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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처리 님의 서재입니다.

내가 유일한 데빌인자 보유자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소닉팡
작품등록일 :
2023.09.02 13:04
최근연재일 :
2023.09.08 19:30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137
추천수 :
1
글자수 :
62,711

작성
23.09.0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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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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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005 소녀

DUMMY

어둠이 짙다. 시야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나름대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가까스로 어디선가 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귀에 들리는 것은 물이 흐르는 소리.


안 그래도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이곳에서, 그 소리가 한층 더 추위를 조장하고 있었다.


그곳은 지하수로의 한 구획이었다.


어떻게든 물에서 올라올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 안고 있던 소녀를 물 밖으로 밀어올린 후 나도 기어 올라왔다.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소녀의 상태를 확인한다.


“이봐, 정신 차려! 이봐!”


어둠이 짙어 소녀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다.


몸을 축 늘어뜨린 채 꿈쩍도 하지 않는 소녀의 어깨를 강하게 흔들었다.


그 차갑게 식어버린 몸이 내 조바심을 더욱 부추겼다.


“부탁이야, 눈 좀 떠봐. 죽지 마!”


어깨를 움켜쥔 그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소녀는 아무 반응이 없다.


"젠장······!"


바닥을 쾅 내리치며 까드득 이를 악물었다.


이 손에서 또 하나의 불빛이 꺼졌다.


나는 소녀의 어깨를 잡은 채, 고개를 숙여 그 가슴에 이마를 묻었다.


잊고 있었다.


어차피 나는 사람을 살리는 존재가 아니다. 그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제 이런 건 사양이야.


얼마만큼의 시간을 그렇게 있었을까. 꽤 오랜 시간 그 상태로 있었던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몇 초에도 그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불현듯,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호수에 이는 잔물결처럼 조용히 퍼져나갔다. 그 진동이 뭔지 파악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다시금 느껴지는 진동.


그것은 조금 전보다 강하고 확실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소녀의 몸이 희미하고 옅은 빛에 휩싸이고 있었다.


“이건······.”


입 밖으로 튄 말을 마저 끝내지도 못한 채, 나는 소녀의 왼쪽 가슴에 귀를 갖다 댔다.


느껴진다. 힘찬 심장 박동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게 이 녀석 능력인가?”


희미한 빛 속으로 소녀의 몸이 떠올랐다.


그토록 끔찍하게 새겨져 있던 상처들이 그 빛에 씻겨지듯 서서히 치유되고 있었다.


자기 재생.


드물게 생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자연치유 능력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재생에 가까운 회복 능력을 가진 자들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능력이 강한 자라면 죽음의 문턱에서조차 소생한다고 한다.


실제로 눈앞의 소녀가 그랬다.


창백했던 얼굴엔 어느새 생기가 돌며 평온한 얼굴로 바뀌었다.


멈췄던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상처가 아물며 출혈도 멈췄다.


조금 전의 만신창이였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던 그 소녀가, 지금은 그저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어떻게든 다시 살아난 모양이다.


그 경이로운 회복력은 좀처럼 믿기 힘들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한 이상 부정할 도리가 없었다.


“뭐야. 이런 결말이냐······. 나 참, 괜히 쫄았잖아······. 아니, 지금은 다행이라 생각해야 되나. 하하······."


후우, 나도 모르게 긴 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소녀가 무사한 것에 대한 안도와, 조금 전 꼴사납게 허둥댔던 스스로에 대한 자조였다.


“그래도······ 다행이네, 진짜.”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조금씩 몸의 통증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하긴, 그 전격에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은 정말이지 끔찍했으니까.


더군다나 그만한 높이에서 추락했으니, 아무리 충격을 완화했다 해도 그리 쉽게 회복될 리가 없다.


안타깝게도 나는 눈앞의 소녀처럼 비상한 회복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평소보다 반응이 느려지거나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금 상황에선 그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한들, 일단 몸을 움직일 수는 있다.


게다가 당초의 계획과는 다른 형태가 되었지만, 어떻게든 목표도 확보했다.


몸상태야 어찌 됐든, 조금 전까지의 침울한 감정은 완전히 날아가버렸다.


지금부터는 오로지 탈출할 생각만 하면 된다.


“자, 그럼 이제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제3연구소의 지하에는 광활한 지하수로가 펼쳐져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도시의 지하에는 복잡한 지하수로가 뻗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경우, 출구를 찾는 것도 힘들 정도다.


하지만 나처럼 이 바닥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겐 이보다 더 고마운 환경은 없다.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어둠의 영역.


즉, 잘만 활용하면 추격자들의 추격도 쉽게 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이곳의 구조를 거의 장악하고 있다.


그물망처럼 펼쳐진 이 지하수로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디를 통해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지.


