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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처리 님의 서재입니다.

내가 유일한 데빌인자 보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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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닉팡
작품등록일 :
2023.09.02 13:04
최근연재일 :
2023.09.08 19:30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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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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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5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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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데빌의 힘, 사식(死蝕)

DUMMY

내가 전투 태세를 갖추자, 녀석도 양쪽 소매를 걷어올리며 한 발짝을 내디뎠다.


이내 녀석의 좌우로 하얀 빛이 터지며 한 자루씩 은백색의 검이 생성됐다.


허공에 떠오른 두 개의 칼날은 정확히 나를 겨눴다.


“그 콧대, 누군가 한 번은 꺾어줘야 할 것 같군.”


“이걸 어째? 내 콧대는 높고 날카로워서 잘 안 꺾이는 편이거든.”


공기가 얼어붙는다.


그야말로 일촉즉발.


더 이상 르네도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게 됐다.


무언가 입에 올리는 순간, 그게 곧 전투 개시의 방아쇠가 되리란 걸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이 상황에선 사거리가 긴 녀석의 비검이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인다.


내 검은 녀석에게 닿지 않는다.


이 간격을 좁혀 검을 휘두르기 위해선 무릎까지 물살에 잠긴 채 달려들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론 그다지 불리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내 공격 수단이 이 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이 검은 내 힘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꾸고,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침식’의 힘.


그것이 데빌의 힘이자, 나의 능력인······ ‘사식(死蝕)’이다.


나는 앞서 연구소의 땅에 구멍을 뚫은 것처럼 이 힘을 발사할 수도 있다.


물론 속도 면에선 녀석의 검에 못 미치지만, 위력이나 규모 면에선 이쪽이 압도적으로 한 수 위다.


녀석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치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왼손을 잡고 있던 르네를 밀어냈다.


말려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단, 움직임을 제한당하는 게 싫어서였다.


갑자기 지지할 대상을 잃은 르네는 다시 한 번 성대하게 물속으로 쳐박혔다.


그 소리가 혈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녀석이 좌우의 검을 각각 손에 쥔 채 내쪽으로 달려들었다.


한 차례의 격돌.


두 자루의 은검과 흑검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입만 살아있는 놈은 아닌 모양이군.”


“너야말로 멀리서 얄팍하게 검이나 던져댈 줄 알았더니, 근접전도 마다않고 제법이네. 괜히 슬레이어가 아니다 이건가?”


챙!


맞댄 검을 튕겨내며 다시 한 번 간격을 벌린 후 서로의 빈틈을 탐색한다.


이 고양감.


역시 이 녀석에겐 내 투쟁심에 불을 붙이는 뭔가가 있다.


“사식과 매우 유사한 능력을 사용하는 남자가 있다는 보고는 들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아무래도 네놈이 그 장본인인 건 틀림없는 것 같군.”


녀석은 냉담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기가 막히다는 듯 내뱉었다.


“뭐야, 그쪽에선 나도 유명인인 거냐? 하긴, 평소에도 그렇게나 쫓아다니는 걸 보면······ 나도 나름대로 악명이 높은가 봐?”


내 가벼운 말투가 심기에 거슬렸는지, 녀석의 표정이 점점 더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네 능력이 사식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게 정말 사식인지, 아니면 비슷한 다른 능력인지······ 우린 그걸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식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최대 금기 중 하나니까.”


사식이라는 금기.


······그렇다.


나는 이 힘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헌터 협회에게 쫓기고 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추적자를 보내왔다. 하지만 나는 이처럼 아직 건재하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헌터 협회에 따르면 사식은 있어선 안 될, 용납할 수 없는 힘인 것 같다.


거기엔 꽤나 뿌리 깊은 이유가 있는 것 같지만, 내게 있어선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오히려 그런 하찮은 이유로 내 평화로운 일상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뒷꽁무니를 살살 쫓아다녔다고? 그런 것치곤 성과가 없는 것 같네.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으니까······. 진지하게 날 잡고 싶었으면 좀 더 실력 있는 놈들을 보냈어야 되는 거 아니야?”


“······건방떨지 마라.”


