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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처리 님의 서재입니다.

내가 유일한 데빌인자 보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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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닉팡
작품등록일 :
2023.09.02 13:04
최근연재일 :
2023.09.08 19:30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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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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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11

작성
23.09.0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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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1 봉마의 각인

DUMMY

뭔가에 홀린 듯, 서투른 손길로 내 몸집보다 큰 나무토막들을 쉬지 않고 깎아낸다.


내가 집어삼킨 생명의 수만큼 기둥을 세워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 당사자들이 누구인지,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 채.


하루, 이틀, 사흘······.


팔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감촉에 의지하며, 나는 매일 똑같은 작업을 반복해나가고 있다.


잔해더미와 골격만 남은 폐건물 곳곳엔 분명 생활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아마도 이 도시에 살았던 주민들의 흔적이겠지.


기억하진 못해도 알 수 있었다.


내 두 팔에 숨어있는 괴물이 여기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집어삼켰다는 것을.


그건 의심할 필요도 없을 만큼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단 맛을 달다 느끼고, 짠 맛을 짜다 느끼는 것처럼······ 그냥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할 정도로 감정의 동요가 없다.


전후 사정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이 두 팔 안의 괴물에게 조금씩 자아를 빼앗기고 있는걸까?


고개를 힘껏 저으며 생각을 떨쳐낸다.


스스로를 혹사해가면서까지 나무를 깎아내는 일에만 매달리고 있는 이유는······ 그런 생각을 부정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괴물로 변하고 싶지 않아.


통조림 3개와 진공 포장된 훈제 육포 2팩.

성냥갑 여러 개와 건초 및 나뭇더미들.


첫날, 폐허를 배회하며 찾아낸 것들이다.


터무니없을 만큼 궁핍한 상황임에도 초조나 불안 따윈 느낄 겨를도 없이, 그저 바싹 마른 나무를 깎으며 시간은 흘러갔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나는 비교적 형태가 온전한 건물을 거처로 삼아, 그곳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밤이 되면 깨진 유리창과 떨어져 나간 출입문으로 찬바람이 거침없이 들이닥쳤다.


뼛속까지 사무치는 추위 탓에, 매일 밤 건초더미를 뒤집어쓴 채 바들바들 떨며 잠들어야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끄아아악!”


어김없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하아, 하아······.”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닦는다.


매번 악몽을 꾸는데도, 어째서인지 눈을 뜬 후엔 꿈속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나날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반복되고 있었다.


창 밖을 보니 하늘은 아직 어둡다.


하지만, 다시 잠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몸을 일으켰다.


“······.”


퀭한 얼굴로 새벽 이슬을 맞으며 근방의 하천에서 간단히 몸을 씻어낸 후 거처로 돌아와 마지막 남은 육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폐허의 외곽에 있는 작은 언덕에 올라, 육포를 씹으며 멍하니 지평선을 바라본다.


동이 트고 있었다.


하늘이 서서히 주홍빛으로 물들며, 언덕 위로 수많은 그림자가 떠올랐다.


그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침묵한 채 그곳에 있다.


“······.”


그건 수많은 묘비명이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빼곡하게 세워진 삐뚤삐뚤한 십자가들.


그 하나하나가 거칠게 깎아낸 나무로 만든 소박한 묘표이자, 이 도시의 마지막 주민들이었다.


그런 묘표가 백여 개가 넘게 줄지어 서있었다.


미숙한 꼬맹이가 서투른 솜씨로 어떻게든 완성해냈다는 느낌이 드는 엉성한 모양새다.


지난 5일간의 내 집념의 결과였다.


그 묘비명엔 어떠한 표식도 없다.


이름도. 나이도.


그야, 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 하니까.


저 십자가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희생자들에 대한 내 기억없는 속죄였다.


“······.”


내 존재는 빈껍질 같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고, 나라는 개체를 나타내는 이름조차 알 수 없다.


불확실한 사물.

영혼없는 목각인형.


그게 바로 나였다.


다만.


이 두 팔에서 꿈틀거리는 기분 나쁜 감촉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손끝에서부터 두 팔로 퍼져나가는 깊고 어두운 기운이, 나를 점점 침식해간다.


······내 존재를 빼앗기는 듯한 감각.


그 감각에 저항하며, 나는 이 죽어버린 도시에서 홀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게 처음으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이봐, 꼬맹아. 이런 데서 뭐하고 있는 거냐?”


예상치 못한 이방인의 등장에 벙쪄, 일순간 인지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 말이 나를 향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 나는 지극한 안도감을 느꼈다.


내 고요했던 마음에 조약돌 하나가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존재를 인정받았다는 기쁨.


그건 마치 흑백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하나씩 색채가 입혀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아.”


의식하지 못한 사이, 뜨거운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지금껏 억눌려 있던 무수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다.


그렇게 비로소······ 나는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 야 임마! 왜 우는 거야, 너? 배고프냐?”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며, 그 남자는 다소 허둥대는 모습으로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마음이 놓여서 였을까.


다음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몸에 닿는 쌀쌀한 한기를 느끼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정신이 들었을 땐, 폐가 안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꽤나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는지, 깨진 유리창 틈으로 달빛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악몽을 꾸지 않고 이렇게 푹 잠든 건 처음이라, 뭔가 생소한 기분이다.


“이제 정신이 좀 드냐, 꼬맹아?”


아, 그러고 보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반듯하게 각이 잡힌 푸른 제복을 입은 30대 중반의 남자가 벽에 기대앉아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덕에서 나한테 말을 걸어줬던 남자였다.


······이 남자가 나를 여기까지 옮긴 건가?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하자, 머리가 징하고 울린다.


