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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 님의 서재입니다.

알바생이 연출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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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박달대게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6.15 10:5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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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03
추천수 :
1,063
글자수 :
202,511

작성
24.05.12 09:08
조회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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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글자
11쪽

9화. 연출부 대타 (8)

DUMMY

“12 씬 호흡을 이렇게 끌고 가자.”

“좋아요. 언니.”


신애리가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제시카는 알겠단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신애리의 입만 본다. 언니의 말이라면 우주 끝까지라도 믿고 따라갈 자세다. 그런 제시카가 귀여웠는지, 신애리가 웃었다.


“내가 어떻게 연기할 줄 알고?”

“분명히 좋을 거예요.”

“내가 너한테 뭘 시킬 줄 알고?”

“뭐든 해낼게요!”

“그 자세, 마음에 드는데? 시작한다. 잘 들어.”

“네!”


신애리는 막힘없이 대사의 방향성을 잡았다. 제시카는 그런 언니를 감탄하며 바라봤다.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손은 부지런히 필기했다.


‘연기하는 게 저렇게 좋을까.’


두 사람이 반짝반짝 빛난다. 옆에 있는 나까지 열정이 스며들어 숨죽이고 들었다.


치직-

무전이다.


그 소리에 신애리와 제시카가 동시에 나를 봤다. 윽- 미안해라. 의도치 않게 집중을 깨버렸다.


“죄송합니다.”


방해하지 않으려면 복도에 나가서 무전을 받아야겠지? 조심히 일어나서 뒷걸음치는데-.

덜컹!

신애리가 가방을 잡아당겼다.


“어디 가요?”

“복도에-.”

“그렇게 가버리는 건 아니겠죠?”


맞는데요.

자연스럽게 여기서 사라지려고 했는데요. 대답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무전이 들어왔다.


- 일한아.

“네, 조감독님.”

- 배우한테 십 분 후 리허설한다고 늦지 않게 오라고 전달.

“알겠습니다.”

- 너는 슬레이트 치는 방법 알려줄게. 바로 와.

“정말요?”

- 두식이한테 일 그만두기 전에 슬레이트 쳐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며?


해보고 싶다···. 정도로 말했는데요?

다시 영화 현장에 올 일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임금이 적어서 아마도 힘들 것 같았다. 이번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연출부 경험이라면, 그럴싸한 추억 하나쯤 가져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두식이 형한테 슬레이트를 만져보게 해 달라고 했는데....!

그 말을 두식이 형이 소원으로 부풀려 전했나 보다. 어떻게든 내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거겠지. 그렇다면 나도 의리를 지키자.


“네, 소원이었습니다.”

- 그 소원 내가 이뤄줄게. 바로 와.

“감사합니다.”


잘 됐다. 이로써 당당하게 세트장에 갈 수 있게 됐다. 신애리가 회의실에서 망을 보라고 한 탓에 붙잡혀 있었다. 할 일이 태산인데 혼자 놀고 있는 거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었다.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신애리 들으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시간을 확인했다.


“배우님들!”


저를 봐주세요.


“리허설 들어간답니다. 한시 삼십 분까지 세트장에 와주세요. 늦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깔끔하게 회의실을 나가려는데 이런 나를 신애리가 물끄러미 본다. 저러면 꼭 당황스러운 질문을 하던데.

또 그러지 않겠지? 불안한 마음에 눈길을 피했다. 혹시 모르니까, 붙잡히지 않도록 최대한 빠르게 이곳을 탈출하는 게-.


“일한 씨?”


잡혔다. 신애리가 가방끈을 잡고 놓지 않는다.


“연출부 그만둬요?”

“네.”

“왜요?”

“원래 여기 있던 연출부의 대타로 들어온 거라서요. 계약만큼 하고 나가는 거랍니다.”


하하하하하. 그러니 가방을 놔주지 않겠습니까? 손에 힘을 줬더니, 신애리도 힘을 준다.


“그게 언제까지인데요?”

“이번 주 금요일이요.”

“왜요?”


왜냐니요? 그때 나가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조감독 형이 빨리 내려오라고 했어요. 풀어주세요. 가방끈을 잡고 당겼더니, 줄다리기하듯 신애리도 자기 쪽으로 당긴다.


“작품 끝날 때까지 연출부 하는 건 어때요? 원하면 제가 피디님께 자리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

“괜찮습니다. 다음 주부터 다른 곳에 근무하러 가거든요.”


놀랐는지, 신애리의 눈이 커진다.


“거기는 어느 현장이에요?”

