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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처리 님의 서재입니다.

내가 유일한 데빌인자 보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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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닉팡
작품등록일 :
2023.09.02 13:04
최근연재일 :
2023.09.08 19:30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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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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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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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003 은빛의 슬레이어

DUMMY

벗겨진 콘크리트에서 서늘한 냉기가 베어 나온다.


지하이기 때문에 주변에 창은 없고, 깜빡이는 조명 소리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차가운 공기가 정체된 어두컴컴한 통로.


그곳을 발소리를 죽이며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주변에 인기척은 없지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생각하면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순 없다.


발각되면 상당히 성가셔진다.


아마 두 번 다시 햇빛을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후우······.”


헌터 협회 관할의 제3연구소.


그것이 지금 내가 있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헌터 협회의 관할 시설이라는 이유만으로 엄중한 경비가 깔린다.


그 중에서도 연구시설은 특히 경비가 삼엄하다.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 그런 곳을 배회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통로의 교차점에서 멈춰선 후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핀다.


여전히 인기척은 없다.


주저없이 발걸음을 내딛고, 반쯤 뛰며 더 안쪽으로 향한다.


호흡, 심박, 발한.


좋아, 모두 괜찮다.


적당한 긴장감이 오히려 기분 좋을 정도다.


“하아, 이대로 별 일 없이 도착하면 얘기가 빠르겠지만······ 세상 일이 그리 술술 풀리진 않겠지.”


뭐, 발각되면 그때는 그때다.


이 건물의 구조는 대체로 머릿속에 들어있다.


진입 경로, 목적지, 퇴로. 불의의 사태에 대비한 탈출 경로도 파악했다.


되도록이면 그런 사태가 없길 바라지만, 유사시엔 슬레이어에게 쫓기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즉, 탈출뿐이라면 어떻게든 된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만으로 끝낼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의뢰인의 부탁을 받고 일부러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목표물의 확보없이 꼬리를 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나저나 이 정도로 환영해주는 사람이 없다니, 좀 골때리네. 곧 목적지도 가까워지는 거 같은데.”


다소 빠르게 통로를 따라 걷는다.


너무 조용하다. 헌터 협회 연구시설 보안이 이렇게 허술할 리가 없는데······.


목적지 근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상함을 감지했다.


······내가 발견되지 않는 게 아니다.


나를 발견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뭔가 함정인가?


아니면······.


“아.”


거기서 후각에 이변을 느끼고 멈춰 섰다.


“이 냄새······.”


불쾌하면서도 익숙한, 코를 찌르는 철냄새가······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느껴졌다.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 발걸음에 점점 박차를 가하며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개의 모퉁이를 돌아 그곳에 도착했다.


우연인가. 여기가 애초의 목적지다.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통로를 살핀다. 그곳에 펼쳐진 광경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온통 피범벅이 된 콘크리트 바닥 위로 침묵이 퍼져 있었다.


“야야, 이건 또 무슨 장난이야?”


서리처럼 찬 바람이 부는 통로 안에는 쓰러진 보안 요원들의 모습이 부조화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그 중 한 명에게 달려가 호흡을 확인한다.


아직 숨이 붙어있다.


미약하지만, 빨리 도움이 오면 어떻게든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봐, 정신 차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내가 촉구하자 작게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제대로 된 대답은 없었다.


······이런 상태면 어쩔 수 없나.


아무리 상황 설명을 요구해도 무의미해 보인다. 그렇다면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발걸음을 돌려 바로 옆,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하아, 이건 또······.”


방 안은 간소한 구조였다.


싱크대와 변기, 침대가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콘크리트로 마감된 살풍경한 방이다.


벽과 바닥엔 뭔가 날카로운 것으로 긁힌 듯한 흔적과 피가 묻어 있었다.


핏자국은 오래된 것과 새로 생긴 것이 섞여 있는 듯했다.


그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자, 누른 면적 그대로 손가락에 붉은 액체가 묻어났다.


······아직 다 마르지 않았어.


그와 동시에 방 안 곳곳에 말라붙어 있는 혈흔들이 눈길을 끈다.


“그럼, 저건 다 누구 거지······.”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발걸음을 통로로 향했다.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방금 전의 남자 옆으로 다시 몸을 숙였다.


“이봐, 여기에 이 여자애가 있었을 거야. 이 녀석은 어디로 갔어?”


“······쿨럭! 너, 누구야.”


남자는 토혈을 쏟아내며 신음하듯 말을 내뱉었다.


이런 상태에서도 경비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려하니, 골머리가 아프다.


“그냥 질문에만 대답해. 쓸데없는 말로 소모하면 당신 진짜 위험해. 이 녀석이 여기 있었던 거, 그건 확실하지?”


