명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전생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러한 근본적인 혼란 위에 전생에서 가지고 온 갖가지 갈등과 수많은 가치관까지 얽어진 이 세계는 평화로울 리 없는 역사와 복잡한 사회체계를 변화시키며 대략 3천 년을 이어오고 있다.



“헤이, 반쪽이.”


잡풀이 무성한 뒤쪽 언덕 위로 직장 상관인 가매우라는 이름의 남자가 내려오며 큰소리로 불렀다.


듀너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2주 전에 듀너가 만들어준 눈가의 멍은 아직 희미하게 남았지만 한동안 보이던 듀너기피증은 완전히 없어진 모양이었다.


거만하게 젖혀진 고개로 연신 잔소리를 떠들며 건들건들 걸어왔다. 저 같잖은 태도는 가매우의 뒤에 따라오는 두 명의 남자들 때문인 듯 했다.


그 중 하나는 엄청난 거한으로 치안경찰인 라만차라는 자였다.


대머리에 선 굵은 이목구비의 남자로 우락부락한 근육에 걸맞게 힘이 대단했다.


이 근방에선 힘으로 적수가 없는 듀너도 한번 그에게 제압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라만차는 매우 유쾌하고 불성실한 공무원으로 넉살도 좋아서 붙임성 없는 듀너에게도 종종 놀러 왔다.


다른 하나는 언젠가 듀너를 취재해간 기록자였다.


이 세계는 공식 역사와 신문기사를 작성하는 자격을 가진 이들을 특별한 신분으로 여기고 있으며, 기록자라고 부른다.


별로 맘에 드는 인물은 아니었다. 깔끔한 정장에 마른 체격의 노인네로 듀너의 사건사고에 대해 취재하였는데, 간간히 보이는 번득이는 눈빛이 기분 나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는 전생의 이야기를 밝히는 것이 보통 금기로 취급되는데, 이자는 그 금기를 깨도록 유도하는 기술이 꽤나 뛰어났다.


거기엔 취하면 경계가 느슨해지는 듀너의 약점도 거들긴 했지만.


그 때문일까. 그 기록자의 페이스에 휘둘려 평소 안 하던 전생의 이야기를 떠들고 있음을 깨닫고는 불쾌함이 치밀었었다.


그리곤 술기운을 얹어 시비를 걸고 거의 쫓아내다시피 돌려보내었었다.


당연하지만 그도 또한 듀너를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확실했다. 그때 취재 내용은 기사로 쓰여지지도 않았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왔을까?


셋이 가까워지자 듀너는 깔고 앉아있던 부서진 수레바퀴에서 일어나 가매우가 내뱉는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안 그래도 지저분한 수염에 침까지 묻혀가며 떠들고 있었다.


“이쪽 판지는 1차 건조가 끝나면 3구역으로 옮기라고 했을 텐데. 반쪽이? 좀 있으면 공장장이 재무부 시찰단을 끌고 올 텐데 아직 이 꼴이야?”


“아직 덜 말랐어”


“이렇게 맑은 날에 덜 말랐다? 이슬막은 언제 걷었나? 보나마나 늦잠 퍼질러 자고선 밥 쳐먹고 똥이나 싸다가 생각났겠지. 반쪽 굼벵이! 아니면 술 처먹고 여기서 쳐 자다가 오줌이라도 쌌나? 그렇군. 그래서 이렇게 축축한 거야.”


“어떤 굼벵이가 물을 끼얹어서 그래.”


“뭐?”


듀너는 가매우의 발을 걸고 목덜미를 잡아 옆의 웅덩이로 집어 던졌다.


제법 육중한 가매우의 몸은 한 바퀴 반을 회전하면서 화려하게 쳐 박혔고 튀어진 물벼락이 널려진 판지 위로 덮쳐졌다.



큼직한 종이 묶음 더미들 사이로 휴게소로 쓰는 오두막으로 가는 길에 라만차가 말을 던졌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경찰인데 눈앞에서 그러면 안되지.”


“짜증이 좀 났거든.”


“그런다고 애써 만든 종이의 품질을 떨어뜨리면 곤란하지. 내가 치안 담당이라 다행인줄 알아. 조달청 소속이었으면 꽤나 피곤한 하루가 됐을 거라고.”


“너무 지루해서 뭐라도 별일이 생겼으면 좋겠어.”


기록자가 끼어들었다.


“저 친구가 왜 반쪽이라 부르는 건가?”


“전에 한번 봤던 양반이군요. 레모스씨라고 했던가요? 그땐 실례가 많았소”


“레무스요. 아니 즐거운 시간이었소.”


“아뇨. 난 말이 많은 건 실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오. 이번엔 취재가 아닌 듯하니 난 듣기만 하겠소이다.”


셋은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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