“현장···. 이요?”

“무슨 작품이냐고요.”


아! 내가 다른 영화팀에 간다고 생각했나 보구나.

저는 반도체 생산직에 육 개월 근무하러 갑니다. 열심히 벌어서 벼르고 벼르던 엄마의 빛을 다 청산할 겁니다. 생각만으로 뿌듯해서 미소가 지어졌다.


“영화 안 합니다.”

“웃네요? 영화 안 해서 좋아요?”

“다른 생각 하느라···. 어쨌든 그만둘 겁니다.”

“아쉬워요.”


진심인가? 싶을 정도로 서운한 표정이다. 오늘 처음 봤는데 정이 들었나 보다.


“너무 아쉬워요.”

“그럼 사인 한 장만 부탁해도 될까요?”

“네, 언제든지요.”

“감사합니다!”


앗싸.

엄마에게 자랑할게 생겼다.


“나중에 종이랑 펜 챙겨올게요. 그럼 저는 조감독님이 부르셔서 가보겠습니다.”


놔달라는 의미로 가방을 툭 당겼다.

팽팽하게 가방끈을 잡고 있던 신애리가 손에 힘을 뺐다. 스르륵 가방끈이 빠져나왔다.


“두 분 모두 늦지 않게 세트장에 한 시 반까지 와주세요.”


한 번 더 전달하고 회의실을 나섰다.




***




12 씬의 리허설은 두 번에 걸쳐 이뤄졌다.

감독이 원하는 대로 마주 보고 연기를 했을때는 시나리오 느낌 그대로였다. 다음은 배우들이 준비한 연기였다.

이게 그야말로 미쳤다.


“저게 뭐야?”


다들 예상을 비껴간 배우의 연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살벌할 줄 알았는데.”

“이 장면이 이렇게 달달해진다고?”


그러게 말입니다.

회의실에서 연습 장면을 미리 보지 않았다면, 나 역시 저들처럼 눈이 휘둥그레졌을 거다.


12 씬은 천상의 목소리 신나라와 타고난 아이돌 젠희가 서로를 못마땅해하는 장면이다. 리허설이다 보니까, 신애리와 제시카가 12씬 전체를 이어서 연기했다.

시작하기 전에 스태프들은 대사가 워낙 거칠어서 상큼한 캐릭터에 손상이 갈까 봐 걱정했다. 얼굴을 붉히며 보게 될 거라 예상했는데-.


“너무 괜찮다.”

“사랑스럽네!”


신애리와 제시카가 선보인 연기는 웃음을 만발하게 했다. 그들은 12씬을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우선 제시카.

아이돌 출신으로 대중이 연예인의 외모에 민감한 걸 잘 아는 젠희를 연기한다. 신나라의 얼굴 흉터가 가져오게 될 악플의 수위가 어느 정도일지, 신랄하게 비꼬며 겁을 줘야 하는데. 이걸-.


으이그, 저 쫄보!


-스럽게 연기했다.

제시카는 연습실 구석에 박혀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삐죽대며 대사했다.

웅얼- 웅얼.

저렇게 작게 말해서야 상대방에게 험담이 들리기나 하겠어? 싶을 만큼 소심한 모습을 보였다.

욕설도 ‘너 그러다 큰일 나-’, ‘어쩌려고 그러냐’ 식의 걱정을 담아 조심스럽게 뱉었다. 그러다가 신나라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화들짝 놀라 벽을 쳐다봤다.

자라도 아니고, 목이 쏙 들어간다.


‘아담한 몸을 잘 활용했네.’


172센티미터의 신애리.

158센티미터의 제시카.


신애리보다 상대적으로 몸이 작은 제시카가 웅크려 무릎을 끌어 앉고 있으니, 작아도 너무 작다. 그 바람에 아무리 거친 말을 해도 ‘저러다 한 대 맞으면 끽소리도 못하고 지겠는걸?’ 걱정스러운 약자의 분위기를 풍겼다.


‘한없이 여려 보이는 사람이 강한 척 막말을 하니까, 자기방어로 보이는 효과가 있구나.“


욕해도 보호 본능을 일으켜서 나빠 보이지가 않았다. 신애리가 저렇게 하라고 연기 지도했다.

관객의 반응을 예상하고 판을 짠거다.

똑똑해.

놀라운 건 이뿐만이 아니다.

연기가 처음인 제시카를 벽을 보고 앉게 함으로써, 표정 연기의 부담을 줄였다. 몸을 작게 하는 것만으로 캐릭터의 소극적인 특성을 살려내서 행동 연기의 부담도 줄였다.


