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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 님의 서재입니다.

알바생이 연출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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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박달대게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6.15 10:5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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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10
추천수 :
1,066
글자수 :
202,511

작성
24.05.13 10:20
조회
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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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
12쪽

10화. 연출부 대타 (9)

DUMMY

“수고하셨습니다.”


오후 여섯 시 반.

대망의 첫 촬영이 끝났다. 예정보다 이른 퇴근에 스태프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제작부 형이 마이크를 잡았다.


“세트장 옆에 숙소 잡아놨습니다. 잔업 있거나 출퇴근이 어려운 분은 제작부에게 말하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 소리에 여기저기서 스태프가 몸을 풀었다.

팔다리를 휘두르며 스트레칭을 하기에 왜 저러나 했더니.


“숙소 들어가기 전에 족구 한판 어때?”

“좋지! 근처에 운동장이 어디 있더라?”


운동 좀 한다고 티 내는 거였다.

어젯밤 두식이 형에게 전화가 왔다.

남양주가 서울과 가깝긴 해도 지방이다 보니까, 원하는 스태프에 한해서 숙소가 제공된단다. 출퇴근 시간을 아껴서 편히 쉴 수 있고, 제작부에서 간단한 도시락을 제공하기에 생활비도 굳고.

무엇보다도 축구나 노래방 등 전체 어울리는 시간이 있어서 재미있다고 했다. 너도 짐을 챙겨오라며 꼬드기는 소리에 솔깃했지만-.

며칠간 집에 혼자 있을 엄마가 생각나 선뜻 그러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깡마른 사람이 또 굶겠지.

엄마는 자신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배만 채우면 장땡이라고 생각해서 빵, 우유, 떡. 무엇이든 덩어리진 걸 삼키면 ‘끼니를 때웠다’라고 한다. 그 탓에 영양부족증으로 고생했으면서도 나쁜 식습관을 고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들을 먹이기 위해서는 요리를 했다. 내가 있을 때 유일하게 상을 차렸다.

집을 비우면 엄마는 그만큼 부실하게 먹겠지? 생각만으로 가슴이 시큰하다.


내가 지금 놀 때냐. 엄마 밥 먹이러 가야지.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내 속도 모르고, 다들 너무 즐거워 보인다.


“팀 대항전 농구 한판 하시죠?”

“농구는 키가 큰 촬영팀이 유리하잖아요. 종목 바꿉시다.”

“볼링 어때요?”

“오-.”

“좀 치나?”

“제작부! 괜찮은 볼링장 알아봐봐.”

“네, 맡겨만 주십시오!”


신났네. 신났어.

대부분 남양주에 남는 분위기다. 놀 생각에 여기저기서 후끈 달아올랐다.


“서울로 이동하실 분은 주차장에 버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이 맡긴 콘티 수정본만 복사하고 버스에 타야겠다. 들뜬 분위기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 프린트기만 멍하게 봤다.

어슬렁, 어슬렁-. 옆으로 흔들리는 그림자가 다가온다. 요염한 것이 안 봐도 두식이 형이다.


“우리 일한이-. 볼링 좀 치는가?”

“아니요.”

“운동 잘하게 생겨서 볼링은 아닌가 봐?”


기분이 좋은지 두식이 형의 입꼬리가 광대뼈에 달라붙었다. 아까부터 쉬지 않고 핑크 스페이스의 노래를 흥얼거리더니, 내 옆에 와서도 부른다.

둠칫 둠칫.

춤까지 더해져 정신이 사납다.


“일한아, 저녁이 있는 삶. 행복하지 않니? 이게 다 제시카 님 덕분이란다.”


맞는 말이다.

제시카가 NG를 많이 낼 거로 예상하고 앞뒤로 시간을 길게 잡아놨는데, 이게 웬일이래? 제시카는 신애리의 코치를 받으며 난항 없이 촬영을 마쳤다. 덕분에 이런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좋은 날, 볼링까지 이겨서 공짜 치킨을 먹는다면 최고겠지?”


두식이 형은 허공에 볼링공을 굴리는 시늉을 했다.


“하나, 둘, 세- 엣! 스트라잌- 크!”


뒤로 쭉 뻗은 다리, 하늘을 향해 치솟은 팔!

두식이 형은 그대로 멈춰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봤다.


“형이 치킨 먹게 해줄게. 믿고 따라와!”


기대에 찬 형에게 미안하지만.


“저 서울행 버스 탈 건데요.”

“뭬야?”


흥을 깼다. 두식이 형은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가긴 어딜 가. 연출부는 인원수가 적어서 빠지면 배신, 배반이야.”

“아무것도 안 챙겨 왔어요.”

“형들이 몇 명인데 그런 걸 걱정하냐? 팬티부터 점퍼까지 싹 다 빌려줄 테니까. 구석에 가서 볼링 연습이나 하세요.”


