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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티아 & 그라티아

꿈 속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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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티아94
작품등록일 :
2012.11.23 04:09
최근연재일 :
2014.11.29 07:32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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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5
추천수 :
77
글자수 :
133,197

작성
12.11.23 11:21
조회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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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Ch.2 황도 아란셰르타

DUMMY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탁.


분명한 연유 없이 한숨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다. 오랫동안 손에 쥐고 있던 펜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리 없이 밀려나는 의자를 뒤로하고 햇빛이 조용히 들어오고 있는 창가로 다가가 섰다. 오랜만에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아넣어 보았다.


창 밖으로 온갖 종류의 인간들이 부산스레 오간다. 그들의 가지각색 머리 위로 파란 하늘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 특유의 지독히도 무심한 얼굴로 그들을,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그 새파란 얼굴을 직시하며 속으로 가늠해 보았다- 이렇게 창 밖 풍경을 감상해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1년, 2년, 10년?


자신은 만약에, 라는 어리석은 장난질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이렇게 자신과 동떨어진 세상을 구경해보는 날이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그 분들이 그리 급작스레 돌아가시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쯤 자신의 삶이 어떨까, 하는 미련맞은 망상 때문에.


이렇게 숨 돌릴 틈이 생기는 날이면 가끔씩 회의가 들기도 한다. 미친듯이 업무에만 매달려, 마치 일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계의 역할을 스스로 자처한 듯한, 썩 좋지만은 않은 기분이다.


하지만 후회는 않는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돌아가게 해주는 업무들이 아니었다면 무엇을 위해 숨 쉬어야 할지, 모르겠으니.


....이런. 쓸데 없이 감상적이 되었다.


창문에서 시선을 떼어내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오는 시계. 1시 17분.


-정확히 12시간 차이. 새벽에 그 일이 또 일어난 그 시각과 말이다.


책상 뒤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어느 순간부터 감지되는 그 존재감. 스스로 꽤나 신뢰하게된 기감에 의하면 분명 방 안에 자신만이 존재하는데, 기감보다 더 깊숙히 뿌리 박은 이 본능은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해오는, 기묘한 존재감. 어릴적에는 등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이 수십번도 일곤 하였다. 하지만 단 한번도 고개를 돌리는 멍청한 짓을 저지른 적이 없다. 수천번을 돌아보아도, 그 곳엔 아무것도 없을테니.


그 미묘한 존재감은 언제나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다. 굳이 표현하자면, 기분 참 더러웠다.


누군가가 그의 머릿속에 교묘히 숨어들어 그를 감시하고 있는 듯한 기분.


하지만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사라지기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그렇기에 더더욱 기분이 썩 좋질 못했다. 그에게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존재를 생각하며 방치해 두었던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뭐가 되었던 간에 오랫동안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면 한다. 정말.


사각사각사각-










"...어서 들어요, 영애. 몸과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효과로 유명한 파이녜 차 입니다."


달칵-


샤르테다 경이 느릿느릿한 손길로 찻잔을 기울이는 것을 보고 그녀도 따스한 기운이 번져나오고 있는 찻잔의 매끄러운 손잡이에 손끝을 가져다 대었다. 새하얗고 둥근 찻잔 속에 맑은 녹색의 찻물이 담겨 있었다. 찻잔을 조심스레 들어올려 입술에 가져다대자 물의 표면에서 피어오르는 투명한 김이 이마를 따스하게 간지럽혔다. 살짝 입안에 머금은 찻물에서 시원하지만 약간 씁쓸한 향이 올라왔다. 몸 속으로 흘러 들어간 찻물이 구석구석 쌓인 피로를 깨끗하게 씻어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한 모금 더 마시고는 새하얀 찻잔을 탁자에 소리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그래. 생각보다 빨리 저를 찾아오셨군요, 비첼렌 영애."


"..예. 궁금한 것들이 조금, 있어서요."


잠시의 침묵 뒤에 그는 찻잔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약간 주름진 커다란 손이 하얀 찻잔을 조심스레 만지작 거린다. 무엇을 망설이는 걸까.


"....영애. 그런 기분 느껴보신 적 있으십니까?"


"예?"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혼자서만 보고 느끼고 있다는 기분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왜 그런 적이 없겠는가.


"..있습니다."


줄곧 찻잔을 만지작 거리며 마치 그 안에 담긴 찻물을 관찰하듯 시선을 아래로 고정해두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어올려 아이레의 눈을 직시해왔다. 그녀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영애. 영애가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을때, 영애의 치료를 위해 혈액을 뽑아보았었습니다. 그리고 그 혈액을 분석해 본 결과... 우리는 영애가 신성마법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네?"


그가 태연한 얼굴로 친철히 반복해 주었다.


"우리는 영애가 신성마법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신성마법이라니요? 그런.."


"아까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기분을 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 그렇지만.."


"무엇을 보셨습니까?"


마음속까지 꿰뚫어 볼 듯한 맑은 빛의 그의 눈동자는 줄곧 그녀에게서 떠나가지 않고 있었다. 이제 보니 파이녜 차의 빛깔과 거의 동일한 엷은 녹색의 눈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가끔 눈에 스쳐지나가듯 보였던 작고 희미한 형상들을 떠올렸다. 그 정체가 궁금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감히 물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베일로 가려진 영역. 손톱만큼의 망설임 후 입을 열었다.