‘짧았던 준비 시간에 이 많은 걸 계산한 신애리, 당신은 정말······!’


대단하군요.

그런 신애리가 연기하는 신나라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보컬이다. 가수는 가창력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그녀의 원칙에 아이돌 그룹 ‘냥이 시대’에서 귀여움을 담당한 젠희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일말의 기대를 갖고 들은 젠희의 라이브마저 별로다. 열받은 신나라는 ‘기본도 되어있지 않은 애랑 듀엣을 하라고요? 내 실력을 깎아내리면서까지 맞추기 싫어요.’라며 비속어 섞인 악담을 쏟는다. 이 악담이-.


‘미쳤나 봐.’


듣는데 어이가 없다.

태어나서 처음 저급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처럼, 비속어와 욕설의 악센트가 엉뚱한 곳에 있다. 말투가 너무 어색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킥킥 웃음을 유발했다.


“저건 제대로 된 시발이 아니야!”

“뒈져라가 저렇게 순한 맛이면 어떡해.”


아악!

욕 좀 한다는 사람이 보면 답답해 환장할 스킬이다. 웃기려고 하는 연기가 아닌데, 웃기니까 웃는 내가 이상한 놈이 되는 것 같다. 다행인건 나뿐만 아니라 다들 입을 틀어막고 있다는 거다.

겁쟁이 젠희와 착한 신나라의 저세상 험담 배틀은 그야말로 뒷목을 잡게 했다.


“그만해!”

“너희는 나쁜 짓이 안 어울려.”


악한 짓을 미련하게 소화하는 바람에 되려 착해 보였다.

이 와중에 말에는 힘이 있어서 대사에 박힌 가시는 전달됐다. 저런 말은 하는 게 아니지, 쉽게 귀에 박혔다.


‘감독이 원한 갈등의 씨앗은 심으면서, 캐릭터의 순수함은 지켜냈어.’


둘의 연기가 끝났을 때, 스태프는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이거 맞아?”

“잘한 거야, 아닌 거야?”


시나리오를 보며 상상한 그림과 너무 다른데, 재미가 있으니 혼란스러운 거겠지. 이 자리에서 가장 당황한 표정을 짓는 건 감독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싶은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모니터를 봤다.


‘분위기가 훈훈하니까, 자신이 생각한 연기가 아니라는 말도 못 하겠고, 이대로 가자고 하기에는 확신이 없고.’


속이 타나 보네.


“너무 좋네요!”


넋 놓고 있는 감독보다 장도연 스크립터가 빨리 반응했다. 일어나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 하듯이 흔들었다.


“기대한 것보다 더더더 재미있는데요? 그렇죠, 감독님?”


장도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능력자다. 피디와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인 예비 감독이고.


‘저 사람이 괜찮다고 하면 진짜 괜찮나 본데? 착각이 들지.’


그런 장도연이 웃자, 감독도 비로소 따라 웃었다.


“감독님 이대로만 가면, 반응 크게 올 거 같아요. 연기가 너무 좋았죠?”


장도연은 신애리를 자신의 영화에 캐스팅하고 하고 싶어서인지, 연이어 칭찬했다.


“인물들이 입체적이에요.”


몰아가는 분위기에 스태프도 하나둘 말을 보탰다.


“신나라와 젠희가 어떤 캐릭터인지, 보여주는 씬이었어.”

“웃음 참느라 코 평수 커졌잖아.”

“뻘하게 터지더라.”

“상처를 주니까, 맞장구치기도 뭐하고.”

“복잡했지.”


군중심리가 작동했다.

너도나도 괜찮다는 말에 감독의 입꼬리가 실룩댄다.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 신애리는 세트장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이대로 슛 가겠습니다.”


감독의 말에 신애리가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 되었다는 거구나.


“카메라 위치 변경합니다. 십분 뒤에 촬영하겠습니다.”


조감독의 말에 신애리가 세트장에서 나왔다. 두리번거리더니 감독에게 왔다.


“어떠셨어요?”


세트장 안에서 다 들었으면서 능구렁이처럼 모른 척이다.


“괜찮았어요?”

“좋던데요.”

“저도 그랬어요. 오랜만에 다양하게 시도해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난 거 같아요.”

“매번 이렇게 해주면 바랄 게 없겠네.”


감독의 말에 신애리가 나를 봤다.


“저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꼭 나한테 말하는 것처럼 시선을 떼지 않는다.


“같이 만들어가면 참 재미있을 거 같아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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