“아······.”


“누가 강제로 데려 간 거냐?”


“아니······.”


남자의 반응이 둔해진다.


“······그럼 역시 스스로 탈주한 거냐?”


그말에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남자는 괴로운 표정으로 연이어 기침을 토해냈다. 이대로라면 정말 목숨이 위태로울 듯하다.


“알았다, 이제 됐어. 도움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나는 종이 조각을 쥐고 남자 곁을 떠났다.


내가 향하는 곳은 방금 전 내가 왔던 통로의 반대편, 피투성이의 통로 끝자락이다.


쓰러진 남자들 사이를 꿰매듯 달려간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한 치의 여유도 없다.


“참, 성가신 일을 소개시켜 줬네. 성공보수, 예정의 두 배는 받아주마, 에밀리!”






***




추적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통로의 바닥 이곳저곳에 남아 있는 혈흔을 쫓아가면 그만이었다.


이 넓은 시설에서 특정인을 찾아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생각하면, 칠칠치 못하게 이런 흔적을 남긴 상대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다만 문제는 대상과 접촉하기 전, 헌터 협회 측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다.


이 상황에선 신중하게 몸을 숨기며 추적할 수도 없다.


어쨌든 구출해야 할 대상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으니······ 느긋하게 쫓아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이쯤되면 나름대로 발각되는 걸 각오하고 전력으로 쫓아가서 한시라도 빨리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보다······.”


조금 전에 봤던 참상이 소녀의 짓이라면, 상당한 실력자인 게 분명하다.


한낱 평범한 소녀였다면 헌터 협회의 경비대 전원을 그 지경까지 걸레짝으로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를 굳이 내가 나서서 데리러 왔으니, 참으로 골때리는 얘기다.


“하아.”


문득 드는 생각인데, 만약.


대상을 구출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침입했으나······.


‘대상자가 혼자 탈출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성공보수가 날아가버리는 날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을 것 같다.


통로의 끝자락에 다다라 무심코 발걸음을 멈춘다. 출구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벽으로 바짝 붙어 상황을 살핀다.


내가 지나왔던 통로는 층고가 높고 공간이 넓은 실내 광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곳에 여러 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다.


한 남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었다.


다소 긴박한 분위기 속에 명령이 떨어지자, 남자들은 각자 지시받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저 남자, 아이리스 소속의 레인저인가? 왜 이런 곳에?”


명령을 내렸던 남자만 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푸른 제복이 낯이 익다.


아이리스.


그들은 헌터 협회가 자체로 보유한 정예 부대다.


괴수종의 제거를 주 목적으로 하는 헌터 협회에겐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무력이 필요하다.


즉, 마물 퇴치의 핵심이 되는 이 조직이야말로 헌터 협회의 상징이다.


헌터 협회가 지금 같은 치안 유지 기구로 부상한 것도 이 조직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아이리스에 소속된 대원들은 헌터가 아닌, ‘레인저’로 불린다.


엄선된 정예인 그들은 전투 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능력자인 경우가 많다.


그 개개인의 잠재력은 단신으로 마물과 견줄 수 있을 정도다.


헌터 협회의 규율을 구현하기 위해 스스로 법을 실현하는 자.


괴수종으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자.


그것이 레인저이며, 아이리스의 존재 이유였다.


아무튼 아이리스의 레인저가 여기에 있는 건 단순히 우연인가?


아니면······.


그 순간, 본능적으로 전신이 위험을 감지했다. 무의식중에 반신을 비틀었다.


간발의 차이로, 뭔가가 내 반신이 있던 공간을 뚫고 들어왔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쨍한 쇳소리가 이어졌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상황을 파악했다.


은백색의 빛을 띤 예리한 칼날이 콘크리트 바닥에 비스듬이 꽂혀 있었다.


방금 저 검이 내 뺨을 스치며 날아와 바닥에 꽂힌 것이다.


쓰릿한 감각에 뺨으로 손을 갖다 대자, 손가락에 피가 묻어있었다.


“거기 있는 놈, 나와라. 지금은 경고다. 다음엔 반드시 그 몸을 꿰뚫는다.”


설마, 저 레인저가 공격했다는 건가?


나는 녀석에게서 시선을 뗀 적이 없고,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그런 움직임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녀석이 능력자라면 지금의 견제가 녀석의 소행이라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아, 그런 거야? 경고라서 일부러 피하게 해준 거였어? 친절하네.”


출구를 나와 천천히 광장을 거닐며, 한차례 어깨를 으쓱댔다.


“누구냐. 거기서 뭘하고 있었지?”


“이봐, 냅다 흉기를 던져놓고 한다는 말이 그거야? 그보다······ 얼굴에 죽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겠습니다, 라고 써 있잖아.”