몸을 곧게 세운 두식이 형은 또다시 볼링 치는 자세를 했다. 몸을 낮추고 공을 든 것처럼 두 손을 모으더니-.


“하나-. 둘-. 스트라잌- 크!”

“자세 좋은데요?”


신애리다.

한 시간 전에 퇴근한 사람이 세트장에 뭐 하러 다시 왔지? 두식이 형은 학이 비상하듯 몸을 펼친 채로 신애리를 보고 웃었다.


“사무실에는 무슨 일로···. 뭐 찾으세요?”

“일한 씨요.”


신애리는 몸을 틀어 나를 봤다. 화장 지웠네? 수수한 신애리는 나보다 세 살 많은 누나임에도 동생처럼 어려 보인다.


“일한 씨 목소리가 나서 와봤어요.”

“저요?”

“네. 맛있는 거 사줄게요. 스태프 회식이 잡혔다는 말에 지원해 주러 왔어요. 피디님이 대패 삼겹살 먹자던데, 제가 업그레이드해 줄게요.”


검정 카드를 꺼냈다. 신애리란 이름 옆에 금색 마크가 반짝거린다. 저게 말로만 듣던 골드 카드인가?


“저는 뭐든 잘 먹습니다.”


형식적인 대답에 뜨거운 시선이 느껴진다. 두식이 형이 입으로 정확하게 ‘소고기’라고 말하며 노려봤다.

소고기. 소고기. 소고기. 소고기!

미친 집념이다.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기 어려워 그대로 전달했다.


“소고기도 되나요?”

“물론이죠!”

“그럼 소고기 사주세요.”


예스! 예스! 두식이 형의 팔을 휘두르며 좋아하는 통에 신애리가 웃었다.


“한우 맛있는 식당으로 알아봐 달라고 실장님에게 말해놓을게요. 일한 씨는 오늘 여러모로 힘썼으니까, 많이 먹어요.”

“감사합니다. 근데 저는 바로 서울에 가야 해서요. 형이 내 몫까지 두 배로 먹을 겁니다.”

“으- 응?”


고개를 갸우뚱 꺾은 신애리가 나를 뚫어져라 본다.


“내가 사는 고기를 안 먹고?”

“네.”

“나..... 일한 씨 사주려고 쏘는 건데?”


카드가 도로 주머니에 들어간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두식이 형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절규하듯 부르르 떨더니 내 팔을 잡아당겼다.


“일한아, 소고기 먹어야지? 이럴 때 몸보신해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먹겠다는 두식이 형의 부담스러운 표정, 미안해서 어떡하냐.


“가야 해요.”

“왜!”

“엄마가 혼자 계시면 식사를 거르셔서요.”

“집에 배달 음식 보내드려. 좋- 은거로!”


쉬워 보이는 저 일이, 우리 집은 어렵다.

배달 음식은 비싸고, 집이 언덕이라 오토바이가 올라가기 힘들다고 배달 팁도 더 부른다. 이래저래 계산하다 보면, 우리 형편에 한 끼를 먹겠다고 너무 큰 금액을 쓰는 것 같아서 매번 포기했다. 그러다 보니 여태껏 시켜본 적 없다.

이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밥은 다음에 같이 먹어요.”

“그럼 이건 어때요?”


신애리가 손을 합장하듯 모으고 살포시 웃었다.


“일한 씨는 우리랑 회식하고, 어머님은 집에서 소고기를 드실 수 있도록 제가 보내드릴게요.”

“좋아요.”


화끈한 이 대답은 내가 아닌 두식이 형이다. 나를 대신해 찬성하고 활짝 웃는다.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내 의견 따위는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신애리와 두식이 형은 짝짜꿍 좋아하며 대화를 마쳤다.


“일한 씨, 집 주소가 어떻게 돼요?”

“..... 정말 배달시킬 거예요?”

“그럼요.”




***




- 일한아, 너 결혼해?


엄마는 통화하는 내내 몇 번이고 확인했다.


- 보자기에 곱게 쌓인 한우가 도착했어. 봉황이 그려진 게 너무 고급스러워. 이런 건 아무한테나 보내는 게 아니잖아.


큰 의미 없는 소고기라고 해도, 엄마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 투 뿔이야, 투 뿔. 양이 너무 많아서 한 달은 먹게 생겼어.


감탄사만 몇 분을 더 듣고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신애리가 흐뭇하게 쳐다봤다. 나는 지금 신애리의 밴에 타고 있다.


“일한 씨 어머님 반응 보니까, 돈 쓴 보람이 있네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다 같이 회식 후에 볼링장으로 이동하는데, 신애리가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끌고 밴에 태웠다. 운전석에는 실장님이 있고 차 밖에는 경호원이 있고.