"....작은 인간의 형상을 한, 희미한 빛이 나는, 요정..? 들 이었습니다."


"-정령이로군요."


정령?


"정령마법은 신성마법과 깊히 연관되어 있지요. 어쩌면 신성마법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영애는 정령마법사의 재능이 있는 것이지요. 왜 지금까지 몰랐는지 궁금하십니까? 아마도 그건 영애가 지금까지 스스로의 가능성을 억누르기만 하고 살아오지 않았나, 감히 짐작해 봅니다."


뭐라구요? 도전적이기까지한 그 말에 무어라 반박을 하고 싶으면서도 묘하게 수긍할 수 밖에 없는 말이라 입이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너무 말도 안되는 소리라 믿겨지질 않았다. 내가 신성마법에 정령마법사라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샤르테다 경이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국을 위해, 우리는 요즘 신성마법사가 가능한 한 많이, 대량으로 필요한 상태지요. 인재는 지독히도 부족하고."


달칵-


"그래서 에르나힐에서 비첼렌 영애의 재능을 키워보고 싶습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저를요?"


"예. 여기 정식 계약서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탁자의 서랍을 열어 고급 종이로 만들어진 두꺼운 서류묶음을 내미는 그의 얼굴에 어쩐지 속은 기분이 들었다.


휘리릭 대충 계약서를 흝어보니 별로 세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수 많은 서류들에 글자가 빽뺵히 채워져 있었다. 모두 다 중요한 조항들일 것이다.


"...우선 저의 오라버니와 상의를 해보고 결정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경."


"그러시지요. 정해진 기간은 없지만 되도록이면 서둘러서 결정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저는 이만-"


"다음에 뵙겠습니다."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배웅해 주는 샤르테다 경을 뒤로 하고 반쯤 도망치듯 그의 집무실을 나왔다. 휑한 복도가 복잡한 그녀의 머릿속을 조금은 식혀주는 듯 하다.


갑자기 신성마법에다 정령마법이라니, 정말 꿈 같은 말이지만, 현실이었다. 적어도 방금 전 샤르테다 경의 말에 의하자면. 무심코 화창한 하늘을 보여주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안 오라버니한테 가볼까? 훈련하느라고 얼마간 보지도 못하는데.


그녀는 한동안 가슴께에 서류묶음을 두 팔로 끌어안은채 길다란 복도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결국 이안이 열심히 훈련하고 있을 카르티옌 기사단을 용기 내어 방문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안 오라버니 놀래켜주기도 할 겸. 설마 너무 싫어하진, 않겠지..?


조신한 듯한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가며 혼자서 웃음 짓다가 그 다음에 드는 생각에 조금 울상 지었다.


아.. 그런데 그 남자, 아인티스 대공은..?


....쓸데 없는 걱정이다. 뭐, 어쨌든 그 남자와는 만날 일이 없을 테니까.


고운 청록빛 드레스의 소녀가 아름다운 햇빛이 흘러들어오고 있는 황궁 건물의 복도를 지나며 품 안에 든 서류묶음을 고쳐 들었다.


지금 당장 이안 오라버니의 예비 직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설레었다. 기분 좋게.


.....긴장도 되지만.


작가의말

기분 좋은 하루 되세요!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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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의 인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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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공지 14.11.29 177 2 1쪽
25 Ch.2 황도 아란셰르타 14.02.27 202 2 15쪽
24 Ch.2 황도 아란셰르타 +2 13.04.27 303 3 24쪽
23 Ch.2 황도 아란셰르타 13.02.20 449 2 19쪽
22 Ch.2 황도 아란셰르타 13.01.05 383 2 12쪽
21 Ch.2 황도 아란셰르타 12.11.23 521 3 21쪽
» Ch.2 황도 아란셰르타 +2 12.11.23 465 2 9쪽
19 Ch.2 황도 아란셰르타 12.11.23 359 2 12쪽
18 Ch.2 황도 아란셰르타 +4 12.11.23 395 2 14쪽
17 Ch.2 황도 아란셰르타 12.11.23 458 2 9쪽
16 Ch.2 황도 아란셰르타 +2 12.11.23 632 3 17쪽
15 Ch.1 세라흐의 바다 +2 12.11.23 394 3 14쪽
14 Ch.1 세라흐의 바다 +4 12.11.23 257 2 14쪽
13 Ch.1 세라흐의 바다 +4 12.11.23 437 2 13쪽
12 Ch.1 세라흐의 바다 12.11.23 479 2 8쪽
11 Ch.1 세라흐의 바다 12.11.23 433 2 14쪽
10 Ch.1 세라흐의 바다 +2 12.11.23 675 2 7쪽
9 Ch.1 세라흐의 바다 +2 12.11.23 578 3 13쪽
8 Ch.1 세라흐의 바다 12.11.23 592 4 7쪽
7 Ch.1 세라흐의 바다 +2 12.11.23 619 7 8쪽
6 Ch.1 세라흐의 바다 12.11.23 495 4 11쪽
5 Ch.1 세라흐의 바다 12.11.23 396 3 5쪽
4 Ch.1 세라흐의 바다 +2 12.11.23 610 5 10쪽
3 Ch.1 세라흐의 바다 12.11.23 565 5 8쪽
2 Ch.1 세라흐의 바다 12.11.23 773 3 6쪽
1 Prologue. 꿈 12.11.23 809 5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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