“하긴 뭐, 내 능력이 사식이건 아니건······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어차피 난 앞으로도 계속 내 멋대로 살 거니까. 그러니, 너희 그 잘나신 도사님께 제발 나한테 신경 끄고 엿이나 잡수라고 전해줘.”


“······그 뚫린 입부터 막아버려야겠군.”


“호오, 꼭 좀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네. 근데 콧대 먼저 꺾는 거 아니었어?”


아직이다.


아직 멀었어. 이 정도가 아니야.


대치가 길어질수록, 녀석이 내 안의 투기를 끌어올린다. 아니, 내가 녀석을 끌어올리고 있는 건가?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눈앞의 장애물을 부순다. 지금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오직 그 일념뿐이다.


녀석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원거리 공격.


한 쌍의 하얀 칼날이 나를 노리며 일직선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검을 크게 휘두르며 그것들을 내리쳤다. 고막을 찌르는 금속의 충돌음이 흐르는 물에 휩쓸려간다.


“다음은 네 자루다······.”


녀석은 멈추지 않고 검을 생성했다.


······이번에는 넷.


떠오른 은빛 칼날이 순식간에 나를 향해 뻗어온다.


어차피 하반신이 물살에 잠겨 있기 때문에, 피하려는 선택지는 하책이다.


신속하게 검을 고쳐잡는다.


곧장 위쪽으로 크게 휘두른 후, 그대로 내리 그었다.


이어지는 날카로운 쇳소리.


네 자루의 검을 모두 튕겨내자, 검을 쥔 손이 징하고 울렸다.


육체가 사고를 앞서기 시작한다.


온몸의 신경이 예리하게 벼려진 듯한 감각에 짜릿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야, 결국 다시 원거리전이냐? 그렇다면······.”


말을 내뱉으며 왼손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활시위를 당기듯, 왼손의 한 점에 한계까지 의식을 쏟아 붓는다.


왼팔에 혈관이 뒤틀리는 듯한 격통이 밀려왔지만, 그 고통은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다.


“······너도 한 번 받아 봐!”


내 왼팔은 녀석을 겨눈 활시위로 화했다. 단숨에 부풀어 오른 어둠의 덩어리가 튕겨져 나가듯 발사됐다.


그 목표점엔 은빛의 슬레이어.


하지만 뻗어나간 구체는 허공을 가르며 목표물을 놓쳤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다.


자칫 힘조절을 잘못했다간, 되려 지하수로가 무너지며 퇴로가 막힐수도 있다.


녀석도 그걸 알고 내가 노리지 않을만한 곳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그렇다 한들, 그 움직임엔 한 치의 낭비도 없다. 확실히 오랜 기간 경험을 쌓은 프로의 몸놀림이다.


“다음은 여덟 자루······.”


두 다리로 착지하며 녀석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주변에 선명한 하얀 빛이 터졌다.


······그 수는 여덟.


생성된 여덟 개의 검이 마치 그 자체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듯, 일제히 나를 가리킨다.


그리고 완벽하게 통솔된 부대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나를 향해 돌진했다.


······전부 막아낼 수는 없다.


척수로 판단한다.


크게 한 발짝을 내디디며, 오히려 검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몸이 물 밖으로 나와 다시 물속으로 착지하기까지의 순간.


나는 온몸을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크게 휘두른 대검으로 세 개의 검을 쳐냈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개의 검은 나를 스치지도 못한 채 물속에 처박혔다.


내가 거리를 좁히며 파고든 탓에, 되려 넓게 포진해있던 검의 공격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뭔가가 내 왼쪽 대퇴근을 가르고 지나갔다.


순간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한차례 큰 물보라가 일었으나, 간신히 자세를 유지했다.


왼쪽 다리에 입은 상처는 깊지 않다. 오히려 이런 건 찰과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식하지 못한 사이 느닷없이 새겨진 고통이 내 고동을 흐트러뜨렸다.


“치사한 새끼······ 숫자 제대로 안 세냐?”


놀랄 일도 아니다. 녀석이 처음부터 아홉 번째 검을 준비하고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친절하게 공격하기 전 미리 ‘여덟 자루’라고 말해서 그쪽으로 내 주의를 돌린 뒤 사각지대에서 다른 검을 날린 것이다.


······또 얄팍한 짓을 하다니.


