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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티아 & 그라티아

꿈 속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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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티아94
작품등록일 :
2012.11.23 04:09
최근연재일 :
2014.11.29 07:32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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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9
추천수 :
77
글자수 :
133,197

작성
12.11.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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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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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7쪽

Ch.2 황도 아란셰르타

DUMMY

투둑- 투둑- 투두둑-


지금 창 밖으로 부드러운 이슬비가 눈물나도록 아름답게 내리고 있었다. 작고 동그란 빗방울들이 장난스레 두드리는 투명한 창문 너머로는 정교한 정원이 밝은 녹색으로 펼쳐져 있었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환한 햇빛에 황도 아란셰르타는 연한 황금색에 잠겨 있었다. 아름다운 정원 사이로 난 길 위에는 시종이 들어주는 우산 아래에서 느긋한 걸음으로 산책하는 귀부인이 있는가 하면 길다란 후드자락을 휘날리며 바삐 뛰어가는 이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방 안의 사람은 창 밖 풍경의 그 어느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하였다. 심지어 그는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조차에도 완벽히 무지한 듯 보였다. 그는 몇 시간동안 단 한번도 제 책상에서 시선을 땐 적이 없었다. 방 안에는 비가 내리는 소리 외에 펜이 종이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수 천개의 빗방울들이 창문의 매끄러운 표면을 밟고 미끄러져내렸을까.


똑똑-


"들어와라."


사각사각-


남자는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즉시 반응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 외에는 그가 노크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단장님. 방금 세드릭 에반크 경과 그 팀이 제국 남부에서의 임무를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사각사각-


"결과는."


남자는 쉬지 않고 펜대를 놀리며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꽤 많은 수와 종류의 동물 샘플들 외에도 각 지역의 물과 흙, 그리고 다양한 식물 샘플을 채집해 왔습니다. 지금 현재 연구소들로 보내져서 분석되고 있습니다."


"그래. 나중에 결과를 보고하도록."


사각사각-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단장님, 에벤크 경이 오셀렘 근처에서 마기에 노출된 늑대무리의 습격으로 부상당한 귀족영애를 한 명 데려왔습니다. 지금은 혼수상태로 에르나힐에 보내져서 신성마법으로 치료받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페르다이의 뮬리센 해안을 2주일간 휴가차 방문한 아이리엘라 율리안트 비첼렌 백작영애입니다."


"...알았다. 피해자의 의식이 회복되면 보고하도록."


사각사각-


"예. 그리고 그 것이 이번 보고의 끝입니다."


"-수고했다, 경. 이만 나가보도록."


"예."


보고를 마친 기사가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간 후에도 남자는 쉴새 없이 서류더미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창 밖으로는 아직도 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태양은 진한 노랑색의 빛을 온 세상에 뿌려대고 있었다. 창문 있는 수만개의 가지각색 건물들이 그 실내까지 모조리 황금빛으로 적셔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른한 기운으로 가득 찬 방 안에서 소녀는 그저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고풍스러운 방 안은 창문을 지나쳐 들어온 황금빛 햇살로 온통 덧칠되어 있었다. 특히 저 상앗빛 벽은 손을 뻗어 제 손가락으로 흝으면 손끝에 옅은 황금가루가 묻어나올것만 같았다. 소녀는 한참동안 벽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윽고 시선을 조금씩 들어올려 황금색 음영이 깊게 진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상아로 보이는 것에 다양한 형상들이 양각되어 있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넝쿨들과 온순한 노루 세 마리. 평화로운 숲속에는 작은 옹달샘도 있었는데, 그 표면의 잔잔한 물결이 놀랍도록 현실감 있었다. 그 외에도 작은 동물들과 새, 물고기 등등 많은 것들이 새겨져 있었다. 연신 감탄하며 천장을 눈으로 쭈욱 흝어보다가 이윽고 그녀가 처음 눈을 떳을 때 보았던 지점에 시선이 닿았다. 작지만 확연하게 보이는 황금나비 한 마리가 굳은 상아속 세상에서 제 날개를 활기차게 팔랑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소녀는 떠올렸다.


...여긴 어디지?


이렇게 사치스러울 정도로 정교하며 품위 넘치는 방은 평생 처음 본다. 그녀는 잠시 두 눈을 방황하게 내버려 두었다가 이내 아직까지 누워있었던 몸을 일으켰다. 우선 여기가 어딘지를 알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한쪽 발을 침대 밖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침대가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녀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침대 바로 옆에 사람이 한 명 앉아 있었다. 의자에 기댄채 잠에 빠진 듯 보이는 그는, 선명한 흑청발을 제 이마 위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이안 오라버니..?"