“그렇게 될지 말지는 너 하기에 달렸어. 하지만 어찌 됐든, 여기에 침입한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마라.”


녀석의 은백색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푸른 눈빛이 한차례 나를 훑고 지나간다.


보아하니, 이 곱상하게 생긴 녀석은 따로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럼 방금 전 경고라며 던졌던 그 검이 이 녀석의 무기인가.


그렇다 한들 레인저다. 더군다나 능력자라면, 다른 전투 수단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뭐, 잠시 지나가던 침입자니까 신경 쓰지 마······ 라는 식으로는 안 되겠지?”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녀석의 눈빛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역시나, 신경을 꺼줄 생각은 없어 보이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다 목표물을 완전히 놓쳐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웬만하면 충돌없이 끝내고 싶었지만, 발각된 이상 어쩔 수 없이 강경책이다.


“그럼 나도 경고하겠는데······ 나는 얌전히 잡힐 생각도 없고, 너한테 져줄 생각도 없어. 그러니 괜히 다치지 말고 그냥 비켜줘.”


비키지 않으면, 속전속결로 쓰러뜨리고 지나간다.


“웃기는 놈이군. 지금은 너 같은 놈과 느긋하게 어울려줄 시간 따윈 없다. 신속히 끝내주마.”


“오, 나랑 통하는 구석이 있네. 나도 레인저 따위랑 놀고 있을 만큼 한가하진 않거든. 나를 잡고 싶으면 슬레이어라도 데려 오던가.”


“호오, 그래? 확실히 통하는 구석이 있군. 그 슬레이어가 바로 여기 있으니까.”


“뭐······.”


분위기가 급격하게 바뀐다.


녀석의 말에 이번엔 이쪽이 경계심을 느꼈다.


“십이사의 일곱 번째 슬레이어, 아슬란 애쉬. 네 죄는 내 검으로 심판하겠다.”


말을 마친 후 내 얼굴을 노려보던 녀석의 시선이 살짝 위를 향한다.


다음 순간.


내 머리 위에 재차 하얀 빛의 결정이 떠올랐다.


“뭐, 뭐야!”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잽싸게 옆으로 몸을 날린다.


그와 동시에 내가 서있던 자리에 은백색의 칼날이 내리 꽂혔다.


처음 녀석에게 공격 당했을 때와 똑같은 형상이다.


방금도 저 녀석의 공격인가?


하지만 검을 던지는 움직임 같은 건 없었고, 무엇보다 녀석의 짓이라면 검이 수직으로 떨어질 리가 없다.


“과연, 어느 정도 소양은 있는 모양이군.”


“이봐, 너 지금 태연한 얼굴로 뭔 소릴 하는 거야?”


아무리 침입자라지만, 이 녀석에겐 생포라는 개념은 없는 건가?


매 공격마다 손속에 망설임이 없다. 확실하게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슬레이어면 그렇게 살초를 막 뿌려도 되는 거냐? 역시 죽일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거 맞잖아. 게다가 방금 그거······ 그건 뭘 어떻게 한 거냐.”


“곧 죽을 놈에게 굳이 설명해봤자 의미가 없지.”


흔들리는 조명 밑으로 녀석의 푸른 안광이 번뜩였다.


“어떤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네놈이 느슨한 레인저 따위와 다르다는 건 알았다.”


“아직도 입을 놀릴 여유가 있나?”


녀석이 손을 앞으로 뻗는다.


그러자 방금 전 바닥에 꽂혀 있던 검이 서서히 뽑히며, 빨려 들어가듯 녀석의 손에 쥐어졌다.


염동술.


방금 목격한 능력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 한해,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대상물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자유롭게 조종하는 능력.


능력으로썬 꽤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부류지만, 이 만큼이나 숙련된 염동술사는 드물다.


하지만, 이 녀석이 염동술사라면 아직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아무리 숙련도가 높다 해도 기껏해야 물체를 날리는 능력일 뿐이다.


게다가 고속으로 움직이는 물체일수록 그 궤도는 지극히 직선적이며, 도중에 방향을 꺾는 게 어렵다.


즉, 그 궤적을 읽고 피하거나 튕기면 된다.


앞의 두 번의 기습으로 짐작컨대, 녀석은 내 사각지대에서 일격을 노려올 거다.


반대로 말하면, 사각지대를 파악하면 거기서 날아오는 물건의 궤적은 자연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녀석이 능력을 발산할 때 역장이 발생한다.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지만, 그걸로 검이 날아오는 순간을 알 수 있었다.


그 발생 타이밍과 검의 궤도를 파악할 수 있다면, 상대법은 간단하다.