현재 위치가 지상의 어느 지점인지까지도.


이번 일 역시 그런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머릿속으로 수로의 구조를 떠올리며 탈출에 가장 적합한 루트를 그려나간다.


순식간에 최단경로를 비롯해, 열 개 정도의 경로를 도출해냈다.


이제부턴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며 상황에 맞는 루트로 빠져나가면 된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다시 소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몸을 감싸고 있던 희미한 인광은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상처가 거의 회복됐다는 뜻인가?


그러고 보니, 헌터 협회에 납치된 이유도 저 특수한 능력 때문이라고 했었지.


소녀의 회복력을 보면, 과연 누구라도 갖고 싶어 안달이 날만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헌터 협회가 연구하려는 것도 납득이 됐다.


“······이봐, 괜찮아? 다 나았으면, 이제 그만 눈 좀 떠줘. 언제까지고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


가볍게 소녀의 뺨을 두드려 본다.


방금 전까지는 소녀의 몸 자체가 희미하게나마 빛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 빛도 거의 사라져버렸다.


주변은 다시 짙은 어둠으로 뒤덮여가고 있었다.


“어~이, 듣고 있는 거야? 이제 괜찮은 거 맞지?”


반응이 없으니 조금 더 세게 두드려 본다.


그러자 미세한 신음과 함께 소녀의 몸이 움찔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우웅, 으음······.”


장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잠이 덜 깬 듯한 목소리를 내며, 소녀는 마침내 의식을 되찾았다.


“으음, 어어······ 여긴······?”


상황 판단이 되질 않아, 곤혹스러운 듯했다.


······그럴 만도 하지.


정신을 차려보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 깜깜절벽에, 온몸은 홀딱 젖어 있으니까.


그렇다 한들, 계속 태평하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소녀의 당혹감을 싹둑 잘라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눈뜨자마자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꺄악!”


······아, 깜짝아.


갑자기 어둠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란 듯,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바로 옆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대니, 징하고 귀가 울린다.


“뭐, 뭐에요! 누구세요!”


“아아, 그러니까······ 그렇게 경계하진 말아줘. 이제부터 사정을 설명할 테니까. 부탁인데, 거기서 뒷걸음치다 물속으로 퐁당 빠져버린다거나······ 그런 건 좀 참아줬음 좋겠어. 다시 끌어올리기 성가시니까.”


“······어, 물?”


소녀의 움직임이 멎었다.


당황한 와중에도 어떻게든 뒤로 내딛던 발은 멈춰준 것 같다.


“그······ 여긴······ 어디에요?”


“보다시피 지하수로야. 제3연구소 기준, 얼추 북서쪽인가.”


경계심으로 똘똘 뭉친 소녀의 질문에, 가급적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대답했다.


“지하수로······. 제3연구소······. 어······ 제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걸까요······? 게다가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당신은 ······?”


“하아, 그러니까 설명한다고 하잖아. 하긴 이런 상황에선 너 같은 반응이 보통인가.”


일단 얘기를 들으려는 자세가 된 건 고마운 일이다.


당황해서 갑자기 도망치기라도 하면 괜히 번거로운 일만 늘어날 뿐이다.


뭐, 만난지 5분도 안 된 내 말을 고스란히 믿어줄 거란 생각은 안 들지만······ 일이 끝날 때까진 얌전히 따르게 할 필요가 있다.


“좋아, 간단히 말할 테니 잘 들어. 나는 너를 제3연구소에서 구출하라는 의뢰를 받은 청부업자야. 그래서 의뢰내용대로 연구소에 침입해서 널 발견했고, 확 낚아채서 지금은 튀는 중이지. 추격자를 따돌리기엔 이 지하수로가 제일 편하니까.”


“나를······ 의뢰······.”


내 말을 머릿속으로 곱씹으며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의뢰라니, 누구의 의뢰인가요?”


“네 삼촌이라던데? 이름이, 그 뭐더라? 에······ 뭐시기였는데······. 아, 에밋이었나?”


“에밋······.”


내가 의뢰인의 이름을 말하자마자 소녀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응? 무슨 뒷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뭐야, 삼촌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야?”


“아니요. 분명 제 삼촌 이름이 맞긴 한데······.”


“······그런 의뢰를 할 리가 없다. 뭐, 그런 거냐?”


소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의뢰인의 정보가 들어맞지 않는 경우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의뢰인에겐 의뢰인만의 사정이 있고, 그걸 어떻게든 숨길 수밖에 없는 의뢰였다며 뒤늦게 날조의 이유를 대곤 한다.


······그런 경우, 대체로 의뢰를 받아들인 쪽이 낭패를 보게 된다.


계약 파기로 끝나면 얘기가 빠르겠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때도 많다.