아이레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부러워 했던 아름다운 흑청발 아래 드러난 단정한 얼굴은 너무도 익숙한, 그리고 요즘 유난히 그리워 했던 제 하나뿐인 친오라버니의 것이었으니까. 그녀는 그가 눈물 나도록 반갑기도 하고, 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몰라 가만히 그 고요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갑자기 그가 눈을 번쩍 뜨기 전까지는.


"-으아앜!"


난데없이 얌전하게 감겨 있던 눈꺼풀이 사라지고 그 대신 짙은 청회색 눈동자 한쌍이 저를 직시하자, 그녀는 순간 화들짝 놀라서 결국 커다랗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이레?"


이안도 그녀의 갑작스런 비명소리에 내심 상당히 놀랐다.


"..아, 오라버니.."


"...그래, 나다. 그런데.... 우선, 너는 레이디가 되어선 입에서 그런 품위 없는 소리가 나오다니?"


"...."


이럴수가. 오래간만의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듣는 것이 잔소리라니! 이안은 다 좋았지만 이런 상황에서만은 참으로 기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아이레."


"..알았어, 오라버니. 다음부턴 주의할게."


"....그러도록. 그나저나 어디 아픈 곳은 없나?"


아이레가 먼저 숙이고 들어가자 이안은 무어라 말을 하려는 것처럼 입을 달싹였지만 이내 체념했다. 어릴때부터 그가 아무리 훈계를 해대도 아이레의 행동거지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바깥에서는 제법 귀족영애답게 행동하는듯하여 다행이었다.


"-없는데."


"그런가.. 우선 사람을 불러오겠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 오라버니! 그러지 말고 지금은 여기에 있어줘.."


"..."


자리를 뜨려 하는 그의 소맷자락을 살짝 쥔 아이레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를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오라버니였기에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다. 하지만 잠시 망설이던 이안은 이내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길로 하나뿐인 여동생의 하얗고 작은 손을 소매에서 떼어내어 그녀의 무릎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주었다.


"....곧 돌아오겠다."


"...응.."


아이레는 문을 우아하게 닫고 사라지는 이안의 훤칠한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몇 분 동안 그녀가 멍하니 천장에 새겨진 숲속을 머릿속에서 홀로 거닐었을까, 그의 말대로 이안은 금방 돌아왔다. 새하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몇명 데리고서. 아이레는 어느새 다시 침대머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 안녕하십니까, 영애. 저는 에르나힐 기사단의 부단장인 케루스 메르핌 샤르테다입니다."


"저는 아이리엘라 율리안트 비첼렌입니다, 샤르테다 경."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매우 놀라고 있었다. 에르나힐이라면 신성마법사들로 구성된 황실기사단으로, 샨티아레 신성국 다음으로 가장 뛰어난 신성마법 단체이다. 보아하니 그녀의 치료는 에르나힐에서 맡은 듯 하다.


샤르테다 이후로도 몇 명의 기사단원들이 아이레에게 인사해왔다. 그리고서 그들은 몇 개의 질문과 함께 그녀의 몸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그때 늑대의 발톱에 긁혀서 생긴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어 아이레는 상당히 놀랐었다.


"모든 것이 정상입니다. 다만 아직은 여러가지 이유로 휴식이 매우 필요한 상태이니, 며칠동안 푹 쉬십시오, 영애. 그리고, 며칠 뒤 저를 찾아오십시오.. 말씀 드릴게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지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영애. 그럼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몸조리 잘 하라는 인사를 한 마디씩 건네고서 그들은 방을 나섰다. 이안이 조용히 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아이레는 말 없이 쳐다보았다. 다시 침대가의 의자에 기대앉은 이안이 그녀를 똑바로 마주해왔다.


"..."


"..오랜만이야. 이안 오라버니."


"그래, 오랜만이구나."


다시 둘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이건 전적으로 이안 오라버니의 탓이라구-


"..그래도 기사단이 너무 혹사시키지는 않는가보네? 오라버니가 나랑 있어줄 수 있는거 보면.."


"-요 며칠은 비상휴가를 내었다."


"..비상,휴가..? 그런 것도 줘? 그런데 왜 그랬는데..?"


이안이 잠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곧 다시 그녀와 시선을 맞춰왔다.


"...네가 그리 다쳐오니까 그런 것 아니냐. 며칠동안 깨어나지 않아서- 걱정되었었다.."


"..."


아이레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이안 오라버니는 유일하게 저를 그나마 아껴주었던 가족이긴 하지만, 사실은 그 조차 언제나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해왔었다. 그런 그가, 걱정했었다고..?


"...참. 너에게 편지가 몇 개 왔었다."