포위된 것처럼 갇혔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그 바람에 의도치 않게 신애리 옆에서 통화했다.


“어머님의 웃는 소리를 들으니까, 다른 것도 사드리고 싶다!”


신애리는 뿌듯해하며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냈다.

촬영 기간에는 계획된 식단대로만 먹는다며 식당에서 물만 마시더니, 이제야 저녁을 먹나 보다.


“일한 씨, 오늘 정말 고마워요.”


한 것도 없는데 자꾸 저런다.


“일한 씨 없었으면 나···. 표정 관리 힘들었을 거예요.”


신애리는 팔걸이에서 미니 테이블을 꺼냈다. 도시락 세팅하는 모습을 구경하는데, 혼자 피식 웃는다.


“금요일에 그만둔다고 했죠?”

“네.”

“내가 그전에 그만두면 어떨 거 같아요?”

“네- 엑?”


이게 무슨 연출부 뒷목잡고 쓰러지는 소리예요? 조금 전까지 회식 자리에서 수고했다며, 하하하하 웃던 스태프들 눈 뒤집힙니다.


“그만둘까 봐요.”


무서운 말 하지 마세요.


“...... 왜요?”

“촬영하면서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많았어요. 오전에 운동을 잡아놨는데 촬영해 달라고 해서 어그러지고, 세트장에는 상황에 맞지 않는 소품이 준비돼 있고, 지각한 제시카는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서 카메라 앞에 도저히 못 세우겠고.”


힘들었겠다. 근데 이런 일은 어디서나 일어날 법한 해프닝이잖아요? 이겨내요! 맞서 싸워요!


“..... 잘 해결됐잖아요.”

“맞아요, 잘 넘어가졌어요. 이런 소소한 일은 영화 현장에서 수시로 일어나죠. 그때마다 피디와 감독이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를 보면서 믿음이 생기는데. 하······.”


신애리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 보니까 감독과 피디는 방치형이더라고요. 틀어진 일정은 조감독이 바로잡겠다며 뛰어다니고, 소품은 어쩔 수 없다며 무조건 받아들이라 우기고, 제시카의 부은 얼굴에는 관심조차 없었죠.”


그건 그랬다.


“이 영화는 사공이 없는 배 같아요. 어디로 흘러갈지도 모르겠고, 잘못된 곳으로 가도 잡아줄 사람도 없을 것 같고.”

“........”

“대본 리딩과 전혀 다른 리허설을 봤으면, 앞뒤에 붙은 씬과 어떻게 연결될지 생각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데···. 감독은 현장 분위기에 휩쓸려 OK를 하더라고요. 이러면 영화 망해요.”


망한다니.

신애리는 빠른 판단을 했다. 그나저나 이런 심각한 말을 뭐 하러 내게 하는 걸까?


“일한 씨가 저라면 어떡할래요? 몇 달을 고생해서 촬영한 영화가 잘못 나와서 열심히 쌓아 올린 이미지가 하락하는 것과 ‘이건 아니다’ 느낌이 왔을 때 위약금 물고 빠져나오는 것. 어느 쪽이 피해가 적을까요? 어떤 결정을 할래요?”

“그거야.....”


지금 그만두면, 기사로 신애리 작품 해지가 떠돌고 말겠지만, 영화가 개봉하면 흑역사로 작품이 남는다. 평생 자료로 사용되겠지.

신애리에게 위약금은 부담되지 않을 거다. 더 좋은 차기작으로 벌어들이면 되니까.


“저라면 더 좋은 작품으로 옮겨 탈 거 같아요.”

“7씬 촬영 후, 실장님이 현장을 보고 그만두자고 했어요. 계약할 때, 제가 하는 광고와 겹치지 않게 협찬을 받기로 했는데 많이 어겼더라고요. 제작사 잘못을 물고 늘어지면 해지는 쉬울 거래요.”


그때 이미 이런 고민을 했구나.


“회사 이야기를 듣고 저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12씬 준비하며 변수가 생겼어요.”


신애리가 나를 보고 웃는다.


“재미있는 발상을 하는 사람을 봤거든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새로운 시각을 주더라고요.”

“제가요?”

“네. 덕분에 인물이 처한 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었어요. 공부가 되었죠. 이런 기회는 돈 주고도 못 사요.”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일한 씨, 이거 관두고 무슨 일해요?”

“반도체 생산직이요.”

“전공이 그쪽이에요?”

“돈 많이 준다고 해서 가는 건데요.”

“아하, 돈!”


웃는다. 뭐가 좋은지 눈이 반달이 됐다.


“그런 거였어요?”


진심으로 기뻐하며 웃는다.


“그것보다 많이 받으면 연출부 계속할래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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