나를 겨누고 있던 녀석의 손이 한차례 번쩍인다.


녀석이 쥐고 있던 검이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온다.


빠르지만 단순한 공격이다.


상체를 비틀어 피하자, 아슬한 간격으로 빗겨나간 검이 재차 바닥에 꽂혔다.


일순간 또 한 번 느껴지는 역장과 함께, 또 다른 검의 존재를 감지했다.


최초에 내 뺨을 스친 후 땅에 꽂혔던 검이, 어느새 배후에서 내 뒷통수를 노려 온다.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녀석의 손에서 날아온 첫 번째 검은 미끼, 이쪽이 나를 끝장내기 위한 일격이다.


“우쭐대지 마!”


상반신을 더욱 힘껏 비틀어, 온몸으로 원을 그리며 회전한다.


일순간 오른손에 의식을 집중한다.


그와 동시에 검은 빛과 하얀 빛이 서로 교차하며,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튕겨져 나간 은검이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너.”


내 손에 쥐어진 시커먼 대검.


그걸 노려보고 있던 녀석의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이봐, 슬레이어 나리. 내가 설마 그런 얄팍한 수에 당할 거라 생각했어?”


능력을 갖고 있는 건 저 녀석만이 아니다. 이 정도의 재주도 없어서야 이런 곳에 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다.


칠흑의 대검을 한차례 가볍게 휘두른다.


이 검은 내가 가진 유일한 최고의 물건이다.


그 칼날의 형체는 마력으로 구성되어 있어, 단순한 광물처럼 날이 빠지는 일도 하물며 부러질 염려도 없다.


형성도 해방도 자유자재라 편의성 면에서도 최고다.


그 덕에 나는 따로 무기가 없어도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싸울 수 있다.


“네 검은 모두 이걸로 쳐부숴버릴 거야. 한 번 해볼래?”


“······ 너도 능력자인가. 그렇다면 더더욱 그냥 지나칠 수 없겠군.”


녀석의 양쪽 소매에서 검이 한 자루씩 튀어 나와, 두 손에 쥐어졌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검이 두 개.


녀석이 손에 쥐고 있는 검이 두 개.


총 네 개다.


저 정도의 염동술사라면 근접 전투력이 낮아도 검의 갯수 자체가 카드가 된다.


몸에 숨겨둔 패가 또 있었다는 건가. 준비성이 좋은 녀석이다.


“헤에, 아직도 남은 게 있네. 하지만 그딴 걸로 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안일한 것 같은데 말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이 들고 있던 한쌍의 검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두 검이 서로 교차하며 호선의 궤도를 그린다.


이내 양쪽에서 내 옆구리를 노리며 파고들었다.


이 녀석.


내 좌우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내가 검을 피하기 위해 뛰어오르면, 그 틈에 나머지 검으로 노리겠다는 의중이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거 같은데, 뛰어오르지 않고 모조리 쳐내면 그만이다.


동시에 노려올 바닥에서 날아오는 검도 포함해서 네 개 전부 튕겨낸다!


잽싸게 두개의 검을 쳐냈다.


하지만.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다.


새롭게 나타난 검의 기척은 세 개.


정면에서 날아오는 검까지 합하면 총 다섯 개다.


······왜 늘어나는 거냐!


이건 위험하다. 전부 못 받아내. 이번엔 확실히 내 몸이 짓이겨진다!


고통을 각오하고, 이를 악문다.


최대한 자세를 무너뜨리며 검을 크게 휘두른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꼴사납게 처박혔다.


검으로 튕겨낸 감각은 단 한 개뿐이다.


나머지는······ 운 좋게도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위험했지만, 어떻게든 피한 모양이다.


“이 자식! 방금······.”


서둘러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무심코 욕이 튀어나오려던 찰나, 그 말은 도중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흩날려라.”


녀석의 주위에 여러 개의 빛이 터진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아무 것도 없던 녀석의 주위에 은백색의 칼날이 나타났다.


“이봐, 농담이지······?”


“안일한 건 네놈이다. 행운의 여신은 어째선지 네놈의 편인 것 같지만, 운으로 살아남는 것도 거기까지다.”


“······.”


“깨달아라. 헌터 협회를 적대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답지 않게 진땀이 흐른다.


녀석은 단순히 손에 든 검을 염동술로 날린 것이 아니었다. 아니, 물론 염동술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부분이 잘못됐다.


녀석은 검 자체를 생성할 수 있는 능력자다. 그것도 한두 자루가 아니라······.


······저렇게나 많은 검을 동시에 생성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그런 능력자다.


“아이리스의 이름으로······ 너를 심판한다!”


은빛의 슬레이어가 소리 높여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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