"..편지?"


이안은 말 없이 허리를 숙이고 침대 옆 협탁의 서랍을 열더니 그 안에서 편지가 들었을 봉투를 몇 개 꺼냈다. 서랍을 닫고 다시 허리를 핀 그가 제 손 안에 시선이 밖힌 여동생에게 봉투들을 내밀었다.


"읽어봐라."


그녀는 잠자코 그 고급종이로 만들어진 편지봉투들을 받아들고 차례로 그 발신인들을 확인했다. 세레나이데 기라 시에블렌. 프레얀 베르크 비첼렌-? 그리고, 헬리아 율리안트 비첼렌..?


황급히 고개를 들어 이안 오라버니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그저 고요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어서 읽어보라는 듯이.


잠시 망설이다가 그래도 대충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지 짐작이 가는 세렌의 편지를 먼저 읽어보기로 결정한 후 그녀의 편지를 펼쳤다. 고급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단정하게 적혀진 글씨들이 손 안에서 펼쳐졌다.



[아이레!

너의 소식을 우연히 전해 듣고 우리는 정말로, 기절하는줄 알았어!! 그 당시 세이 오라버니와 나는 코델른의 어느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너무 걱정이 되어서 먹던 식사도 포기하고 곧장 숙소로 돌아와서 이 편지를 쓴다... (중략) ...아무쪼록 네가 어서 쾌차해서 이 편지를 읽을 수 있길 바란다! 그 때는 빨리 답장 줘야해? 그럼, 너의 건강을 위해 주신 프레하스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사랑을 담아, 세이와 세렌에게서.


*추신: 엔탈피로세르타임이 기력회복에 최강이야! 그러니 하루에 한번씩은 꼭.꼭. 섭취하도록 해!!]



아이레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손에 쥔 편지를 읽다가 종이의 끝자락에 달린 추신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음.. 그녀가 아무리 당부해도 엔탈피로세르타임은 다시 먹어보고 싶은 종류의 식물은 아니었다. 절대로. 그런데, 정말 그녀와 세이는 도대체 어떻게 나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걸까...?


"..그 곳에서 사귄 친구들이냐?"


"으응? 아... 응. 참 좋은 아이들이야."


"그래? 다행이구나."


그러고서 그는 눈짓으로 부모님의 편지들을 어서 읽어보라 재촉했다. 긴장으로 봉투를 집어드는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듯 했다. 먼저 손에 잡힌 것은 백작부인의 편지였다. 천천히 갑비싼 종이가 펼쳐지고 이내 정갈하고 우아한 필체가 시야를 수 놓았다.



[아이레, 내 아가야...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은데, 어디서부터 쓰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우선은, 하루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나길 바란다는 말을 하고 싶다. 네가 떠나고 얼마 뒤 네가 부상을 입어 의식을 잃은채 황궁으로 향했다는 전보를 받았다. 내가 너에게 언제나 무심한 어미였다는 것을 안다. 알고, 알았었다. 하지만 그 전보를 읽는 순간, 나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깨닫고 말았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내가.. 너를 배 아파 낳은 어미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까지 그 당연한 사실을 신경쓰지도 않고 살았지만, 너를 아무렇지도 않게 철저한 무관심 속에 방치하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너와 이안이 너무도 신경쓰여 일도 손에 잘 안 잡히고 자꾸만 황궁이 위치한 동북쪽으로 의미 없는 시선들을 던져보고 만다. 그 동안, 너를 완벽한 귀족으로 키우기 위해 알게 모르게 차가운 압박만을 주었던 것 같아서, 너의 마음과 바램들은 돌아볼 생각도 해 보지 않은 것 같아서..... 미안하다. 스스로의 염치 없음을 알지만, 이번 이안의 임명식을 위해 황도로 올라가면, 조금 더 진정한 모녀다운 시간을 가져볼 수 있기를, 감히 바래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어서 건강을 되 찾고, 한 달쯤 뒤에 보자꾸나- 하나뿐인 내 딸아.]



툭-


마지막 글자까지 눈에 담자 손에 힘이 저절로 빠졌다. 얇은 비단 이불로 덮힌 무릎 위로 가볍게 떨어진 편지를 눈으로 좇았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종이의 여기저기에는 검은 잉크가 조금씩 둥그렇게 번져있었다. 어머니께서....


그녀는 혼란스러운 심정을 고스란히 담은 물기어린 녹색 눈으로 제 오라비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그에게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자신이 제대로 읽은 것이 맞는지. 이 것이 그저, 저의 헛된 소원이 일시적으로 빚어낸, 지나치도록 매혹적인 환상은 아닌지...