“하지만 뭐······ 좋아. 그런 속임수도 하나의 전투 방법이야. 손맛이 없는 것보단 훨씬 낫다. 그런 놈을 힘으로 때려눕히는 게 또 재밌거든.”


그저 치사하다는 말로 끝날 게 아니다.


그 치사한 기술에 앞서, 단순한 견제조차 필살의 일격이 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속임수를 눈치챌 틈도 없이, 한방에 골로 갈 지도 모른다.


녀석의 능력은······ 그 자체로 전술이라 부를만한 레벨이다.


“그럼 속일 필요도 없는 걸 주겠다. 열 여섯 자루······.”


은백색의 빛이 쏟아져 나왔다.


녀석의 주변에 치명적인 흉기들이 난무한다.


······그 수는 무려 열여섯.


열여섯 개의 하얀 칼날이 나를 노려본다.


그 하나하나의 뾰족한 살기가 피부를 찌르는 듯하다.


······이 녀석, 도대체 몇 개까지 검을 늘릴 수 있는 거지?


방금 전 여덟 개의 검은 어떻게든 피했지만, 저 정도 갯수에 대응하기엔 지금 발을 딛고 있는 바닥의 상태가 좋지 않다.


그리 간단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사형수가 단두대를 앞에 두고 느끼는 감각이 이런 느낌일까.


답지않게 등골이 서늘해지며 신경이 곤두섰다.


“간다, 죄인. 내 ‘백날무장’ 이번에도 전부 받아낼 수 있을까.”


녀석이 한쪽 팔을 들어올리자, 그 주변의 흉기들로부터 특유의 역장이 발생했다.


······활시위가 당겨졌다. 이제 곧 내게 칼날 세례가 쏟아져내린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하지만 그때.


그 극한까지 팽팽해진 공기 속에 끼어든 녀석이 있었다.


“아슬란 님!”


목소리는 내 오른쪽, 녀석의 왼쪽 방향에서 들려왔다.


푸른 제복을 입고 있는 앳된 소년······ 아이리스의 레인저인가?


내 오른팔은 즉시 그 소년을 목표로 잡았다.


어둠을 응축한 대검은 순식간에 주먹만한 구체의 형태로 모습을 바꿨다.


그 밀도높은 어둠의 구체가 단숨에 몸집을 키우며 열 배에 가까운 크기로 부풀어 올랐다.


내가 새롭게 나타난 레인저쪽으로 타겟을 바꾼 순간, 녀석에게 약간의 틈이 생겼다.


내 팔이 그 레인저에게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딜! 돌아가라!”


아주 미세한 틈.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애초에 저 레인저 한 명을 쓰러뜨린다 한들, 아무 의미도 없다. 녀석에게 틈을 만든다.


······단지 그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저 멍청한 슬레이어는 이쪽의 의도대로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다.


“너, 헤엄칠 줄 알아?”


“······에?”


르네를 향한 질문과 동시에.


내 오른팔에서 발사된 구체는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뻗어 나가, 그대로 수로의 천장을 부숴버렸다.


천장에 생긴 균열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무너져내린 천장에서 굉음과 함께 엄청난 양의 물이 들이닥쳤다.


거센 폭포가 눈 깜짝할 새에 수위를 높이며, 물살도 더욱 강해졌다.


“이게 무슨······!”


녀석이 상황을 깨닫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땐, 이미 물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떠밀려가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듯하지만, 제대로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우린 먼저 갈 테니, 수고해라!”


“······뭐라고!?”


그 말을 끝으로.


눈을 땡그랗게 뜬 르네의 손을 억지로 잡아당기며, 나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대로 물살에 몸을 맡긴 채 출구로 향했다.


곧이어, 녀석보다 하류에 위치한 타이밍에 다시 한 번 천장을 파괴했다.


이번엔 물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천장 자체의 잔해로 추격을 막아줄 벽을 만들기 위해서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지하 수로의 적층 구조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가능한 곡예였다.


어찌 됐든, 이걸로 놈들의 추격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이제 느긋하게 수로에서 강으로 내려가면 된다.


······뭐, 이번 일도 대충 마무리인가.


나는 물에서 얼굴을 내민 후 뒤쪽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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