결국 사전조사를 꼼꼼하게 하지 않은 스스로의 안일함을 탓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에밀리의 의뢰에는 실수가 없었다.


에밀리는 단순히 일감을 가져오는 것뿐만 아니라, 뒤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덕분에 이쪽은 임무에만 전념할 수 있으니, 무척 고마운 일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의뢰를 받았는데······ 그게 아니라면, 또 얘기가 복잡해진다.


“······혹시 내가 사람을 착각한 건 아니지?”


“만약 의뢰인이 정말 제 삼촌이라면······ 확실히, 저를 거기서 빼내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그게 납득이 안 된다는 말투잖아, 너.”


······하아, 역시 귀찮아질 가능성이 있는 건가.


“뭐, 그렇다 한들, 나도 의뢰를 받은 이상 일은 빈틈없이 해야 돼. 어찌 됐든 너를 그 의뢰인한테 이대로 끌고 갈 수밖에 없어.”


“그, 그런가요······. 그렇겠네요, 확실히······.”


머릿속이 복잡해보이는 와중에도, 일단은 내 말을 알아듣고는 있는 모양이다.


비교적 이해가 빨라서 살았다.


이 상태라면 의뢰인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고 끝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떡할래? 나로서는 그냥 얌전히 따라와 주면 좋겠는데.”


“저도 이대로 여기 있을 순 없으니······ 게다가 그 의뢰인도 궁금해요······.”


“그럼, 예스라는 뜻이지?”


“네, 그럼······ 부탁합니다.”


소녀는 다소 소극적인 목소리로 동의를 표했다.


“좋아, 그럼 얘기가 빠르지. 냉큼 여기서 나가자.”


계획대로는 아니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얘기가 마무리됐다.


이쯤 되면 의뢰인의 진위 여부 따윈 아무래도 좋다.


요컨대, 소녀를 여기서 꺼내주기만 하면 된다. 그걸로 내 일은 끝난다.


“저기, 나가자고 말씀하셔도······ 저한테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응? 아, 그렇군. 확실히 이런 데가 처음이면 힘들지도 모르지. 그럼 손 내밀어봐. 넌 내가 걷는 쪽으로 따라오기만 하면 돼.


“아아, 네······.”


사실, 이 어둠속에선 일반인이라면 자기 발끝도 잘 보이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잘 보이는 건 아니지만, 이곳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저기······ 가기 전에 하나만······.”


“응?”


“이름······ 물어봐도 될까요?”


······아, 그렇군. 그러고 보니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 것 같다.


“이거 실례했군. 레이븐이다.”


“레이븐 씨······ 군요.”


······그래, 레이븐은 맞지만.


“’씨’를 붙일 필요는 없어. 한쪽이 너무 일방적으로 정중하면 되려 이쪽이 불편해. 그러니 그냥 편하게 불러도 돼.”


“어어······ 아······ 알겠습니다.”


내 요구에 저항이 있는 건지, 다소 어눌한 말투다.


하긴, 어떻게 부르던 상관이야 없지만, 평소 주변에 그런 예의 바른 녀석이 없으니 정중하게 대해져도 낯간지러울 뿐이다.


“아, 저는······.”


“르네, 맞지?”


“······어어? 아, 네에······ 마, 맞습니다.”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맞혀버려서, 기선제압 당해 당황한 듯했다.


“일단, 찾는 사람의 이름 정도는 사전에 알아둬야지.”


“아, 그렇군요.”


······그래봤자, 알고 있는 건 이름뿐이지만.


“그럼 좀 서두르자. 헌터 협회 놈들이 침입자나 탈주자를 가만히 놔둘 리도 없고······ 우리가 이 지하수로에 들어왔다는 건 알고 있을 테니, 곧 따라 붙을 거야.”


“네.”


소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다.


······무리도 아니지.


불과 조금 전까지 생사의 기로를 헤매다가, 찬물에 뛰어들었으니······.


그 가녀린 손을 꼭 잡고 걷기 시작했다.


소녀는 당황하면서도 내게 끌려가듯, 그러나 확실히 그 발로 걷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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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09 의뢰 중개인에게 속았다 23.09.08 3 0 12쪽
9 008 의뢰 완료? 23.09.08 4 0 12쪽
8 007 데빌의 힘, 사식(死蝕) 23.09.05 9 0 12쪽
7 006 추격자 23.09.02 11 0 15쪽
» 005 소녀 23.09.02 13 0 14쪽
5 004 전격의 마도사 23.09.02 11 0 16쪽
4 003 은빛의 슬레이어 23.09.02 23 0 19쪽
3 002 골 때리는 의뢰 23.09.02 16 0 15쪽
2 001 봉마의 각인 23.09.02 19 1 12쪽
1 000 유일한 데빌인자의 각성자 23.09.02 26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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