이안은 그저 눈가를 약간 일그러트린채 그런 그녀를 말 없이 안아주었다. 따뜻한 오라비의 품에 갑작스레 안긴 아이레는 입구까지 가득 찬 물양동이가 흔들릴 때마다 조금씩 그 안에 담긴 물을 흘리듯이, 하나 둘씩 투명한 눈물방울들을 제 하얀 뺨 위로 떨구었다. 그리고 눈물 몇 방울을 더 세상으로 내보낸 그녀는 곧 이안의 품에서 제 몸을 떼어냈다. 순순히 놓아주는 이안이 품에서 꺼낸 새하얀 손수건으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는 와중에 아이레는 마지막 편지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집어들었다. 아버지의 편지였다. 백작의 문장이 찍힌 두꺼운 재질의 편지봉투에서 그 것을 빼내어서 펼쳐들자 딱딱할 정도로 단정한, 지독히 반듯하며 귀족적인 곡선들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안 오라버니의 필체도 이 것과 흡사하다. 짧은 딴 생각으로 긴장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킨 아이레는 다시 편지에 집중했다. 하지만 백작의 편지는 보는 사람이 거의 허탈할 정도로 짤막했다.



[아이레,

걱정했다. 건강을 되찾으면 답신을 보내거라. 그럼 이안의 임명식 때까지 건강히 잘 있거라.]



예상대로 편지는 단호하고 무서울 정도로 단도직입적이었다. 하지만... 망설임 따위란 없는 백작의 성정에는 무척이나 어긋나게도, 단어들의 시작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도록 번져 있다. 필자가 한 곳에 필요이상으로 오랫동안 펜 촉을 두었다는 증거다. 또한 그것은 그가 적을 말을 조심스레 고르며 고민하는 과정을 숨김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레에게 그 검은 얼룩들은 마음이 아릴 정도로 두 눈에 선명하게 박혀들어왔다. 잠시동안 천장을 응시하며 다시 차오르려는 눈물을 꾸역꾸역 제 자리로 밀어넣은 그녀는 고개를 내려 아직도 옆에 앉아 한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이안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나 종이랑 펜-"


"안 된다. 너는 쉬어야 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호히 기각하는 이안이었지만 아이레는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게는 그들의 아버지에게 속히 답장을 쓸 정당한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안돼. 아버지께서도 '건강을 되찾으면'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후우- 아이레, 너는 사실 당장이라도 다시 잠자리에 들어야한다. 빨리 잘수록 빨리 깨어나지 않나. 내일 일어나면 그때 아버지께 답신을 보내도 늦지 않는다."


".....알았어."


"-착하다."


결국 수긍하고 마는 여동생의 머리를 다섯살짜리에게 꼬마에게 하듯 몇 번 쓰다듬는 그가 어이없기도 하고 그 태도가 평소와는 미묘히 달라 조금 낯설기도 하지만, 아이레는 그런 그의 손길이 싫지 않았다. 저항 없이 다시 자리에 눞는 그녀를 보고 이안이 살짝 웃었다.


"나 잘래, 오라버니."


"그래."


"........나 잠들 때까지 가면 안되..?"


망설임 끝에 없는 용기를 꾹꾹 짜내어서 꺼낸 여동생의 부탁에 그는 잠시 그녀의 말간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래."


그제서야 아이레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다시 눈을 번쩍 뜬 그녀는 잠시 이안의 손을 노려보다가 이내 가만히 있는 그 것을 마치 조그마한 고양이가 잠시 땅에 내려앉아 쉬고 있는 나비를 노리듯 훽- 낚아채 제 손에 쥐었다. 혹여 이안이 제 손을 무참히 뿌리칠까 불안하게 빛나던 그녀의 눈동자는 오라비가 저항 없이 앉아만 있자 다시 맑아졌다. 크고 단단한 오라비의 손을 왼 손으로 편안하게 고쳐 쥔 아이레는 그제서야 제 몸에서 긴장을 완전히 풀어냈다. 스르륵 눈꺼풀을 닫는 그녀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피어났다. 지켜보는 이안의 마음도 속수무책으로 평온하게 만드는 그런 달콤한 미소였다.


"잘 자라, 아이레."


"..으응, 오라버니...."


그리고 황금빛 햇살로 가득 차 있었던 그 방이 차츰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흑청발의 청년은 세상 모르게 잠든 제 여동생의 손을 놓지 않은채 미동 없이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작가의말

조금 어색한 부분도 군데군데 꽤 보이는 군요 ㅎㅎ;; 아무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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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h.1 세라흐의 바다 12.11.23 565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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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ologue. 꿈 12.11.23 810 5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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