“아······.”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잔뜩 갈라진, 당장이라도 말라비틀어질 듯한 메마른 소리였다.


“무리하지 말고 좀 더 누워 있어라.”


“······괜찮아, 일어날 거야.”


내 대답에 남자가 입을 삐죽 내밀며 한쪽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와하하하! 이 자식 말버릇 고약한 것 봐라? 존댓말 안 배웠냐?”


“······그딴 거 알 게 뭐야.”


“거, 골 때리는 꼬맹이네. 성가시게 하지 말고 잠자코 누워 있어.”


“으이익······.”


이마를 꾹 누르는 남자의 손가락에 밀려 그대로 털썩 몸을 눕혔다.


첫인상은 꽤나 중후한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막상 다시 보니, 의외로 호쾌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불손한 여유가 느껴지는 남자였다.


“뭐,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 여긴 그냥 뭘 좀 조사하러 온 거니까. 넌 얌전히 거기 누워서 그냥 협조하면 돼.”


······조사?


딱히 경계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덜컥 막혔다. 캥기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내 두 팔이 집어삼킨 이 도시의 주민들.


······이 남자는 그걸 조사하러 온 거였나.


하지만 숨길 생각은 없다. 기억이 없다 한들, 내가 저지른 짓인 건 사실이니까.


누군가와 말을 섞고 있다는 감각에 들떴던 것도 잠시,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죄책감에 다시금 숙연해진다.


“그보다 언덕에서 봤던 그거······ 전부 네 솜씨냐?”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기까지 약간의 텀이 있었지만,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만든 무덤에 대해 묻는 거겠지.


그런데 어째서인지 남자는 복잡미묘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냐.”


“내가 앗아간 목숨이니까, 아마도······.”


“아마도?”


“그래, 아마도······ 왜냐면 난 아무 기억도 없거든. 내 이름이 뭔지도 몰라.”


“흐음, 그렇구나.”


······뭐지? 원래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한 건가?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하디 알포드’라고 소개했다.


이곳에서 발생한 이상 징후에 대해 조사하러 왔다고 한다.


그 외에도 헌터 협회 사람이라느니, 뭐라느니······ 대략적인 설명은 들었던 것 같지만 대부분 잊어버렸다.


내가 기억상실이나 두 팔의 기분 나쁜 감촉 등을 설명하면 이 녀석은 대수롭지 않게 “흐음, 그렇구나.” 한 마디로 끝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이 녀석은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폐허의 원흉이 나라는 것과 그 화근이 아직 내 양손에 쥐어 있다는 것을.


굳이 빙빙 돌려 말할 필요도 없을 듯했다.


나는 두 팔을 들어올리며 서두 꺼냈다.


“이 녀석에게······ 나라는 존재를 점점 빼앗기고 있는 느낌이야.”


손에 새겨진 감각. 그게 점점 영역을 넓히며 퍼지고 있는 것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언젠가 자아를 잃고 괴물이 돼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간 느꼈던 것들에 대해 전부 털어놓았다. 이에 대한 녀석의 반응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되려 질문이 날아와, 대답하기 곤란하다.


아니, 애당초 무슨 말을 듣던 대답할 말 따위 없었다. 그저 이 가슴 속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토해내고 싶었을 뿐이다.


······난 뭘 하고 싶은 거지?


이 불안을 없애고 싶다.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잃어버린 걸 되찾고 싶다.


그런 막연한 생각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허나, 그 속에서 진정으로 바라는 근본적인 것은······.


나라는 존재를 잃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그런 원초적인 소망이었다.


그 말을 듣고, 녀석은 비웃었다.


“죽을 용기도, 죄를 짊어질 힘도 없는데, 그래도 살고 싶은 거냐?”


비웃음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뭐, 인간이란 게 원래 그런 거지.”


녀석은 웃음기를 쏙 뺀 얼굴로, 묘하게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너한테 한 번 걸어볼까.”


말을 마친 후, 녀석은 내 두 팔에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뚜렷하게 보이진 않지만, 복잡한 뭔가가 얽혀 있는 듯한 이질감과 함께 붉은 문양이 떠올랐다.


다소 격통이 밀려왔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네 두 팔에 봉마의 각인을 새겼다. 레이븐.”


“레이븐······?”


“그래, 레이븐. ‘데빌인자 보유자’한테 딱 어울리는 이름이잖냐?”


잠시 후 팔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사라지고, 곧 평소처럼 돌아왔다.


“그 각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너는 살아있어도 괜찮아. 그러니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


다음 날, 녀석은 내게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고 홀연히 떠났다.


그리고, 고작 이틀 남짓의 그 짧은 인연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원하는 대로 살라던 그 말.


그 녀석으로선 별거 아닌 툭 내뱉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은 내게 확실한 삶의 동력이 되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살아갈 수 있게 됐으니까.


뭐, 그래봤자······.


이제 와선 그저 옛날 얘기일 뿐이다. 그도 그럴 게,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다.


대륙 동쪽의 대도시, 루트리아스.


녀석과 헤어진 후 꽤 오랫동안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했지만, 지금은 이 도시에 머문지도 어느덧 2년이 되어 간다.


그리고 나는······.


이젠 완전히 눈에 익어버린 현관을 앞에 두고,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하암.”


하품이 나왔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문을 안 열어? 노크 소리 못 들었나?”


똑똑.


내가 재차 문을 두드리자, 그제서야 끼이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 안쪽에서 발랄한 하이톤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서 와! 새로운 의뢰가 있어!”


그땐 몰랐다.


······그 의뢰가 내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이 되리란 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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